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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향의 도시 봄내(春川) 인심 좋은 맛집

춘천의 보물 같은 식당 요선시장 푸근한 손맛 ‘평창이모집’

수도권 7080 세대에 있어서 춘천은 청춘의 아련한 추억의 도시다. 느릿한 경춘선 열차에 한껏 들뜬 마음을 태워 청평, 가평, 강촌을 지나 종착역인 춘천에 다다랐던 추억 한 자락씩은 있지 싶다. 열차 안에서 담배도 피웠고 통기타를 두드리며 고래고래 노래했던 ‘라떼는 말이야’ 시절 말이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춘천이 고대국가의 도읍이었고 조선말 고종의 이궁이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이는 춘천이 그만큼 오랜 역사를 가졌을 뿐 아니라 살기 좋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했단 반증이다.     


춘천은 지리적으로 금강산에서 시작해 강원도 북쪽 지방을 서남쪽으로 가로지르는 북한강과 설악산 북쪽 기슭과 오대산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인제에서 합류해 양구 남단을 굽이돌면서 흐르는 소양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춘천 중도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온통 산으로 둘러 싸여있는 분지 지형이다.        


고대국가 맥국의 존재가 기록으로 남아       


우리 고대사에는 고구려·백제·신라와 같이 고대국가로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성읍국가나 연맹왕국 단계의 많은 정치세력들이 있었다. 이들 세력 중에는 삼국사기 등 사서에 국명과 위치가 기록되어 있는 것도 있지만 춘천 지역에 있었던 맥국(貊國)처럼 기록에만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그간 춘천을 비롯한 북한강 상류 지역에서는 청동기, 초기 철기시대 유적들이 발굴‧연구되면서 당시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들이 축적됐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맥국의 존재를 명확히 특정할 수 있는 명문이나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그간의 고고학적 성과와 각종 국내외 문헌 기록을 통해 춘천 지역은 이미 청동기 시대 성읍국가 단계의 통치 체제가 있었고 초기 철기시대인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기원전 1세기경까지 맥국의 존재를 추정할 따름이다.      


차제에 맥국 옛터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신북읍 일대와 우두산을 중심으로 한 우두동 일대에 대한 보다 폭넓은 발굴조사가 실시된다면 춘천 맥국의 실체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사료된다.      


고종 황제 때 지은 춘천 이궁 일제 때 훼철

춘천이궁의 문루인 조양루 모습. 뒤쪽으로 강원도청이 위치해 있고 그 자리는 고종에 명의 의해 만들어진 춘천이궁이 있었으나 일제에 의해 훼철되고 일부는 소실됐다.[사진출처=공공누리]

흔히들 강원도 하면 강릉과 원주란 주요 도시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은 터라 강원도청도 이들 도시 중에 있으려니 여기지만 의외로 춘천에 있다. 현 도청 부지는 원래 고종의 명으로 1890년 지어졌던 춘천이궁이 있던 자리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도청을 춘천에 있게 한 강력한 배경이다.      


일제 강점기 이 자리에 신사(神社)가 세워졌고 임금의 침전으로 만들어진 문소각 등은 불타 없어졌다. 지난 2013년 춘천이궁 복원사업을 시작해 내삼문과 위봉문, 조양루를 113년 만에 제 위치로 이건 했다.       


언덕배기에 있는 강원도청 아래로 춘천의 구도심이다. 도청 우측 아래 위치한 요선동은 과거 요선당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요선당은 조선 선조6년(1573년) 춘천 도호부사 성의국이 세운 정자다.      


60년대 가장 ‘핫’했던 요선시장 새거리 

  

1950년대 말 또는 60년대 초 요선시장 새거리의 활기찬 모습.[사진제공=박민일]

행정동으로는 소양동에 속하는 이 지역에는 요선시장이란 오랜 전통을 가진 시장이 있다. 한국전쟁 때 완전 폐허가 됐던 요선시장을 재건할 때 시장 건물을 지었다. 그동안은 좌판 형태의 5일장이었던 것이 상설시장으로 변모한 것이다.      


춘천에는 캠프페이지라는 미군 부대가 있다. 춘천의 시장에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상품들을 파는 상가가 자연스레 조성됐다. 규모가 컸던 죽림동의 중앙시장, 요선시장 등에 소위 ‘양키시장’이 생겨났다. 물론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요선시장 일대는 강원도청을 비롯해 시외버스터미널, 주요 공공기관, 금융기관 등이 밀집해 있으면서 70, 8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다. 지금은 구도심의 명맥을 이어나가고는 있지만 요선시장 같은 곳은 시설 노후화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점포별로 임대업자가 제 각각인 탓에 의견을 모으기 어려운 상황이라 점차 슬럼화 되고 있는 실정이다.     


요선시장 이곳저곳서 벌어진 의미 있는 공연  

춘천이 낳은 세계적인 마임이스트 유진규 씨는 지난 9월 21부터 24일까지 요선시장에서 ‘코로나땡 동그랑땡’이란 공연을 벌였다.

이런 가운데 마임이스트 유진규 씨는 지난 9월 21부터 24일까지 요선시장에서 ‘코로나땡 동그랑땡’이란 공연을 벌였다. 입장부터 3분 단위로 방역관리소에 들러 체온과 방문자 정보를 기록으로 남기는 등 철저한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치른 이색적인 공연이다.      


공연에는 여러 마임이스트, 댄서, 음악가를 비롯해 춘천 미술계 중진인 임근우 교수(강원대 미대)가 함께했다. 요선시장 전체를 무대 삼아 각 공간에 적절한 설치 미술을 통해 과거 시장의 추억을 되돌아보게 했고 현 코로나19 시대의 공포와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표현했다.     


공연의 피날레는 3층 주상복합 지역에서 달빛을 등지고 맹렬하게 호흡을 맞췄던 마임과 회화의 콜라보. 코로나19가 ‘땡’하고 종식되길 기원하는 몸짓은 처절했고 아름다웠다. 동그랑땡은 시장 내에서 막걸리와 함께 안주거리로 내놓은 것인데, 다가오는 한가위의 풍성함을 담았다. 유진규 씨는 “이번 공연은 코로나 이슈 등 여러 함의가 있지만 한 축에는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전성기 때 요선시장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기원의 의미도 담았다”고 말했다. 요선시장이 예술인들과 결합해 ‘요술시장’으로 변화될지 자못 기대되는 부분이다.         


춘천 문화예술인의 영원한 이모집서 뒤풀이

평창이모집의 주력 메뉴인 들기름 두부부침과 비빔국수.

모든 행사의 묘미는 뒤풀이에 있다. 요선시장에는 내년이면 30년이 되는 허름한 식당 하나가 춘천 문화예술인의 가벼운 주머니와 허기를 달래준다. 강원도 평창서 출향해 춘천에 자리를 잡은 유영희 씨는 옥호에 고향 지명을 붙여 ‘평창이모집’이라 지었다.      


과거엔 2층 다락방도 사용했지만 오르내리기가 어려워 지금은 세평이 채 안 되는 1층에 테이블 두 개만 놓고 영업 중이다. 좁아 보이지만 올망졸망 끼어 앉으면 열세네 명도 가능하다. 두툼한 번철에 들기름을 듬뿍 붓고 자글자글 구워내는 초당두부가 냄새며 맛이 일품이다.      


노릇하게 구운 두부에 볶은 김치나 무생채를 곁들이고 막걸리 한잔 목으로 넘기면 하루의 고단한 일상이 목구멍 속으로 함께 사라진다. 지역 문인들이 써 놓은 평창이모를 향한 헌시가 이 집을 향한 예술인들의 사랑을 대변한다면 밥 먹고 왔으니 안주는 많이 시키지 말라는 소린 이 집 사장님의 인심을 대변한다.      


그래도 섭섭해서 입가심으로 비빔국수를 만들어달랬더니 2인분만 한다면서 열 사람이 먹고 남길 만큼 손 크게 썩썩 비벼 내왔다. 새콤하게 잘 익은 물김치 두 국자를 넣고 매콤하고 달근하게 비벼낸 손맛이 참 좋다. 국수면은 바로 옆집 ‘요선제면’ 제품이다. 무려 70년의 전통을 가진 요선제면은 태양광과 자연풍 등 재래 방식으로 건조한 면으로 면발이 쫄깃한 게 식감이 매끄럽다.        


서울서 itx청춘열차를 타면 딱 한 시간이면 도착하는 춘천. 서울 시내를 다니는 것보다 적게 걸리는 시간이다. 주말에 옛 추억을 생각하면서 경춘선에 몸을 한번 실어보는 것은 어떨까. 참! 봄내는 춘천의 순 우리말 이름이다. 물론 현대에 들어 사용한 한자 뜻풀이에 불과하지만 참 예쁜 이름이다. 봄내는 춘천시가 발행하는 시 소식지 제호로 쓰고 있다.  

지난 9월26일 열린 중도 선사유적을 보존하기 위한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제23차 중도 걷기대회 후 평창이모집 뒤풀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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