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지뜰' 구례 농촌유학 이야기 9편
여름밤 산책길에는 손전등이 필수다. 해가 지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개구리를 밟지 않기 위해서이다.
뜨겁게 달궈졌던 땅이 서서히 식으면, 풀숲이나 물속에서 더위를 피하던 개구리가 활동을 시작한다. 초여름에는 손톱보다 작은 청개구리도 세상 구경을 나온다.
자칫 잘못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작은 생명체가 발밑에 깔릴 수 있으므로 늘 조심해야 한다.
어느날, 밤 산책을 하는데 아이가 소리쳤다.
“아악! 엄마, 개구리가 내 발등에 앉았어!”
우리의 발걸음에 놀란 청개구리 한 마리가 아이의 발등으로 펄쩍 뛰어오른 것이다. 개구리는 이내 도망쳤지만 아이는 자신의 발등에 머물다간 개구리 손님의 느낌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엄마, 개구리가 앉으니까 조금 무겁고 차가웠어”
며칠 후 남편과 화엄사 근처 식당에 갔을 때, 수저통 위에 작은 청개구리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청개구리는 놀라 테이블 밑으로 도망쳤다.
하필 그게 남편의 발목으로 뛰어오른 것이다. 여기저기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청개구리를 잡아 식당 밖 풀숲에 놓아 주고야 한바탕 청개구리 소동이 마무리되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 갔을 때, 풀잎에 붙어 있는 작은 청개구리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청개구리는 다른 개구리들과는 다르게 몸집이 작고 동그란 발가락에 밝은 연두색을 띠며 테두리가 황금색으로 빛이 나기도 한다. 도시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청개구리를 이곳에서는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청개구리를 살포시 손안에 넣으면 작고 촉촉한 녀석의 감촉이 움직일 때마다 톡톡 느껴진다. 청개구리는 작고 연약한 생명체 그 자체이다.
너무 작아서 무심코 스쳐 지나칠 수 있지만 우리는 수많은 청개구리와 함께 시골의 여름을 난다. 청개구리는 자세히 보아야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있는 작고 푸른 친구이다.
2년 전 강원도 영월로 여행을 갔을 때 우연히 천문대를 가보고 별의 매력을 알게 됐다. 계절마다 별자리를 보러 가자고 결심했지만, 그때 이후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농촌유학을 준비하면서 시골에서 별을 볼 욕심으로 천제 망원경을 샀는데, 어떻게 보는지 몰라서 여태 인테리어용으로 거실 한쪽을 지키고 있다. 물론, 청정 지역인 구례는 망원경 없이도 고개만 들면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을 두 눈 가득 담을 수 있다.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를 볼 수 있다. 이 기간에 어디서나 유성우를 볼 수 있지만, 특히, 8월 12일 즈음에 가장 많은 유성우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때맞춰 우리 가족은 여름 휴가를 맞아 전라남도 고흥으로 1박 2일 천문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여행 내내 비가 오는 바람에 별은 보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는 태양계에 관한 재미있는 동영상을 보고 우주와 지구, 별에 대한 호기심을 가득 채우고 돌아왔다.
우주와 여행의 공통점은 인식을 환기해 준다는 데 있다. 내가 사는 곳, 내가 만나는 사람, 이곳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작은 것에 집착하기보다 큰 세상에서의 나의 존재와 다양성, 무한함을 알면 절로 겸손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나는 우리 딸이 큰 세상, 큰 우주를 품고 살았으면 좋겠다. 살면서 좌절을 하더라도 그것은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하고, 그보다 훨씬 큰 세상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한 주간 폭우가 내리고 오랜만에 하늘이 맑아졌다. 우연히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에 별이 빛나고 있었다.
쉽게 찾을 수 있는 국자 모양의 북구칠성도 그동안 보았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이 선명하게 보였다. 우리는 운 좋게 편의점 나들잇길에 유성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여보! 우리 유성우 보러 가자!”
그길로 지리산 노고단 입구인 성삼재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구례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성삼재 휴게소에 올라가 보니 아주 큰 전광판과 편의점 불빛, 주차장 가로등 때문에 별이 잘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성삼재에서 내려와 인적이 드문 작은 휴게소에 자리를 잡았다.
널따란 전망대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베개를 베고 누웠다. 높은 곳이라 그런지 한여름에도 썰렁했다. 챙겨온 작은 담요를 하나를 함께 덮고 본격적으로 유성 관찰을 시작했다. 몇 분 되지 않아 우리는 하늘 이곳저곳에서 떨어지는 유성을 볼 수 있었다.
“유성을 4개나 본 초등학생은 나밖에 없을걸!”
그날 우리 가족은 태어나서 가장 많은 유성을 보았다. 고흥 우주과학관, 나로우주센터에서 보지 못했던 별을 지리산에서 실컷 본 날이었다. 하늘의 별처럼 우리 가족의 추억이 빛나는 밤이었다.
한여름 밤, 깜깜한 시골길을 오직 달빛에 의지해 길을 걷는다. 밝은 보름달이 비추고 선선한 밤공기가 더해지니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우주에서 무주로 날아온, 자신을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라고 생각하는 귀여운 존재, 우리는 전국에서 가장 큰 반딧불 축제가 열리는 무주에 찾아왔다.
반딧불은 해가 지고 한 시간 정도만 활동한다. 그래서 우리는 7시 해가 질 무렵 반딧불 서식지로 출발했다. 반딧불 신비 탐사 프로그램을 사전에 신청한 사람들을 싣고 40여 대의 관광버스가 일렬로 반딧불이 사는 시골 마을로 향했다. 가는 차 안에서 문화해설사님께서 반딧불의 습성을 친절하게 소개해 주셨다.
우리나라에서 관찰할 수 있는 반딧불은 세 종류인데, 우리는 가장 늦게 나타나지만 크기가 큰 ‘늦반딧불이’을 보러 간다고 말씀하셨다.
암컷은 날개가 퇴화하여 날지 못하는데, 혹시 길이나 수풀에서 가만히 빛나는 반딧불을 만나면 그것은 암컷이라고 한다. 수컷은 날아다니며 짝짓기할 암컷을 찾아 다는데. 반딧불은 짝짓기하고 알을 낳은 후 3~4일 만에 죽는다고 한다. 한참 설명을 듣는데, 한 꼬마 아이가 질문했다.
“왜 짝짓기를 하고 죽어요?”
문화해설사님은 아이의 질문에 적지 않게 당황하면서 아이 아빠에게 대답을 미루었다.
“짝짓기하느라 온 힘을 다 써서 죽는 것 아닐까?”
아빠는 아이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렇지만, 아이는 여전히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 표정이었다.
‘태어난 목적을 달성했으니, 죽는 것이 아닐까?’
나도 속으로 답을 생각해 보았다. ‘자신의 자식을 남기는 것’ 그것이 인간과 반딧불을 비롯한 생태계를 영속하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일 것이다. 어쩌면 가장 자연스럽지만, 삶의 목적과 죽음까지 가장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반딧불 서식지에 도착했다.
반딧불 서식지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탄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길을 중심으로 양옆 풀숲에서 반딧불이 한두 마리씩 모습을 드러냈다.
반딧불은 포로로 사람들 앞을 지나가기도 하고, 사람들은 그런 반딧불을 손으로 톡 치기도 한다. 느릿느릿 여유롭게 날아다니는 반딧불은 신비로운 팅커벨 그 자체였다.
“유성이다! 엄마! 저기도 유성이 2개나 떨어지고 있어”
그날 우리는 풀숲에서 빛나는 반딧불과 함께 하늘의 별이 떨어지는 황홀한 광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만약, 우리가 반딧불을 보기 전 유성을 보지 않았더라면, 하늘과 땅에서 동시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반딧불을 보면서 하늘을 올려다본 아이의 관찰력 덕분에 이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세상은 경험하는 것만큼 보인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탐사를 마치고 버스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길, 암컷 반딧불이가 길한 켠 풀잎 뒤편에서 빛을 천천히 밝혔다 껐다 했다.
“우와! 암컷 반딧불이는 빛이 우아하네”
암컷 반딧불은 개구쟁이처럼 날며 빛을 내는 수컷과는 확연히 달랐다. 아이의 눈에 우아하게 보일 정도로 아름답고 영롱한 빛을 냈다. 반딧불이도 가만히 자세히 보아야만 한다. 농촌유학의 일상은 자세히 보면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반딧불
윤동주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조각 주우러
숲으로 가자
그믐달 반딧불은
부서진 달조각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조각 주우러
숲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