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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화영 Jul 20. 2021

끼리끼리 논다는 말을 곱씹어봐야 하는 이유


나는 어릴 적부터 주변인에게 동화가 잘 되는 편이었다.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면 그들의 말투를 자연스럽게 따라하고, 그들의 생각까지 닮아갔다. 밝고 긍정적인 친구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치기어린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부 친구들의 영향을 받아 중2병에 한껏 취한 나는 한때 세상탓, 환경탓을 밥먹듯이 하기도 했다. 이처럼 자신의 곁에 누가 있는지가 인생에 매우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어른들은 그렇게나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듯 말씀하셨던 것 같다.


삶에는 수많은 울타리가 있다. 탄생과 동시에 작게는 가족, 학교라는 울타리부터 대한민국, 아시아인이라는 울타리, 우주적이게는 지구인이라는 울타리가 형성된다. 이 울타리들을 우리는 집단이라고 부른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무엇인가에 소속되어 있다. 이 소속감이 주는 장점과 그 이면에 깔린 불편한 진실들도 많다. 오늘은 집단주의를 다룬 책 <패거리 심리학>을 통해 집단주의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소속감이 주는 마음의 안정


한 집단의 일원이 됨으로써 소속감이 생기고 마음이 편해지는 이유가 뭘까? 나는 외로움 때문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패거리 심리학>에서는 그 이유를 '불확실성-정체성 이론'에 근거해 설명한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불확실하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그 불확실성을 해소해야겠다는 동기를 부여받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채택하는 주된 방법이 어떤 사회 집단, 특히 강력한 정체성을 기반으로 특정한 행동과 세계관을 금지하는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이론이다.


정체성에 대한 불확실성은 집단과의 동질감을 부추기고, 특히 강력한 믿음과 고유한 특징을 지닌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난다. '나'라는 복잡한 인격체가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이 해소되길 원하는 것이다. 자신과 유사한 성향을 지녔거나 가치관을 지닌 사람과 관계를 맺고, 특정 종교를 믿거나 한 정당의 지지자가 되기도 하면서 내집단의 일원이 되면 비로소 흐릿했던 나만의 특색이 뚜렷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감정은 전염되고 신경은 동조화된다


흥미롭게도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데는 규범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이 실질적인 규범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패거리 심리학>, 75쪽


집단은 마음의 안정감을 주는 것 이상으로 파급력이 크다. <패거리 심리학>의 저자 세라 로즈 캐버너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행하는 것이 실질적인 규범이고, 대부분이 어떻게 행동한다는 생각이 규범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이다. 흥미롭게도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데는 규범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이 실질적인 규범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동네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실제로 분리수거를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당신이 생각하기에 동네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냐는 것보다 덜 중요하게 여긴다.


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도 중요하지만, 특정한 내집단이나 하위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이 행동하는 법이라 인식하는 것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주변 사람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진짜 아플 수 있고, 증상이 생각의 힘만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확산될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실험 결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친한 언니가 액세서리점에서 귀를 뚫다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그만 현기증으로 5분 간 기절을 해버렸는데, 마치 내 귀가 뚫리면서 통증을 느끼는 것만 같았다.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이다. 


남이 느낀 육체적인 고통이 나에게 전염되듯이, 우리는 이토록 주변 사람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다. 더욱 파장이 큰 점은 물리적인 전염 뿐만 아니라 주변인의 지식 또한 전염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의 대부분이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것이고, 요점에 기반을 둔 집단 지식이며, 대체로 잘못된 것이 많다. 인간은 뇌의 10퍼센트만 사용한다는 이야기가 과학계에서 증명이 된 것처럼 여기는가 하면, 여성이 처음 성관계를 맺으면 처녀막이 찢어져 피가 난다는 괴담 등 오류가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사례를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잘못된 지식을 퍼 나르는 사람이 속한 집단에 나도 속해 있다면, 혹은 내가 잘못된 지식의 숙주가 되면 모든 일원이 오류범벅인 지식을 진리인 양 믿고 살게 된다. 



당신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다섯 사람의 평균이 당신이다


“당신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다섯 사람의 평균이 당신이다.” 나는 이 말이 꽤 충격으로 다가왔다. 인간은 어떤 일을 실천하는 데 자유롭고 자주적인, 즉 주체적인 존재라는 믿음과 상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가가 얼마큼 중요한지 느끼게 한 구절이기도 했다.


내가 속한 많은 내집단 중에 '집단극화'가 일어나고 있는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집단극화란 사고방식이 비슷한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을 때 야기되는 문제다. 가령 토론회나 학급회의에 참석해 모두가 한 사람 의견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회의를 끝내고 나면, 나의 의견은 극단적인 수준까지 굳어질 것이다.


집단극화가 일어나는 집단은 어떤 합의점에 이른 뒤부터 그 쟁점에 대해 애매하거나 복합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을 거의 용납하지 않는다. 따라서 위험을 피해 침묵을 선택한다. 이런 침묵에서 집단은 반대 의견이 없는 것이라 확신하고, 순응의 과정을 거쳐 모두가 극단적인 의견을 향해 다가가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집단에 대한 충성심이 과잉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균형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집단의 1/4만 이 노력을 꾀해도 그 집단은 변한다고 한다. 소규모 무리도 어떤 임계점에 이르면 기존의 사회적 관습을 확실히 뒤집을 수 있다. 늘 생각이 깨어있어야 집단극화에 휘둘리지 않고 변화를 일으키는 1/4의 일원이 된다. 



끼리끼리'만' 놀지 말자


끼리끼리 놀다 보면 이분법의 위험성에 쉽게 노출된다. 내집단을 지키기 위해 외집단을 적대시하는 것이 대표적인 이분법 논리의 결과이다.


인간은 불확실성을 싫어하기 때문에  옳거나 그르거나, 둘 중 하나를 원한다. 중도적 입장을 취하면 '그래서 좋다는 겁니까, 싫다는 겁니까?'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좋으면서도 싫고, 싫으면서도 좋다는 말은 애매하기 때문에 억지로 결론을 내리도록 유도한다. 세상은 100분 토론처럼 찬성이나 반대냐 한 가지를 주장할 수 없다. 주로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Yes or No, 오직 한 가지만 택해라." 그 말은 내가 느끼기에 매우 폭력적이다.


두려움이 밀려오면 내적인 것에 집중하며, 똑같은 것과 편안한 것을 받아들인다. 내집단에 매달리고 외집단을 멀리하며, 행동과 선택의 폭을 좁힌다. 이런 선택은 조금도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복잡한 문제를 당면할 때 바람직한 해결책은 바깥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다양한 관점에서 창의적인 조건과 협력을 구해야 한다. 도전을 맞아 두려움을 품으면, 열린 가능성과 행동이 필요한 경우에도 선택의 문을 닫고 좁히게 된다.

-<패거리 심리학>, 236쪽


저자는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내집단의 편향된 생각과 주장을 바로 잡으려면 외집단의 의견에 공감하고 동조해야 한다.  비슷한 생각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끼리만 사회적으로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 끼리끼리 어울리면 내집단의 단점이 두드러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다른 입장과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신념에 위배되는 외집단의 입장을 수용하기란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투쟁이 없으면 진보도 없다. 입으로는 자유를 옹호한다면서 투쟁에 나서지 않는 사람은 밭을 갈지 않고 곡물을 수확하려는 사람과 같다. 천둥과 번개도 없이 비가 오기를 바라고, 거센 풍랑이 없는 바다를 원하는 사람과 같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현재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관습이나 도덕적인 규율은 끊임없는 싸움, 즉 반대되는 의견이 갈등하고 서로 부딪쳐서 만들어낸 소중한 결실이다. 그 중에는 잘못된 결론으로 끝맺었거나 세월의 흐름 때문에 그때는 맞고 지금은 맞지 않는 사회 규범도 있다는 것을 늘 잊지 말아야 한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한 행동을 작게나마 실천해 보자. 한 명의 실천이 집단의 1/4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면, 그 실천은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내는 초석이 된다. 나는 독립적인 개체로서 집단에 어떤 영향을 주고, 받고 있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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