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국악당 인근 산낙지요리 전문 ‘목포독천낙지’
지난해에 이어 우리 전통무(傳統舞)의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기원하는 ‘한국명작무대제전’을 직관했다. 지난 17·18일 이틀에 걸쳐 남산한옥마을 내 남산국악당에서 열린 이번 춤판에는 이미 유네스코에 등재된 처용무를 포함해 18개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승무, 살풀이춤, 태평무, 부채춤 등 독무와 군무로 이뤄진 처용무, 십이체장고춤, 수건춤, 진도북춤 등이 이틀간 골고루 선보였다. 출연진들의 어느 때보다 철저한 준비가 무대에서 빛을 발했고 관객들은 환호와 박수로 뜨겁게 호응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내년이라도 당장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우리 춤이 ‘덜컥’ 등재될 것만도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고 갈 길이 멀다. 그래서 무대 현장에서 전통무를 계승하고 널리 알리고 있는 전통무용가들이 모여 의미 있는 춤판을 매년 꾸준히 펼치는 것이다.
지난해 말 모로코 라바트에서 열린 제17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우리의 ‘탈춤’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되면서 전통무의 등재 움직임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우리 탈춤에 대해 ‘보편적 평등의 가치와 사회 신분제에 대한 비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 주제이며 각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에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등을 높이 평가했다.
흔히들 ‘무용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같다’고 한다. 그만큼 유구한 역사를 가졌고 인류의 생활 속에 자연스레 이어지는 무형 자산이다. 우리의 전통무 역시 각 지역, 계급, 환경, 종교 등 일상의 문화적 보편성을 담고 있는 귀한 자산이다. 그래서 주요 전통무는 무형문화재로 지정해서 체계적으로 전승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한국명작무대제전을 이끌고 있는 한국전통문화연구원 인남순 원장은 전통춤으로 1972년부터 해외공연을 다녔던 해외파 1세대다.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대극장과 링컨센터, 프랑스 파리 세계유네스코본부 오디토리엄, 샹젤리제대극장 등 최고 무대에서 우리 춤을 선보이며 문화적 가치를 세계에 알려왔다.
그의 앞선 노력으로 김천흥 류(流) 처용무는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에 이어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인 원장에 따르면 처용무의 가치는 유네스코 등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등재 이후 세계 여러 춤 문화유산 중에서 처용무의 위상이 확연히 달라진 것을 현장에서 실감했다는 것이다.
수많은 전통무를 하나씩 등재시킨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명작무대제전이란 이름으로 무대를 만들어 다양한 전통무를 선보이면서 전체를 묶어서 등재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 탈춤이 등재 결정된 지난해 정부간위원회에서 일본의 전통춤 41개를 묶은 ‘후류오도리’(風流踊·정식 명칭은 ‘후류오도리, 사람들의 희망과 기도가 깃든 의식용 춤’)가 대표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인 원장은“'독일의 현대무용 연습'은 당초 '정보보완' 평가를 받았지만 최종 등재 결정되는 등 각국의 전통무는 물론 현대무용까지 유네스코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고귀한 춤을 지도해 주신 스승, 선후배, 후학들과 함께 해온 한국 전통무용도 조속히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될 수 있도록 혼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올 ‘한국명작무대제전’은 서울남산국악당 김지위 대표, 엄국천 실장이 힘을 보탰다. 고양댄스컴퍼니 강윤선 대표가 연출로 수고를 했고 평소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한컴그룹 김상철 회장의 후원이 큰 도움이 됐다. 이틀 동안 전통춤 해설과 공연 진행을 맡은 이종숙 한국전통악무연구원장, 처용무에 출연하고 행사를 기획한 정선화 씨 등이 든든하게 뒤를 받쳤다.
쌀쌀한 날씨 속에 이틀간 우리 전통무로 뜨겁게 달군 무대였다. 늘 그렇지만 ‘금강산도 식후경’ 시간이다. 충무로 일대는 필자가 좋아하는 오래된 음식점(노포)이 꽤나 있기에 먹거리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갈 예정이었던 식당이 일찍 문을 닫으면서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 지역은 지하철 3, 4호선이 지나는 시내 한복판 상권에 사무실 밀집지대, 동국대 후문이라는 ‘학세권’까지 트리플 역세권이다. 필동 작은 골목 안쪽에 다양한 식당과 주점들이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선뜻 구미를 당기에 하는 메뉴를 찾기 어려웠다. 일행과 두리번거리며 헤매던 중 산낙지요리 전문점 ‘목포독천낙지’가 눈에 띄었다. 마침 찬바람 때문에 코끝이 맹맹하던 차라 뜨끈한 연포탕이 생각났다.
발길을 잡아 끈 것은 간판에 적혀 있는 ‘나는 뻘 속의 산삼이다’라는 문구다. ‘굴은 바다의 인삼’이라 하듯 해산물을 육지 농산물에 비교하는 표현이 이채롭고 눈에 쏙 들어온다. 그리고 상호 속에 있는 목포와 독천이란 지명의 부조화다. 독천은 전남 영암군 지명이기 때문이다.
1976년 1월 21일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영암군은 전통적으로 신안 도서 지역이나 무안지역에 비견될 만큼 낙지잡이가 활발했던 곳이었다. 영산강 하류와 해남군 화원반도에 접한 삼호·학산·미암면 등 3개 면에 분포한 넓은 갯벌에서 낙지가 많이 잡혔다. 영암군 삼호면 저두마을 어민들을 중심으로 낙지잡이가 이뤄졌다. 하루 어획량이 2~3만 마리에 달했다고 할 정도다.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는 오일장이 선 곳이다. 과거 문수포(汶水浦)를 통해 낙지 등 다양한 수산물이 유통되던 거점이었다. 싱싱한 갯벌 낙지가 유통되면서 독천에는 낙지요리 전문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해 일찍이 ‘낙지골목’이 조성됐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이 지역에 간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1981년 영산강 하굿둑, 1990년대 초 영암·금호방조제가 건설되면서 대규모 갯벌이 훼손됐다. 이로 인해 영암은 갯벌 낙지 산지 명성은 사라졌지만 인근에서 잡은 낙지 덕분에 낙지거리는 ‘독천낙지음식명소거리’란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도 ‘독천5일시장’(4·9일)을 따라 수십 개 낙지 전문점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는 소갈비와 낙지 궁합을 맞춘 갈낙탕 외에도 연포탕과 낙지호롱, 산낙지 탕탕이 등 다양한 낙지 요리를 선보인다.
목포시와 영암군 독천리의 만남이 부조화스럽지만 낙지에 대한 자부심이 읽힌 ‘목포독천낙지’. 문을 열고 들어서니 60대 친구들의 단체 손님과 2말3초로 보이는 앳된(?) 청년들이 시끌벅적했다. 이명숙 사장은 홀로 주방과 홀로 오가면 무리 없이 접객을 하고 있었다. ‘알바’가 필요하냐는 식객의 싱거운 농담을 옅은 미소로 가볍게 넘기고 주방으로 총총 사라졌다.
이내 주문했던 굴전을 먼저 내오고 잠시 후 갈낙탕을 들고 와 가스불에 올렸다. 그리고는 잠시 후 꿈틀거리는 산낙지 세 마리를 한 손에 움켜쥐고 와서는 막 끓기 시작한 탕 속으로 덤덤히 빠트리고는 또 총총 주방을 향했다. 일행은 “참 쿨 하시다”라고 입을 모았다.
3명이 갈낙탕 중자를 시켜 칼국수 사리 하나까지 넣으니 양이 넉넉했다. 맛은 상호에 ‘목포’가 들어갔을 때 내심 기대했다. 결론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손맛이 있는 곳이다. 반찬으로 나온 삶은 다시마는 향긋했고 파래초무침은 새콤했다. 김치는 내공이 한껏 느껴졌고 사과와 양배추를 섞어 만든 ‘사라다’ 또한 옛 추억을 소환하는 맛이다.
갈낙탕 낙지를 자르고 갈비의 살을 발라내고 있는데 주방에서 ‘쾅쾅쾅’ 뭔가 부닥치는 소리가 한참 이어졌다. 세탁기 탈수기가 고장 났나 싶었다. 나중에 보니 단체 손님들에게 낙지 탕탕이 서비스를 내주기 위해 산낙지를 잡느라 난 칼질 소리였다. 메뉴를 보니 산낙지갈낙탕, 산낙지연포탕, 산낙지해신탕, 산낙지찜 등 죄 싱싱한 산낙지로 요리한다. 영암지역의 산낙지 요리 대부분을 취급한다.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서 따끈하고 속 시원한 탕국물이 그리울 때 스며들기 좋은 식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