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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김제·부안 새만금팸투어와 식후경

채만식의 소설 '탁류'와 새롭게 만난 새만금

지난해 8월 우리나라에서 열린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는 새만금이란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렸지만 득 보다 실이 많았다. 컨트롤 타워의 엇박자가 빚은 국제적 망신이었다. 세계적 명소였던 새만금이 한순간에 오명의 땅이 됐다. 그런 새만금이 아픈 기억을 떨쳐내고 재도약을 위해 꿈틀거리고 있다.      


매해 펨투어를 하고 있는 새만금은 올해엔 전북특별자치도와 군산, 김제, 부안 등 주변 도시들이 의기투합해 다양한 주제의 팸투어를 진행중이다, 이를 통해 지역 문화관광자원을 널리 알리는 한편 새만금의 이미지를 예전보다 더 선명하고 확고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올 팸투어를 주관하는 로컬콘텐츠연구소 손안나 대표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군산, 김제, 부안 새만금 3개 지역의 관광자원을 찾아 홍보해 새만금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보다 많은 볼거리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이번 팸투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만남 새만금 5월 팸투어단이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 앞에서 단체사진을 남겼다.


◇새만금의 탄생=‘새만금’은 한반도 서남쪽 군산시, 부안군, 김제시를 중심으로 그 외곽의 고창과 정읍, 전주와 완주, 익산까지를 아우르는 권역이다. 꽤나 드넓은 지역을 포함하는 새만금이란 명칭은 1986경에 탄생했다. 이 일대는 만경강과 동진강 물줄기 옆 비옥한 평야가 만들어졌다.      


예로부터 김제평야와 만경평야를 합쳐 금만평야로 불러왔다. 이곳에 새로운 땅이 생긴다고 해서 금만을 만금으로 바꾸고 앞에 '새'자를 붙여 새만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새만금방조제가 생기면서 간척을 통한 새로운 땅 조성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새만금방조제는 1991년 11월 첫 삽을 떴다. 전북 부안군 대항리에서 군산시 비응도를 잇는 초대형 둑으로 길이가 33.9km에 이른다. 2010년 방문한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는 “중국에 만리장성이 있다면 한국에는 ‘바다의 만리장성'이 있다”며 경탄했다. 네덜란드의 쥬다치방조제(32.5km)보다 1.4km가 길어 세계기네스월드레코드에 세계 최장의 방조제로 등재됐다.       

새만금 유역의 옛 모습(조선 후기 대동여지도), 1987년 새만금 유역 항공사진, 2019년 새만금 유역 항공사진(사진 좌로부터)[사진=새만금청]

새만금방조제는 폭이 평균 290m(최대 535m)이고, 높이는 평균 36m(최대 54m)에 이르는 대형해상구조물이다. 대부분 물속에 잠겨있고 바깥에 드러나는 부분은 평균해수면 위로 11m 정도다. 총 공사기간 19년이 걸렸고 바다에 쏟아부은 토석량은 1억 2000만㎥로 경부고속도로(415km)를 13m 높이로 쌓을 수 있다.          


새만금 간척지는 4단계 계획에 따라 개발되고 있다. 지금은 2단계(2021~2030년)가 진행 중이다. 공기업 추가 참여를 통해 개발에 속도를 내고 민간투자 유치형 재생에너지 사업 등 새만금 내부개발을 본격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새로운 만남 새만금’ 팸투어=지난 7~8일 ‘새로운 만남 새만금’이란 테마로 1박 2일 팸투어를 다녀왔다. 군산을 통해 새만금방조제에 올라탔다. 며칠간 내린 비로 먼지가 씻긴 터라 대기 질이 좋았다. 방조제 중간 전망대에 잠시 내려 주변을 돌아봤다. 멀리 줄 서 있는 고군산군도가 또렷했고 남북도로까지 보였다. 조금 이동하면 신시광장에 있는 거대한 준공탑을 볼 수 있다.      

신시광장에 조성된 새만금방조제 준공탑과 신시배수갑문.

2010년 4월 새만금방조제 준공을 기념해 조성했다. 높이 33m의 거대한 탑은 방조제 길이 33.9km를 표현했다.  작품명은 '약속의 터전'이다. 이곳에서는 신시배수갑문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때마침 갑문을 열고 담수를 바다로 흘려보내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장관이었다.     


만경강 유역에서 유입되는 홍수량을 배제하기 위해 건설된 신시배수갑문은 문짝이 안쪽과 바깥쪽 각각 10개 설치돼 있다. 문짝 1개 규모는 가로 30m, 높이 15m, 무게는 480톤에 달한다. 배수갑문 옆에는 400톤 급 배가 왕래할 수 있는 어도겸용통선문도 설치돼 있다.      

하루 2회 갑문을 열어 답수를 바라로 배출하는 신시배수갑문.

하루 2회 갑문을 열고 닫는다. 오전 7시, 오후 7시에 갑문을 열고 오후 2시, 다음날 새벽 1시에 닫는 일정이다. 신시배수갑문은 담수를 방류하고 부안 쪽 가력배수갑문은 해수 유입용이다. 갑문을 열면 주변 3km까지 급류 영향을 받는다. 급물살에 어선이 휘말려 2007년 2명, 2014년 3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거품 띠를 품은 시커먼 담수가 옥색 바다로 흘러가는 모습은 가히 유쾌하지 않다. 담수 수질 개선은 새만금의 숙제다.       


◇간척박물관·홍보관·메타버스체험관=부안 쪽에 다다르자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이 가장 먼저 객을 맞는다. 지난해 8월 개관한 따끈따끈한 볼거리 관광자원이다. 거대한 외형은 국립박물관의 위용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상설전시장에는 국내외서 수집한 방대한 전시물품을 통해 인간과 간척을 역사를 면밀하게 보여준다. 아직 특별전시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첫 특별전시가 어떤 내용을 담을지 자못 궁금하다.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운영하는 새만금홍보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새만금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새만금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접할 수 있고 3층 카페에서는 새만금방조제 조망과 함께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개관 시간 내 낙조를 볼 수 있는 겨울철에 인기가 많을 듯싶다.       


새만금홍보관에서 바라본 간척박물관


원광대에서 위탁관리를 하고 있는 메타버스체험관은 메타버스기술관, 메타버스라이프관, 가상세계홀로 구성돼 있다. 메타버스라이프관에서는 자이로VR을 체험할 수 있다. 가상의 봅슬레이는 스릴 넘치는 360도 회전감과 VR을 통한 4D입체영상이 압권이다. 자이로VR이 뒤집어질 때면 체험객의 비명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퓨처 바이크 라이더를 타고 VR 레이싱까지 체험하면 등짝에 땀이 흥건하고 온몸이 뻐근해진다.      



메타버스체험관에서는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채만식의 ‘탁류’ 길 문학기행=새만금방조제를 가기 전날 임피와 군산에서 채만식의 장편 ‘탁류’에 나오는 흔적을 따라 문학기행을 했다. 군산은 구불길이란 도심여행길을 개발해 놨다. 이중 6-1길이 백릉 채만식의 탁류길이다.      

군산 구불긴 6-1 코스는 채만식의 탁류길이다.

총 거리 6km에 달하는 이 길은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배경지인 군산 원도심을 중심으로 일제강점 시대 남겨진 역사의 흔적을 경험하며 과거를 되돌아보는 길이다. 팸투어단은 이날 임피역에서부터 채만식을 처음 만나 하루 반나절을 동행했다. 2008년 5월부터 여객운송이 중단된 임피역(국가등록문화재 208호)은 역사와 부속 건물을 고쳐 철도관광지로 선보이고 있다. 이곳에는 코레일로부터 기증받은 열차 두량이 전시 중이다.  

    

1936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호남평야의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만든 임피역은 당시 군산선(대야∼임피∼개정∼군산항)의 중앙에 위치, 쌀 등 각종 화물을 일본으로 실어 내는 요지였다. 역 건물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돼 건축적, 철도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돼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이곳은 채만식의 소설 ‘논 이야기’ 등의 배경이 된다.      

구 임피역과 임피역사.

다음으로 찾은 곳은 채만식 생가터다. 군산시 임피면 사거리에는 생가 터 비석과 우물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채만식은 1902년 군산시 임피면 읍내리 동상 마을에서 6남매 중 5남으로 태어났다. 교원과 기자 생활을 하다가 1937년에 조선일보에 장편 소설 ‘탁류’를 연재했다. 그의 대표작 ‘탁류’는 일제 강점기의 군산 사회상과 우리 민족의 수난을 내용으로 한 소설이다.      


군산시 임피면 사거리에 있는 채만식 생가터에는 표석과 우물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복원 관리가 안 이뤄지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안타깝다.


생가 터는 보존 상태가 좋지 않다. 군산을 대표하는 소설가 채만식의 생가 터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볼품없다. 복원을 못 하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팸투어단이 찾은 이날은 비도 추적이고 해서 더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임피노성당과 임피향교를 거쳐 점심을 먹고 채만식문학관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채만식의 작품 활동과 그의 현실 인식, 작품 경향, 작품 속 언어 특징 등을 알 수 있다. 특히 그가 일제 강점 말기에 썼던 10편의 친일작품 목록을 만날 수 있다. 친일 행위는 마땅히 지탄받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생가 터 복원은 이와는 다른 문제라고 본다.     

임피노성당과 임피향교.


발걸음을 째보선창으로 돌렸다. 특이한 이름의 이 선창은 옛날 째보(언청이)라고 불리는 객주가 이곳 포구의 상권을 모두 장악한 데서 유래했다. 째보선창은 일제강점기 이전인 고려, 조선시대부터 군산 지역 주요 포구 중 하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동빈정일정목(東濱町一丁目)’과 ‘동빈정이정목(東濱町二丁目)’으로 나누어 불리던 곳이다. 1945년 이후에 금암동으로 통합됐다. 금암동은 마을 북쪽으로 금강 하구와 인접하고 동쪽으로는 경포천이 흘렀다. 일제강점기에는 군산역에서 군산내항으로 이어지는 군산선 철도의 일부 구간이 있던 곳이다. 지금도 선창 주변 곳곳에 철로가 남아 있다.       

째보선창은 동부어판장으로 불렸다.

군산시 원도심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포구와 상가들이 몰려 있었다. 째보선창 원 지명은 죽성포구였다. 조선시대 무렵 큰 대나무 밭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데서 유래했다. 일제강점기 째보선창 서쪽에 현대식 선착장이 건립되면서 마을 아낙들이 술과 떡을 파는 작은 장터가 형성됐다. 간척된 자리에는 동부어판장이 들어섰다.      


일제강점기 이후에 째보선창은 동부어판장으로 불렸다. 복개 공사로 인해 째보처럼 움푹 파인 선창을 볼 수 없다. 채만식의 탁류와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 등에서 옛 째보선창의 이미지를 희미하게 유추할 뿐이다. 지금은 도시재생 일환으로 동부어판장 건물을 되살려 수제맥주 공동양조장 ‘비어포트’를 조성했다. 비어포트를 끼고돌면 군산문화원에서 세운 채만식소설비가 있다.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현재는 군산근대건축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탁류길 따라 걷다 보니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을 만난다. 지금은 군산근대건축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에서 활동했던 대표적인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가 설계해 1922년에 신축한 은행건물로 채만식의 탁류에서 고태수가 다니던 은행으로 묘사된다. 당시 일본상인들에게 특혜를 제공하면서 군산과 강경의 상권을 장악하는데 초석을 쌓아 일제강점기 경제수탈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은행이었다.     


길을 건너 옛 미두장 터를 마주한다. 도로가 확장되면서 건물이 잘리고 사라졌지만 표시를 세워 흔적을 남겼다. 정식 명칭은 군산미곡취인소다. 설립 목적이 미곡 매매를 원하는 사람들을 연계해 미곡 유통을 원활하게 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실질적 운영은 일제가 공인한 도박적 측면이 강한 시설이었다. 한국인들은 집·논·밭 등을 매매한 돈을 군산미곡취인소에 투기해 날렸고 일제 식민지 당국과 자본가들은 그 돈을 착취해 가는 가혹한 수탈의 장이었다.      

미두장 옆 중국식당 빈해원을 거쳐 탁류의 정주사가 다녔던 길을 따라갔다. 빈해원을 시작으로 홍영고개 홍영장 등 중국집들이 즐비한 군산짬뽕골목이 나온다. 이 지역은 군산 장미동으로 개항 당시 군산항의 1차적 기능은 호남평야의 쌀을 모으고 그것을 다시 일본으로 빼가는 데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미소와 함께 창고가 필요했다. 장미동은 쌀을 오래도록 창고에 저장하는 곳이란 데서 유래한 것이다.    

  

아리랑고개 초입 한참봉쌀가게 자리에 소설비가 서 있다. 한참봉이 하숙집을 구하던 고태수에게 빈 방을 세준 곳이다. 고태수는 한참봉이 다른 여자와 놀아난 틈을 타 그의 부인 김 씨와 정을 통했다. 그러다 장형보의 밀고로 한참봉에게 발각돼 맞아 죽는다. 초봉과 결혼한 지 열흘만이다. 장형보는 초봉을 범하고 훗날 첩으로 들인다. 장형보는 결국 초봉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는 비극적 내용을 담고 있다.        


탁류길에서 가장 높은 아리랑고개 정주사집 터에 이르렀다. 초봉의 아버지 정주사가 살던 곳이다. 정주사는 미두장의 도박성이 강한 미두(선물거래 형태)에 빠져 가세가 기울자 초봉은 제중당에서 일을 했다. 제중당은 지금의 전북약국자리다. 초봉이는 주인 박제호의 첩이었기도 했다.


정주사 집터와 제중당약국터 표석


탁류는 모함과 사기, 살인 등 부조리로 얽힌 1930년대의 사회상을 관통하고 있다. 옛 군산역 앞에서 탁류문학기행을 마쳤다. 비는 여전히 추적였고 미두장을 정점으로 한 1930년대 군산의 부조리한 소설 이야기가 탁한 빗물이 되어 하수구로 빨려 들었다.     


◇3개 도시 주요 관광지=부안은 개암사, 내소사, 직소폭포, 격포해수욕장, 고사포해수욕장, 모항해수욕장, 변산해수욕장, 적벽강, 채석강, 신생에너지 테마파크, 줄포만갯벌생태공원, 청자박물관 등이 있다.      


김제는 금산사, 귀신사, 금산교회, 증산법종교본부, 동심원, 금평저수지, 천주교수류성당, 원평집강소, 모악랜드, 로컬랜드, 김제군 관아와 향교, 벽골제, 조정래 아리랑문학관, 아리랑문학마을, 하시모토 농장사무실, 학성강당, 만경능제, 미즈노씨 트리하우스, 망해사, 새만금방조제, 청운사(하소백련지) 등이 가볼 만하다.      


군산은 월명공원, 일제강점기 군산역사관, 경암동철길마을, 오성산, 대각산, 근대역사박물관, 금강하구둑, 채만식문학관 등이 주요 볼거리다.      


◇금강산도 식후경 팸투어 먹거리=군산의 옹고집쌈밥은 시골 폐교를 식당으로 꾸몄다. 널찍한 식사공간에 옛 추억을 소환하는 분위기가 식욕을 한껏 돋운다. 외부는 익스테리어로 학교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지만 내부는 여전히 옛 교실, 복도가 그대로다. 칠판에 낙서가 고스란히 남았고 식공간은 1학년, 2학년, 3학년 등으로 교실을 구분해 놨다.       


옹고집쌈밥


기본적인 상차림 외에 샐러드 바에서 추가 메뉴를 원하는 만큼 갖다 먹을 수 있다. 무한 공급되는 신선한 쌈 채소가 인상적이었고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누룽지 입가심이 좋았다. 각종 간장, 고추장 등 식품과 먹을거리를 파는 매장과 카페까지 두는 등 공간을 잘 활용하고 있다. 음식맛도 전반적으로 준수하다. 시내서 떨어져 있는데도 식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변산은 백합, 대합 등 패각류를 이용한 향토음식이 발달한 곳이다. 서해의 넓은 뻘이 주는 천혜의 식재료다. 백합칼국수와 바지락죽이 대표적인 메뉴다. 저마다 원조를 자랑하지만 원조가 가장 맛있게 잘한다는 등식은 성립이 어렵다. 입맛도 제각각이고 손맛도 다 다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원조 바지락 죽을 표방하는 ‘변산온천산장’에서 바지락죽에 바지락회무침, 바지락야채전을 곁들인 식사를 했다. 새만금간척박물관 뒤편에 위치해 있다. 바지락죽을 처음 개발해 특허까지 낸 곳이다. 전라북도 바지락죽 향토음식 지정업소다.      




바지락죽은 부안 연안에서 채취한 바지락을 깨끗이 씻어 바지락과 인삼, 녹두, 당근, 파, 마늘 등 다양한 채소와 양념을 넣고 끓인 죽이다. 숙취해소, 간에 좋으며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보양식으로 좋다고 홍보하고 있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변산반도에서 나는 참바지락을 사용한다.      


바지락죽을 미리 많이 끓여 놓았다가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주문을 받고 끓여 낸다고 한다. 싱싱한 바지락을 살짝 데쳐 신선한 채소와 함께 새콤하게 무친 바지락회무침도 별미다. 이곳은 원래  온천장 여관이었다가 주인이 손님들에게 끓여 주던 바지락죽 맛이 소문나면서 1993년에 숙박업에서 식당업으로 업종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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