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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의 서재 Nov 30. 2020

브랜딩과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두 거장의 대담

서평 시리즈 #82 : <일하는 사람의 생각> 박웅현X오영식

하루 동안 광고의 수가 얼마나 될까? 100개 정도가 아닐까? 너무 적은가. 많이 봐줬다! 500개? 

국가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고 사람의 특성에 따라 다를 테지만 미국의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평균적으로 

5000개에 달한다고 한다. 유튜브, 인터넷 포털 사이트, SNS, 길을 걷다 만나는 수많은 입간판들, 회사 사옥에 걸려 있는 대형 전광판 속 광고들. 생각해보면 현대인과 광고는 불가분의 관계가 맞는 것 같다. 

유튜브를 볼 때마다 5초짜리 광고를 2편이나 봐야 해서 스킵 버튼만 10초 동안 누르고 있긴 현대인에 광고는 어쩌면 짜증 나는 존재이다. 그만큼 광고는 기업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존재이고 현대의 첨단 기술과 다양한 연구 결과가 녹아있는 하나의 복합 예술체이다. 광고에는 브랜딩, 디자인, 크리에이티브 등 무에서 유를 창조하여 사람들의 이목까지 끌어야 하는 거대한 과제가 함께 하는 것이다. 


<일하는 사람의 생각>은 박웅현, 오영식 대표라는 크리에이티브의 대가 2명이 모여 광고, 브랜딩, 디자인, 크리에이티브, 사람 사는 이야기,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인문학에 대해 나눈 대담집이다. 엮은이인 김신 작가가 두 대표와 마찬가지로 크리에이티브 업계에 종사하기에 대담을 진행할 때 심도 있고 확장된 이야기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대담집 형태의 책을 많이 접해보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읽었던 책들로 조금은 생각의 폭이 넓어져서인지 대담집 형태의 책이 훨씬 많은 영감을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담았기에 생각과 주장이 나온 맥락을 있는 그대로 파악할 수 있고, 읽는 사람 또한 현장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야에서 각자의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하고 있는 두 대표의 철학에 흠뻑 젖어들 수 있었다. 

브랜딩에 대한 재미있는 대화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브랜드 로고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외국의 경우 창업자의 이름을 그대로 딴 경우가 많다. 또는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이름을 정하는 경우도 있다. 전자의 예시는 '디즈니', 후자의 예시는 '애플' 등이 있을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의미를 담는 경우가 많다. 기업명도,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 명도 그러하다. 반면 각인된 브랜드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갈 것이고 그런다고 한들 사람들의 뇌리에는 여전히 예전 이름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30년 동안 '삼성'이 아닌 다른 이름을 마케팅한다고 한들 사람들은 삼성을 떠올릴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마케터들은 맡게 된 기업이 첫 네이밍에서 조금 실수가 있었어도 해당 이름을 좋은 이미지와 연결하려 노력한다. 해당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영어식으로 이름을 바꾸고 말았다. 농협 대신 NH로, 주택공사 대신 LH로, 한국전력 대신 KEPCO로 이름을 바꾸었다. 박웅현 대표는 이와 같은 움직임이 조금 아쉽다고 한다. 주택공사였다면 보다 신뢰감을 줄 수 있었을 텐데, 한국전력이 되려 더욱 강력한 이미지를 뿜어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는 것이다. 이처럼 브랜드는 관찰하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박 대표는 친구에게 들은 말이 있다. '너는 예전에 저기 풀 좀 봐~라고 얘기했던 친구였어.' 예전부터 일상을 깊이 들여다보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서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박 대표는 이처럼 예술가는, 크리에이터는 일상에서 감동 즉, 영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오 대표 또한 어릴 적 어머니 덕분에 형성됐던 색에 대한 감각을 발전시켰다. 미술 공부를 같이 했던 친구들 중에는 60가지의 포스터물감 이름을 모두 외우지는 못하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오 대표는 모두 외웠다. 색에 깊은 관심을 두고 끊임없이 고민했던 것이다. 브랜딩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예술이다.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을 관찰하지 못하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창작물을 만들 수 없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광고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근시안적인 시선에 대한 안타까운 이야기도 전했다. 하나의 굳은 원칙을 심지처럼 새기고 광고를 해야 한다. 매년 하고 싶은 말이 달라지면 안 된다. 같은 이야기에 대해 조금씩 달라지는 광고는 오래도록 켜켜이 쌓인다. '브랜드 헤리티지'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매년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색다른 광고를 기대한다. 덕분에 광고는 매년 달라진다. 스타벅스의 로고가 30년에 걸쳐 조금씩 달라졌기에 소비자들은 알아채지 못했듯, 초코파이의 크기가 30년에 비해 반 토막이 나도 매년 조금씩 줄였기에 못 알아챘듯 헤리티지를 쌓아야 한다. 매년 달라지는 광고는 사람들의 마음에 남지 않는다. 매년 다른 광고를 기대하기에 광고 계약을 입찰할 때에도 아이디어만을 보고 회사를 결정한다. 신박한 아이디어는 우연히, 한 번 나올 수도 있다. 광고를 하는 사람들의 역량이 더 중요한데도 아이디어만 본다는 것이다. 때문에 박 대표는 '케미컬 미팅'을 권유하기도 한다. 속 깊은 역량을 파악할 수 있는 케미컬 미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브랜딩과 디자인은 숙제와도 같은 예술이라고 했다. 때문에 실용적인 것을 보다 선호하는 두 대표에게 어울린다고 했다. 무작정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순수 예술보다 정해진 기한과 방향, 목표 등을 두고 영감을 떠올려야 하는 예술이기에 신이 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푹 빠져서 고민하는 과정에서 툭 튀어나오는 영감의 신비함을 논하기도 한다. 한 가지 생각에 몰입했을 때 문득 찾아오는 영감. 낮 동안 지평선 너머에 가려 보이지 않다가 슬그머니 건물 뒤편으로 고개를 드는 달을, 야근하러 올라가는 신호등 앞에서 마주치고 떠올린 카피 'See the Unseen' '보이지 않던 것은 보아라.' SK 브로드밴드의 광고 카피는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프로젝트를, 나아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영감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말처럼 생각이 몰입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다. 


책의 어딘가 쓰여있던 말처럼 독서는 가끔 '이거야!'라는 짜릿함을 느끼게 만든다. <일하는 사람의 생각>이 그러했다. 최소한의 수준으로만 정제되어 거의 원문 그대로 옮겨 담은 세 사람의 대화였기에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브랜딩과 디자인, 그리고 크리에이티브라는 위대하고 즐거운 행위는 결국 인간에 대한 깊은 관찰이 필요한 일이었다. 자신만의 올곧은 철학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오래도록 고민하고 하나의 신념을 만들지 않으면 마음을 울리는 창조물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한 신념이 쌓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이 책의 흥미로운 포인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되도록 여러 번 읽고 싶다. 각자의 창조물이 넘쳐나는 시대에 현대인은 자신마저도 브랜딩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브랜드 그 자체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신념과 철학이 이 책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브랜드 속 돋보이는 브랜딩을 위한 올바른 철학, <일하는 사람의 생각>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세미콜론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출처 : 

1) https://unsplash.com/photos/LPWl2pEVGKc?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2) https://unsplash.com/photos/0nHOfjH0emE?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3) https://unsplash.com/photos/_9dSF0Hwitw?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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