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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냉치냉·이열치열 했던 여름 반나절

평가옥 광화문점ㆍ서린낙지ㆍ깡통만두

냉면·온반 등 평양 음식 전문점 ‘평가옥 광화문점’

개성출신 창업주 이어 3대째 가업승계 ‘서린낙지’

겨울은 물론 여름에도 뜨겁지만 시원한 ‘깡통만두’            

      

화왕지절(火旺之節)의 한 복판에 들어섰다. 섭씨 30도 이상 오르내리는 날이 예사이고 폭염주의보에 태풍 소식까지 기상 관련 특보가 연일 전해지고 있다. 이런 날은 집에서 밥해 먹는 일도 귀찮다. 화구를 사용해야 하기에 밥 짓고 상 차리는 일이 즐겁지만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굶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외식을 고민해야 한다. 여름이라 시원한 냉면, 콩국수, 물회 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숯불을 앞에 두고 고기를 굽는 일은 어쩐지 선택이 저어된다. 반면 매콤한 낚지나 오징어볶음 등 이열치열도 생각난다. 여름철이라 체력을 보충하기 위한 뜨거운 보양탕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한 주간 목욕탕 냉탕과 온탕을 오가 듯 이냉치냉, 이열치열하면서 찾아다닌 음식점 몇 곳을 소개한다. 먼저 하루에 전쟁 치르듯 4차를 ‘달린’ 하루의 기록이다. 한국일보 출신으로 모 경제월간지 부사장을 하는 선배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평가옥 광화문점’에서 만났다.      


시원하게 선주후면하기 좋은 곳           

‘평가옥 광화문점’의 편육과 평양냉면. 선주후면에 최적화된 조합이다.

평가옥 소개에 따르면 “할아버지 세대부터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평양음식 전문점으로 평양냉면, 어복쟁반, 녹두지짐 등이 대표메뉴”라며 “돼지고기가 큼직큼직하게 들어간 고소한 빈대떡도 별미, 만두전골은 평양음식이 싱겁다는 느낌이 드는 분들을 위해 좀 더 칼칼한 맛을 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곳은 돼지 삶은 것을 편육,  소고기를 수육이라고 한다. 가격이 비교적 세지만 선주후면(先酒後麵)에 제격이다. 편육 색이 불그스레한 색을 띠고 향긋하다. 질 좋은 돼지고기 원육을 사용하고 있다. 새우젓에 오이절임과 겨자를 곁들이면 혀에 착 감기는 선주(先酒)의 안주가 된다.           


냉면은 특유의 소다향이 느껴진다. 제면을 할 때 찰기를 위해 넣는 소다는 메밀의 맛을 덮는다. 이 맛을 감별하고 알아차리면 흔히들 냉면 고수라고 한다. 고명으로 수육, 편육, 닭고기 등을 올리는데 냉면 육수의 주원료를 드러내는 일종의 업계 불문율이다. 만두는 속도 알차고 맛도 담백하니 자연스러웠다. 평양식 만두의 원형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먹기 좋게 크기는 적당했다.           


화끈하고 얼얼한 한방이 있는 곳            

‘서린낙지’의 낙지볶음과 베이컨쏘세지볶음. 두 메뉴를 섞어서 볶아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평가옥에서 얼추 배가 불렀지만 2차로 세종문화회관 뒷골목 종로빈대떡 광화문점에 들러 전과 막걸리 합을 맞췄다. 하지만 모두 다 해치우면(?) 배가 너무 불러 3차 가기가 어려울 듯 해 포장을 해서 이내 나왔다. 포장한 빈대떡은 나중에 집에서 잘 데워 먹었다는 후문이다.           


종로빈대떡 2층은 가을이라는 라이브 카페가 있다. 일종의 어른들의 놀이터다. 몇 해 전 갔다가 까무러칠뻔한 기억이 있다. 겉보기와 달리 문을 열자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괴성은 조용하게 음주를 즐기는 필자에겐 문화적 충격이었다. 가을을 비롯해 인근에는 여름, 가을, 겨울 등 조그만 라이브 카페들이 들어서 있다. 인근에 포시즌 호텔과 묘하게 겹치는 구성이다.     


씁쓸한 기억을 뒤로하고 배를 꺼트리기 위해 걸었다. 중간에 교보문고에 들러 소설책 두 권을 샀다. 조금 더 걷다가 일전에 대기 때문에 발길을 돌렸던 르메이에르빌딩 ‘서린낙지’에 갔다. 얼마 전 건물이 흔들렸다는 신고가 있어서 대피령이 있던 후라 그런지 한산했다.           


과거 낙지 전문식당은 무교동 일대에 몰려 있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형성된 낙지 전문점은 한때 20여 개에 달했을 정도다. 이후 70년대 도록 확장과 80년대 중반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서린낙지를 비롯해 낙지 전문점은 청진동으로 대거 넘어왔다. 이후 청진동 매장도 피맛골이 개발되면서 르메이에르빌딩으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서린낙지’는 고향이 북한 개성인 창업주가 피난을 내려와서 1959년 창업했다. 이 식당도 현재 3대째 가업을 잇는 노포다. 초기에는 소갈비, 된장찌개 등을 파는 일반 대중음식점이었다. 이후 메뉴를 정리하고 손님들이 선호했던 낙지전문점으로 변신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린낙지'의 성공은 불판이란 메뉴였다.              


철판 불판에 베이컨, 프랭크 소시지, 양파, 파, 콩나물무침을 넣고 볶는 '베이컨쏘세지구이'란 메뉴에 매콤한 낙지볶음을 따로 한 접시 시켜서 합치는 것이다. 따로 먹어도 되지만 함께 섞어서 먹으면 매콤함으로 입안에 얼얼한 한방을 선사하는 ‘철판섞어복음’이 된다.           


빨갛고 통통한 낙지와 콩나물을 섞어 질겅질겅 잘게 부서져 목안으로 넘어가는 맛이 일품이다. 3차까지 돌자 취기도 스멀스멀 오르고 여름 한낮의 기온도 절정이다. 이런 날 매운 낙지라니. 이열치열이 따로 없다.              

뜨거운 만두전골로 마무리           

‘깡통만두’의 만두전골 끓기 전과 후. 두툼하고 속이 꽉찬 평양식 만두가 먹음직스럽다.

4차는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건너편 ‘깡통만두’로 향했다. 이 지역은 과거 직장인 상대 밥집, 술집이었던 것이 최근에는 한옥에 차린 대형 베이커리 카페를 비롯해 젊은 층을 겨냥한 파인 다이닝 밥집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핫 플레이스가 됐다. 특히 런던베이글뮤지엄 안국점 같은 곳은 하루 종일 대기 손님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깡통만두’는 아무래도 여름보다는 겨울 영업이 잘 되는 곳이다. 그러나 겨울에는 대기 손님이 많아 발길을 돌리기 일쑤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한 그릇 만둣국에 몸을 데우기 위해 식객들이 추위를 마다하지 않고 줄을 서기 때문이다. 한 여름에도 골목으로 식객들 발길을 잡아끄는 이 집은 만두전문점인데, 만두 본연의 맛을 접할 수 있다는 평이다.     

      

만두는 일반적으로 서울, 개성, 평양지역 만두를 손꼽는다. 지역을 봐서는 일반 서민음식이라기보다는 왕실과 사대부, 권문세족들이 즐겼을만하다. 양반들이 많았던 서울만두는 한입 크기로 빚었다. 식사에도 기품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개성만두는 둥근 엽전 모양으로 서울만두와 평양만두 중간 크기다. 채소가 많이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평양만두는 일명 왕만두로 불리고 만두소가 두툼하고 듬뿍 차있다.           


깡통만두의 만두소는 식재료의 조합이 좋고 물기를 완전히 잘 짜내서 식감이 폭신하다. 여름엔 기본 만두, 새우만두 두 종을 만들어 내고 겨울엔 김치만두가 추가된다. 지금까지 칼국수와 일반 만두만 접해봤기에 이번엔 만두전골을 주문했다.           


식재료를 담아내기에 조금 작아 보이는 전골냄비에 꽉 채운 만두는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오래전 식당주가 만두전골을 맛있게 먹는 법에 대해 손님에게 차분하게 설명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깡통식당은 이태원에서 20여 년 정도 영업을 하다가 이곳으로 옮겼다. 여름 반나절 이리저리 다니며 과식과 과음에 동행해 준 그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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