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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화산 같은 열정과 부부 의리가 만든 30년 우동 맛집

목동 양천구청 옆 넙적우동 유명한 ‘히노야마’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자 설국이었다. 밤의 바닥이 하얘졌다.’


일본에 첫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国)의 첫 문장이다. 이 서문을 접할 때면 늘 겹치는 문장이 있다.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다. 절제된 문장 속에 불과 몇 개의 단어가 단박에 독자를 몰입으로 이끈다는 점이 두 문장의 공통된 속성이다. 아주 단단하게 뿌리내려 자리를 잡고 있는 단어는 대체 불가다. 새하얀 설국과 밤의 바닥, 버려진 것과 꽃은 더 이상 간극을 벌릴 수 없는 극명한 대비다.      


설국을 언급한 이유는 겨울이 주는 이미지 때문이다. 숨 쉴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하얀 입김과 서서히 온 천하를 단색으로 만들어 버리는 새하얀 눈. 겨울은 그렇게 무채색으로 우리의 어깨를 한껏 움츠러들게 한다. 그럴 때면 따끈한 국물 음식을 찾는 것이 인간 속성이다. 이때 탐미(耽美)주의의 정수인 ‘설국’은 또 다른 탐미(耽味)를 유발하는 기제가 된다.      


‘설국’의 배경은 일본 북부 홋카이도가 아닌 니가타 현이다. 니가타가 ‘설국’의 배경이 된 이유는 최대 적설량 때문이다. 시베리아 기단의 찬 공기가 동해의 수분을 품고 에치고 산맥을 타고 오르면서 뿌리는 눈의 양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 강원도 산악지대 눈을 쏟아내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일본, 겨울, 눈, 백색 하면 ‘설국’과 함께 떠오르는 것이 또 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 백색 면발의 우동이다.        


우동이란 음식을 한 줄로 표현하면 ‘밀가루에 식염수를 붓고 반죽한 것을 가늘게 뽑아 삶은 국수’다. 우동은 일본에서 한자로 ‘饂飩’이라 쓰고 ‘うどん’으로 읽는다. 우동 어원은 아오키 마사루가 쓴 ‘饂飩の歴史’(온돈의 역사)에 따르면 헤이안 시대(794~1185)에 중국에서 전해진 곤돈(混飩)이란 음식에서 유래됐다. 곤돈은 얇은 밀가루 피에 고기소를 넣어 찌거나 끓인 음식이다. 돈(飩)자가 쪄서 만든 찐만두나 빵을 의미한다. 곤돈이 따뜻한 음식을 뜻하는 온돈(温飩)으로 불리다가 우동으로 정착됐다는 설이다.      


우리나라 칼국수가 우동 기원설 나와 화제

      

일본을 대표하는 사누키 우동. 사진은 카가와 현 중심부에 있는 다카마쓰 시의 가마아게식 사누키 우동이다.

우동 실물 기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우세하다. 최근에는 일본 내에서 조선의 칼국수로부터 유래한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단 설이 제기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일본우동학회에 따르면 우동을 일본에 처음 소개한 사람은 1200년 전 승려 쿠카이(구카이(空海·774년 ~ 835년)로 전해진다. 쿠가이는 당나라 유학을 갔다가 수도 장안 청룡사란 절의 승려에게 배워 왔다는 설이다. 그는 고향 사누키 현으로 돌아와 연못 치수공사를 담당하면서 인부들에게 국수를 삶아 먹이면서 널리 퍼졌다고 한다.     


이에 반해 조선으로부터 전해졌다는 설은 제면기를 만드는 사누키면기의 오카하라 유지 회장이 처음 제기했다. 유지 회장은 올 1월 출간한 ‘불역유행 : 소금의 역사로부터 사누끼 우동의 기원을 찾다’란 책에서 무로마치 시대(1336~1573년) 이후 한반도에서 전해진 면 요리가 우동의 원형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유지 회장의 견해는 무로마치 시대부터 에도시대에 걸쳐 일본에 정기적으로 들어온 외교 사절단이 그들의 가정 요리인 칼국수를 일본에 전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국수 발상지가 중국이란 데는 이견이 없지만 맷돌과 밀가루가 한국에서 전해진 것으로 보면 칼국수가 우동의 원형이 아닐까란 추측이 적당하단 견해다.      


그 이유에 대해서 유지 회장은 헤이안 시대 초기에는 우동을 만드는 데 필요한 소금과 밀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들었다. 소금은 반죽에도 들어가지만 당시에는 수제비 같은 면을 삶아 소금에 찍어 먹었기 때문에 꼭 필요했다. 유지 회장은 책에 ‘한국의 칼국수를 처음 먹었을 때 사누키 우동을 빼다 박았다’고 썼다. 책에는 또 ‘한국의 수제비도 일본 면요리에 영향을’이란 꼭지를 넣을 정도로 우리나라와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그래도 여전히 일본 내에서는 승려 쿠가이가 고향 사누키로 들여온 전래에 무게를 둔다. 사누키 우동의 자존심과 관련된 문제기 때문이다. 사누키는 일본 우동의 대명사 중 하나인 ‘사누키우동’의 본고장이다. 사누키는 지명이 바뀌어 현재는 카가와로 불리고 있다.      


카가와 현의 사누키우동을 비롯해 아키타 현 이나니와 우동, 군마 현 미즈사와 우동을 대체로 일본 3대 우동으로 손꼽지만 공인된 것은 아니다. 여기에 나가사키 현 고토 우동, 도야마 현  히미 우동, 아이치현 키시멘 등이 어깨를 견주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우동 전래지인 카가와 현 지역에는 편의점보다 우동집이 많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우동집이 많다는 의미다. 일본 총무성의 2014년 가계조사에 따르면 도도부현별 우동‧소바 소비량 순위(2012~2014년 평균)에서 카가와 현이 1만2570엔(13만원 정도)으로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1인당 연간 우동 소비량은 230그릇 정도다. 점포 총수는 전국 14위지만 인구 10만 명 당 점포수는 약 64개로 2위인 군마 현의 43개와 큰 차이를 보이면서 1위에 올랐다.      


군마 현은 면폭 5cm 히모카와 우동 유명

일본 군마 현은 면폭이 5cm 이상 되는 히모카와 우동이 유명하다. 다양한 히모카와 우동을 선보이는 ①후지야 우동 ②후루카와 우동 ③하나야마 우동 ④시미즈야 우동

인구 대비 점포가 두 번째로 많은 군마 현에는 그들만의 3대 우동이 있다. 이미 전국구인 미즈사와(水沢) 우동을 비롯해 기류(桐生) 우동, 다테바야시(館林) 우동이 그것이다. 기류 지방에 유명한 우동은 면의 너비가 압도적으로 넓어 ‘충격적’이란 소리까지 듣는 히모카와(ひもかわ) 우동이다. 히모카와 우동은 에도 시대 동해도 이모카와(芋川, 현 아이치 현 가리야 시) 우동이 원조다.      


기류 시에서 1887년 개업해 6대째 130여 년 동안 노포를 이어오는 ‘후지야(藤屋)우동’ 본점이 히모카와 우동으로 유명하다. 이 노포의 특징은 현지에서 나는 밀가루와 물을 사용해 제면 하는 것이다. 면폭은 5cm로 다소 두껍고 불투명하다. 간단히 쯔유에 찍어 먹거나 참마, 무를 첨가해 취향대로 즐길 수 있다. ‘가늘게 뽑아 삶은’이란 우동의 정의에 격하게 반동하는 면 형태다.       


기류 시의 또 다른 히모카와 우동 명소인 후루카와(ふる川) 파크인 기류 점은 면폭이 자그마치 15cm나 된다. 창업 40년이 됐지만 다른 노포에 비하면 손자 급이다. 뒤진 업력을 면폭으로 압도하는 전략을 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비주얼이 압도적인 면폭을 선보이고 있다. 90년 된 노포 시미즈야(清水屋)도 계절에 따라 제면 방법을 달리하면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지역에서 히모카와 우동이 인기를 끈 이유는 직물산업과 연관이 있다. 기류 시는 기류강을 중심으로 봉제와 직물산업이 번성했다. 산업 특성상 노동자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이들의 점심시간은 짧았고 빠르게 면을 삶아 내기 위한 방법으로 얇은 면을 개발했을 것이란 추론이다. 후지야 6대 대표인 모리야키 씨는 “당시는 우동을 가게에서 먹는 것보다 익혀서 사가는 경우가 많아서 빨리 삶을 수 있게 개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빨리 삼기되 면이 얇고 가늘면 끊어지기 쉬우니 폭을 늘려 이를 보완한 것이 히모카와 우동이 발전하게 된 요인이라는 설이다.     


다테바야시 시의 ‘하나야마(花山)우동’ 본점도 히모카와 우동으로 이름나 있다. 하나야마우동은 메이지 27년인 1894년에 창업해 5대째 126년 동안 운영하는 우동 노포다. 창업주는 도쿄 니온바시에서 건어물상회 사환으로 일하다 고향에서 뭔가를 이뤄보겠다고 귀향해 우동집을 차렸다고 전해진다. ‘하나야마우동’은 군마 현에서 난 밀가루와 연수를 이용해 만든 오니히모카와 우동으로 ‘우동천하제일결정전’에서 3년패를 달성했다. 이곳도 면폭이 5cm다.      


히모카와 우동의 ‘코시’는 혀끝에 닿으면 맨들 거리고 씹으면 물컹하지만 탄성이 오랫동안 살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코시란 면을 씹는 중에 느끼는 종합적인 식감을 뜻한다. 주요 밀 생산지인 군마 현의 밀가루는 쫀득함이 있다. 히모카와 우동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소량 생산으로 품질을 유지했고 모든 음식이 반드시 주인의 손을 거쳤기 때문이다.      


히모카와 우동 국내선 납작우동으로 변신

       

목동 히노야마를 최고의 수타우동전문점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지충구 셰프(좌)와 박선희 대표 부부. 납작우동 제면 과정과 완성품. 붓가케 우동과 함께 주력 메뉴다.

국내에서도 히모카와 우동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 양천경찰서 뒤편에 있는 수타우동전문점 ‘히노야마’(火の山)에서는 3년 전부터 ‘납작우동’이란 이름으로 면폭이 4~5cm되는 우동을 판매하고 있다. 박선희 대표(52)는 일본 하나야마 우동을 벤치마킹했다고 밝혔다. 말이 벤치마킹이지 맛만 보고 더 뛰어나게 제면을 해낸다는 것이 쉽지 않다. 1992년부터 내공을 쌓은 덕에 개발이 가능했다. 

     

박 대표 부부는 어느덧 30년 가까이 우동에만 매달렸다.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박 대표의 부군 지충구 셰프(53)가 일본 유학 시절 배운 제면 기술을 앞세워 92년 서울남부지법 앞에서 ‘아소산’이란 이름으로 전수 창업을 했다. 기존 아소산을 통째로 물려받았는데, 부동산 소유주 가족 간 지분 다툼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지금 자리로 이전했다.          


개업 때부터 지금까지 우동을 만드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붓가케 우동과 납작우동을 주력 메뉴로 팔고 있다. 납작우동의 경우 천염소금물 농도와 숙성, 면 두께와 너비 등을 달리하면서 개발과정만 2년이 걸렸다. 납작우동은 면을 자르고 난 후 남는 자투리가 많아  수지타산 때문에 하루 10그릇 정도 한정 판매한다고 했다.        


제면은 천연소금물과 식초를 섞어 반죽하고 이를 비교적 고온인 28도에서 3시간, 저온대인 17~18도에서 8시간 등 총 11시간을 숙성한 후 수타가 아닌 족타로 마무리한다. 일본에서도 제면기가 개발되기 이전 족타가 일반적인 제면 방법이었다. 히노야마 매장 초입에서 숙성고에 가득 차 있는 반죽을 볼 수 있다. 납작우동은 이렇게 숙성시킨 면을 수작업을 통해 1mm정도 두께로 얇게 펴낸 후 제면 하기 때문에 기술과 수고가 뒤따른다.       


다시 육수는 사바(말린 고등어), 우루메부시(눈퉁멸치), 가쓰오부시(훈제 가다랑어), 다시마, 파뿌리 등 재료를 우려내 만든다. 여기에 직접 달여 만든 간장 원액을 넣어 매일 아침 우동 육수를 뽑아낸다. 박 대표는 “자가제면, 정성이 깃든 우동 다시는 옛날 처음 배운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며 모든 과정에서 일본서 배운 전통 방식을 고집한다고 밝혔다.      

히노야마의 인기 메뉴들. ①붓가케 우동 ②히노야마 스페셜정식(왕새우와 등심 돈까스가 들어간 나베 우동) ③일본식 정통 돈까스 ④왕새우튀김 우동정식 ⑤넙적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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