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지뜰' 구례 농촌유학 이야기 10편
구례 성당 옆에는 오후 3시에만 문을 여는 작은 빵집이 있다. 동네를 지나면서 가게 밖에서만 보던 차, 마침 시간을 보니 오후 3시였다.
그간 쌓였던 호기심에 이끌려 홀린듯 빵집에 들어갔다.
작은 탁자 위에 30개 남짓한 빵이 있었고, 종이봉투에 담긴 빵에는 ‘예약’이라고 적혀 있었다.
“예약하셨나요?”
‘빵도 예약하고 와야 하나?’
어리둥절하는 동안 연달아 ‘예약’이라고 씌어 있는 빵의 주인들이 밀려 들어왔다. 서너 명이 왔다 갔을까?
탁자 위에 빵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식빵 3개와 단팥빵 한 개가 남아 있었다.
“무슨 빵 드릴까요?”
“무슨 빵이 맛있어요?”
나의 물음에 사장님 대신 뒤에 있던 손님이 대답했다.
“다 맛있어요!”
손님의 도발에 식빵 하나를 남기고 남은 빵을 모조리 샀다. 그 손님은 자신의 말에 후회하는 듯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빵이 담긴 종이 가방 안에는 ‘월인정원, 오후 3시 빵집’을 소개하는 전단이 들어 있었다. 손으로 그린 빵집 전경 뒤엔 이 빵이 얼마나 특별한지에 대한 이야기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빵의 재료가 되는 밀은 언제 누가 어디에 파종했고, 어떻게 키웠는지, 언제 수확해서 어떤 방식으로 제분했는지, 누가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가히 영혼이 담긴 빵이었다. 월인정원의 제빵사는 빵에 관한 책을 세 권이나 쓰신 분이었다.
만들어지기 전부터 주인이 정해져 있는 빵. 어쩌면 저 빵이 지금 나의 신세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빵은 누구에게 팔릴지, 안 팔릴지 며칠 앞도 모른 채 이름과 가격만 앞세워 진열대에서 하염없이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린다.
퇴사 후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으면서 선택을 기다리는 나의 처지가 처량해지던 찰나였다. 그리 대단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이력으로 원하는 일자리를 얻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굳이 나를 뽑을 이유를 나조차도 못 찾는 상황에서 운 좋게 취업을 기대하는 것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나에게는 이 빵만큼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가?
전남 구례군 광의면 하늘 아래에서 화학 비료 대신 ‘환원순환농법’으로 키운 밀을 올해 6월에 수확했다. 밀가루는 맷돌제분으로 가공하여 영양이 온전히 살아있다. 천연효모를 넣어 ‘세상에서 가장 신선하고 향기로운 우리밀빵’이다.
구례에는 ‘월인정원, 오후 3시 빵집’처럼 사장님만의 고유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곳은 ‘책방 로파이(Lo-fi)’다.
언뜻 보면 오래된 시골집 같아서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문학과 감성이 충만한 로파이 사장님만의 취향에 흠뻑 빠지게 된다.
시골집 외형은 그대로 살리고, 내부 공간은 망치로 대충 벽을 뚫어 양쪽 방을 오갈 수 있게 했다. 책 진열은 낡은 책상 그리고 버려진 창문과 방문을 활용해 나무 조각을 붙여 선반을 만들었다.
오래전 문학 소년을 꿈꾸던 오빠의 방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손 떼 뭍은 물건의 정취와 함께 쉽게 만날 수 없는 소설가와 시인의 공상을 담은 책들이 생경하지만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방 한쪽에는 큼지막한 소라껍데기를 못으로 박아 손잡이로 만든 나무 상자가 있다. 그것은 이곳을 오가는 이들이 시간을 초월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타임머신이다.
아이도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쪽지를 보더니, 어느새 자리를 잡고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상자 속엔 하찮은 이야기부터 서정적인 시까지…이곳에서는 누구나 시인, 수필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일어난다.
구례에 와서 아이의 꿈이 하나 추가됐다. 바로 ‘작가’이다. 엄마가 글을 쓰는 모습을 자주 보기도 했거니와 이곳에서는 책을 만드는 작가를 직접 만날 기회가 많다.
우리가 처음으로 만난 작가는 딸 은별이와 함께 지리산과 섬진강을 여행하며 그림책을 만든 오치근 작가님이다.
우연히 작가님의 그림책 원화 전시를 보고, 아름다우면서 따뜻한 그림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 다음 딸과 함께, 딸 친구 가족과, 학부모 독서 모임에서도 전시를 보러왔다. 같은 전시를 네 번이나 보러 온건 처음이었다.
그 정도로 작가님이 평생 그린 그림책과 원화의 서사가 질리지 않는 즐거움을 주었다.
그림책 원화 전시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림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그림책 전시는 일반적인 미술 전시보다 더 흥미로웠다.
게다가 작가님이 직접 그림책을 만들 당시의 상황과 배경, 그림의 영감을 받았던 사연, 그림과 이야기 속에 숨겨진 의도를 소개해 주셔서 전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한 번은 아이와 전시를 보러 갔을 때, 작가님께서 테이블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계셨다. 호기심 많은 아이가 이 좋은 구경을 놓칠 리가 없었다. 아예 작가님 맞은 편에 앉아 팔을 괴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질문이 많은 아이답게 주거니 받거니 몇 번의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사이, 어느새 작가님의 손에서 딸 아이의 행복한 얼굴이 담긴 그림이 완성됐다. 어쩌면 그때, 우리 아이의 마음속에 작가의 꿈이 싹 텄을지 모른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딸은 지금 소설가이자 많은 그림책을 쓰신 박수현 작가님의 지도로 책 읽기와 글쓰기를 배우고 있다.
학부모 독서 모임에서 구례 출판사 ‘르네상스’를 방문했을 때, 편집장님과 작가님을 만난 인연으로 함께 글 공부를 하게 되었다.
단순히, 백일장이나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을 수 있는 수동적인 글쓰기가 아니라 독서를 통해 자기만의 취향과 세계를 구축하고 그 감상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것.
오랫동안 고민해 오던 글쓰기 교육의 철학을 실현해 주실 분들을 마침내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생일 때, 엄마에게 시집 한 권을 선물 받았다. 그때부터 시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다. 학창시절 내내 거의 모든 글쓰기 대회에 나갔고, 대학교도 문학특기자로 수시 입학할 수 있었다.
국문학과를 다니면서 학보사 기자와 논술 과외, 자기소개서와 논문 작성 컨설팅을 하면서 용돈을 벌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보도자료와 홍보 글을 수없이 썼다.
어쩌면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정작 내가 쓰고 싶은 글,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한 건 농촌유학을 오고 나서부터였다.
비로소 능동적인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물론, 언제든 글을 쓸 수는 있었다.
그러나,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매번 다른 사람이 던져주는 글감을 얻어먹기만 했지, 내 안에서 끄집어내는 연습은 하지 않았다. 그런 글은 연륜이 있거나 글재주가 특출난 사람만 쓸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건 순전히 지난 세월 동안 수동적인 글쓰기만 해온 탓이었다. 그동안 남을 위한 글쓰기만 하다, 마흔이 돼서야 나의 서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글쓰기에 있어서 만큼은 딸이 나와는 다른 길을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장은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언젠가 아이의 속에서 글감이 만들어지고 영글어 마침내 토해내는 것처럼 충분히 묵히고 숙고하는 글쓰기를 하길 바란다.
나 역시 늦게 시작했지만, 앞으로 40년 동안 느리더라도 꾸준히 능동적인 글쓰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중간은 가기 위해 어중간을 선택하기보다
나만의 서사가 있는 삶을 선택하고 싶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사람, 그 시작이 우리에겐 농촌유학었다.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길을 가다 청개구리를 만나면, 감자를 먹으면서도 이제는 조잘조잘 쏟아 놓을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