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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리 춤추는 사월 오면 생각난다 그 맛집

강남 가성비 좋은 ‘사월에 보리밥’...놀부 신화 오진권 회장 브랜드

해가 바뀐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달력은 3월 중순을 넘어 4월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4월이 되면 꽃 소식과 함께 바람에 일렁이는 청보리밭 풍경이 떠오른다. 가파도에서는 매년 3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청보리밭축제를 연다. 고창서는 4월 중순경부터 열린다.  


우리나라 보리는 추운 겨울을 지낸다. 그래서 다른 작물에 비해 병충해가 적다. 달리 말하면 농약을 많이 치지 않아도되고 무농약 농사가 가능하단 소리다. 이른바 무공해 식량자원 중 하나다. 흰쌀밥 위주 식습관에서 부족한 영양소를 채우는 데 보리가 한몫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보리는 대기 중의 탄산가스를 광합성에 활용함으로써 공기정화 능력도 있는 친환경 작물이다.      


보리알이 배열된 열의 수에 따라 2조맥(두 줄 보리)과 6조맥(여섯 줄 보리)이 있다. 다 자란 후에는 껍질이 종실에 밀착해 분리되지 않는 겉보리와 분리가 잘되는 쌀보리로 나뉜다. 우리가 흔히 먹고 있는 것이 쌀보리다. 찰기에 따라서는 찰보리와 메성보리로 나눈다. 찰보리는 메성보리보다 식이섬유와 베타글루칸 함량 더 높다 쌀과 보리쌀 성분을 비교하면 조단백질과 지방질이 쌀 보다 높고 당질은 적다. 섬유질이 쌀 보다 훨씬 많고 수용성 식이섬유가 특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리는 중앙에 골이 있다. 골은 질긴 섬유질로 돼 있다. 보리는 도정을 해도 속겨층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이들 때문에 보리의 식감이 거칠게 느껴지는 것이다. 쌀에 비해 물 흡수가 잘 안 돼 오래 익혀야 한다. 그래서 보리를 따로 쪄서 쌀과 밥을 짓는 것이다. 최근에는 적당히 불려서 누른 압맥과 반을 쪼갠 할맥이 나와서 쌀과 함께 밥을 지어먹을 수 있다.         


보리의 매력은 무엇보다 영양학적으로 우수한데 있다. 중요 무기질인 칼륨, 칼슘, 인, 철, 나트륨 등이 들어 있다. 이중 한국인들에게 부족하기 쉬운 무기질인 칼슘과 철 함량이 쌀에 비해 각각 8배, 5배나 높다. 비타민 B1, 비타민 B2, 나이아신 등 비타민이 쌀보다 많다. 특히 쌀과 달리 비타민류가 내부에 분포해 있어서 도정을 해도 손실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보리의 프로안토시아니딘이라 부르는 물질은 암 예방효과 기대 물질이고 폴리페놀화합물에 면역 증강효과, 항알레르기 작용 등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폴리페놀화합물 같은 천연 항산화제를 적당량 주기적으로 섭취하면 노화와 관련된 성인병을 줄일 수 있다. 또 미량이지만 콜레스테롤 합성을 억제하는 토코트리에놀이라고 하는 토콜화합물이 함유돼 있는 것으로도 밝혀졌다.      


가파도는 매년 이맘때 청보리축제로 들썩 


가파도 청보리밭 전경.

매년 이맘때부터 청보리축제가 열리는 가파도는 제주도에 속해 있는 섬이다. 제주도 주변에는 62개의 섬이 호위하듯 들어서 있는 데, 유인도는 8개, 무인도는 54개다. 가파도는 마라도, 비영도, 우도와 함께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이다. 가파도는 행정구역상으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해당한다. 제주 모슬포항과는 5.5km 정도 떨어져 있고 배로는 약 20분 거리다.      


옛날에는 나라에서 소와 말을 기르던 목장으로 활용되다가 왜구 침입에 맞서 공도정책으로 섬을 비웠다가 헌종 6년(1843)년에 우도와 함께 이주가 허가됐다. 가파도는 전형적인 농어촌마을로 섬의 특성상 마을 사람들이 주로 어업에 종사했다. 또 밭농사에 적합한 해양성 기후로 인해 청보리를 비롯한 콩과 고구마 등의 농작물을 재배했다.     


특히 청보리는 특별한 재배기술 없이도 잘 자랐다. 가파도에서 재배되는 청보리는 맥주나 식용으로 쓰이는 제주도 향토품종인 ‘향맥’이다. 가파도 전체 면적의 60~70%를 차지하는 56만㎡(17만평)의 평야에 재배되는 가파도의 대표적인 특산품이다.      


2009년 제주도는 도서 지역 경제 활성화의 일환으로 ‘가파도 방문의 해’를 지정했다. 가파도 주민들은 가파도축제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첫 가파도청보리축제를 개최했다. 축제가 열리기 전에는 1년에 3만 명 정도 관광객이 방문하는 작은 섬으로 이름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청보리측제가 열리고 나서부터는 연간 15만 명이 다녀가는 관광지로 떠올랐다.      


축제를 맞아 청보리밭 산책로를 열었고 2010년 3월에는 제주올레 10-1코스가 개장됐다. 축제 초기에는 2~5일간 축제를 열었지만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역 활성화를 위해 2012년부터  한 달간 개최하기 시작했다. 관광객 방문이 2011년 5575명에서 2012년 2만5000명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올해는 열두 번째 ‘가파도청보리축제’가 4~5월 중에 열릴 예정이다. 코로나 상황으로 축제 개최가 쉽지 않아 보이지만 개별 여행으로 즐길 수는 있을 듯하다. 녹색의 청보리가 펼쳐진 땅과 푸른색의 하늘과 바다, 노란 유채꽃이 뒤섞여 빚어내는 색의 향연을 만나보고 싶어 진다.     


청보리축제를 상상하니 보리밥 생각이 간절하다. 보리밥 하면 소설가 신경숙 작가의 글이 생각의 타래가 풀리듯 따라 나온다.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란 글 속 음식 이야기는 시골의 풍경을 활자로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하다. 혼자 읽기 아까워 글 일부분을 옮겨 본다.        


보리밥은 한국인 정 담긴 소울 푸드

보리밥은 가난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정이 담긴 한국인의 소울 푸드다.

‘여름날 점심상은 늘 마루에 차려졌다. 엄마는 논에서 돌아오다가 혹은 읍내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텃밭에서 상추와 쑥갓과 무 잎사귀들을 푸짐하게 뜯어 웃옷 앞섶에 담아 들고 왔다. 아직 덜 자란 애오이를 두어 개 뚝 따오기도 했고, 너무나 싱싱해서 베어 물면 매운맛이 혀끝에 쫙 퍼질 것 같은 잘 생긴 풋고추가 섞여 있는 건 당연했다. 엄마가 뒤꼍의 장꽝에서 된장과 고추장을 떠와 생마늘을 듬성듬성 썰어 넣고 쌈장을 만드는 동안 나는 우물에서 그 파란 것들을 씻어 물기가 성성한 것들을 바구니에 담아 마루에 차려진 상 옆에 놓아두었다.     


밥상에 올려진 것이라고 해 봐야 별것 없었다. 쌈장과 신 김치와 장아찌 정도. 간혹 쌈장 대신 멸치를 넣고 끓인 깡 된장이 뚝배기에 담겨 올라온 정도. 여름날이면 언제나 보리밥이 가득 담긴 밥 바구니가 부엌에 턱 하니 걸려 있었는데 그것이 마루의 점심상 곁에 나와 있는 정도. 대문 옆에 몇 그루 있던 감나무 위로 사각사각 지나가는 바람 소리 때문이었을까. 그저 푸성귀만 가득인 점심상이었어도 여름 내내 점심이 참 맛있었다. 엄마가 밥그릇에 보리밥을 퍼서 놓아주면 누군가는 상추 위에 깻잎을 얹고 무 잎사귀를 또 얹고 보리밥을 얹고 쌈장을 얹어 오므려 볼이 미어지게 쌈을 해 먹고, 또 누군가는 보리밥에 찬물을 말아 그저 담담히 풋고추를 쌈장에 찍어 먹고, 그중 달콤한 애오이를 엄마가 집어 주면 아삭아삭 깨물어 먹곤 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있으면 어김없이 누군가 마당을 지나갔다. 점심 안 했으면 한 숟갈 뜨고 가라고 엄마가 부르는 소리. 왜 엄마는 밥 먹고 가라고 하질 않고 꼭 한 숟갈 뜨고 가! 그랬는지. 젓갈장수나 혹은 참외장수, 보따리 옷장수들도 자주 그 점심상에 끼어들었다. 그들이 대문을 기웃거리면 엄마는 들어오라고 하고는 부엌에 가서 숟가락 젓가락 한 벌을 밥그릇과 챙겨 왔다. 식구들이 무릎을 조금씩 당겨 앉고 그 사람이 끼어들곤 했다.     


그리고 나면 뭔가 무료하던 점심상 자리가 돌연 활기를 띠었다. 푸성귀가 아삭아삭 씹히는 소리와, 어쩌다 매운 풋고추에 걸린 사람의 하후, 하는 소리와 보리밥에 물을 마는 소리들. 점심을 먹고 나면 장수들은 젓갈을 조금 놓고 가기도 하고 참외를 몇 개 내려놓고 가기도 하고 그랬다.     


어렸을 때 먹었던 음식을 찾기 시작하면 나이를 먹었다는 뜻이라고 한다. 어렸을 땐 싫어했던 것도 나이 먹어선 그 냄새를 찾는다고 한다. 가끔 길을 가다 보면 보리밥집이 자주 눈에 띄는 것도 보리밥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뜻일 게다. 보리밥을 먹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일부러 보리밥집을 찾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삼청동에 보리밥을 아주 맛있게 하는 집이 있다면서 점심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는데, 자리가 없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비좁은 집이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깡 된장에 보리밥을 비벼 먹는 사람들은 대개가 오십이 넘은 분들이었다. 그 속에 섞여 나 역시 보리밥을 깡 된장에 비벼 먹는데 이 생각 저 생각이 다 났다. 아마 그 순간 나는 보리밥을 먹었던 게 아니고 어린 시절을 먹고 있었을 것이다.’     



참 글이 ‘맛있다’. 원체 필력이 좋은 작가지만 묘사에서 식욕이 한껏 느껴진다. 또 보리밥을 쌈 싸서 볼이 미어지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니 저절로 흐뭇해진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밥 한 숟갈 뜨고 가라는 인심이 보리밥과 겹치니 정감 어린다. 보리밥은 가난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정이 담긴 한국인의 소울 푸드다. ‘어린 시절을 먹고 있었을 것’이란 작가의 표현이 그것을 한마디로 대변하고 있다.      


강남 부촌 입맛 저격한 ‘사월에 보리밥’    

식당 내외관을 꽉 채운 각종 POP. 권헌주 대표의 꼼꼼함과 섬세함이 엿보인다.

가난한 시절 먹거리 상징이었던 보리밥이 웰빙 바람을 타고 ‘건강식’으로 변신한 지 오래다. 보리밥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점이 속속 생겨났고 프랜차이즈까지 등장했다. 보리밥 브랜드로 가장 성공한 것은 ‘사월의 보리밥’이다. 놀부보쌈의 신화를 썼던 오진권 이야기가있는외식공간 회장이 만든 브랜드다. 직영점과 가맹점이 제법 많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정리했고 지하철 3호선 도곡역에서 가까운 대치동점이 유일하게 남아있다.        


15년을 한 자리서 굳건하게 자리 잡으면서 대치동, 도곡동 주민들 입맛을 사로잡았다. 오 회장과 누나가 직영을 하다가 지금은 놀부 시절부터 동고동락했던 놀부 관리이사 출신 권헌주 대표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본사 관리를 하다가 외식업 현장에 나선 권 대표는 특유의 꼼꼼함과 치밀함, 친근감으로 단골 확보에 성공했다.       

주방 찬모 솜씨가 워낙 좋아서 손님이 꾸준했고 전에 없던 배달까지 가동하면서 코로나19 한파도 슬기롭게 넘기면서 매출 회복 중이다. 노부부,  가족단위 식사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이는 식단과 실내 분위기가 집밥 같은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월에 보리밥 메뉴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메뉴.

일곱 가지 나물이 나오는 보리밥비빔정식은 20여 년 간 꾸준하게 사랑을 받아온 대표 메뉴다. 보리와 함께 봄을 대표하는 먹거리인 주꾸미와 궁합을 맞춘 불맛주쭈미비빔정식, 보리밥비빔정식에 바싹 불고기를 곁들인 보리밥특비빔정식, 고등어우거지조림정식, 보쌈정식, 고등어한마리구이정식, 떡갈비정식이 골고루 잘 나간다. 특히 녹차보리굴비정식은 1만9500원으로 강남지역에서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한다.      


10첩 반상 명품 도시락은 학원가가 많은 대치동이란 특성에 맞춘 전략 메뉴다. 학생들의 아침이나 야식으로 포장을 해가는 부모들이 많다. 마늘수육보쌈, 돔베수육, 바싹불고기, 주꾸미볶음, 훈제오리보쌈 등 안주와 곁들이는 메뉴가 다양해 반주를 즐기는 식객들에게 인기다.      


안동소주, 문배주 등 가성비 좋은 전통 주류와 다양한 세계맥주를 구비하는 등 주류 라인업도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스타벅스 캡슐커피  등 디저트  구성은 지역 정서를 잘 반영하고 있다. 권 대표는 “오진권 회장께서 일궈 놓은 ‘사월에 보리밥’ 브랜드 명성을 계속 이어가는 한편 지역 주민들과 멀리서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정성스러운 한 끼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쌀, 보리, 현미 등 세 가지 곡물로 만든 누룽지 숭늉은 꼭 드셔 보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놀부보쌈' 신화를 쓴 오진권 회장(좌)과 권헌주 '사월의 보리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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