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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거리며 유혹하는 제철 주꾸미

사전 주문하면 뭐든 해주는 ‘고갈비’...짬뽕‧밀면 맛집 ‘강원냉면'

[머글랭가이드@아산] 한 달에 한번 충남 아산엘 간다. ‘머글랭가이드@아산’과 더불어 순천향대학교에서 진행하는 전각교실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서울에는 맛집을 평가하는 ‘미쉐린가이드’가 있다. 머글랭가이드는 서울을 제외한 전국 맛집 브랜드다. 아산지역은 순천향대 중문과 홍승직 교수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번 맛집 탐방에는 이 지역에서 열독자가 가장 많다는 ‘천안아산신문’ 노준희 기자와 중국인 유학생 양주(楊洲)가 처음으로 함께 했다. 모르는 사람과 가장 빨리 친해지는 방법은 반주를 함께 하는 것이다. 정의되진 않았지만 겪어보면 이유를 안다. 이 같은 밥상 문화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필자는 그 이유를 생명을 함께 나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쌀은 백성이고 백성은 하늘, 그리고 생명이기 때문이다.      


아산은 전철이 닿는 곳이다. 확대 해석하면 수도권이란 의미다. 흔히들 전철을 수도권전철이라고도 부르기 때문이다. 종점인 신창역은 순천향대라는 역명을 부기하고 있다. 역명 부기는 해당 노선을 관할하는 철도청이나 공사가 공개입찰을 통해 정한다. 신창역 바로 앞에는 한국폴리텍대학 아산캠퍼스가 있지만 부기 역명은 순천향대가 얻었다.      


역명 부기는 상당한 홍보효과가 있기 때문에 때론 이해관계가 첨예하다. 안양역의 경우 안양대, 대림대, 성결대, 연성대 등이 이용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입찰에 연성대가 단독으로 응찰해 물의를 빚었다. 응찰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입찰에 응하지 않는 것이 암묵지였는데 이를 연성대가 깼기 때문에 다른 대학에서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연성대가 부기를 포기해서 일단락됐지만 역명 부기의 홍보 효과에 대한 반증을 나타낸 해프닝이었다.          


아산까지 전철을 타고 간다. 인천행과 신창행이 갈라지는 구로역 기준으로 신창역까지 급행으로 18개 역 100여 분 정도가 소요된다. 일반 열차는 34개 역 120여분이 걸린다. 급행을 타도 한 시간 반 정도 가기 때문에 아산을 가는 날엔 가방에 가볍게 읽을 만한 책 한 권을 넣는다. 그러나 번번이 펼쳐보지도 못하고 짐만 되곤 한다.         


한국식 짬뽕 맛 선보이는 ‘강원냉면’

   

강원냉면은 겨울엔 짬뽕, 여름엔 밀면이 유명한 식당이다.

신창역에 도착했다고 하니 홍 교수가 어차피 식사를 하러 아산 시내로 갈 예정이니 기다리란다. 신창역서 순천향대까지는 열차 시간에 맞춰 셔틀버스가 운행 중이다. 걸어서는 약 20분 정도면 학교에 다다를 수 있다. 종착 기차역이 신창역에서 얼마나 더 연장될까 하면서 빈 선로를 보고 있자니 홍 교수가 오래된 하얀색 애마(?)를 끌고 왔다. 점심 식사를 하러 간 곳은 ‘강원냉면’. 빛바랜 ‘강원식당’이란 간판도 달고 있는 걸 보니 과거 일반식당을 먼저 열고 나중에 냉면 간판을 단 것 같다.      


식당이름에 들어 있는 강원도와 냉면의 조합만으로 따져봤을 때는 막국수 정도 팔 것 같았는데, 실상 밀면으로 유명한 집이다. 밀면 하면 부산, 진주 등이 유명하지만 아산도 못지않다. 지역마다 육수 내는 방법이 달라 뭉뚱그려 밀면 앞에 반드시 지역 이름을 넣어야 한다. 부산은 소와 돼지뼈를 우린 육수에 간장을 넣고 진주는 해산물로 육수를 내는 반면 아산의 밀면 전문점 ‘신정식당’은 닭과 대파 진액, 디포리(밴댕이), 볶은 귀리 등을 넣는다.      


이번에 찾은 ‘강원냉면’은 또 다른 비법의 육수로 맛을 낼 것으로 짐작된다. 짐작만 하는 이유는 취재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면 하는 모습조차도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곳이다. 방송이나 신문에 나오는 것을 썩 내켜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신정식당은 SBS ‘생활의 달인’에 나와 반짝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방송을 탄 초반에는 길게 줄을 서서 먹어야 할 정도로 붐볐지만 지금은 안정(?)을 되찾았다. 그렇다고 강원냉면이 손님이 준 것은 아니다. 동네 맛집이기 때문에 단골들이 꾸준하게 이용하는 식당이다.      

   

평양냉면이 전남 광주까지 남하해 맛집으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과 부산 밀면이 아산까지 밀고 올라온 것이 묘하게 겹친다. 아산이 바다에 접한 도시란 점에서 보면 부산, 진주처럼 밀면으로 강세를 보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신정식당 육수 재료를 보면 부산과 진주의 절충식 같으면서도 독창적인 제3의 밀면이라고 할 수 있다.       


‘강원냉면’은 ‘신정식당’과 두 집 건너 이웃이다. 온양전통시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밀면은 여름, 겨울엔 짬뽕이 강세다. 아직 겨울 끝물인 관계로 짬뽕을 택했다. 중화식 짬뽕과는 결이 다른 육수와 면발이다. 바지락, 오징어 등 해물에서 우려낸 바다 맛과 갖은 채소의 달근한 채수에 국산 고춧가루로 맛을 잡아 시원하고 매콤하다. 홍 교수는 이를 '한국식 짬뽕'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노란 단무지를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한 배추김치와 무김치가 짬뽕과 잘 어울린다. 천안,  아산 등 지역은 짬뽕이 강세다. 아마도 과거 중국인들이 서해를 통해 많이 유입된 까닭 때문인 듯하다. 제면 하는 모습 사진을 찍자니 창업주 아들인 듯한 사람이 손사래를 친다. 방송에 나가서 줄 서서 먹는 옆집 신정식당과의 차별화 정책인 듯하다. 그리고 지금도 손님이 충분하고 또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받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그래야 맛의 중심을 계속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족스러운 짬뽕 점심식사였다.                   


순천향대 공자아카데미 ‘전각교실’ 체험 

2월에는 색다른 프로그램으로 순천향대 공자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전각교실’을 체험했다.

아산까지 가서 맛집만 둘러보고 오면 ‘효율’이 떨어지는 것 같아(실은 눈치가 보여) 유익한 프로그램을 발굴해야 했다. 그래서 첫나들이 때는 ‘맛있는 동네산책’에 충실하기 위해 인근 지역을 차로 한 바퀴 답사했다. 아산지역 돌아볼 곳으로는 공세리성당, 외암마을이 가장 손꼽힌다. 그래서 첫 아산행을 했던 지난해 12월에는 두 곳을 다녔다. 코로나19로 인해 외암마을은 출입이 금지돼 겉모습만 보고 와서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올 1월에는 약속이 틀어지는 바람에 베트남식당서 쌀국수만 먹고 왔다.      


2월에는 색다른 프로그램으로 순천향대 공자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전각교실’을 체험했다. 전각교실은 재학생과 지역민을 위해 만든 프로그램으로 ‘수제도장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다. 지금은 5인 이상 집합금지라서 열리지 않고 있다. 이날은 도구를 챙겨 들고 홍승직 교수 연구실로 가서 사사를 받는 영광을 누렸다. 칠팔 년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전각체험을 실제로 하게 된 기념비적인 날이기도 했다.      


가로세로 4cm 비교적 큰 전각돌을 선택했다. 처음엔 기술이 부족하니 큰 글씨부터 새겨봐야 한다는 것이다. 새길 면을 정해 사포에 갈아 면을 고르게 한 후 주물(적색물)을 칠한다. 주물은 도장을 찍었을 때 나타나는 면이다. 주물 위에 먹물로 새길 글자를 쓴다. 홍 교수는 이를 ‘디자인’이라고 불렀다. 디자인이 좋아야 각이 잘 나온다는 의미다.      


새길 네 자를 정하라고 해서 필자가 만든 단체인 ‘문화지평’을 택했다. 도장을 찍었을 때 글자가 바로 나와야 하기 때문에 새길 글은 반대로 써야 한다. 거울을 이용하거나 습자지를 사용하는 등 여러 방법이 있지만 한지에 먹물로 쓴 후 뒤집어서 보이는 글자를 따라 그리는 방법을 썼다. 글자 순서에도 규칙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필자는 실패했다. 초보들의 흔한 실수다.      


디자인이 끝났으면 전각도를 사포에 문질러 날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돌을 깎아 낸다. 전각도는 손 안쪽에 놓고 주먹을 꼬나쥐듯 움켜쥔다. 그리고 새길 곳에 칼집을 넣어 돌을 찍어서 떼 내거나 긁어낸다. 1차로 각을 뜬 후 인주를 묻혀 찍은 후 수정 작업을 하면 된다. 한 차례 수정까지 총 2시간이 걸렸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들지 않아 취미 삼기 적당하다.      


새긴 전각도장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반응이 폭발적이다. 식당 이름을 새겨달라는 주문도 있었고 저마다 잘 새겼다고 칭찬 일색이다. 그만큼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정성을 들인 만큼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집중력 향상과 손의 소근육 운동에 제법 좋겠단 생각도 들었다. 홍 교수는 ‘봄이왔네’를 새겼다. 섬세하고 풍성한 감성이 묻어났다. 다음날이 우수였으니 교수실 창밖으로 봄이 성큼 다가올 만도 했다.      


전각 체험을 마치고 아산 시내로 향했다. 아산 시내 전철역명은 온양온천역이다. 인근에 아산시청이 위치해 있어서 명실상부한 아산의 중심지다. 아산역이 따로 있지만 천안과 맞닿아 있는 신도심이다. 천안에서 신창역까지는 2008년 12월에 연장 개통됐다. 천안 다음으로 6개 역 중 온양온천역만 기존 역사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대가리에 ‘쌀’ 가득 찬 주꾸미 진미

‘고갈비’는 생선구이 전문점이지만 사전 예약하면 뭐든 맛볼 수 있다. 주꾸미 샤부샤부도 그래서 준비된 메뉴다.

홍 교수가 안내한 곳은 권곡동 온양성당 후문 옆 ‘고갈비’란 상호의 간판을 단 생선구이와 조림 전문점이다. 손맛 좋아 보이는 두 자매가 사이좋게 운영하는 곳이다. 사전 주문하면 손님이 원하는 메뉴를 준비해준다. 이날도 자리에 앉자마자 커다란 스테인리스 용기가 상위로 날라졌다. 안을 들여다보니 주먹만 한 주꾸미 이삼십 마리가 꿈틀대고 있다.          


그렇다. 주꾸미 철이 시작됐다. 주꾸미 주산지인 서해가 가까운 아산에서 올해 첫 알배기 주꾸미를 만났다. 주꾸미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홋카이도 이남 지역에 서식하는 연근해 어족자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서해와 남해 대부분 지역에서 잡힌다. 산란기는 12~2월이기 때문에 요즘 알이 꽉 차있을 때다. 5월 11일부터 8월 말까지는 금어기라 생물로는 맛볼 수 없다.       


주꾸미는 어장이 형성되는 계절에 따라 ‘봄 주꾸미’와 ‘가을 주꾸미’로 나누기도 한다. 봄 주꾸미는 크기가 크고 대가리에 쌀 같은 알을 가지고 있다. 가을 주꾸미는 크기도 작고 알도 없다. 봄 주꾸미는 깊은 바다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에 산란하러 연안에 올라오는 것을 포획하기 때문에 크기가 크고 알배기다. 봄에 산란한 알이 부화돼 자란 것이 가을에 잡히는 가을 주꾸미가 된다. 아직 성체가 되지 않아서 작은 것이다. 가을 주꾸미가 깊은 바다에서 겨울을 지내고 성체가 된 후 봄에 산란하러 오는 것이 봄 주꾸미인데, 이번에 ‘고갈비’에서 만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날 준비된 메뉴는 주꾸미 샤부샤부였다. 배추, 표고버섯, 대파, 양파 등으로 채수를 냈다. 끓는 채수에 주꾸미를 담가 살짝 익힌 후 머리를 뗀 후에 다리 부분을 먼저 먹는다. 머리 부분은 속까지 익히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끓는 채수에 더 담가 둔다. 한참을 두었다가 꺼낸 머리를 가위로 갈라보니 새하얀 알이 가득하다. 이를 두고 흔히들 ‘쌀이 차있다’고들 한다. 봄 주꾸미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알을 즐기려 하기 때문이다.        

원래 주꾸미 제철은 3월부터라고 들 하지만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바다 수온도 조금씩 상승해 제철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 문어의 경우 원래 서해안에서 거의 나지 않았지만 수온 상승에 따른 생태계의 변화로 2006년부터 잡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바다뿐만 아니라 육지 역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경우 난대산림연구소가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로 이름을 바꿔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꾸미로 배가 살살 채워질 무렵 정성스레 부친 굴전이 한 접시 나왔다. 음식을 잘하는지 여부는 전 부친 모양새를 보면 가늠이 된다. 얄팍한 계란 옷에 홍고추 한 조각을 품고 노릇하게 부쳐서 나온 굴전은 정갈한 모양이 정성을 대변했다. 입안에 퍼지는 굴 향은 주꾸미의 풍미와는 또 다른 감각적인 바다 맛이다. 아삭 거리는 연근 피클, 톳 무침, 달래장 곁들인 두부 등 밑반찬도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이 식당 대표 메뉴인 고등어, 열기 생선구이는 전문답게 짭조름한 맛이 깊숙이 고르게 배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주꾸미 대가리서 나온 먹물로 시꺼멓게 변한 채수에 풀어먹는 소면 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훌륭한 맛을 냈다. 누릿한 육고기 냄새가 나서 옆 테이블로 시선을 옮기니 한우가 불판 위에서 지글거리고 있다. 손님들이 사 와서 굽고 있는 것이다. 사전에 양해가 되면 뭐든 할 수 있는 곳이다. ‘고갈비’는 연세 지긋한 자매가 융통성 있게 운영하는 아산 숨은 맛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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