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동보식당ㆍ미가옥, 익산 분도식당
전주천년한지관 구내식당 같은 ‘동보식당’
정겨운 분위기 콩나물국밥전문점 ‘미가옥’
익산 원광대 캠퍼스투어 식후경 ‘분도식당’
해마다 이맘때면 전북 지역 방문이 잦다. 전주국제영화제와 지역축제 때문인데, 올핸 축제 대신 팸투어를 다녀왔다. 팸투어 이야기는 다음으로 넘기고 이번엔 전주, 익산 이야기를 해본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올해로 25회째를 맞았다. 지난 1일부터 전주시 일대 5개 극장 22개관에서 43개국 232편의 영화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10일 폐막했다.
국내 102편(장편 52편, 단편 50편), 해외 130편(장편 110편, 단편 20편)이 출품된 가운데 국제경쟁부문에서는 ‘메이저 톤으로, 한국경쟁부문에서는 ’힘을 낼 시간‘이 대상을 수상하는 등 16개 부문 수상자가 가려졌다.
매해 전주국제영화제 전야에는 영화제 성공을 기원하면서 분위기를 달구는 큰 음악회가 열린다. 음악회는 전주시민과 영화인들에게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올해는 나래코리아와 전북벤처기업협회가 주관해 열었다. 지난달 30일 전주덕진예술회관서 열린 음악회에는 테너 류정필, 소프라노 송난영 등 성악가와 가야금연주자 황정의, 소리꾼 서정금, 앙상블소리로 등이 출연했다.
류정필과 송난영은 피아니스트 김지연과 함께 영화음악을 주제로 솔로와 듀엣으로 꾸몄고 한국 가곡, 가야금 연주 등으로 무대를 풍성하게 채웠다.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설수진 씨가 사회를 맡았다. 지난해 진행을 맡은 예원예대 융합조형디자인전공 송미령 교수와 대조적이었다는 반응이었다.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인 김생기 나래코리아 대표는 “매해 음악인들과 함께 전주시민과 영화관계자들에게 멋진 음악공연을 보여드릴 수 있어 기쁘다”며 “어려운 기업환경 속에서도 음악회를 위해 힘을 보태주신 전북벤처기업인 여러분과 이인호 회장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지난해와 같이 음악회 뒤풀이는 경기전막걸리에서 했다. 늦은 시간까지 130여 명이 모여 음악회 여흥을 즐겼다. 전주경기전 바로 옆에 있어 상호도 경기전막걸리다. 경기전은 왕조의 발상지라 여기는 전주에 세운 전각(사적)으로 국보인 태조 이성계 어진이 봉안된 곳이다. 뒤풀이 2차는 전주 가맥 성지 전일갑오에서 마지막 손님이 됐다. 경기전막걸리와 전일갑오는 영화제 전야 음악회를 마치면 들르는 참새 방앗간 같은 곳이다.
전주 흑석골에는 전주천년한지관이 있다. 전주천년한지관은 전통한지 계승과 보전, 문화 확산을 위한 거점공간이다. 한지 제조시설을 보유한 한지복합문화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에 한지관이 있는 이유는 물이 좋아 한국전쟁 후 한지공장이 집단으로 들어섰던 곳이기 때문이다. 한지 생산이 늘면서 흑석골을 한때는 한지골로 불렀을 정도다. 한지는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됐다.
호황을 누리던 한지는 1970년대 들어 비닐과 유지에 밀려 쇠락했다. 1980년대 이후 대기업의 제지산업 진출, 환경오염 문제로 전통한지산업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러나 이러한 여건 속에서도 한지의 맥을 이으려는 한지장 4인의 노력으로 전주한지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지관 바로 앞에는 한지관 직원들의 구내식당 같은 동보식당(간판은 돔보식당)이 있다.
빌라 차고 안쪽 깊숙한 곳에 박혀 있어서 초행자들은 지나치기 일쑤다. 현지인들은 알려지면 복잡해질까 싶어 전전긍긍하는 집이다. 그래도 장사가 지금보다 더 잘되면 좋겠다는 마음은 당연하다. 그래서 현지인들이 더욱 열심히 팔아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이 식당의 대표메뉴는 가성비 좋은 동태탕과 옛맛을 고스란히 간직한 청국장이다. 딸려 나오는 밑반찬 모두 최상급 맛이다. 나물무침, 멸치볶음, 도토리묵, 버섯볶음, 계란말이 등 반찬의 영양과 맛 균형이 매우 좋다. 밑반찬은 계절 따라 조금씩 변한다. 찬모가 내공이 깊은 요리연구가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지난해에도 이 식당에서 한지관을 둘러보고 식사를 했다. 동태 대가리가 어른 주먹만 한 대물을 쓰고 민물 새우를 듬뿍 넣어 국물이 끈적하지만 시원하다. 청양고추 하나 짓이겨 넣으면 더없이 좋을 맛이다. 지난해에는 전주교대 박병춘 총장의 호의로 거한 아침상을 받았고 올해는 전주매일신문 박영근 전무가 객지서 온 손님을 맞았다. 이번엔 동태탕에 청국장을 곁들였다.
지난해보다 육수가 더욱 걸쭉하고 검붉어진 동태탕은 보는 이의 시각을 압도한다. 부글부글 끓이자 검은색이 점차 벌겋게 변하더니 큼지막하게 썰어 넣은 두부가 보이면서 제 색을 찾았다. 잠시 후 어디선가 익숙한 장향이 조금씩 느껴지더니 고릿한 향을 잔뜩 품은 청국장이 한 냄비 등장한다.
냄새와 맛 모두 그리웠던 옛날 청국장이다.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으니 아련한 옛날 외할머니 집 큼큼한 부엌 냄새가 떠오른다. 치명적인 맛의 청국장에 여러 명의 입에서 탄성이 터진다. 식당 밖으로 눈을 돌리니 한지관 사이로 흐르는 전주천의 지류 남고천과 노거수 팽나무, 천년 명맥을 잇는 닥나무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전주 10미(味) 식재료는 민물게, 황포묵, 모래무지, 무, 미나리, 담배, 애호박, 열무, 콩나물, 감이다. 그래서 이를 이용한 특색 있는 음식이 발달했다. 오모가리탕은 모래무지를 이용한 민물고기 매운탕이지만 지금은 쏘가리, 빠가사리, 메기, 피라미, 새우 등으로 뚝배기를 채운다. 한옥마을 끄트머리에 해발 전부터 영업한 화순집을 비롯해 한백집, 남양집 등 셋집이 쪼르륵 붙어서 손님을 맞고 있다.
역시 전주 하면 비빔밥과 콩나물국밥과 대표 음식이다. 비빔밥에는 전주 10미 중 콩나물, 황포묵, 애호박 등 세 가지가 포함된다. 전주비빔밥은 밥을 지을 때 밥물에 사골 국물을 섞고 콩나물국을 곁들이는 것이 특징이다.
콩나물국밥은 왱이집, 현대옥 등이 유명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접한 서곡지구 미가옥을 최고 순위로 올린다. 그간 별 감동을 느끼지 못했던 전주 콩나물국밥의 기억을 삭제시킨 곳이다. 맛도 맛이지만 다찌집 같은 분위기의 오픈 주방이 주는 안정감과 포근함이 집밥을 연상시킨다. 잘게 썬 대파와 넉넉한 콩나물이 압도적 비주얼을 연출한다.
또 코앞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건네주는 친절한 미소의 사장 자매와의 스몰토크가 맛을 꽉 채워준다. 대파, 마늘, 청양고추를 추가하면 즉석에서 칼질해 제공한다. 신선도가 도망갈 틈이 없다. 오징어를 추가하면 한 마리 또는 반마리를 시원스레 썰어 내온다. 술은 팔지 않는다. 대신 인근 편의점에서 사다 마시는 것은 허용된다.
전날 이슥토록 함께 한 원광보건대 복지교육학부 김석준 교수가 이 식당을 오래전부터 추천했다. 인근에 살기 때문에 맛을 잘 알기 때문이다. 김 교수와 함께 시원하게 콩나물국밥으로 속을 풀고 익산 원광대로 향했다.
익산 황등면 분도식당 한우육회비빔밥.
원광대는 원불교 5대 성지 중 한 곳인 익산성지와 마주 보고 있다. 원광보건대와 함께 조경이 아름다운 캠퍼스를 공유하고 있다. 캠퍼스 관리에 공을 많이 들인 학교다. 김 교수 안내로 교정을 둘러봤다. 결론은 원광대 교정과 익산성지는 필수 관광코스다. 꼭 가보시길 권한다.
캠퍼스를 둘러보고 익산 황등의 분도식당에서 육회비빔밥을 접했다. 황등에는 한일식당, 진미식당, 시장비빔밥 등 쟁쟁한 비빔밥 식당이 많다. 분도식당은 분도정육점을 함께 운영해서 왠지 구미가 당겼다. 분도식당 한우육회비빔밥 특징은 이미 비벼진 밥에 고명으로 양념한 육회를 얹어 나오는 것이다. 뜨끈한 소고기뭇국과 김치, 깍두기 등 전주비빔밥보다 초라하지만 누추하지 않다.
여담이지만 분도식당은 구글 검색에서 ‘폐업’이라고 정보가 제공되는 것을 필자가 수정 신고를 해서 ‘영업중’으로 돌려놨다. 외국관광객들은 구글 검색을 통해 관광지나 식당을 많이 찾는다.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곳의 외식업 종사자들은 이 점을 참고하면 좋겠다.
#동보식당 #돔보식당 #미가옥 #분도식당 #전주한옥마을 #경기전막걸리 #전일갑오 #화순집 #한백집 #남영집 #원광대 #원광보건대 #전주천년한지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