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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는 맛이 일품인 가을전어‧오징어회 맛은?

산문집 '콤플렉스 사용설명서' 펴낸  정영희 작가 단골 ‘오징어바다’

신간 산문집 ‘콤플렉스 사용설명서’(도서출판 북인)를 펴낸 정영희 작가. 그를 만난 지 15년 동안 그의 오피스텔이 있는 가락시장역 인근 먹자골목에서 주로 찾은 식당은 3곳 정도다. 자연산 회 전문점인 ‘오징어바다’와 민물 장어구이 전문점인 ‘풍천장어’, 참치회 전문점 ‘본참치’.      


초기에는 송파성원상떼빌 지하에 있던 ‘본참치’를 열심히 다녔지만 문을 닫으면서 요즘은 오징어바다와 풍천장어를 주로 간다. 얼마 전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가 책 수다를 떨었다. ‘오징어바다’에서 술시보다 이른 시간에 소맥 한잔을 앞에 두고 말이다. 먼저 책 소개를 한다.              


자신 안의 문장 재발견한 두 번째 산문집

정영희 작가의 첫 번째 산문집 ‘석복수행 중입니다’와 두 번째 ‘콤플렉스 사용설명서’. 두 번째 산문집 책 표지는 화가 장명규의 작품 ‘청춘가’(2017)의 일부다. 

 

‘콤플렉스 사용설명서’? 책 제목이 어색해 입에서 몇 번 굴려봤다. 그래도 혀끝에 착 달라붙지 않아서 저자를 만나야겠단 생각에 달려간 것이다. 정 작가와 서 너 시간 책 수다를 떨다 보니 책 제목을 정한 이유가 이해됐다. 그래선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펼쳐 든 산문집이 참 잘 읽힌다.           


우리 삶에서 누구나, 언제든지 맞닥뜨리는 시간의 미분(微分)을 그는 용케도 잘 걸러내 글로 녹인다. 세월이 지날수록 촘촘해지는 생각의 그물과 세월에 의해 숙성된 확대경 같은 시각이 그의 손끝에서 따뜻하게 ‘콤플렉스 사용설명서’란 활자로 부활했다.        

   

대부분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 반갑고, 모든 게 ‘시간이 약’이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 위로가 되기도 한다. 순간, 그의 문장이 변했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노련한 필력으로 명망 있던 소설가가 언제부턴지 산문집을 통해 독자와 교감하는 그 자체가 큰 변화다.        


조선시대 문체반정이 문학의 퇴보를 가져왔다면 정 작가의 문체 변화는 작가 자신의 문학세계에 새로운 발전 동력이다. 소설의 얼개를 구성하기 위해 심하게 쥐어짰던 생각의 그물이 평온 한 산문 속에 놓이게 되자 시나브로 숨어 있던 문장이 마구 걸려들었고 뭍으로 쏟아져 나왔다.  


‘내 말의 무기는 문장이며 내 말의 방패 또한 문장이다. 이쪽과 저쪽을 강요하는 삶과의 투쟁으로 상처투성이인 내 영혼을 지켜주는 창과 방패, 내 속의 문장에게 무릎 꿇어 인사한다, 고맙다고. 오래 걸어온 나는 아직도, 이렇게, 문장으로 내 운명과 조금씩 화해하며 살아내고 있다.’          


작가의 말을 통한 그의 아름다운 고백이다. ‘내 속의 문장에게 무릎 꿇어 인사한다’는 표현은 자신에 대한 진정한 고마움의 발로인 동시에 콤플렉스와의 작별 인사다. 2018년 연초에 펴낸 첫 산문집 ‘석복수행 중입니다’에서는 ‘비로소, 내 운명에게 어설픈 악수를 건넨다.’고 썼다. 그때의 어설픈 악수가 3년이 지난 지금은 조금의 화해가 됐다고 하니, 다음 산문집에서는 과연 어떨까. 세 번째 산문집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소설집 ‘낮술’ 서평으로 만난 15년 인연지기      


필자는 영광스럽게도 그의 첫 산문집 표4(책의 뒤표지)에 글을 남길 수 있었다. ‘역시 정영희  류의 글쓰기다. 그녀의 산문집은 무심히 스치는 일상을 불러 세워 기억과 추억을 소환해 현재를 비춰보고, 미래로의 길을 모색케 하는 유쾌한 반성문이다. 작가가 자신의 상처와 민낯을 보여주었을 때, 독자는 감동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철저히 고독하다. 그녀 또한 그러하다.’           


그는 여전히 ‘유쾌한 반성문’을 쓰고 있지만 더 이상은 고독해 보이지 않았다. 콤플렉스를 털어내는 방법을 터득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설픈 악수’가 그것을 함의한다. 그는 작가이자 역학자로 활동하면서 타인의 콤플렉스를 완충하고 보충하는 일에 익숙하고 능란하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자기 치유의 길이 열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산문은 내가 나와 교감하는 말이다. 외로움이란 교감할 사람의 부재에서 온다’는 작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내 안에 숨어 있는 나, 수많은 문장을 만났기 때문이다. 금맥을 발견한 금광업자도 이 보단 환희하지 못할 듯하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란 셀프 디스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코미디언 고 이주일 씨, 속 시원하게 얼굴 성형 커밍아웃으로 ‘성형 미투’를 격발 했던 방송인 현영 등은 이미 콤플렉스의 사용방법을 알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과 달리 내 것이 아닌 주변의 온갖 껍데기로 자신을 위장하고 치장하는 콤플렉스 덩어리들이 있다. 작가는 이들 ‘영원히 불행한 이류’들에 대해 ‘스스로 디스하며 웃어넘기는’ 내공과 지혜를 키우라고 조언하고 있다.     

              

정 작가와는 2006년 단편집 ‘낮술’의 서평으로 맺은 15년 인연지기다. 작가에겐 송구한 말이지만 소설보다 산문이 훨씬 감성을 풍성하게 자극한다. ‘낮술’, ‘아키코‘ 등 그간의 소설이 집착과 연민의 뫼비우스 띠 같았다면 지금의 산문은 세상을 향한 외침 같은 해방감이 느껴진다. 책 표지의 그림(장명규 작, 청춘가, 2017)이 그래서 참 잘 어울린다.           


고소한 가을전어와 향긋한 산 오징어 회


가락동 ‘오징어바다’의 가을 전어와 오징어 회.

책 수다를 잔뜩 풀어놨던 오징어바다. 줄여서 ‘오바다’라고 부른다. 가을바람과 볕이 좋았던 10월초 가을전어가 생각났기에 오바다로 향했다.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인근에 둔 곳이라 해산물이 싱싱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오후 5시 채 안된 시간 이미 손님이 들기 시작했고 6시경에는 만석이 됐다.            


때가 때인지라 전어와 함께 이 집의 시그니처인 산 오징어 회를 주문했다. 멀리서 한수채 대표가 눈인사를 건넨다. 손님들이 들이 닥치면서 회를 뜨느라 눈 코 뜰 새가 없어 간단한 인사로 눈도장을 대신한 것이다.  따뜻하고 슴슴한 미역국이 먼저 제공되고 전어가 해체된 채 ‘전사’한 채 장렬한 모습으로 접시에 실려 나왔다. 뼈와 내장, 머리와 꼬리가 완전히 제거된 채 일용할 양식이 됐다. 붉은 빛이 도는 속살이 식욕을 한껏 자극했다.      

 

청어과 물고기인 전어는 우리나라 바다 전역(특히 남해)에 분포한다. 산란기인 5월부터 7월까지 연안으로 떼를 지어 몰려와 산란을 한다. 그래서 강원도와 경북을 제외하고 5월부터 7월 15일까지가 전어 금어기다. 성숙한 암컷은 약 28만 개의 알을 낳는다. 성숙한 전어 크기는 전장 18cm에서 크게는 30cm까지 자라며 최대 수명은 7년이다.      


전어는 추석 전후해서 가장 많이 잡힌다. 전어가 가을에 맛있는 이유는 지방 함량이 다른 때보다 많기 때문이다. 생선이 가장 맛 없을 때가 산란기 전이다. 영양분이 알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전어는 5~7월 산란을 마치고 먹이 활동이 왕성해지면서 8월부터 살이 차올라 이맘때 쯤 기름진 맛이 절정이다. ‘가을 전어 대가리는 깨가 서말이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속담이 이를 대변한다.        


개인적 입맛으론 가을전어는 기름지기 때문에 초장보다는 된장과 잘 어울린다. 전어 두세 점을 쌈에 올리고 된장과 청양고추와 마늘 한 조각씩 얹은 후 한 쌈 싸서 꼬불친다. 다른 한손으론 소맥 잔을 들어 목젖 뒤로 들이 붓고는 한 쌈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 단맛, 고소한 맛, 매운 맛, 알싸한 맛이 어우러지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기쁨을 만끽하고 있던 차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수족관 안에서 로켓처럼 유영하던 오징어가 전어와 마찬가지로 접시에 실려 나왔다. 이번엔 촘촘하게 채로 썰어져 나왔다. 오징어 회를 채 치는 이유는 생선회와는 달리 질기기 때문이다.         


오징어는 1년 살이다. 산란 후 사망한다. 산란된 개체는 6개월까지는 매달 3~4cm씩 자라고 이후는 2cm 씩 자라 24~27cm까지 성숙한다. 연체동물로 우리가 주로 접하는 것은 빨강오징어과 살오징어다. 오징어 회 전문점답게 씨알에 제법 굵직해서 씹는 맛이 좋다. 특히 ‘오드득’하고 씹히는 오징어 다리는 쌈을 싸기보다 그냥 먹는 게 좋다. 전어와 달리 초장과 잘 어울리며 산낙지처럼 기름장을 찍어 먹기도 한다. 정 작가는 기름장을 선호했다.      


조금 있으려니 흔히 멍게라고 부르는 우렁쉥이 한 접시가 나왔다. 일명 서비스라는 것이다. 이는 단골손님을 알아보는 식당 주인의 마음이고 이를 받아 든 손님에겐 다음에 또 오겠다는 무언의 약속이다. 그것을 한 글자로 줄여 ‘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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