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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화영 Aug 15. 2021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진 어른으로 산다는 것

오늘부터 습관적으로 '괜찮다'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내가 마인드 피트니스를 가르칠 때 공통적으로 접하는 문제도 사람들이 너무나 자주 자기 삶의 스트레스 요인과 사건을 남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상태를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스탠리, <최악을 극복하는 힘>


이 구절을 읽으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괜찮아요." 힘들지 않느냐는 말에 나는 늘 괜찮다는 대답으로 일관했습니다. 힘들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어 버리면 나는 칭얼대는 어린아이 밖에 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죠. 시련이나 고통 같은 건 당연히 잘 이겨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게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이라고 믿었습니다. 다만 견디기 힘들 때면 어두운 방에서 나 혼자 울었습니다.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줄곧 나는 어른스럽다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5살이던 동생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면, 나는 동생을 화장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아직 어려서 뒤처리를 못하는 동생의 엉덩이를 닦아주었습니다. 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는 엄마의 말을 상기합니다. 식사 시간이 되면 나는 표면이 거칠고 색깔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계란찜이 싫었지만, 눈 꼭 감고 먹었습니다. 선생님은 편식하지 않는 어린이라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착한 아이로 남고 싶었습니다.


부모님 말씀에 절대복종, 반항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의 이면이 작용했던 걸까요? 나는 또래 아이들처럼 아이다운 감정 표현을 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갖고 싶은 인형을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았고, 동생이 미워서 머리를 쥐어박거나 소리 내서 엉엉 운 적도 없었습니다. 기쁜 일이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속마음을 겉으로 맘껏 표출하지 못했습니다.  어느샌가 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지닌 채 몸만 커진 어른이 되었습니다. 안 괜찮아도 괜찮은 척하는 그런 어른으로 말이죠. 하지만, 사는데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


4년 전 유료로 '마음 테스트'라는 걸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온라인 심리 상담의 일종으로 심리적 불안감, 스트레스 지수 등을 체크할 수 있는 테스트였죠. 결과지를 받고 나는 크게 동요했습니다. 스트레스 지수가 빨간색으로 '위험'이라고 적혀 있었고 바로 옆에는 스트레스 관리가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나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고 스트레스 관리 역시 잘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던 나는 사실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였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나는 극도의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느낄 때마다 이렇게 마인드 셋을 했었습니다. '괜찮을 거야. 별 거 아니야. 금방 이겨낼 거야.' 그렇게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일을 밀어붙였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만성 스트레스가 삶을 지배하는 나날을 보냈던 겁니다.



그 모든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는 어디로 갔을까? 대부분 내 몸속에 고스란히 쌓였겠지만 나는 그 많은 정신적, 신체적 폭력과 배신의 누적된 결과를 구획화하고 무시하고 부정하고 모른 척했다.

엘리자베스 스탠리, <최악을 극복하는 힘>


<최악을 극복하는 힘>은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로부터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수행 방법을 알려주는 책으로 이제껏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35살 직장인, 육 남매 중 다섯째로 살아온 나라는 사람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을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내가 잘 이겨냈다고 여겼던 작은 상처들이 조금씩 벌어져 나를 아프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고 진심으로 괜찮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져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저자는 어릴 시절 정신적, 육체적 폭력을 경험했고 2004년 극도로 건강이 나빠져 한동안 실명 상태로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논문을 쓰다가 키보드에 구토를 하고도 그것을 닦아낸 뒤 다시 논문을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극한까지 밀어붙여 원하는 성과를 낸 그녀는 자신의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더 오래 억압했고 그 대가는 더욱 커져 결국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 우울증으로 이어졌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스트레스를 낭만화한다."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선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그녀는 몸과 마음에 관련된 학문을 깊이 파고들어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최악을 극복하는 힘>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가 뿜어내는 독을 이제는 제대로 마주하고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사고 뇌와 생존 뇌,

그리고 인내의 창

 

가장 흔하고 역효과를 낳는 사고 뇌의 습관 중 하나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스스로를 비난하거나 판단하면서 스트레스의 근원을 경시하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스탠리, <최악을 극복하는 힘>


저자는 '사고 뇌'와 '생존 뇌'를 들어 우리의 머릿속 회로를 설명합니다. 사고 뇌는 의식적 의사 결정, 윤리적 선택, 추론, 추상화, 분석 능력을 책임집니다. 생존 뇌는 우리의 감정, 관계, 스트레스 각성, 습관, 기본적인 생존 기능에 핵심 역할을 하는 영역을 말합니다. 이렇게 사고 뇌와 생존 뇌는 함께 '마음'을 구성하게 됩니다.


사고 뇌와 생존 뇌가 협력해 올바르게 작동하면 '인내의 창'을 넓힐 수 있습니다. 인내의 창이 넓다는 것은 쉽게 말해 멘탈이 강해지고, 수행능력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내의 창이 넓어질수록 우리는 주체감을 찾고 스트레스를 받는 동안에도 효과적으로 기능하며, 그 후에 더 쉽게 회복을 할 수 있습니다.


인내의 창이 넓은 사람들은 무의식적 생존 뇌 과정인 안전과 위험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능력이 더 뛰어납니다. 본래 인내의 창이 넓었던 사람들도 만성 스트레스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회복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인내의 창이 좁아집니다. 의식적, 의도적 노력이 없다면 우리는 인내의 창이 계속 좁아지게 됩니다.


우리의 사고 뇌는 비교, 평가, 판단을 하는 몇 가지 뿌리 깊은 조건화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서로 비교하고 또 그들의 경험을 자기 자신의 경험과 비교합니다. 이런 사고 뇌의 습관이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경시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사고 뇌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심신 체계가 취약하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때문에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반드시 이겨내야 하는 별것 아닌 고통'으로 치부하게 되는 것이죠.


뇌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특정한 정신적 과정을 반복 수행함으로써 점점 더 효율적으로 변해간다고 합니다. 우리는 항상 반복적 선택을 통해 그 구조를 변화시키는 주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와 현 상태를 강화하는 습관에 관한 인식이 부족할수록 우리는 삶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됩니다.



스트레스를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지금껏 스트레스를 회피하거나 스트레스의 누적을 무시해 왔기 때문에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애써 괜찮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생존 뇌는 주체성과 자기 효능감을 더 많이 느낄수록 스트레스 각성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즉 어떤 상황이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되면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는 겁니다.


글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안 괜찮아도 괜찮은 척하는 어른으로 사는 것, 별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악을 극복하는 힘>에서 가르쳐주었습니다. 괜찮은 척하는 것은 사실 매우 위험한 거라고 말이죠. 어릴 적부터 나의 사고 뇌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프로그래밍되어 생존 뇌를 위협해 왔습니다. 생존 뇌는 스트레스 각성이 지속되면서 우울감, 불안감, 무력감을 키웠습니다. 매일 남과 비교하는 삶을 살게 했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재미 삼아 했던 마음 테스트 결과로 위험 신호를 인지했음에도 나는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라 다시 스트레스를 방치했습니다. <최악을 극복하는 힘>은 내가 가지고 있던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제대로 인지하게 해 주고, 어떻게 치료하고 회복해야 하는지를 알려준 고마운 책입니다. 내 몸과 마음을 주기적으로 돌보려면 이 책을 한 번만 읽어서는 안 되고, 여러 차례 읽고 숙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부터 습관적으로 '괜찮다'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올해 목표는 작년보다 더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진짜 나의 모습과 마주하고, 남들에게 보여지는 내가 아닌 진짜 나를 먼저 살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모래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인내의 창을 넓혀 모래에서 돌멩이, 언젠가는 굳건히 제 자리를 지키는 바위 같은 사람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앞으로 <최악을 극복하는 힘>에서 나온 이 말을 되새기겠습니다. '상태가 좋아진다고 느끼고 스트레스와 트라우마 속에서도 잘 살아가며 효과적 선택을 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길은 결국 자기 계발보다는 자기 이해에 있다.'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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