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도전, 뜨거운 포옹

'섬지뜰' 구례 농촌유학 이야기 5편

by 러브트리
두룹이 자라나는 파릇파릇한 봄


한적한 농촌 마을도 시끌벅적할 때가 있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군민 체육대회’가 바로 그날이다. 이날은 구례군 각 지역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농촌 체육대회라고 해서 마냥 먹고 즐긴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기획하는 퍼레이드부터 줄다리기, 이어달리기, 족구, 축구, 게이트볼, 씨름, 단체줄넘기를 포함해 9개 종목에서 자존심을 건 경기를 펼친다.


3년 전부터 농촌유학 엄마들도 군민체육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올해도 새로운 선수단을 구성해 단체줄넘기 종목에 우리 면을 대표해서 출전하게 되었다.


체육대회 일주일 전부터 아줌마들의 눈물겨운 훈련이 시작되었다. 직장 생활을 할 때, 지하철역 계단 오르기가 유일한 운동이었던 나에겐 땅에서 두 발을 동시에 떼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시골에서 자주 만나는 청개구리는 폴짝폴짝 잘 뛴다


첫째 날 단체 줄넘기 20개를 뛰었던 엄마들은 두통에 시달렸다. 갑작스럽게 고강도 운동을 하면 혈관이 확장되어 머리가 아플 수 있다고 한다. 그다음 연습에는 30개를 겨우 넘었다.


줄넘기가 전신 운동인 탓에 엄마들은 무릎, 허벅지, 종아리는 물론 목과 어깨까지 하나라도 더 뛰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는 바람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엄마 중 가장 약체는 나였다. 오랜 직장 생활로 몸과 마음의 건강 회복을 위해 택한 농촌유학에서 체육대회 선수로 나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특히, 종목이 단체 줄넘기라니! 한 사람이라도 실력이 부족하면 팀 전체에 민폐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줄을 30번 이상 넘으면 온몸에 힘이 풀려 도저히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나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일생일대의 위기 상황(?)이었다.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엄마가 줄넘기를 잘할 수 있을까? 포기해야 할까?”


“그래, 엄마 최선을 다해 볼게!”


연습 때마다 따라온 아이들이 더 신나는 것을 보고 포기할 엄마가 있을까? 남편에게 힘들다는 투정을 부릴 겸 고민을 털어놓았다.


“여보, 다리가 땅에서 안 떨어지는데, 어떡하지?”


남편은 몸에 근육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면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아침에 땀이 날 정도로 운동장을 뛰거나 계단 오르기를 하라고 했다. 그다음 샤워를 하고 낮잠을 푹 자면 근육이 붙을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남편의 말대로 체력을 키우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저녁에 줄넘기 연습 전에는 꼭 밥을 챙겨 먹었다. 그렇게 연습에 참여하니 이전보다는 견딜 힘이 생긴 것 같았다.


우리 팀은 며칠 간의 연습 끝에 20개에서부터 시작해 체육대회 전날까지 50개 넘게 줄넘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집 앞 잔디 운동장에 나보다 먼저 나온 귀여운 새들


체육대회 당일, 우리 면의 특산물인 산수유를 상징하는 빨간 점퍼와 노오란 모자를 쓰고 구례 읍내를 걷는 퍼레이드에 참여했다. 신명 나는 풍물놀이 소리에 발걸음이 들썩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곧 있을 단체 줄넘기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단체줄넘기 직전에 진행된 줄다리기는 체육대회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종목이었다. 엄마들과 아이들은 선수들과 함께 줄을 잡아당기듯 모두 손에 땀을 쥐며 경기를 지켜보았다.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관중석에 나란히 서서 ‘산동면!’을 외치면서 응원했다. 아이들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우리 면이 줄다리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나중에 줄다리기에 참여했던 어르신께서 아이들의 응원에 큰 힘을 얻었다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해주셨다. 여러 지역이 참여했지만, 아이들이 열렬히 응원한 곳은 우리 면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마음속에
애향심이 자라나고 있었다.

아이들의 응원에 힘입어 군민체육대회에 우승을 차지했다




드디어 엄마들의 시간이 왔다. 구례읍과 7개 면에서 선수들이 참가했다. 기회는 단 두 번. 1차, 2차 중 가장 줄을 많이 넘은 팀이 우승하게 된다. 1차 시기 우리는 49개를 성공했다. 연습 때에 비하면 잘한 셈이다. 2차시에는 좀 더 가열차게 파이팅을 외치며 시작해 50개를 넘겼다.


2차시가 끝나고 모두 기진맥진해 운동장에 주저앉아 있는데, 그제야 관중석에서 응원하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아이에게 내려오라고 손짓을 했다. 얼마나 열심히 응원을 했는지 아이는 나만큼 상기된 얼굴로 뛰어 내려오더니 포옥하고 품에 안겼다. 고개를 든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왜 울어?”


“엄마, 정말 잘했어!”


엄마가 안간힘을 다해 뛰는 모습을 보고 아이가 퍽 감동한 모양이다. 지난 일주일간 모든 과정을 함께 했던 아이도 나만큼 마음을 졸였나 보다. 부상 투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4등에 그쳤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보았던 것은 순위가 아니라 열심히 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은연중에 엄마가 못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것 같다. 아이에게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중간에 포기하려고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아이는 단지 최선을 다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하였는데도 말이다! 나는 아이에게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비록 순위에 들지는 못했지만, ‘뜨거운 포옹’으로 우리 모녀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동을 경험했다. 만약 내가 체육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미리 포기했다면, 농촌유학에 오지 않았다면 절대 오지 않을 순간이었다.


하트 모양 라일락이 사랑스럽다




나는 10년 전 언니의 권유에 못 이겨 운전면허를 따고 운전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농촌유학을 위해서 연수를 받은 후 처음으로 내 차를 사고 아이와 이곳저곳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운전을 한다고 하면 매우 놀란다. 그 정도로 나는 운전에 자신이 없었다.


두려움을 이겨 내는 방법은
그저 익숙해지는 길밖에 없었다.


이 밖에도 타로 카드, 명상, 야생 녹차 따기, 절에서 공양하기, 냇가에서 다슬기, 개구리 잡기… 농촌유학이 아니라면 해보지 못할 경험을 하고 있다.


구례는 퍽 제주 같다. 이제 제법 공기에서 여름 냄새가 난다. 따뜻한 햇볕에 아침 이슬이 마르면서 나는 풀 냄새. 밤에는 냇가 물소리와 함께 개구리울음소리가 들린다. 제주도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습도와 바람, 자연의 기운을 아침과 저녁으로 구례에서 느낄 수 있다.


슬슬 시골에서의 삶도 지리산의 절경도 덤덤해질 무렵, 농촌유학을 꿈꾸던 때를 되새겨본다. 아이와 함께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순간, 추억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겠다고.


체육대회를 마치고 오랫만에 즐기는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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