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섬지뜰' 구례 농촌유학 이야기 6편

by 러브트리


여행의 매력은 낯섦 함께 느끼는 설렘이 아닐까? 새로운 환경은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고 평소답지 않은 생각과 행동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쉽게 사랑에 빠지거나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이성보다 감성에 의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은 머릿속에 오랫동안 기억된다. 반대로 환경에 익숙해지면 여행도 더는 여행이 아닌 셈이다.


KakaoTalk_20250520_220051367_01.jpg 구례 대표 명소 '쌍산재'에서 만난 장미 항아리


5월은 농촌유학의 일명 ‘현타’가 오는 시기라고 한다. 때맞춰 구례교육지원청에서 농산촌유학 학부모를 대상으로 구례 대표 관광 명소를 둘러보는 투어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셨다.


행사를 주관한 장학사님께서는 정신없는 신학기를 지나 하나, 둘 현실의 어려움을 겪고 있을 무렵, 구례의 매력을 다시 한번 느끼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힐링하는 것이 투어의 목적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남은 학기를 버틸 힘을 내주기 바란다고.


KakaoTalk_20250520_231500614ㄹㄹ.jpg 윤스테이 촬영 장소로 유명해진 '쌍산재'


우리는 구례를 대표하는 문화해설사님의 안내로 화엄사와 구층암, 쌍산재, 구례역사문화관을 돌아보았다. 특히, 화엄사 안에 있는 구층암에서는 스님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이곳은 우리 학교 학부모들이 4월부터 녹차 따기 봉사를 하는 곳이다. 2년 전 같은 투어 프로그램으로 구층암에 방문한 선배 학부모들이 스님과 인연을 맺으면서 일손을 돕기 시작했다고 한다.


KakaoTalk_20250520_220051367_16.jpg 화엄사 꼭대기에 있는 구층암 입구


4~5월, 길면 두 달 짧으면 한 달 정도 떡잎 위로 여린 찻잎 서너 개가 올라오는데, 오로지 이 새순만 녹차로 쓸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절에 녹차 일을 하러 사람들이 찾아온다.


나도 일주일에 한두 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구충암에 녹차를 따러 온다.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스님과의 차담과 일한 뒤에 먹는 공양은 덤이다.


스님은 하루에 2리터가량 될 수 있는 한 물 마시듯 녹차를 마시면 피가 맑아져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몇 잔이고 원하는 만큼
차를 마실 수 있게 해 주신다.


KakaoTalk_20250520_220051367_25.jpg 스님은 구층암을 찾는 누구에게나 차를 권해주신다.


지리산 대나무 숲 속, 수백 년 된 녹차 나무에서 일일이 손으로 여린 잎만 골라 따서 덖었으니 그 청정함과 정성만으로도 다른 녹차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약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른 아침, 찻잎을 따러 따라가는 길은 꽤 가파른 오르막이다. 하지만, 숲에서 불어오는 청명한 바람을 맞으며 돌담 틈새로 얼굴을 내미는 터줏대감 다람쥐와 인사하고, 부처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동글동글 소담한 ‘불두화’를 보면서 걸으면 어느새 화엄사 꼭대기 구층암에 도착한다.


KakaoTalk_20250520_220051367_06.jpg 부처님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불두화'


산에서 녹차를 따다 보면 바람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 온갖 새들의 소리에 빠져든다. 한참 찻잎을 따면 이마에 땀이 맺히는데, 대숲 사이로 불어오는 한줄기 서늘한 바람은 냉수보다 달콤하다.


몰입 덕분인지, 앞치마 속에 쌓이는 찻잎 덕분인지 유독 이곳에서는 시간이 더 빠르게 간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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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녹차 시즌에는 농장에서 일을 돕는 대신 숙식을 제공하는 글로벌 교환 프로그램으로 매년 구층암을 찾은 외국인들을 볼 수 있다.


누구나 일을 하면 쉼과 차, 음식을 나누어 주기 때문에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처럼 속세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안을 찾는 여행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KakaoTalk_20250520_220051367_23.jpg 돌 탁자에 새겨진 나뭇잎 문양으로 넘친 찻물이 흐른


숲 속 여기저기에서 흩어져 일하던 사람들은 공양 시간에 맞춰 한자리에 모인다. 스님들과 글로벌 교환 프로그램 참여자들, 우리 학교 학부모들까지 자연스레 어울려 음식을 나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모두가 다 꽃이다’라는 화엄 사상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KakaoTalk_20250520_220051367_21.jpg 화엄사는 찻잔에도 꽃문양이 그려져 있다.


우리 마을 입구에 들어오는 큰 도로에는 “남도 제일의 휴양지 구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말이 반겨준다. 관광지에 산다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매일 여행하듯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몇 년 전 가족 여행으로 처음 구례에 왔을 때, 사방을 둘러싼 지리산과 너른 뜰, 파란 하늘에 반했었던 기억이 난다. 지리산을 빼놓고 구례를 설명할 수 없고, 구례만큼 어디에서나 지리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은 드물다.


알고 보니, 1967년 12월 구례 사람들의 노력으로 지리산이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총 23개의 국립공원이 있지만, 불법 도벌이 난무하고 먹고살기도 힘들었던 당시에도 지리산의 환경적 가치를 알고 보호하고자 했던 구례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또한, 산수유 꽃을 시작으로 섬진강 벚꽃, 매화, 진달래와 철쭉, 수선화와 붓꽃, 작약, 장미까지 구례는 ‘꽃대궐’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원 없이 꽃을 구경할 수 있다. 구례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너나 할 것 없이 땅만 있으면 꽃나무를 심고 가꾼다.


KakaoTalk_20250520_220051367_07.jpg 보기만 해도 싱그러운 천은사 산책길 아카시아나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바로 지리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천은사 산책로다. 맑은 날도 좋지만, 비가 오고 난 후 저수지를 둘러싼 지리산 골짜기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물안개를 보고 있노라면 금방이라도 산신령이 금도끼, 은도끼를 들고 나타날 것 같다.


KakaoTalk_20250520_220051367_14.jpg 천은저수지 물안개


천은사 ‘상생의 길’을 한 바퀴 돌면 한쪽은 저수지, 반대쪽은 높은 산이 가까이 보이는 둑길을 만날 수 있다. 바람을 맞으며 너른 둑길을 맨발로 걸으면서 자연과 어울리는 방법을 배운다.


도시에 살 때는 툭하면 “여행 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산이든, 바다든 어디든 가야 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올해는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어디를 가도 이곳만 한 경치가 없기 때문이다. 집을 오가면서, 현관문만 열면 보이는 지리산을 내 집 정원 삼아 사는 생활에서는 매일이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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