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주의보와 함께 시작된 평양냉면의 계절...평냉 마니아들 행복한 고민도
외식시장에서 평양냉면이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메밀이라는 웰빙적 요소와 고기육수를 앞세운 맛의 조합이 원초적 미각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냉면은 멸치 육수에 밀가루 면으로 만든 국수와 달리 고기 육수에 메밀로 만들어 든든한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는 이유도 있다. 최근엔 마니아층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속도감 있게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무엇보다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옥류관 냉면을 공수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대접하면서 벌어진 에피소드로 인해 폭발적으로 인기가 높아졌다. 김 위원장은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평양냉면을 가져왔습니다... 멀리 온 평양냉면…아 멀다고 하면 안 돼갔구나”라는 한 마디로 냉면업계를 발칵 뒤집어 놨다.
여름철이면 유명 평양냉면집은 점심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문전성시를 이룬다. 우래옥, 필동면옥. 을지면옥, 평양면옥(장충동) 같은 원도심에 있는 노포에는 장년층 마니아들이 순번을 정해 일찌감치 자리를 맡는 진풍경도 보인다. 예약을 아예 안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평양냉면에 열광할까.
그 답을 얻기 위해 각각 하루에 다섯 곳, 네 곳 등 총 2회에 걸쳐 9곳의 평양냉면집 집중 벤치마킹 투어를 했던 적이 있다. 또 개인적으로 서울시내에 있는 여러 냉면집을 순례했다. 하루에 여러 곳 맛을 봐야 맛의 차이와 기준점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평양냉면 강자들은 어떤 ‘무기’로 한 여름 땡볕 아래 손님들을 줄 세우는지 알아봤다.
문학 작품 속에서 냉면을 묘사한 장면을 찾으라면 단연 손꼽히는 것이 백석의 글이다.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국수’라는 시 일부다. 바로 메밀국수를 소재로 한 것이다. 메밀국수는 평양냉면과 등치가 가능한 먹거리다. 메밀국수를 찬 육수와 함께 먹는 게 바로 냉면이다. 백석의 시를 보면 예나 지금이나 ‘쩡’하고 ‘얼얼한’ 맛의 냉면에 대한 갈구가 있다.
1936년 7월23일자 <매일신보>에는 ‘냉면’에 관한 기사가 있다. 당시 서울에서 소위 대박을 치고 있는 냉면집들을 다룬 기사다.
“평양냉면, 해주냉면 다음으로 서울냉면을 손꼽을 만큼 이제는 서울냉면이 냉면 축에서 뻐젓하게 한몫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성냉면은 말하자면 평양냉면의 연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입 까다로운 서울사람들의 미각을 정복해보려고 평양냉면 장사들이 일류 기술자-냉면의 맛은 그 기술 여하에 달렸습니다-를 데리고 경성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움직일 수 없는 굳은 지반을 쌓아놓았습니다. 여름 한철 더군다나 각 관청 회사의 점심시간이면은 냉면집 전화통에서는 불이 날 지경입니다.”
1920년대 후반부터 서울에는 부벽루, 백양루, 동양루 등 유명 냉면집들이 많았다고 한다. 부벽루란 이름은 평양 대동강 가에 위치한 누각에서 온 것이다. 부벽루가 평양냉면을 파는 집이란 것을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상호다. 당시 청계천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냉면집이 약 40곳이 성업했다. 그만큼 메밀 면식을 좋아하는 인구가 받쳐줬다는 의미다.
서울의 평양냉면 절대 강자는 1940년대에 나타난다. 해방이 되면서 일제가 놓고 간 시내 적산가옥을 사들여 문을 연 중로 주교동의 우래옥이 대표적인 곳이다. 평양출신인 장원일 씨와 주방장 주병인 씨가 1946년 서북관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피난을 갔다 와서 또(又) 오라(來)는 의미로 지금 이름으로 바꿨다. 우래옥 이후 지금의 평양냉면 강자들은 7․80년대 생겨났다. 특히 1970년대 혼분식장려운동은 냉면의 수효를 ‘격발’하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
혼분식장려운동은 1960년대 시작해 70년대 새마을운동 일환으로 추진되는 등 전국적으로 강력하게 전개됐다. 모든 음식점은 흰쌀밥 이외에 보리쌀이나 면류를 25% 이상 혼합 판매해야 했다. 당연히 밀가루와 함께 메밀 판매도 늘었고 이 덕에 평양냉면집도 성수기를 맞았다.
70년대를 지나 80년대에는 이미 우래옥, 장충동평양면옥 등 노포들이 점령한 4대문 안과 성저십리(한양도성 밖 10리 지대) 지역을 벗어나 성동, 화곡, 광명 등에 나름 지역 강자들이 속속 들어섰다. 1969년 문을 연 의정부평양면옥은 1985년에 딸들이 과감하게 서울 을지로와 필동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이면서 가족직영 프랜차이즈의 효시가 됐다.
평양냉면의 특징은 ‘기호(嗜好)’가 ‘기호(畿湖)‘를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북쪽 실향민들은 고향과 멀어지기 싫어했기 때문에 경기도를 잘 넘어서지 않았다. 메밀이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곡식이란 점도 한몫했다. 이 때문에 평양냉면 진출 권역이 충청도에 미치지 못했다. 경기 이남에 평양냉면 강자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
얼마 전에는 전남 광주에 ’광주옥‘이 생겨 남북정상회담 수혜를 톡톡히 봤다는 소식이다. 외식업 컨설팅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식당업은 운칠기삼‘이라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광주옥은 운이 참 좋았다.
2018년 현재 평양냉면 시장은 1920년대 경성을 중심으로 견조한 발전을 밑거름 삼아 전통강자와 신흥강자들이 ‘맛 경쟁’을 펼치고 있는 형국이다. 소비자는 어느 포인트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냉면이란 음식은 구성이 단출하다. 면, 육수, 고명을 한 대접에 담으면 된다. 반면 면, 육수, 고명 등 각 재료마다 손질해서 맛을 빼내는 노하우가 상당히 필요하다. 때문에 메뉴로 도입하려면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고 맛 밸런스도 잘 유지해야 한다.
원래 평양냉면은 주로 동치미 국물에 메밀면을 말아 먹었다. <동국세시기>(1849)나 <규곤요람>(1896) 등에는 동치미에 메밀면을 말아 돼지고기 고명을 얹어 먹었다고 쓰여 있다. 소고기 육수를 만들어 동치미와 섞거나 단독으로 사용한 것은 1950년대 이후로 보인다.
평양식 냉면은 전쟁 통에 남한으로 내려오면서 소고기 육수와 손잡고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았다. 육수 속에 녹아 있는 육향(肉香)은 인간의 원초적 식욕 본능이다. 육수의 감칠맛과 고소함은 혀의 미뢰를 사로잡아 맛의 포로로 만든다. 후각으로 스미는 육향은 뇌의 기억창고를 여는 열쇠다.
인류의 기억 속에 육향은 육식과 포만이라는 행복한 추억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양냉면 육수에 한번 취하면 헤어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육향의 기억창고 열쇠가 정확히 자물쇠에 맞아야 가능한 일이다. 호불호가 극명한 음식이란 의미다.
인간의 뇌는 달고 기름진 음식이 당기도록 만들어졌다. 고열량, 고지방 음식이 일반적으로 중독성이 강하다. 간장으로 간을 한 고기육수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킨다. 그래서 평양냉면에 한번 빠지면 중독이 되는 것이다. 오죽하면 ‘평뽕’(마약 같은 맛이란 의미)이라 하지 않는가!
한편 평양냉면 벤치마킹 팀은 외식업 관련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외식 전문잡지 대표를 비롯해 메밀제분 업체 이사, 평양냉면 기술전수자, 외식 메뉴개발 전문가, 평양냉면 마니아, 메뉴도입 희망자, 평양냉면집 개설 희망자, 외식업 컨설턴트, 대중음식문화평론가 등이 버스 한 대로 함께 이동한다.
이동 간에는 메밀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을 듣거나 직전 냉면집에 대한 전문가들의 맛 평가와 보완점 등을 듣고 의견을 교환한다. 이들과 이동 간에 나눈 의견을 종합해서 냉면집을 차리면 대한민국 최고가 될 듯할 정도로 장단점을 조목조목 잘도 집어낸다.
하루 네다섯 곳의 냉면집을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부지런도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위가 커야 한다. 11시부터 6시까지 한 시간 반 단위로 냉면 한 그릇을 해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헤어질 무렵에는 남산 만하게 부푼 배로 엉거주춤 뒤돌아 가는 모습이란!
평양냉면 강자들은 고객을 유인하는 한두 가지 강력한 ‘원투펀치’가 있다. 육수 베이스와 메밀 함량에 따른 면 식감이 일반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사이드로는 제육, 편육, 만두를 손꼽을 수 있다. 불고기는 사이드가 아니라 메인급으로 선주후면의 필수 전제조건이다.
면식을 좀 한다는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 육수는 일반적으로 ‘농후한 육향’에 대해 선호도가 높았다. 우래옥과 봉피양 등 농향(濃香) 냉면집이 높은 점수를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우래옥은 동치미와 섞지 않은 고기 육수로만 진한 맛을 냈다. 농밀한 육향에 매끈한 면 식감까지 결합되면서 가성비를 따지지 않을 땐 평판이 가장 좋았다.
벽제갈비의 냉면브랜드 봉피양도 우래옥 못지않은 농향 육수로 인기를 끌고 있다. 무주공산이던 분당 판교 지역에 자리 잡아 단박에 최강자 자리를 꿰찬 능라도도 육수가 진하고 구수하다. 우래옥은 자기 그릇, 봉피양과 능라도는 두툼한 방짜유기를 써서 맛을 한층 더하고 있다.
제육도 평양냉면 구매 결정에 매우 높은 관여를 한다. 제육과 편육은 평양냉면 집의 수준을 나타내는 가늠자다. 냉면 육수를 빼내는 원재료이기 때문이다. 평양냉면 집에서는 일반적으로 돼지고기는 제육, 소고기는 편육을 지칭한다. 육수를 빼고 난 고기를 썰어 내오면 냉면이 나오기 전 ‘선주후면’(先酒後麵)하기 제격이다. 한 냉면집 대표에 따르면 원가는 사실상 제육, 편육만 팔아도 나온다. 냉면 수입은 거의 순수익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제육은 의정부평양면옥 계열인 을지면옥, 필동면옥 등이 쫀득한 식감과 느끼하지 않게 삶아내는 제법으로 인기가 높다. 대체로 편육은 기름기가 없기 때문에 퍽퍽하고 제육은 지방층으로 인해 몰캉거리면서 고소한 맛을 낸다. 편육보다 제육 판매 비중이 월등히 높은 이유에는 가격적인 측면도 일부 있지만 식감도 한몫한다.
불고기는 평양냉면 집에서 선주후면 콘셉트를 구현하기 좋은 메뉴다. 우래옥, 봉피양 등 역사가 있는 강호들이 입맛을 사로잡는 불고기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 일품당프리미엄, 금용문, 광화문한옥집 등을 운영하는 세종클럽 유승빈 회장은 “우래옥 불고기 맛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최고의 맛”이라고 평했다.
삼청동 만정은 봉피양식 냉면과 불고기를 구현해 좋은 반응을 얻은 곳이다. 소고기 대신 돼지를 숯불직화로 구워 단품이나 세트메뉴로 내놓은 남양주 광릉한옥집 같은 곳도 있다. 만두는 평양냉면 집에서 제육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찾는다.
이유는 아무래도 메밀과 만두피 밀가루가 겹치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 대신 빈대떡, 지짐 등이 잘 나간다. 주머니 가벼운 술꾼들에겐 수육 대용으로 인기가 높다. 빈대떡은 만두만큼 집집마다 솜씨 편차가 크다.
평양냉면 맛집을 보면 4대문 안에 몇 개 밀집을 빼고는 ‘지역구’ 하나씩 꿰차고 있다. 대단히 ‘권력적인’ 메뉴다. 4대문 안을 보면 전통의 강자 우래옥이 중구 주교동에 해방 직후부터 자리 잡았고 을지로3가 인근 평래옥은 1950년에 문을 열었다.
이들과 멀리 않은 곳에 의정부 평양면옥서 분가한 을지면옥과 필동면옥이 위치해 있고 장충동에는 3대째 가업을 잇는 평양면옥이 자리 잡았다. 이밖에 남포면옥, 유진식당, 부원면옥, 강서면옥이 4대문 안에 있다.
4대문을 약간 벗어나면 광진구 서북면옥, 송파구 봉피양, 마포구 을밀대, 무삼면옥, 동무밥상이 있다. 구파발에는 만포면옥, 구로구에는 오류동평양냉면이 역사를 앞세워 호령하고 있고 마포에는 2016년 장수가가 서경도락으로 상호를 바꾸고 평양냉면을 새롭게 선보였다. 한강을 건너 강남으로 가면 논현동 진미평양냉면이 어려운 상권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면장만 20년을 넘게 한 주인의 저력이 볼만하다.
강남에는 우래옥, 봉피양, 평양면옥, 능라도 등의 지점이 즐비하게 진출해 각축을 벌이고 있다. 강서구에는 대동관이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경기도 광명에는 정인면옥이 광명시장 근처에서 지역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정인면옥은 전형적인 골목상권임에도 좋은 가성비 때문에 손님이 몰린다.
정인면옥은 광명지역이 좁게 느껴졌는지 정치권력 한복판인 여의도로 이름만 빌려서 진출했고 대박집이 됐다. 인천 신포동 경인면옥은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부터 평양냉면을 팔아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곳이다.
남양주 진접에는 광릉한옥집이 메밀 100% 자가제면으로, 분당 미금로 리북냉면은 손반죽으로 손님을 끌어 모으고 있다. 참고로 평래옥, 평가옥 ‘평’자가 들어가는 면옥집은 닭을 주재료로 육수를 낸다. 그래서 평냉 마니아들은 보편적으로 이들을 평양냉면으로 쳐주지 않는다.
최근에는 냉면 가게 분포선이 무섭게 남하하고 있다. 충청도를 못 넘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광주, 대구까지 남하해 단박에 명소로 자리 잡았다. 전수창업 한 광주옥1947은 광주 농성동에 문을 열고 최근에는 충장로에 분점을 내는 등 남북정상회담 최대 수혜업체로 손꼽힌다.
대구는 제형면옥이 지역 강자로 오랫동안 군림해 오고 있고 부산은 원산면옥이 3대째 터줏대감으로 자리잡고 있다. 경남지역은 한국전쟁 통에 원조 밀가루가 다량 풀리면서 밀면이 강세인 지역이라 메밀이 그 동안 힘을 못 썼다.
평양냉면은 단출한 상차림에 비해 가격이 결코 싸지 않다. 종로3가 유진식당 7000원, 남대문 부원면옥 8000원, 삼도갈비 1만원 짜리 부터 봉피양 17000원짜리 순면(메밀 100%)까지 있다.
좀 한다는 집은 대부분은 냉면 한 그릇이 1만원을 훌쩍 넘는다. 서민음식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고급 음식이다. 비싼 소고기가 주재료로 사용되면서 원가가 높기 때문이다. 거기다 일부는 브랜드 가치까지 냉면 값에 보태는 바람에 선뜻 주문하기 어려운 가격까지 치솟았다.
벤치마킹 팀들과 의견을 나눈 결과 경쟁력 있는 평양냉면 집이 되기 위한 특징적인 조건이 몇 가지 있다. 먼저 농향형 육수가 대중적 입맛을 더 끌어당겼다. 육수 색깔은 노리끼리하게 진하고 육향도 다소 강한 쪽이 선호됐다. 전통적인 평양냉면의 특징인 밍밍하고 슴슴한 육수보다 혀에 착 감기고 입술에 약간 반질하게 남는 기름진 맛을 선호했다.
면은 메밀함량이 70~80% 정도가 식감이 우수했다는 평이다. 순 메밀면의 경우 향은 좋지만 표면이 거칠고 쉽게 끊어지는 단점 아닌 단점이 지적됐다. 나머지 20~30%는 밀가루나 전분 등을 잘 배합해 만드는데, 여기에도 면가(麵家)마다 노하우가 있다. 이렇게 배합을 해서 압착면을 빼내면 표면이 매끈할뿐더러 끈기도 적당해 ‘호로록’ 말아 올리는 식감이 좋아진다.
면의 굵기는 1.4mm가 선호됐다. 이보다 얇으면 면이 육수를 조금밖에 무쳐 올리지 못해 맛을 못 낸다. 또 평양냉면 같지 않고 가격 대비 빈약해 보인다. 더 굵으면 삶아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과 막국수 같아 보이는 단점이 있다.
소비자의 구매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결국 ‘머니(money)’다. 식당은 일단 가격 문턱이 낮아야 손님이 몰린다. 평양냉면 가격의 임계점은 1만원이다. 그 이상을 지불하고 먹기엔 다소 주저된다는 의견이다. 비싼 만큼 제 값을 하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브랜드를 앞세워 가격문턱만 한껏 높인 곳도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육수 주원료인 소고기 값이 치솟으면서 돼지고기로 기존 육수 맛을 내는 레시피 개발도 활발하다. 결국 원재료비를 낮춰 적당한 가격으로 제공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맛을 낼 수만 있다면 획기적인 방법으로 평가된다.
소비자들의 안목지수가 높아졌다. 음식 재료뿐만 아니라 레시피까지 읊을 수 있는 고수들이 즐비하다. 특히 평양냉면은 마니아층이 형성된 음식이다. 유명한 냉면 맛집 정보는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그런데 정작 마니아들도 잘 모르는 맛의 비밀이 몇 가지 있다. 오랫동안 면장으로 근무하던 이들만이 집어낼 수 있는 맛이다.
첫 번째가 냉소다에 맛의 비밀에 있다. 좀 한다는 평양냉면 집에 들어서면 물 대신 내오는 것이 면수다. 면을 삶은 물이란 의미인데 실제로 오리지널 면수를 내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메밀을 갈아서 따로 끓여내는 집이 있는가 하면 다소 화학적인 맛을 내는 면수를 제공된다.
냉소다는 면을 차지게 하는 첨가제다. 면 탄성을 높이고 식감을 탱글 하게 만들기 위해 집어넣는다. 문제는 냉소다가 들어간 면에서는 다소 역한 냄새가 난다. 오래전부터 많은 냉면집이 냉소다를 사용하다 보니 이 맛이 마치 평양냉면 면이나 면수의 표준 맛처럼 오인됐다.
그런 오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고소한 맛과 냄새가 아닌 비릿한 맛이 느껴진다면 냉소다다. 면수가 흰색이면 메밀 갈아 놓은 것을 끓여 내오는 가능성이 높다. 실제 메밀면을 삶아낸 면수는 약간 검불그스름한 계통의 색을 띤다.
제면(製麵)에 대한 정보는 이제 보편화돼 있다. 메밀을 완전 거피한 유백색 면이 대세라는 것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직도 거무튀튀한 면색에 껍질가루가 점점이 박혀 있는 면(점박이면)을 찾는 이들이 있다. 점박이면은 과거 도정기술이 뒤떨어졌을 시절 메밀 껍데기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해서 만들어진 면이다. 지금은 완벽한 도정으로 매끈한 유백색으로 제분된다.
볶은 메밀을 첨가해 색을 내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메밀면의 순도를 떨어트리고 맛에도 영향을 미친다. 진정한 평양냉면은 이제 ‘유백색 면’이 대세다. 게다가 자가제면 시대다. 대형업소에서는 자가제분까지 한다. 평양냉면의 진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육수의 경우 전문가가 아닌 이상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육수는 정성이다. 끓이는 내내 곁에 지켜 서서 부유하는 기름과 찌꺼기를 쉴 새 없이 걷어내야 깔끔한 육수를 얻을 수 있다. 자칫 이 작업을 소홀하면 떠오른 기름이 육수에 녹아들어 가 맛을 미끌거리게 한다.
평양냉면은 ‘쩡’하면서 깔끔하고 담백한 것이 육수 맛의 특징이다. 비록 고기 국물이지만 먹고 나도 입술에 번지르르 남지 않는다. 만약 입술에 미끌거리는 기름기가 느껴진다면 육수 내는데 정성이 부족했다고 보면 된다.
평양냉면이 국민 외식 메뉴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그동안 ‘걸레 빤 물’이란 오명을 견디며 꾸준하게 국민 혀를 꼬드기는 데 성공했다. 맛보기를 주저하던 국민들을 냉면가게 앞에 줄을 세우는 데는 김 위원장의 입담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평양냉면은 더 이상 북한음식, 변방음식이 아니라 ‘우리 음식’이다. 글을 쓰는 내내 평양냉면이야말로 세계에 알릴만한 한식이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냉면이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그날이 올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