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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살과 ‘헤어질 결심’은 내일부터

서울 북부 북한산 자락 고기구이 맛집 ‘화로구이 편’

친절한 오너 셰프와 딸의 조화가 좋은 곳

한번만 방문하는 손님 없도록 서비스 최선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영화사 제공]


1000만 관객 기록을 세울 것으로 전망되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지인의 호의로 개봉 첫날 관람했다. 장마철 장대비가 퍼부었지만 오랜만에 개봉 날 관람이라 느꺼운 마음으로 임했다. 평일 오전시간이라 극장 안은 비교적 한산했고 덕분에 집중하기 좋았다.      


영화는 관행적으로 십중팔구 목요일에 개봉하는 데 이번엔 수요일에 막을 올렸다. 영화 개봉을 목요일에 주된 개봉일로 잡은 이유는 주말 관객몰이 때문이다.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간 퍼지는 입소문을 주말 흥행으로 이어가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비밀이 숨어 있다. 목요일 평일에 영화를 보는 관객 중 많은 수가 영화 관계자, 감독이나 배우 팬, 스태프 가족 등이라 영화 평이 비교적 호의적이라는 것이다. 호의적인 입소문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급속히 인터넷에 퍼지게 되고 금요일 저녁부터 여세를 몰아 주말 흥행을 견인하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수요일 개봉은 안 좋은 평이 나올 경우 흥행이 실패할 우려가 크기 때문에 일종의 ‘도박’이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박해일, 탕웨이라는 화려하고 단단한 라인업으로 수요일 개봉이라는 강수를 뒀는데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6월 29일은 마침 문화가 있는 날이라 할인도 있었다. 제작사와 관객 모두 웃을 수 있었던 개봉이었다.      


소셜 미디어를 보면 영화 고수가 정말 많다. 영화평론가를 넘어서는 논객도 허다하다. 그러나 역시 묵은 된장 같은 오래된 전통 고수들의 글이 좋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은 “이번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으로 한 가지 밝혀진 사실은, 영화 글=비평이거나 비평에 가까운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라며 일반 논객을 찬했다. 


그는 이어 “스웨덴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가 썼던 탐정 소설 마르틴 베크 시리즈, 르네 클레망의 ‘비속의 방문객, 1970’과 김수용의 ‘안개, 1967’, 히치콕의 까마귀 등등 영화 속에 숨겨 놓은 박찬욱 표 코드들도 모두 찾아 낸다”며 한 단계 높여 상찬했다. 


그러나 고수는 역시 달랐다. 오 평론가는 “내 기억엔 해준(박해일)의 책상 위에는 마르틴 베크 책 7권이 가지런히 쌓여 있다. 이 시리즈는 발뢰가 1975년에 죽기까지 딱 7권이 나왔다. 숨어 있는 글쟁이 고수들은 중에는 7권이 쌓여 있다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마르틴 베크의 책이 나왔고 박찬욱이 해준의 (품위있는) 캐릭터와 이미지를  거기서 가져 왔다는 것을 눈치 챈다”고 썼다.     

 

그는 “대단한 사람들이다. 자괴스럽다. 직업의 심각한 위기를 느낀다. 이미 오래 된 얘기다”라고 하지만 이는 지나친 겸손이다. 그는 이렇게 표현함으로써 스포일러를 피해 마르틴 베크의 책이 주는 미장센을 설명한 것이다. 그래서 고수인 것이다.      


탕웨이의 마지막 석양주 기억남아       

필자는 소셜 미디어에 이렇게 썼다. “(의역)남자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사랑은 끝나고 동시에 여자의 사랑은 시작된다.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영화. 꼭 보고 난 후 관람평을 나누시길 권한다. 같이 관람한 이가 그랬다. 아무도 모르게 세상에서 사라지는 방법을 알려준 영화라고. 내겐 가장 극적인 석양주(夕陽酒)를 알려준 영화였다”라고.     


그리고 시 한편이 떠올랐다. 서울대 국문학과 83학번 박혜정의 시다. 제목은 ‘떠남이 아름다운 사람들이여’.


누워 쉬는 서해의 섬들 사이로 해가 질 때 / 눈앞이 아득해 오는 밤 / 해지는 풍경으론 상처 받지 않으리 / 별빛에 눈이 부셔 기댈 곳 찾아 / 서성이다 서성이다 떠나는 나의 그림자 / 언제나 떠날 때가 아름다웠지 / 오늘도 비는 내리고 / 거리의 우산들처럼 / 말없이 돌아가지만 / 아- 사람들이여 / 떠남이 아름다운 사람들이여     


영화를 봤다면 시가 체감되고 동감되리라. 아직도 탕웨이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선하다. 소주를 병째 들이키는 그의 초점 없는 눈빛. 영원한 미결사건이 되고 싶었지만 사라져야 하는 운명. 스릴러와 로맨스, 필름 누아르를 비볐지만 박찬욱 식으로 깔끔한 또는 진득한 결말. 거대하게 낙하하는 석양과 함께 사라지는 그녀.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잉크가 퍼지듯 서서히 물들 수도 있는 거야”라던 박해일의 읊조림이 겹치는 장면이다.     

 

부산 초밥집 상호 겹쳐 감독도 놀라     


필자는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떤 음식이 나오는지 촉각을 세웠다.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은 박해일이 경찰서에서 탕웨이를 심문하다가 초밥을 시켜준 것이다. 박해일은 부하들에게는 비싼 거 먹지 말라고 하고 탕웨이에게는 고가의 초밥을 주문한 장면은 관객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이때부터 이들의 러브라인이 싹튼 게 아닐까.      

포장지를 보면 부산에 있는 회전초밥 식당명과 유사하다. 그러나 한글 상호명은 같지만 영어로는 ‘shima’와 ‘sima’로 설정이 다르다. 이번 영화를 부산에서 찍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박 감독에게 부산은 영화 찍기 좋은 동네다. 올드보이 군만두집도 부산이 모티브다. 박 감독도 시마란 초밥집이 부산에 있어서 놀랐다는 후문이다.       


영화가 끝났다. 옛날엔 막을 내렸다고 했다. 실제로 커튼 월이 내려오거나 양옆에서 중앙으로 쳤다. 요즘은 엔딩 크레디트가 오른다고 표현한다. 진한 감동을 준 영화는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리를 뜨는 게 관람 예의다. 요즘은 이런 예의를 보기 힘들다. 관람 매너, 영화의 질, 너무 이른 실내등 등 복합적 문제다. 좋은 영화라면 이런 문제가 자연히 해소될 것이다.      


주인장 오부리가 있는 도봉구 명소           

‘화로구이 편’은 오너 셰프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편안한 곳이다.

극장을 나섰다. 전날 예약해 놓은 도봉동 ‘화로구이 편’을 찾았다. 예약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해 북한산 둘레에 위치한 도선사, 봉황각, 파라스파라 호텔 등을 둘러보고 시간에 맞춰 식당을 찾았다. 오너셰프가 친절하게 주차 공간을 안내하고 식객을 맞았다. 만면에 밝은 미소, 첫 접점이 좋았다. 이런 좋은 접점은 끝까지 이어졌다. 


식당 외관은 전형적인 일식집 같아 보였다. 내부 역시 디귿자 다찌 형태다. 정면 다찌에 너댓 자리, 양 옆으로는 테이블 몇 개, 딱 오너셰프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좌석이다. 그러나 만석이 되면 혼자선 무리가 올 수 있어 이날도 딸이 홀과 주방을 오가며 지원을 했다.          

질 좋은 숯에 가성비 좋은 소고기, 그리고 구워먹기 좋은 갖은 채소와 오이피클 등 메뉴 어울림이 좋다.

시그니처 메뉴인 와규꽃살과 프라임 진갈빗살을 주문했다. 주류는 화요41도로 합을 맞췄다. 원육 질에 비해 가격이 적정해 가성비가 좋았다. 비장탄 같아 보이는 쨍한 화력의 숯불화로가 테이블 위로 공수돼 왔고 연이어 고기가 종류별로 따로 제공됐다.      


화로에 함께 구워먹을 수 있는 단호박, 가지, 대파, 꽈리고추, 새송이버섯 등 채소도 나왔다. 구운 고기를 찍어 먹을 수 있게 소금, 소금기름장, 와사비 등이 소스로 제공됐다. 주먹밥과 편라면으로 입가심을 하니 고기 2인분에도 함포고복이다.           


마무리로 주먹밥을 시켜 남은 고기를 얹어 갈빗살초밥을 만들어 먹는 재미와 편라면으로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하면 만족스런 한끼가 된다.


이 식당은 ‘음악’이 한 몫하는 곳이다. 오너세프는 “음악을 들으면서 취향에 맞게 소고기를 드실 수 있는 매력이 있고 조금 색다른 닭 목살과 이곳에서만 드실 수 있는 오이절임도 준비돼 있다”고 자랑한다. 한쪽 벽에 케이스에 쌓인 기타가 놓여 있어서 노래 한곡을 요청했더니 선뜻 받아 준다. 5시 예약팀이라 우리 일행 외에 다른 손님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진심을 다해 불러준다. 창밖은 장맛비가 오락가락하고 화로위에선 고기가 노릇노릇 익어가고. 상호 ‘편’(便)은 글자 그대로 편하게 머물다 가란 의미다. 오너셰프의 심성을 닮았다. 사람에 취하고 날씨에 취해 이래저래 과식한 날이다. 뱃살과 ‘헤어질 결심’은 내일부터 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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