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지뜰' 구례 농촌유학 이야기 8편
농촌유학의 백미는 ‘여름방학’이다. 뜨거운 여름, 방학을 맞아 시골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 물놀이다.
도시에서는 워터파크를 가려고 하면 거리나 비용이 만만치 않아 큰마음을 먹어야 하지만, 이곳에서는 놀이터 가듯 물놀이를 하러 간다.
집 근처에는 지난해 문을 연 군청에서 운영하는 무료 물놀이장이 있고, 마을 곳곳에는 지리산 줄기를 따라 흐르는 계곡이 천연 물놀이터가 된다.
이곳들마저 식상해지면 남원, 곡성, 하동 등 가까운 거리에 있는 다른 지역으로 원정 물놀이를 가기도 한다.
그 결과, 딸아이의 다리는 커피색 스타킹을 신은 것처럼 까맣고 발만 하얗다. 엄마들이 아이들 얼굴에 곧 이만 보이겠다며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이다.
매일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곳, 이곳이야말로 아이들의 천국이 아닐까?
방학을 맞아 딸의 절친이 구례에 놀러 왔다. 유치원 때부터 우정을 쌓아왔으니, 열 살 인생의 얼추 반을 함께한 친구다.
고속열차를 타고 2시간을 달려와 준 고마운 친구와 친구 엄마를 위해 알찬 1박 2일 여행 코스를 준비했다. MBTI 대문자 ‘P’의 모든 역량을 다해, 구례살이 4개월 차 중 가장 좋았던 곳, 가장 맛있었던 음식을 대접하기로 했다.
남원역에서 두 아이의 열렬한 포옹 후 우리는 바로 구례와 맞닿아 있는 경남 하동으로 출발했다. 섬진강을 끼고 있는 송림공원 물놀이장에서 신나게 놀고, 재첩잡이를 하기로 했다.
뙤약볕을 놀리기라도 하듯 아이들은 신나게 물놀이를 했다. 하동 송림공원 물놀이장은 바닥분수 수준인 다른 물놀이터와는 다르게 물 높이가 아이 허리 정도로 깊어 놀기 좋다.
그렇게 한바탕 물놀이를 하고 해 질 녘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는 섬진강 변으로 내려갔다. 송림공원은 섬진강 수변 공원이라 물놀이도 하고 해수욕장처럼 모래 놀이도 할 수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도 그만이다.
그날 우리는 늦은 오후 햇살이 비추는 섬진강에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손톱만 한 작은 재첩이 줍고 돌아서면 올라와 있고, 줍고 돌아서면 다시 올라와 있었다. 말 그대로 재첩 ‘줍줍’에 신이 나서 작은 페트병 하나를 채우고서야 아쉬운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들 텐트를 쳐주고, 숯불을 피워 바비큐와 마시멜로까지 야무지게 구워 먹었다.
친구 엄마는 평소 잠자리가 바뀌면 가위에 눌린다고 했는데, 다행히 이곳의 자리가 좋은지 꿀잠을 잤다고 한다. 물론 여기가 지리산의 정기를 가득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빡빡한 여행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한 달 후, 이번에는 우리가 초대를 받아 친구의 조부모님과 증조 외할머니가 사시는 보성으로 향했다. 나는 어릴 적 외할머니댁에 갔던 추억을 찾아, 딸은 난생처음 시골의 할머니 댁에서 여름방학을 보낼 수 있게 됐다.
보성에서도 시골길을 따라 20분 정도 들어간 후에야 증조 외할머니댁에 도착했다. 산밑에 자리 잡은 할머니 집은 텃밭과 계곡물 수영장까지 있는 아기자기한 시골집이었다.
정겨운 집처럼 아담하고 다정한 증조할머니께서는 편하게 놀다 가라며 우리를 환영해 주셨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해 밭에서 가장 탐스러운 수박을 직접 따서 맛볼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동안 여행 중 받아본 웰컴 푸드 중에 가장 귀하고 달콤했다.
손님맞이를 위해 미리 이불도 세탁하고 화장실 슬리퍼까지 손수 닦아 놓으셨다고 한다.
부모님은 얼마 전 증조할머니댁이자 고향인 보성으로 귀촌을 하셨다. 언젠가 돌아올 고향이 있다는 것은 참 소중하다.
우리가 농촌 유학을 온 가장 큰 이유도 찾아올 고향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아이들은 일찌감치 방에 들어가 알콩달콩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엄마들도 장독대에서 고기를 구우며 막걸리 파티를 열었다. 마침 장독대 바로 옆에 주렁주렁 열린 풋고추를 바로 따서 고기와 함께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낯선 울음소리가 들렸다. 숲 속에서 어떤 새가 우는 걸까?
“삐옥~삐옥~삐옥~”
알고 보니, 새소리가 아니라 무당개구리의 울음소리라고 한다.
“개구리는 ‘개굴~개굴~’ 거리는 줄만 알았는데, 이런 소리도 내는구나!”
유난히 파란 보성의 밤하늘에 무당개구리울음소리가 퍼졌다.
할머니 집에서도 물놀이는 빼놓을 수 없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로 만든 깨끗한 시골 수영장에는 항상 개구리 손님이 먼저 와서 수영을 즐긴다.
풀숲으로 쫓겨난 개구리들은 뜨거운 햇볕에 이내 물속에 뛰어들고 아이들은 다시 건져 내고… 개구리와 아이들 모두 폴짝폴짝 한바탕 신나는 물놀이를 했다.
구례로 돌아오는 날, 텃밭의 고추, 수박까지 따서 싸주시고 증조할머니께서는 또 놀러 오라며 딸에게 용돈까지 챙겨주셨다.
그렇게 우리에게 없었던 증조할머니와 찾아가고픈 시골 할머니 집이 생겼다.
구례 산수유마을은 봄이 오면 노란 산수유꽃이 계곡을 따라 피어 장관을 이루고, 여름에는 넓적한 바위 사이에 계곡물이 흘러 물놀이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구명조끼를 입고 계곡물에 누워 둥둥 하늘을 자유로이 떠다니는 구름을 바라보는 아이들. 머릿속까지 시원한 계곡물의 감각과 하늘을 떠다니는 듯한 자유로운 감상이 아이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게 될 것이다.
여름방학, 아이들은 장렬한 햇살을 받으며 녹음 속에서 더 강하게 자라고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