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랜드마크 ‘형제갈비’‧일산 대화 먹자골목 뉴리더 ‘꿀양집’
식당 성공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흔히들 ‘운칠기삼’이라고 한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보편적으로 운이 7할이요, 기(맛과 경영)가 3할이란 의미를 갖는다. 맛을 아무리 잘 내고 경영 능력이 출중해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성공이 어렵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3할의 기술이 없고 운마저 나쁘면 100% 실패한다는 것이다.
운에는 입지, 배후 등 상권 요인이 크게 포함돼 있지만 말 그대로 천운이 일정 작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력도 없고 맛도 특별하지 않은 곳도 대기줄을 세우는 곳이 있는 것을 보면 수긍이 갈 것이다. 하지만 요즘 같이 외식업종이 어려운 시기에는 웬만한 곳도 운칠기삼이 통하지 않는 듯하다.
코로나19가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외식산업에 직격탄을 퍼부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외출 자제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식당을 비롯해 로드숍들이 고전하고 있다. 일부 건물주들은 자발적으로 임대료 인하나 면제로 임차인들의 무거운 마음을 위로했고 사회에 여전히 온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그럼에도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산업 전반이 도미노처럼 타격을 받으면서 경제 전반이 어려운 상황이다. 소비가 위축되고 바깥출입이 확연히 줄어들고 회식문화가 완전히 사라지면서 식당들 대부분이 개점휴업 상태다. 가장 먼저 아르바이트생과 종업원들의 고용이 줄어들었고 그러고도 견뎌내지 못하고 폐업하는 곳이 늘고 있다. 하루빨리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위축됐던 소비심리와 경기가 되살아나길 바랄 뿐이다.
과거 경의선은 경의중앙선으로 개발되면서 기존 역사가 기능을 다하고 폐역으로 남은 곳이 몇 있다. 신촌역과 일산역이 그러하다. 구 신촌역사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로 유명하다. 1925년 세워진 서울역보다 5년이나 앞선 1920년에 세워졌다. 그 해 12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보통역은 철도역의 등급인데, 여객 수요가 잦은 일반역을 의미한다. 간이역처럼 여객열차가 정차하지 않는 역도 있다.
2006년 민자역사를 세우면서 철거할 예정이었으나 보존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지금 자리에 이전 복원됐다. 그 과정에서 역사 뒤편 일부가 훼철됐다. 역사 내부에는 옛 신촌역 주변에 대한 기록과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기록물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신촌역을 거슬러 이화여대로 향하다 보면 일명 ‘신촌토끼굴’이 나온다. 신촌 명물거리삼거리와 세브란스병원을 이어주는 기찻길 아래 보행전용 통로다. 위로는 경의중앙선이 지난다. 북아현동 쪽에는 차도와 보행로가 함께 있는 굴다리가 있다. 기찻길은 생활권과 상권을 나누는 가장 큰 인공물이다. 그런 면에서 토끼굴은 생활권을 이어주는 귀중한 삶의 통로인 셈이다.
신촌토끼굴은 신촌사잇길 프로젝트에 포함되면서 벽화로 스프레이 유명하다. 토끼굴 안에는 인물 그라피티가 늘 그려져 있는 데, 지금은 ‘김란사’라는 신여성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김란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미국 유학생이면서 학사학위를 받은 교육자로 알려져 있다. 인천별감 하상기의 후처가 된 후 신교육을 받기 위해 이화학당을 찾았다. 기혼이란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했으나 집념을 가지고 학교 측을 설득해 입학을 했다.
김란사는 이화학당 시절 란사(낸시)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1년간 일본 동경의 경응의숙에서 유학한 후 선교사들 주선으로 미국 오하이오주 델라웨어 시 소재의 웨슬리언 대학에 입학해 1906년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한 김란사는 1911년 이화학당 대학과 교수이자 기숙사 사감으로 임용됐다. 정동제일교회에 한국 최초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한 인물이기도 하다.
처음엔 벽화 인물이 누군지 몰라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여성 걸그룹 마마무의 화사를 닮았다는 댓글이 복수로 달렸다. 자세히 보니 눈매가 비슷했다. 인물의 목덜미 부분에 김란사란 이름이 쓰여있어서 어렵지 않게 그녀가 누군지 알게 됐다.
서대문구는 창천교회~경의선앞길~창천가압장에 이르는 공간을 예술로 조성하는 신촌사잇길 프로젝트 일환으로 벽화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그동안 유관순, 윤동주, 이한열 등 연세대와 이화여대 관련 인물은 물론 김구, 박종철 등 광복과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이 벽면을 장식했다.
명물거리삼거리에서 신촌 현대백화점 쪽으로 걸어 내려 오다보면 우측으로 둥그런 베란다를 가진 ‘잘 생긴’ 6층짜리 빌딩을 만날 수 있다. 신촌 터줏대감인 ‘형제갈비’가 들어서 있는 건물이다. 형제갈비는 48년 업력을 가진 노포다.
1972년 개업한 신촌 랜드마크 형제갈비는 변하지 않은 불고기양념이 인상적인 곳이다. 기와집 파사드를 가진 집으로 시작했다가 90년대에 지금 자리에 6층짜리 빌딩을 지었다. 창업주는 정전촌 씨(작고)이고, 지금은 부인 김행지 씨가 운영하고 있다. ‘고기를 가지고 속임수를 부리지 않는다’는 경영철학이 유명하다.
과거엔 2층부터 5층까지 메뉴가 조금씩 달랐다고 한다. 지금은 1층은 갈비탕만, 3층은 불고기, 숯불구이, 평양냉면을 판다. 2, 4층은 준비 중이란 표시를 해놨는데 무엇이 들어올지는 종업원도 모르고 있었다. 아마도 지금과 같은 경기 상황이라면 다른 업종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형제갈비는 원육을 미국산 수입육만 사용한다. 한우는 일절 취급하지 않는다. 맞은편에 한우가 강세인 벽제갈비가 들어서면서 한우를 포기하지 않았나 싶다. 불고기 1인분 1만원, 매력적인 가격이다. 고즈넉한 공간에서 신촌을 내려다보며 즐기는 식사치곤 가성비가 매우 좋다. 평양냉면(1만원) 대신 면사리만 시켜 불고기육수에 적셔 먹을 수 있다. 과거엔 18가지 양념이 들어간 3일 숙성된 양념갈비와 진갈비살구이 등이 유명했다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메뉴에 없다.
술을 가지고 올 수 있는데 따로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되는 콜키지 프리다. 이 또한 애주가에겐 매력적인 소구력이다. 오래된 만큼 이곳에 대한 추억이 있는 주변 지인들이 많다. 중견출판사 윈타임즈 김성은 실장은 20년 전 이곳이 자신의 상견례 장소였다고 회상했다. 장소 덕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상견례는 결혼으로 이어졌다.
한옥고택관리사협동조합 이동고 이사장은 “대학 때 추억의 외식장소였다”며 “특히 80년대 중반 대형 식당에서 고기 먹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 지방서 아들 보러 상경하신 부모님께서 몸보신시켜주던 추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농·식품 분야 공공PR회사 베티카 임영진 대표는 40년 단골이다. 그는 “여고 때부터 갔으니 40년간 단골인데 명절 때도 문 닫지 않아서 부모님 모시고 늘 간다”고 말했다.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옛 맛이 아니어서 이젠 가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고 생애 첫 소주를 마신 ‘쓴 기억’도 있다는 주변 분들의 추억이 쏟아졌다.
형제갈비는 자기 홍보를 “신촌 일대에서 갈빗집으로 40년 가까이 터줏대감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담백하고 도톰한 생갈비와 연한 양념갈비가 모두 인기라고 하지요. 실내분위기도 깨끗해서 가족단위 손님들이 많다고 합니다”라고 하고 있다. 불고기보다는 생갈비와 양념갈비(각 1인분 2대 3만원)를 주력을 밀고 있다. 다음번 방문 때는 주력 메뉴를 맛볼 심산이다.
경의선이 살아 있고 국경이 열렸다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믿기 어렵겠지만 영국까지 갈 수 있다. 경의선은 일제가 한반도는 물론 만주를 통해 대륙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부설한 철도다. 서울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길이 518.5km 복선철도로 해방 당시 영업구간은 706km에 달했다. 일제는 압록강철교를 건설하고 만주철도를 경의선과 같은 표준궤도로 만들어 창춘까지 달리게 했다.
1930년대에 일본 세력 범위가 중국 본토로 확대되면서 서울에서 베이징 사이에도 직통열차가 운행됐다. 국제적으로 연락운수(환승)도 가능해 서울에서는 경의선과 만주철도, 시베리아철도를 경유해 영국 런던까지 가는 열차표를 판매하기도 했다. ‘역사의 열차’에 몸을 싣고 일산역으로 향했다. 그 사이 경의선 폐선부지는 선형(線形)공원으로 개발돼 서울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일산역은 1933년에 지어졌다. 이 무렵 지어진 경부선 다른 역들의 전형적인 모습과 달리 정면 박공 부위 폭이 비교적 넓은 반면 높이가 낮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경의선 복선전철화에 따라 2009년 7월 1일 새로 지은 일산역사로 이전하면서 등록문화재 제294호로 지정됐다. 일산역에서 조금 걸으면 대화동먹자골목에 이를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먹자골목이 예전만큼 북적이지 않지만 유독 한 곳은 여전히 손님 출입이 잦다. 일산 대화 신흥 맛집 ‘꿀양집’이다. 양‧대창 볏짚구이 전문점을 표방하면서 꿀을 식재료로 사용하는 특색 있는 식당이다. 수입육을 사용하는 형제갈비와 달리 이곳은 한우와 육우 내장을 사용한다.
꿀양집 신재우 대표는 수산요리전문점 ‘어사출또’라는 브랜드로 인근 화정, 탄현, 원당 등지에 식당을 네 개나 운영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꿀양집은 그의 다섯 번째 식당으로 수산물 전문가가 한우곱창을 앞세워 대화 먹자골목에 입성해 3개월 만에 지역 핫플레이스를 만들었다. 신촌 형제갈비가 노포의 은근한 맛으로 지역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다면 꿀양집은 탄탄한 외식 경영 스킬로 신진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자리 잡은 케이스다.
최근 찾은 꿀양집은 어려운 시기임에도 피크타임 때는 만석이다. 가성비 좋은 한우곱창이 고객에게 통했다. 게다가 친절하고 붙임성 좋은 신 대표의 천성에 탄탄한 외식 공부 내공이 탑재되면서 성공가도에 가속을 붙였다. 꿀을 이용해 소 내장 연육과 잡내를 잡고 볏짚으로 초벌한 후 커피나무 숯으로 직화로 구워 맛을 극대화시켰다. 모둠은 곱창, 대창, 막창, 염통, 양깃머리로 구성돼 있다. 곱과 기름 맛의 향연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조만간 서울 강남에서도 맛볼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강남 입성이 기대된다. 가성비, 가심비가 충분히 통할 듯하다. 이번 방문에서는 메뉴판에 없는 닭 목살, 곱창라면, 내장탕 등 몇 가지 메뉴를 맛볼 수 있었다. 국물 요리 경우 정식 메뉴로 출시해도 손색없는 밸런스가 탄탄한 맛이다. 쌀은 품질 좋은 ‘조선향미’를 쓰는데도 불구하고 공기밥 가격은 1000원이다. 신선한 간과 천엽은 기본 찬의 개념으로 제공되고 다양한 내장 부위는 물론 우설모둠까지 맛볼 수 있다.
신 대표의 식당 운영 스킬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스타일러의 구비다. 한 두 대가 아니라 무려 5대나 구비하고 있다. 식당 공간에서 상당한 부분을 스타일러로 채우면서까지 고객 서비스 만족도를 높였다. 맛, 가격, 서비스를 한꺼번에 거머쥔 케이스다. 성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 채운 결과에 대해 고객들은 ‘대박집’으로 답했다. 이젠 폐선이 된 옛 경의선의 궤도를 따라 두 곳 식당을 소개했다. 우한코로나가 하루 빨리 진정돼 외식업은 물론 전 산업에 활기가 돌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