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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볼 때리면 생각나는 식당…어떤 메뉴일까?

방어맛집 ‘바다회사랑’ㆍ뜨끈한 닭곰탕 ‘황평집닭곰탕’

방어 제철 시즌 마중물 제주 ‘최남단방어축제’

지옥의 대기 후 맛보는 방어맛집 ‘바다회사랑’

꽁꽁 언 마음 녹이는 한 그릇 ‘황평집닭곰탕’


낙엽과 함께 기온도 뚝뚝 떨어지는 요즘이다. 높은 일교차로 추위와 더위, 긴팔과 반팔 공존하는 때다. 기후변화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단풍도 예전 같이 ‘쨍’하게 예쁘지 않다. 입맛도 냉면, 온면 중 딱히 당기는 맛이 없는 어중간한 간절기다. 그래도 계절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겨울로 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찬바람을 앞세운 겨울이 오면 누구에게나 떠오르는 식당의 메뉴가 있다. 필자는 방어회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은 이 무렵 방어 먹으러 다닌 기록을 소환한다. 방어 제철은 11월부터 시작해 이듬해 2월까지다. 매년 방어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마치 회귀성 어류처럼 횟집을 찾았지 싶다.


이달 말 서는 제주 모슬포 방어 큰 장

25회째 맞는 제주 모슬포 ‘최남단방어축제’ 한 장면. [제공=비짓제주]

제주에서는 방어 제철을 알리는 큰 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이달 20일부터 4일간 대정읍 하모리에서 ’청정 바다의 흥과 멋과 맛의 향연‘을 슬로건으로 최남단방어축제를 연다. 2001년에 시작한 축제는 현재까지 매년 진행 중이며 15~20만 명이 방문하는 제주도 대표적 해양 문화축제다. 올해는 필자도 축제평가를 위해 한번 다녀 올 예정이다.


방어가 가장 맛있을 때는 12월 중순부터 1월 말까지지만 모슬포에서 11월에 일찌감치 축제를 시작하는 이유는 아마도 방어 시즌을 알리는 마중물이 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모슬포는 제주에서 방어잡이로 이름난 곳이다. 방어는 쿠로시오 해류를 따라 회유한다.


여름, 가을에 남해와 동해에서도 잡히지만 유독 모슬포의 겨울 방어를 높이 치는 이유가 있다. 바람이 모질고 물살이 센 겨울 바다를 헤엄치느라 몸집이 커지고 살이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이 무렵은 자리나 전갱이 같은 먹이 또한 풍부해 11월부터 2월까지 살이 통통하게 오른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부터 2월은 산란을 위해 몸에 영양을 축적하면서 기름져 간다. 그 중에서 눈이 올 때인 12월 중순부터가 가장 기름이 많고 가장 맛있는 시기가 된다. 일반적으로 바다 생선은 육류나 민물고기에 비해 맛이 풍부하다. 이유는 바닷물과 염도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감칠맛 나는 아미노산을 축적하기 때문이다. 이는 생선뿐만 아니라 바다생물 모두가 그렇다.


방어하면 쌍둥이처럼 따라오는 어종이 부시리다. 둘의 구분이 어려운데 입꼬리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방어는 입꼬리가 직각 모양, 부시리는 둥글게 발달했다. 물 좋은 방어는 몸 빛깔이 등은 어두운 청색, 배 쪽은 은백색이며 몸 중앙부에는 희미한 황색 세로띠가 있다.


문지미식포럼서 대방어 해체 예정


올해는 방어 한 마리를 통째로 사서 해체해볼 심산이다. 노량진수산시장 방어회 맛집 부안수산의 한 접시.

대방어는 일반적으로 9kg 이상 되는 대물을 말한다. 5kg까지를 소방어, 5~8kg 정도를 중방어로 분류한다. 노량진수산시장 같은 곳에서 대방어를 고르는 팁은 몸매가 날렵한 것보다 배가 불룩한 것이 좋다. 그만큼 뱃살에 기름이 차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필자가 가끔 지인들을 모아서 제철 음식을 탐하는 ‘문지미식포럼’에서 노량진수산시장 대방어를 한 마리 구입해 해체할 예정이다.


방어에는 비타민D가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이는 한국인에게 부족한 영양소 중 하나다. 식약처 조사 결과 우리나라 남성 86%, 여성 93%가 비타민D 결핍이다. 비타민D는 면역력 증가와 우울증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한 필수 영양소다. 해가 짧은 겨울철에 특히 더 부족해지기 때문에 겨울 방어는 꼭 필요한 영양소를 채우는 귀한 제철 식재료다.


겨울 대방어회 하면 손꼽히는 집이 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과 연남동에 있는 전통의 방어 강자 ‘바다회사랑’이다. 한겨울 찬바람 속 ‘웨이팅 지옥’을 맛보고 싶다면 피크타임 때 ‘바다회사랑’을 가란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는 곳이다. 둥그런 큰 접시에 대방어를 부위별로 먹음직스럽게 탑처럼 쌓아주는 것이 이 식당의 시그니처다.


반세기를 끓인 농후한 닭곰탕 맛

황평집닭곰탕의 닭곰탕.

찬바람이 볼을 스치면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럴 때면 빠짐없이 생각나는 곳이 서울 중구 인현동 2가에 있는 ‘황평집닭곰탕’이다. 점심시간 올로 황평집을 가면 합석을 각오해야 한다. 혼밥족에게 합석은 대기보다 좋은 과분한 온정이다. 안내받은 합석 자리를 보니 일흔쯤 돼 보이는 어르신이 먼저 자리해 있었다. 합석 양해를 구하니 흔쾌히 반기신다.


닭곰탕 보통을 시키니 깍두기와 마늘종 무침, 후추와 깨를 섞은 소금, 공깃밥을 내온다. 테이블 위에는 생마늘 간 것과 다진 양념, 굵은소금이 비치돼 있다. 그 사이 어르신 닭곰탕이 먼저 나왔다. 안 보는 척하면서 식사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어르신은 먼저 갈아 놓은 생마늘을 찻숟갈로 한 스푼 탕에다 푼다. 그리고는 젓가락을 들고 탕 속에 들어 있는 닭고기를 하나씩 건져 소금을 찍어 드신다.

반찬으로 나온 마늘종이나 깍두기는 손대지 않는다. 다진 양념도 넣지 않았다. 서둘지 않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오로지 젓가락으로만 고기를 다 건져 드시고서야 숟가락을 들어 밥을 만다. 그리고는 국물을 그대로 남긴 채 밥알만 건져 드시고는 일어나 계산하고 유유히 사라지신다. 굉장히 담백한 식습관을 가진 어르신이다.


필자는 먼저 아무것도 넣지 않은 채 닭곰탕 한 숟갈을 떠먹었다. 마치 네 번 정도 고아 낸 사골 국물 같이 옅은 기름기를 느꼈다. 이 맛이 담백이라면 담백이다. 대파를 숭숭 썰어 넣어 단맛이 은은하게 배어났다. 다음엔 마늘을 한 숟갈 넣고 맛을 봤다. 좀 전에 있던 담백한 맛이 완전히 사라지고 조금 무거워진 맛이다. 마늘이 주는 향과 시원함이 옅은 기름 맛마저 잡아 버렸다.


여기에 다진 양념 한 숟갈을 더했다. 이른바 점증식법(漸增食法)이다. 고춧가루가 주는 향긋함이 더해지면서 닭곰탕은 더 이상 가볍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거워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설명이 쉽지 않은 맛의 오묘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식사시간이었다. 혼밥족이 아쉬운 것은 메뉴를 여러 가지 맛보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집은 점심시간인 2시까지는 닭곰탕 밖에 팔지 않는다.

황평집닭곰탕의 찜닭.

그래서 나중에 지인과 함께 가서 닭찜을 맛봤다. 닭곰탕의 육수를 빼기 위해 통째로 삶은 닭인데 표현은 찜이다. 닭찜은 약수동 처갓집 백숙과 결이 다르다. 다리 날개 몸통 목 껍데기 등으로 먹기 좋게 해체해서 제공된다. 식힌 다음 나와서 쫄깃은 하지만 뜨끈하고 보드라운 처가집 백숙이 더 낫다. 다만 닭곰탕 육수를 무한으로 보급 받을 수 있어 밥 말아먹기 딱 좋다. 결국 닭을 육수에 담가서 먹게 되는데 차라리 뜨끈한 닭곰탕이 좋을 듯하다. 닭은 제법 실하다. 딱 한번 경험할 맛이다. 그러나 닭곰탕은 얼어붙은 도시여행자의 몸은 물론 마음까지 녹여주는 원초적 치킨스톡이다.


이 집의 역사가 재미나다. 원 주인이 30여 년 정도 하던 것을 현 주인이 20여 년 전에 인수해 대를 잇고 있다고 한다. 옛 스티커명함을 보면 ‘30년 전통의 맛’, 식당 유리창에는 ‘40년 원조집’, 명함에는 ‘50년 전통 닭곰탕 전문점’이 적혀 있다. 개업한 지 55년쯤 되는 노포다. 닭 요리 한 가지로 반세기를 버텼다. 경외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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