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지뜰' 구례 농촌유학 이야기 1편
“서울시 미세먼지 [나쁨] 예상, 외출 시 KF80 이상 마스크 준비”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도시에서 살 때 설정해 둔 미세먼지 예보 문자가 잠을 깨운다. 만약, 내가 지금 도시에 살고 있었다면 미세먼지로 고통받고 있었을 텐데….
전라남도 구례로 농촌유학을 온 지 딱 한 달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복잡한 도시를 떠나 지리산 자락에 있는 아담한 펜션에 살고 있다. 이곳에서는 산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시작한다. 마당에 나와 이불을 털면 가슴속까지 시원하다. 해가 좋을 땐 빨래를 집 밖에 널 기도 한다.
아파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시골집에는 먼지가 쌓이지 않는다. 놀랍게도 이곳에는 먼지가 없다. 도시에서는 창틀에 쌓인 시커먼 먼지를 닦을 때마다 ‘내 몸속에는 얼마나 많은 먼지가 있을까?’ 섬찟했었다.
이곳에서는 숨 한 번 쉴 거 두 번 쉬세요!
지리산 자락에 산 지 일주일 만에 아이의 만성 비염 증상이 사라졌다. 도시에서는 매일 밤 코가 막혀 잠을 자기 어려웠다. 스테로이드가 든 코 스프레이가 없이는 잠을 못 자던 아이가 새근새근 편안하게 숨을 쉬며 잠이 든다. 나 역시 목에 염증이 사라져 몇 년째 달고 살던 기침이 없어졌다. ‘맑은 공기’ 그것은 지리산이 준 선물이다.
농촌유학은 ‘흙을 밟는 도시 아이들’이라는 구호 아래,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시골에 살면서 자연의 소중함을 깨달을 기회를 주기 위해 시작됐다. 평소 자연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배움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주저 없이 농촌유학을 결정했다. 아이뿐 아니라 나 역시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쉬고 싶을 때 찾아올 수 있는 전원 속 고향을 만들고 싶었다.
기존에 살던 동네는 재개발 붐이 일어나 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그 바람에 아이가 다니던 학교는 순식간에 과밀학급이 되었고, 안전을 위해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뛰어놀거나 공놀이가 금지되었다. 아이들은 유일하게 운동장에 나갈 수 있는 점심시간을 위해 급식을 받자마자 고스란히 잔반통에 버리기 일쑤였다. 먹는 것보다 노는 게 더 좋은 나이이기 때문이다.
반면, 시골 작은 학교 아이들은 1, 2교시 후 중간 놀이 시간, 점심시간, 하교 후 마음껏 운동장에서 뛰어논다. 중간 놀이 시간에 열심히 뛰어논 아이들은 급식을 남김없이 먹는다. 놀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한 아이들은 식사 역시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다. 시골 작은 학교에서는 매일이 ‘수다날(수요일은 다 먹는 날)’이다.
시골살이의 불편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다. 쓰레기를 모아 두었다가 차를 타고 정해진 곳에 버려야 한다. 음식물 쓰레기도 면사무소에서 받은 통에 담아 일주일에 두 번만 정해진 시간에 내놓아야 수거해 간다. 여건이 이렇다 보니 저절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쓰레기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식재료도 하루 이틀 먹을거리가 아니면 미리 사두지 않는다. 냉장고가 작아서 만든 음식은 며칠 안에 다 먹어야 한다. 물론 시골에서는 물건을 사는 것도 쉽지 않다. 아주 빠른 배송도 없거니와 택배도 포장 쓰레기를 만들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사지 않거나 미룬다. 시골 작은 집에서는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산촌에서의 삶은 생활 방식뿐 아니라 인생의 가치관도 바꿨다. 매일 지리산을 마주하고 달콤한 꽃향기를 맡고 사니, 집의 크기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도시에서는 아파트 평수가 마치 성공의 척도처럼 여겨졌다. 같은 아파트라도 우리 집보다 작은 평수는 내심 깔보기도 하고, 넓은 평수에는 주눅 들기도 했다. 그러나, 지리산을 내 집 정원 삼아 살다 보면 먼지 가득하고 좁은 땅덩어리에서 땅따먹기 하듯 사는 것에 인생을 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아~ 물소리 좋다!
학교 가는 길, 개울을 따라 걸으며 아이가 말했다. 덤덤한 것 같던 아이도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나름의 정취를 느끼고 있었다. 어느 봄날, 집 앞 텃밭에 아이들이 모였다. 작은 손에 호미를 하나씩 쥐고 겨울잠 자는 지렁이를 찾는다. 성급한 아이들의 손에 때로는 지렁이가 반 토막 나기도 하지만 지렁이를 아끼는 마음은 진심이다. 정성스럽게 한 마리씩 모아 개울에서 제일 예쁜 이끼를 뜯어다가 일명 ‘지렁이 호텔’을 만들어 주었다.
이름 모를 뿌리를 연신 뽑아대며 텃밭을 보물 창고 삼아 열심히 땅을 판다. 시골 아이들의 양말과 바지는 온통 흙투성이다. 매일 저녁 손빨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아이가 그만큼 온몸으로 시골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아직 힘든 줄 모르고 하고 있다.
올해 새로운 농촌 유학 가정 환영 행사로 섬진강 변에 있는 ‘지리산 농부마을’에 가족 나무를 심었다. 구례 지역 농촌유학 가정들은 환영 행사로 3년째 이곳에서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유학이 끝난 후에도 가족들은 나무를 보러 종종 이곳에 온다고 한다. 우리도 나중에 아이가 커서 농촌 유학을 추억하며 심은 나무를 보러 오자고 말했다. 나무는 이제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그때쯤엔 우리 아이도 얼마나 성장해 있을까?
나는 굳이 말하자면 ‘흙수저’다. 자녀가 부모의 생활을 지원해 줘야 하면 ‘흙수저’라고 한다. 아이를 낳고 복직을 하면서 친정엄마에게 육아를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는 하시던 일을 그만두고 기꺼이 딸이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셨다. 나는 생계를 포기하고 아이를 돌봐주신 엄마에게 생활비를 드렸다. 아이를 맡아 주신지 9년, 그사이 아빠도 퇴직하셨고 온전히 내가 드리는 생활비로 두 분이 생활하시게 되었다.
나무는 금이나 다이아몬드 위에 심는다고 자라지 않는다. 반드시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양분을 받아야 자랄 수 있다. 아이들은 마치 방긋 웃는 꽃 같다. 사람들은 화려하든 소박하든 꽃을 보면 걸음을 멈추고, 향기를 맡으며 입을 맞춘다. 아이들이 꽃처럼 소중하다면, 아이들이 있어야 할 곳은 학원이 아닌 자연일 것이다. 비록 시골에서의 생활이 도시에서보다 열악할 수 있지만, 자연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시간이 아이가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