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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대 양꼬치거리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요리가 좋은 ‘홍매반점’·2차는 고흥순대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19의 공포가 한때 우리 사회를 격리와 고립으로 몰고 갔던 적이 있다. 산업 활동에 도미노 여파를 미쳐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위험 요소로 커가고 있다. 마치 바이러스가 변이해 괴물로 되가는 형국이다. 사람 사이의 신뢰지수에도 영향을 미쳐 점차 거리감을 생기게 하고 따뜻한 인본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었다. 


막연한 불안은 커지고 사회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일부서는 사재기라는 이기적인 조짐이 보이는가 하면 건물주들의 자진 임대료 인하 또는 면제 소식 등 이타적인 이야기도 들린다. 외식업을 하는 한 지인의 전언에 따르면 대구에서는 건물주가 먼저 전화를 해서 이번 달 임대료를 보내지 말라고 했단다.         


이번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외식업종 피해가 만만치 않다. 20~30분 줄서서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던 소위 ‘맛집’들도 하루 저녁 1회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고전하고 있다. 상황이 이럴진대 평소에도 간신히 연명하던 식당들은 1차로 종업원을 줄이거나 무급 휴가에 들어갔다. 이 정도면 다행이지만 휴업을 넘어 폐업을 고려하는 곳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코로나19는 최초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했다고 해서 ‘우한폐렴’이라고 칭했다. 때문에 중국인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리가 발동하는 것은 자연스런 방어기제의 작동이다. 그래선지 중국인들이 많이 몰려 사는 서울 일부 지역 상권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자양4동 동일로 18길,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건대 양꼬치거리가 그런 상황에 내몰린 적이 있다. 


필자는 2월에 건대 양꼬치거리를 두 번 방문한 적이 있다. 한국축제포럼 회원들과 함께 어려운 처지에 놓인 양꼬치거리를 응원하기 위해서다. 첫 번째 방문 때는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필자 테이블 외에 손님이 들지 않았다. 두 번째 역시 그러했다. 주말과 평일 할 것 없이 건대 양꼬치거리는 텅 비었다. 이곳이 상권이 형성된 것은 그나마 조선족과 중국인들 때문이다. 건대 상권은 어떻게 형성됐는지 짚어보자.    

    

텅 빈 ‘건대 양꼬치거리’응원이 필요한 곳

 

동일로 18길 건대 양꼬치거리가 우한코로나 여파로 인적이 드문 거리가 됐다. ‘양꼬치엔 칭타오’를 외치던 손님들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 응원이 필요한 곳이다.


1951년 한국전쟁 중 당시 서울시 김태선 시장은 도시계획을 발표하면서 서울역을 중심으로 서울을 도심, 중심, 교외지대로 구분했다. 그러면서 거주, 상업, 공업, 혼합, 녹지지역을 지정했다. 당시 뚝섬일대는 공업지역이 아닌 녹지지역이 주가 되고 일부 주거, 공업 혼합지역으로 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청계천 개발로 밀려난 봉제, 섬유, 금속기계 등을 하는 영세업체들이 지가가 싼 뚝섬 쪽으로 이전하면서 공장지대가 형성됐다. 한국전쟁 후 성동교와 뚝섬사이 저습지를 매립하면서 공장과 주택지가 만들어졌다. 1964년 군사 쿠데타정권은 서울도시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중랑천·한천, 뚝섬, 장안평, 석관동 일대를 준공업지역으로 지정했다.  


68년 서울시는 뚝섬지역을 포함해 8개 지역에 섬유, 봉제산업, 전자, 자동차부속품공업 등을 입지시킨다. 74년 정부가 뚝섬지역 19만7500㎡ 일대를 준공업지역으로 고시하자 영등포, 구로공단에 있을 수 없었던 영세업체들이 성수동으로 유입됐다. 특히 봉제공장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노동집약적 성격이 강한 봉제업으로 인해 이 일대 주택수요가 늘어났다. 2호선 성수역~화양역(현 건대입구역) 사이에 주택이 더욱 밀집하게 됐고 공장 노동자들의 배후주거지가 됐다. 이후 수도권정비계획이 발표되면서 소위 굴뚝산업이라 불리는 공해 오염시설은 반월공단, 인천기계공단, 부평 등으로 이전했다.  


82년부터 시작된 한강종합개발계획과 83년 지하철2호선이 개통되면서 접근성이 좋아지자 공장 이전부지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85년 도심재개발에 따라 중구청 일대에 있던 인쇄 업체들이 성수2가 3동 일대로 이전하게 됐다. 이후 성수공단은 노동시장 개편에 의해 공장 규모가 축소되면서 제조업체가 영세화됐다.  


97년 IMF 구제금융으로 인해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제조업이 모여 있던 성수공단 일대 공장은 폐업과 인원 감축으로 이어졌다. 이는 단순히 산업 쇠퇴가 아니라 성수동 공장 노동자의 이동과 지역공동화를 초래했다. 낮아진 임대료는 중국인 노동자들의 주거지로 인기를 얻었고 특히 자양4동 일부에 있는 70·80년대 지어진 저층 다가구주택은 이들이 채웠다.   


동일로18길은 성수동과 주변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영업하던 한국음식점이 위치하던 가로(街路)였다. 점심시간이 되면 많은 수의 근로자들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식당이 비교적 컸다. 성수공단 내 대규모 공장이 수도권으로 이전하면서 음식점도 영향을 받았다. 한국 음식점이 폐업하면서 권리금까지 없어지게 된다. 그 사이 조선족과 중국인들은 지속적으로 인근 주거지로 유입되면서 인구가 늘어났다.   


동일로18길, 중국인들이 상권 살려

 

동일로18길은 공동화된 지역을 자본력 있는 중국인들이 들어서면서 상권을 살린 곳이다. 그림은 2015년 기준 중국인 입주 업체 분포(출처 : 조재은 논문)


이런 가운데 자본력이 있는 조선족과 중국인들이 2000년대 들어 중국음식점을 열었다. 송화양꼬치가 가장 먼저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꾸준히 늘다가 2009년 들어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뤘다. 2011년에는 총 226개의 상가 중 한국상점이 166개이고,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 상점은 60개였다. 이들은 ‘조선족 상인위원회’를 구성해 관진구청에 동일로18길을 중국음식문화거리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건대 양꼬치거리’다.  


중국인들이 이 지역에 유입되고 건대 양꼬치거리를 형성하면서 동일로18길 뿐만 아니라 인근에 위치한 조양시장, 노룬산 시장 등 재래시장이 활성화됐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양꼬치 외 중국 각지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늘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2000년대부터 국내 대학들은 대학 글로벌화를 목표로 외국인 학생 유치를 강화했다. 이로 인해 자양4동 인근 건대를 비롯해 세종대, 한양대 등에 중국인 유학생이 늘었다. 이들 유학생들이 양꼬치 거리를 방문하면서 인근에는 중국식당 뿐 아니라 중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택배, 환전소, 여행사, 행정서비스 업체 등이 늘어났다.  


가리봉·대림과 중국인 밀집촌…양상은 달라

 

가리봉동 133-52 벌집(위)과 평면도. 구로공단 여공들이 살던 곳을 이제는 중국인과 조선족들이 채우고 있다.


서울 내 최대 중국인 밀집지는 가리봉동, 대림2동, 자양4동 등이다. 가리봉동의 중국인들은 과거 70·80년대 가리봉동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주거공간이자 ‘벌집’이라 불리는 협소한 쪽방촌이 있다. 벌집은 가리봉동 내 제조업 공장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비게 된다. 이후 저렴한 노후주택에 월세 형태로 단기간 체류하고자 하는 중국인들이 거주하게 됐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중국음식점과 인력사무소 등이 들어섰다.  


2003년 균형발전촉진지구, 2008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면서 개보수가 금지되고 열악한 주거가 개선되지 못한 채 낙후가 악순환 됐다. 이 지역 쪽방촌은 단속이 어렵다는 이유로 불법체류자와 범죄가 늘어났고 한국인들의 유입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  


대림2동은 서울의 최대 중국인 밀집지로 주거비가 저렴하고 가리봉동에 비해 주거환경이 양호한 편이다. 지하철 2·7호선 환승역인 대림역 주변을 중심으로 중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음식점을 비롯한 상업시설이 폭넓게 형성됐다. 이곳에서는 정통 중국요리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조선족이 많이 사는 연길, 길림, 연변 등 동북3성 요리가  이번 우한코로나 사태가 발생하면서 한 신문매체가 대림2동의 비위생적인 측면을 부각한 기사를 내보내 ‘혐오’를 부추기기도 했다.   


‘양꼬치엔 칭따오’ 개그로 대박

개그맨 정상훈이 유행시킨 유행어 ‘양꼬치엔 칭따오’ 덕분에 실제로 그는 칭따오맥주 광고를 찍었다. 그의 개그 한편으로 양꼬치 매출 뿐 아니라 칭타오 맥주가 국내에서 판매가 급증했다


양꼬치거리의 중국음식점은 중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을 대상으로 영업하기 때문에 한국식당과 다름없는 내,외관을 가지고 있다. 인근에 지하철 2·7호선 환승역인 건대입구역 있어서 외부 고객 유입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건대쪽 상권의 포화로 자연스레 조양시장과 양꼬치거리, 노룬산시장 상권이 발달했다.  


원래 양꼬치 요리는 터키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중국 신장 지역 등 양고기 소비가 많은 이슬람권 요리 중 하나로 발달했다. 중국의 신장, 서안지역 소수민족인 위구르족과 회족의 전통음식이었다. 1990년대 초 중국 내 여행자유화에 힘입어 양꼬치 요리가 전국으로 확산됐다. 이 과정에서 연길, 하얼빈 지역 등 조선족 자치구에서 주식이 아닌 ‘술안주’로 소비되면서 양꼬치 노점이나 주점이 생겼다. 이들이 국내에 노동인구로 유입하고 중국인 관광객, 유학생 등 중국인 유동인구가 늘면서 양꼬치구이는 우리나라에 자연스레 전해졌다.

 

조선족과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는 양꼬치 요리를 메인으로 하는 음식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중국주류 수입 증가와 함께 중국맥주와 양꼬치 요리를 곁들여 먹는 것이 알려지게 됐다. 한 배우가 ‘양꼬치엔 칭따오’라는 유행어와 함께 개그소재로 활용하면서 양꼬치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더욱 증가하게 됐다고 한다.  


매화반점과는 자매 사이…양꼬치거리 견인

 

홍매반점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사진. 각각 2012, 2020년 사진이다. 유정식당을 흡수해 매장을 넓힌 것은 2016년이다.


양꼬치거리 음식점은 양꼬치만 파는 것이 아니다. 각종 중국요리를 가성비 좋게 제공하고 있다. 지난 2월 두 차례 찾은 ‘홍매반점’은 이 지역에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양꼬치 집이다.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양꼬치 집을 열고 있는 ‘매화반점’과는 자매지간이라 건대 양꼬치거리 상권을 두 점포가 견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화반점서 분리 독립한 홍매반점은 2012년 현재 자리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2016년에 들어서는 점포 옆 한국음식점을 인수해 매장을 키웠다. 간판의 변화를 보면 외형 변화를 쉽게 알 수 있다. 이 사이 매화반점도 사업을 확장을 하면서 주변에 같은 간판으로 점포수를 늘려나갔다. 건물을 사들인 후에는 중국풍 파사드를 설치하는 등 마케팅을 강화했다.     


홍매반점은 장춘옥 대표(59)와 가족이 운영하는 양꼬치 전문점이다. 아들인 김성 씨(35)가 주방에서 요리를 만들어 낸다. 오픈 전에는 온 가족이 모여 양고기를 다듬고 꼬치를 꿴다고 함께 자리한 건대 문화콘텐츠학과 유동환 교수가 귀띔해 줬다. 4시반 경에는 가족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하고 손님맞이를 한다. 과거에는 낮에도 손님이 많았지만 요즘은 우한코로나에 경기 탓까지 겹쳐 손님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가족은 단 한 테이블의 손님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느끼게 한다. 손님을 맞는 태도나 차려져 나오는 요리는 예나 지금이나 최고다. 이 곳 양꼬치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나오는 데 기름 손질에 꽤나 정성을 들인 흔적이다. 기름이 많으면 구이 과정에서 숯불로 기름이 떨어지면서 불을 내는데, 이 경우 양고기에 그을음 묻어 맛을 떨어트린다.  


홍매반점 강점은 가성비 좋은 ‘요리’

 

홍매반점은 50여 종에 달하는 각종 요리를 맛 볼 수 있는 곳이다. 김성 셰프의 웍에서 탄생하는 요리는 눈과 입을 즐겁게 하기 충분하다. 요즘 같은 때는 넓은 곳에서 쾌적하게 식사


3명이 가서 3인분을 시키려니 일단 2인분만 주문하라고 한다. 기름진 음식이다 보니 먹어보고 추가하라는 의미다. 2인분만 주문해도 유린기와 건두부샐러드를 서비스로 내준다. 유린기는 1만8000원을 하지만 양을 줄여 서비스로 내놓는 과감한 마케팅을 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홍매반점을 찾는 이유는 양꼬치보다 요리에 있다. 매우 다양한 요리를 놀라운 가격에 맛 볼 수 있는 가성비를 가진 곳이다. 특히 김성 셰프가 ‘뚝딱’ 만들어 내는 요리는 눈과 혀를 충분히 즐겁게 한다.  


홍매반점에 가면 가지튀김(1만원)은 빼놓지 않고 주문하는 요리다. 가지튀김은 중국 동북지방에서 많이 해먹는 요리다. 명절 때면 잔뜩 튀겨 놓고 술안주나 간식으로 많이 먹는다. 양꼬치가 동북지방 조선족으로부터 유래되다 보니 자연스레 가지요리가 따라 들어왔다. 유린기, 오이양장피(1만원) 등은 강하지 않은 새콤한 식초로 음식 맛을 잘 잡았다. 꿔버러우(1만원) 도 달지 않고 시큼하게 맛을 내 색다름을 추구했다.  


마라탕, 사천매운탕, 짬뽕탕, 해물누룽지탕, 계란토마토탕 등 탕 종류와 새우볶음밥, 볶음면, 냉면, 수제물만두, 온면, 계란볶음밥 등 식사류는 낮에 인기가 많다. 고수돼지고기볶음, 돼지고기부추볶음, 오향장육 등 향신채가 들어간 요리를 찾는 마니아층도 있다. 메뉴판에 있는 요리만도 50여 종이나 된다. 대부분 요리가 1만원~1만5000원 수준이다.   


양고기도 일반 양꼬치, 양갈비살꼬치, 양갈비 등 세 종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꼬치집 간판을 보면 ‘串’이란 한자가 많이 표시돼 있다. 이는 고대 화폐로 사용했던 조개를 꿴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다. 중국어에서는 주로 꿰다, 꼬치라는 의미로 chuàn(촨)이라고 읽는다.  


우리 발음은 ‘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육지 일부분이 하천이나 바다로 툭 튀어나온 지형을 뜻하는 ‘곶’으로 많이 사용한다. 일본에서는 훈독으로 ‘くし’(쿠시)라고 읽으며 꼬치, 꼬챙이라는 뜻을 갖는다. 쿠시카츠와 같은 상호를 가진 곳은 꼬치집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홍매반점 넓은 홀에서 달랑 한 팀이 식사를 하려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우한코로나로 인해 자영업자들이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 고통을 나누는 차원에서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가끔 소규모 회식을 즐기는 것은 어떨지. 물론 안전을 충분히 고려하고 말이다. 인근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도 많다. 2차는 다소 무겁지만 순대국집의 술국으로 입가심이 어떨까 한다. 근처에 ‘고흥순대국·머리고기’집의 풍성한 맛의 순대국 육수와 부속 고기가 고소하니 일품이다.     

홍매반점서 1차를 했다면 2차는 인근 고흥순대국 집을 권한다. 순대국에 맵싸한 청양을 넣고 마무리를 하면 느끼한 맛을 모두 잡을 수 있다.


* 참고 논문 : 중국인 밀집지 자양4동 건축물의 용도 및 업종 변화에 따른 가로 경관 연구(조재은서울대학교 대학원, 2017,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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