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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ㆍ고기 넘쳐나는 마포는 예부터 주지육림

삼해주 본고장에 넘쳐 나는 고기집‧설렁탕집

토정비결로 유명한 토정 이지함이 서울 마포에 오래 살았다는 이야기를 최근에야 접했다. 마포구에서 동상도 세우고 영모비도 만들어 그리 알렸건만 필자는 솔직히 알지 못했다. 서울을 제법 돌아다니고 알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새로운 사실 앞에 부끄러운 고개를 꺾는다. 그만큼 서울이 품은 역사가 깊고 아득하단 의미로 필자의 무지를 슬쩍 문지른다.      


한 달 전, 정확히는 시월 하고도 스무 나흗날 마포 일대를 걸었다. 지하철 2호선과 5호선이 만나는 애오개역에서부터 마포대로를 따라 우리 근현대 역사를 따라 ‘동네 산책’을 했다. 신비롭고 낯선 동방정교의 성니콜라스대성당과 경성감옥 터에 들어선 서울남부지법, 연와서 터에 지어진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 삼성마포아파트, SK허브빌딩이 들어선 신민당사 터 등을 둘러보고 마포음식문화거리로 들어섰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는 ‘독립운동유적지’ 표지석이 있는데 이곳은 독립투사들이 옥고를 치른 경성형무소가 있던 자리다. 서대문형무소가 원래는 경성감옥이란 이름이었으나 수용 공간이 부족해지자 서대문감옥으로 바꾸고 마포구 공덕동에 새 감옥이 만들어 경성감옥이라고 불렀다.      


1946년 경성감옥은 다시 마포형무소로, 1961년에는 마포교도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1963년 경기도 안양시에 안양교도소로 지어 이전하면서 이곳 수형시설은 사라지고 경서중학교가 들어섰다가 지금은 서부지법이 자리를 잡았다. 인근 삼성마포아파트 자리는 경성감옥에 수감 중이던 죄수들을 데려다 노역을 시킨 연와공장이 있던 터다.      


공덕 옹막은 천 개의 술독이 있는 주지(酒池)

동국세시기에서는 ‘공덕 옹막 천 백독의 술이 가장 이름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관련사진제공=밝은세상영농조합법인]


이곳은 많은 양의 삼해주가 빚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삼해주는 정월 첫 해일에 밑술을 만들고 12일이나 매월 초 돌아오는 해일에 덧술을 3번 담가 삼해주라 했다. 원래는 궁에서 행사나 의식 때 사용한 것을 사대부 집안 가양주로 전파됐다.      


다른 곡주에 비해 변하지 않아 조선시대에는 일반 서민들도 널리 빚어 마셨다고 한다. 3차 덧술을 하기에 워낙 쌀이 많이 들어가 지방보다 재력이 있는 양반들이 많은 서울에서 활성화돼서 결국 서울 술로 자리 잡았다. 삼해주는 정월에 빚어야 하는 시간제한 때문에 수요를 따라잡기 힘들었다.      


그래서 대량 생산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곳이 바로 마포 공덕 연와공장 터 옹막이다. 운송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무거운 옹기들은 주로 수로를 통했다. 그래서 나루터 가까이 옹기공장이 지어졌는데 공덕 옹막 역시 같은 이유다.      


옹막은 마포나루를 통해 들어온 젓갈류와 소금 보관용으로도 만들어졌다. 겨울에는 옹기를 굽지 않아 가마터가 한산했기 때문에 이때를 이용해 술을 만드는데 옹기를 이용했다. 술을 저장하는 옹기를 외부에서 따로 구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성도 한몫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소주는 공덕 옹막에서 삼해주를 빚어내는 술독에서 빚어진 천 백독의 술이 가장 이름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공덕은 마포구 공덕동으로 과거 옹기를 굽던 가마터였다. 가마를 사용하지 않는 겨울에는 ‘천 백독’이라고 묘사할 만큼의 많은 양의 삼해주를 빚어 약주와 소주로 만들었다. 1000개가 넘는 술독이야말로 ‘주지’(酒池)가 아니겠는가. 


마포음식문화거리는 지하철5호선 마포역 1번 출구를 나와 신한디엠빌딩을 끼고 우측으로 신석초등학교 앞 사거리까지 정확히 760m에 달하는 먹자거리다. 행정안전부의 야시장 및 골목경제 공모사업을 통해 ‘맛깨비길’이란 브랜드까지 얻은 이 거리는 갈비골목이란 별칭이 있을 정도로 고깃집이 즐비하다. 낮이고 밤이고 이 거리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고기 굽는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고 수많은 고깃집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맛깨비길의 도로명은 토정로다. 토정로는 ‘토정비결’로 잘 알려진 토정 이지함을 기린 도로명이다. 그가 살았던 토정지(土亭地)는 한강변 마포나루 인근이다. 맛깨비길 끝에는 토정의 동상이 서 있다. 근처에는 토정이 빈민들에게 구휼하는 동상도 있다. 가까운 곳에 토정이 살았던 집터였다는 것을 암시하는 동상들이다.  동상이 서있는 사거리에서 한강 방면으로 끝까지 걸으면 한강삼성아파트가 나온다. 토정이 살았던 집터로 특정되는 곳이다. 아파트 내부에는 ‘토정 이지함 선생 집터’라는 표지석과 함께 영모비 등이 있다.      


토정은 일찍이 용산 마포 강변에 흙을 쌓아 언덕을 만든 다음 아래는 굴을 파고 위로는 정사를 짓고 살았다. 그리고는 스스로의 호를 ‘토정(土亭)’이라고 했다. 토정 집터와 한강변이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다. 한강변에는 옛 삼개나루가 있던 터를 나타내는 표지석이 박혀있다. 삼개나루는 마포나루의 옛 이름이다. 마포나루는 쌀과 소금 등 조선 팔도 물산이 수로를 통해 유통되는 장소였다. 이는 그가 일찍부터 상업과 무역에 관심을 갖게 한 계기가 됐다. 


토정은 당시 한강변 유민들을 모아 장사를 시작했다. 마포나루길의 상인들은 토정의 지원 덕분에 경강상인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부를 축적하고 영향력을 키웠다. 경강상인들 중에서도 크게 성공한 상인들을 일컬어 강상대고라고 불렀다. 마포나루길 강상대고들이 성장했던 배경으로는 마포나루를 통해 한양으로 온갖 물자들이 유통되면서 얻은 이윤 때문이었다.      


특히 마포염이라 불린 소금이 유명했는데, 마포에서는 소금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크게 성장했고 젓갈이 유명했다. 지금도 마포나루새우젓축제를 해마다 열리고 있고 소금길이란 골목길 명소도 있었다.(아파트 개발로 일부 구간 사라짐). 마포구는 마포의 고깃집이 많은 이유를 특별한 양념이 없던 시절 소금과 새우젓으로 간을 한 주물럭과 갈비 등이 발달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소금과 젓갈은 설렁탕의 발달을 가져왔다. 


불에 구운 고깃집 모인 토정로는 육림(肉林)      


마포의 소고기가 문헌에 기록된 것은 1696년(숙종12년) 마포에 현방(다림방, 지금의 정육점)이 설치돼 한성에 총 21개 현방 체제가 됐다는 일성록 기사다. 마포는 전국에서 올라온 온갖 물산의 유통지인 터라 유동인구가 많았고 활발한 경제활동으로 소비성향이 높은 요즘 말로 역세권이었다.      


현방에서 매일 한 마리씩 도축되는 소는 인근 상점으로 팔려나갔고 마포염과 새우젓을 활용한 설렁탕집과 고기구이집이 번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것이 근처에 현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1950년 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고깃집 타운이 현실화된다.      


배가 들락거리던 마포나루에는 목재소와 철강소 많았다. 뱃사람, 철강소, 목재소 등 고된 노동에 지친 인부들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고기를 많이 찾았다. 한국전쟁 직후 드럼통을 이용해 연탄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는 집이 늘어났다. 고깃집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마포갈비와 마포주물럭의 탄생이다.      


당시만 해도 버렸던 갈매기살도 마포에서 개발한 부위다. 돼지 배와 가슴 사이의 가로막 부위인데 ‘가로막이살’을 편하게 부르다가 ‘갈매기살’로 변한 것이다. 지금도 마포삼성아파트 앞에는 많은 갈매기살 전문점이 늘어서 육림(肉林)을 이루고 있다. ‘장수갈매기’, ‘부산갈매기’, ‘마포부자갈매길’ 등이 있다.      


청춘구락부모연과 원조 마포갈비 등 신구 강자 즐비

‘한우가 맛있게 구워지는 연기’란 의미를 가진 ‘모연’의 한우와 육회, 상차림.[사진=모연제공]

토정로 맛깨비길은 고깃집이 부지기수다. ‘원조마포갈비’, ‘대감집’, ‘원조조박집’, ‘모연’, ‘목우촌한우명가’, ‘청춘구락부’, ‘육시리’, ‘성우서서갈비’, ‘슈퍼삼겹살’, ‘마포원조주물럭’, ‘맹씨네 숯불갈비’ 등 신구 강자들이 거대한 고깃집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모연’은 마포 8경 중 하나인 ‘농암모연(농바위 부근의 많은 인가에서 저녁 짓는 연기 오르는 경관)’에서 ‘한우가 맛있게 구워지는 연기’를 차용한 한우다이닝이다. 28개월 미만 거세우만 골라 500시간 숙성시킨 원육을 내놓는다.      


‘육시리’는 ‘밥 맛나는 고기집’을 모토로 테이블에서 밥을 지어먹는 콘셉트를 도입한 돼지고기 전문점이다. ‘육시리’는 ‘여섯 가지 돼지고기와 고향을 닮은 음식이 있는 곳’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청춘구락부’는 양, 대창구이 전문점이지만 소고기와 돼지고기도 취급한다. 육시리와 청춘구락부는 연예인과 운동선수 등이 많이 찾고 있으며 스타마케팅으로 꽤 이름이 알려져 있다.        


물에 빠진 소 마포옥양지설렁탕합정옥


마포옥과 양지설렁탕의 설렁탕, 합정옥 곰탕(좌상단에서 시계방향으로)

미쉐린가이드는 마포옥에 대해 ‘1949년에 개업한 마포옥은 양지와 차돌박이, 사골로 곤 진한 국물에 두툼하게 썬 양지머리를 푸짐하게 올려 제공한다. 국물에 밥을 토렴해 내는 것도 이 집의 특징인데, 무엇보다 소고기 국물의 고소한 감칠맛과 달달한 밥의 조화가 일품이다. 여기에 배추 겉절이, 파김치, 깍두기 등 다양한 김치를 제공한다. 이 외에도 차돌 수육을 넉넉하게 얹어주는 차돌탕도 추천한다.’고 2021 미쉐린 빕구르망(합리적 가격에 훌륭한 음식) 선정 이유를 밝혔다.     


또 양지설렁탕에 대해서는 ‘1974년에 문을 연 마포구의 터줏대감 ‘마포 양지 설렁탕’이 더 쾌적하고 넓은 2층 공간으로 새 단장을 마쳤다. 내부는 바뀌었지만 이곳 특유의 맑고 깔끔한 설렁탕 맛은 한결같다. 잡내 없이 맑은 국물에 푹 끓인 사골의 고소함, 그리고 양지머리의 달달함이 잘 어우러진다. 뜨끈한 국물에 밥 한 공기를 말아 달큼한 파김치를 얹어 먹으면 든든한 한 끼가 완성된다.‘고 미쉐린 플레이트(좋은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선정 이유를 달았다.      


곰탕이 주력인 합정옥은 ‘진한 국물과 은은한 육 향, 토렴해 내오는 달달한 밥과 야들야들한 소고기, 그리고 내포까지, 이곳 음식은 푸짐함을 미덕으로 삼고 있다. 또한 구수한 된장국에 달큰한 배추속대를 넣어 끓인 속댓국의 시원한 맛도 일품’이란 이유로 빕그루망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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