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호의 미식포럼] 日 히가시규슈 ‘동범로드’ 답사

by 유성호의 미식포럼

오이타·유후인·벳푸 등 3박4일 같은 여정

여행의 우연성이 선사한 훌륭한 미각 경험

미술관 안팎의 맛집은 답사 성공여부 좌우


지난 3월16일부터 18일까지 2박3일 여정으로 ‘믿고 가는 동범로드’(이하 동범로드) 일본 규슈섬 동쪽 지역을 여행했다. 규슈(九州)는 혼슈, 시코쿠, 홋카이도와 함께 일본열도를 구성하는 섬이다. 일본 전체로 보면 남서부에 위치한다. 도쿄, 오사카 등이 있는 혼슈, 최북단 홋카이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섬이다. 면적은 약 22만 8,000㎢로 약 22만㎢인 한반도보다 조금 더 넓다. 남한만 따지면 두 배가 넘는다.


이번 여행의 입출국 공항은 후쿠오카로 정했다. 오이타로 가려고 했으나 비행기 시간과 2박3일 여정이 맞지 않았다. 짧은 여행이라 가급적 일찍 입국해서 늦게 출국하는 항공편을 정해야 했다. 또한 마지막 여정은 잠시나마 쇼핑을 해야 했기에 정한 일정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대성공이다.


조동범 작가의 로컬답사 프로그램

문화지평 히가시규슈 ‘동범로드’ 시작점인 오이타현립미술관 앞 기념사진.

동범로드는 시인이자 인문학자인 조동범 작가가 기획한 로컬답사여행 브랜드다. 인문·예술·문화·미식이 융합된 짜임새 있는 여정이다. 경비를 ‘쥐어짜서’ 최소화하는 것도 동범로드의 미덕이다. 지난해는 북규슈 소도시, 오사카·교토를 다녀왔고 올해는 이번 동규슈 여정을 시작으로 5월 북규슈 2차, 7월 홋카이도, 9월 도쿄 등을 계획하고 있다.


여행 첫날 오전 6시30분 비행기로 후쿠오카에 8시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9시 반 경 슈퍼논스톱 고속버스를 타고 오이타에 도착했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오이타현립미술관(OPAM)으로 동범로드의 서막을 올렸다.


프리츠커 상을 받은 건축가 반 시게루가 설계한 오이타현립미술관 야경.[사진=오이타현립미술관]


2015년 개관한 오이타현립미술관은 세계적 건축가 반 시게루가 ‘만남과 오감의 뮤지엄’ 콘셉트로 설계한 현대적 미술관이다. 유리와 격자무늬 목재를 사용한 세련된 외관이 특징이다. 1층 아트리움은 내외부가 연결된 듯한 개방감이 좋다. 직선과 나선형 계단이 교차하는 외부 다리에서 바라보는 도시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다. 단절되지 않고 도시와 함께 호흡하는 유기적 건축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2014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반 시게루는 목재나 종이 소재를 이용해 독특한 구조의 건축물을 만드는 건축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재활용 가능한 종이 카드보드지 관(튜브)을 이용해 재해 난민들을 위한 건축물을 만들어 유명해지기도 했다.


미술관 2층에는 이탈리안 음식을 기반한 ‘카페 샤리테’가 있다. 예약 없이 12명이 들이닥쳤는데 다행히 자리가 금세 났다. 물론 12명 테이블이 아니라 흩어져 앉아야 했다. 굳이 12명이 함께 뭉쳐서 식사할 일은 없기에 늘 현장 상황에 따르기로 했다. 이런 작은 우연성이 뜻밖의 큰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잘 모르던 일행과 식탁 스몰토크를 통해 더 친밀해지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일본은 미술관 내 레스토랑이 상당히 보편화 돼 있다. 우리나라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라운지디’, 서울관의 한식당 ‘두레’ 등 미술관 관람 후 식사를 즐기기 좋은 곳들이 있다. 미술관 내 식당은 식사를 하면서 관람 후 여운을 나누는 소중한 공간이다. 국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특색 있는 식당이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 시게루 작품에 들어 선 ‘샤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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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샤리테의 압도적 구주고원 샐러드와 대표메뉴인 치킨남반(사진 위) 그리고 각종 메뉴들.

‘카페 샤리테’는 반 시게루의 종이관(紙管) 공간에 꾸며져 있다. 의자며 테이블, 벽면이 온통 종이관들로 채워져 있다.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크고 작은 둥글한 종이관이 넘쳐났고 공간은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이 식당은 법인 농장에서 재배한 신선하고 안전한 채소를 중심으로 요리한 구주고원(久住高原) 샐러드가 유명하다. 모든 세트메뉴에 포함되고 단품으로도 판매하는 이 샐러드는 압도적 양과 신선함으로 식객들 모두를 놀라게 했다. 샤리테는 법인이 운영하는 정육점에서 엄선한 소고기 스테이크를 주력으로 홍보하고 있다. 오이타는 닭튀김 요리인 토리텐이 향토요리로 유명한 곳이다. 샤리테는 오이타현에 농산물 중에서 엄선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BISTRO OITA’ 인증 점포다.


KakaoTalk_20260325_184334673_20.jpg 샤리테는 오이타현에 농산물 중에서 엄선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BISTRO OITA’ 인증 점포다.

여럿이 함께 앉으면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이날도 네 명이 네 가지 메뉴를 주문했다. 뷔페처럼 조금씩 맛보며 미식을 즐기면 여행이 더욱 풍성해진다. 반 시게루의 종이관 의자는 편했다. 먼저 구주고원 샐러드가 제공된다. 여성들에게는 단품 하나로 배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샐러드를 한참 먹고 있자니 주문한 메뉴가 속속 도착한다. 닭요리가 주를 이뤘고 숙성회덮밥이 인상적이다.


미술관에서는 메인 기획전시로 ‘금요일 로드쇼와 지브리전’이 이달 말까지 열리고 있다. 예약제인 지브리전은 전시를 본 사람만 굿즈숍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동선을 짰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이 또한 브랜드를 견고하게 하는 전략이란 생각이다. 아무튼 사고 싶은 굿즈가 있었지만 강제로(?) 돈을 아꼈다. 다른 전시실에서는 ‘봉쥬르! 프랑스 회화와 함께’, ‘더 알고 싶다! 온타’ 등 수준 높은 회화와 도자기전이 열렸다. 모두 이달 말까지니 오이타를 간다면 꼭 들러보길 권한다.


니시오이타 고지대서 만난 일본의 친절

4.jpg 컵드립 커피를 잔뜩 건네주러 나온 시에로 카페의 친절한 여주인.


식사 후 오이타역에서 JR닛포본선열차를 타고 니시오이타로 향했다. 니시오이타역은 오랜 역사 건축물이 레트로 감성을 자극했다. 칸탄해변공원 주변에는 다채로운 카페가 즐비했고 일행 일부는 카페 ‘민트’에서 ‘바다멍’을 하면서 커피를 즐겼고 일부는 보다 높은 곳에서 바다를 조망하기 위해 골목을 걸어 고지대로 올라가는 여정을 택했다.


이 결정은 여행의 우연성을 또 한 번 경험하게 했다.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선 정상에는 씨에로(CIERO)란 카페가 있었다. 몹시 힘들게 올라왔기에 차라도 한잔 하면서 바다를 볼까했는데 아뿔싸 주방이 마감했단다. 오후 5시에 문을 닫기에 4시 반이면 주방에 불을 끈다. 대신 소프트아이스크림은 테이크아웃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일행은 갈증을 풀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발길을 돌렸다. 이때 인상 좋은 여사장이 쫓아 나와 미안하다며 컵드립 커피를 잔뜩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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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jpg 텐카이온천 휴게실에서 바라본 칸탄 바다뷰.

그리고는 카페 바로 옆 텐카이(天海)온천을 가보라고 알려준다. 목욕을 안 해도 바다를 볼 수 있는 자리를 내줬다. 일본인의 친절을 느끼면서 온천에서 바다뷰를 만끽했다. 시원한 무알콜 맥주와 사이다로 갈증을 풀면서 일행은 씨에로 카페 주인의 친절함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뒤져보니 카페란 명칭이 무색하게 요리가 다양하고 맛있어 보인다. 일행들은 다음번에 꼭 다시 들르겠단 마음을 먹고 해변가에 머물던 일행과 만나 오이타로 돌아왔다. 저녁식사는 오이타 중앙토오리시장의 이자카야 두 곳에서 주안상으로 밥과 술을 겸했다.


이튿날 답사단은 JR규다이선 열차를 타고 유후인으로 향했다. 두량짜리 빨간색 디젤기차 차창으로는 늦겨울과 초봄 경치가 그림처럼 지나갔다. 유후인은 유명 관광지답게 인파로 가득했다. 유후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거대한 유후다케(유후산)은 쌍봉낙타 같이 두 개의 봉우리를 가졌다. 유후다케 품 안에 놓인 산 아래 마을 유후인은 골목마다 인파로 북적였고 활기찼다.


유후다케가 품은 예술 ‘코미코아트뮤지엄’

불태운 삼나무 외벽과 건물 구석구석에 배치된 물과 창에 비치는 풍경이 도드라지는 코미코아트뮤지엄.

답사팀은 한적한 골목으로 접어들어 코미코아트뮤지엄을 찾았다. 유후다케 능선이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코미코는 건축가 쿠마 켄고의 작품이다. 몇 개의 작은 지붕을 늘어놓아 배치해 작은 집들이 늘어선 유후인 마을 풍경에 녹아들도록 하는 등 마을공동체의 개념을 넣어 설계했다.


또 나무와 흙, 화지(和紙), 물 등의 소재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오랜 세월 동안 건물과 자연의 공존을 도모했다. 벽재로 미술관을 외벽을 이루는 소재는 야키스기(구운 삼나무)다. 푸른 유후다케 풍경에 검은색의 소재가 스며들면서 건축물은 선명하고 도드라진다. 야키스기는 멀리서 보면 검은정색 단일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목재의 질감이나 온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재의 질감이 깊이를 더해가는 게 특징이다.


2022년에 증축된 전시 구역은 유후인의 다면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야키스기의 검은 외벽을 크게 역경사로 했다. 하늘로 뻗어나가는 처마는 건축물의 매스감을 더했다. 건물 구석구석에 배치된 빛과 물, 그리고 바람을 받아들이는 대숲 등이 시선을 붙잡는다. 3층 카페 전면 통유리로 고스란히 들어오는 유후다케는 창밖에서도 반사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리플렉션’ 이미지는 마치 미셸 푸코의 개념 헤테로토피아를 떠올린다.


현재 전시 중인 쿠사마 야요이 작품.[사진=코마코아트뮤지엄]

실내 갤러리에는 세계적 아티스트인 쿠사마 야요이(草間 彌生)의 작품과 미야지마 타츠오(宮島 達男)의 디지털 카운터 설치 미술, 스기모토 히로시(杉本 博司)의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다. 외부에도 나라 요시토모(奈良 美智), 나와 코헤이(名和 晃平) 등의 조각 작품 등이 설치돼 있는 등 쟁쟁한 일본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미술관은 NHN 재팬의 최초의 오프라인 시설물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과 높은 수준의 문화예술을 공유할 수 있는 문화의 장을 목표로 개관했다. 쿠마 켄코와 네이버는 2013년 춘천에 있는 ‘데이터센터 각’으로 인연을 맺었다. 2028년 완공 예정인 부산롯데타워도 그의 작품이다.


옛 방식 고소한 수타 메밀소바 ‘이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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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방식 수타 소바 ‘이즈미’의 야마캬케 소바.

유후인 답사를 마치고 일행은 긴린코(金鱗湖) 호수가 바라보이는 소바집 ‘이즈미(泉)’에서 맛있는 정통 일본 소바를 만끽했다. 이곳 역시 원래 가고자 했던 식당이 대기가 많아 차선으로 정했는데 이 역시 뜻하지 않은 맛의 우연성을 경험한 곳이다. 옛 방식을 뜻하는 고식(古式) 수타 소바를 지향하는 곳이다. 이번에도 같은 테이블 사람들과 의기투합해 다양한 소바를 주문해 맛봤다.


가장 기본인 세이로소바, 오로시소바, 야마카케소바는 각각 특색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식당 측에서는 소바에 쯔유를 뿌리기 전에 반드시 면을 잘근잘근 오래 씹어 보라고 권한다. 오래 씹을수록 메밀면의 단맛이 슬며시 올라온다. 개인적으로 참마 간 것과 함께 섞어 먹는 야마카케가 색다르고 식감이 좋았다. 참마의 끈적임과 메밀의 고소함이 뒤섞이면서 건강한 맛이 재탄생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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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벳푸로 넘어가 친절한 한인식당 ‘우사기또토라’ 본점에서 모둠 고기구이(야키니쿠 우사기세트)와 전, 찌개 등으로 마지막 밤을 풍성하게 채웠다. 한인 사장과 한인 유학생 아르바이트생의 ‘케미’가 좋은 곳으로 사장은 여러 곳의 식당 사업을 한다고 했다. 벳푸에 가면 다시 한번 들릴만한 곳이다.


후쿠오카, 오이타, 니시오이타, 유후인, 벳푸 등 여러 도시를 빡빡하게 여행하다 보니 2박3일이 마치 3박4일처럼 느껴졌다. 피곤하지만 느낌이 좋았던 하가시규슈(東九州) 문화지평 인문미식답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