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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 속 흑산도 홍어, 그 맛은?

흑산도서 영산포까지 영산강 일대는 홍어 천국

이준익 감독이 만들고 설경구, 변요한이 주연한 영화 ‘자산어보’가 대박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정약전이란 인물과 자산, 즉 흑산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한자로 된 ‘玆山漁譜’를 두고 자산어보가 맞니 현산어보가 옳다는 등 해묵은 논쟁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볼거리를 하나 더 제공하고 있다. 정약전이 지은 자산어보 서문을 보자.        


‘자산은 흑산이다. (중략) 자산 바다의 어족은 지극히 번성하지만 그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드물었다. 박물자(博物者)가 잘 살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섬사람들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아 어보를 짓고자 하였으나 사람마다 다른 말을 하여 딱히 의견을 좇을 만한 이가 없었다. 섬 안에 장덕순, 즉 창대라는 사람이 있었다. 두문불출하고 손님을 사양하면서까지 열심히 고서를 탐독하는 것을 좋아했다. 성격이 조용하고 세밀하여 대체로 초목과 물고기와 물새 가운데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을 모두 세밀하게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여 그 성질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말은 믿을 만했다. 나는 드디어 그와 함께 묵으면서 물고기의 연구를 계속했고 그 성과물로 차례 지워 이를 ‘자산어보’라고 하였다.‘     


이번엔 서문의 정보를 하나씩 파보자. ‘자산은 흑산이다’이란 말은 정약전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그는 흑산도로 가기 전 신지도, 우이도에서 6년이란 긴 세월 유배 생활을 했지만 해양생물에 대해 흑산도에서처럼 집착할 정도의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바다 생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807년 무렵 유배지를 옮긴 흑산도에서 비롯됐다. 어쩌면 흑산도는 당내 내로라하는 유학자가 관심 둘 일이 꽤나 척박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이어지는 ‘박물자가 잘 살펴야 할 것이다’란 표현은 그는 자신의 역할을 '박물자'로 규정짓고 있다. 박물(博物)은 ‘동물학, 식물학, 광물학, 지질학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본디 천연물 전체에 걸친 지식의 기재를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란 사전적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박물자란 천연물에 대한 관찰 기록을 하는 자를 말한다.        

그가 말한 박물자의 역할은 우선 이름을 알지 못하는 해양생물의 이름을 알아내는 일이었다. 흑산도는 해양어족이 다양함에도 그 이름을 알 수 있는 것이 드물기 때문에 박물자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동시에 자신이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바다생물 이름 알기 위해 자산어보 지어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 필사본 표지.

그가 어보를 작성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직접적 동기는 바로 바닷속에 어족이 번성함에도 불구하고 명칭을 알 수 있는 게 아주 적었다는 데 있었다. 그는 섬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지만 사람마다 이름이 제각각이라 어떤 것을 기준 삼아야 할지 몰랐다. 어보는 이렇게 난관을 맞는데, 이때 창대를 알게 된다.      


정약전은 창대를 “성품이 조용하고 세밀하여(중략)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서문에서 제법 길게 묘사하고 있다. 창대는 청어의 척추 마디 수를 세어 영남산과 호남산 청어가 다른 부류라는 것을 알아내는 등 박물에 능했다.       


창대는 잔가시가 많기로 유명한 청어의 뼈마디를 셀만큼 꼼꼼한 성격이었다. 이 청년의 이름은 자산어보 전반에 걸쳐 자주 등장한다. 아홉 번 정도가 창대의 말을 직접 인용했고 드러나진 않지만 간접적으로 도움을 받은 것까지 치면 횟수는 이를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정약전이 서문에서 창대를 언급한 것은 그의 공이 그만큼 크단 의미다. 자산어보 속에는 창대와 섬사람들의 실전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약전은 자산어보가 혼자 힘으로 쓴 것이 아님을 ‘인용’을 통해 밝혀두고 있다.      


영화에도 나오는 한 장면에 대한 묘사를 보자. 정약전을 연기하는 배우 설경구가 파도가 찰싹거리는 해변에 쪼그리고 앉아 뭔가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자세히 보니 검푸르죽죽한 것이 돌에 달라붙어 흐느적거리고 있다. 설경구는 나무 막대기로 슬며시 이름 모를 해양생물의 가운데 부분을 찔러본다. 그러자 그것은 나무막대를 잡으려 입 같은 것을 살짝 오므리다가 설경구가 막대를 빼자 갑자기 반격하듯 물을 찍 쏘아댔다. 설경구는 화들짝 놀라 뒤로 자빠질 뻔했다. 영화 속 정약전은 집으로 돌아가 방금 자신에게 물총을 쐈던 생물에 대해 글을 썼다.       


‘모양은 오랫동안 이질을 앓은 사람이 탈항 한 것 같고 빛깔은 검푸르다. 조수가 미치는 곳의 돌 틈에서 산다. 모양은 둥글고 길쭉하게 생겼다. 그러나 붙어 있는 돌에 따라서 그 모양이 달라진다. 다른 물체가 닿으면 조그맣게 오므라든다.’      


정약전은 이 해양생물에게 ‘석항호’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石(석, 돌), 肛(항, 항문), 蠔(호, 굴). ‘돌에 붙어사는 항문과 같은 굴’이라는 뜻이다. 흑산도 사람들은 이를 ‘말미잘’이라고 불렀다. 말미잘은 ‘말’과 ‘미주알’의 합성어이다. ‘미주알’은 ‘미주알고주알 다 털어놓다’할 때 그 미주알이다. 이는 창자의 끝부분, 즉 항문을 일컫는 옛 우리말이다. 결국 말미잘은 말의 똥구멍이 된다. 이질 앓은 사람의 탈항 한 항문과 말 똥구멍과 말미잘, 이미지가 절묘하게 겹친다. 정약전의 작명은 대개 이러했다.      


영화 ‘자산어보’로 뜬 최서남단 흑산도

     

정약전으로 연기한 설경구가 나뭇가지로 말미잘인 석항호를 찌르기 전 장면.

자산어보에는 홍어에 대한 언급이 몇 차례 나온다. 후대에 흑산도가 홍어의 본고장으로 떠오르리란 것을 정약전은 알았을까. 먼저 홍어 ‘거시기’에 관한 기록이다. ‘수놈에는 양경이 있다. 그 양경이 곧 척추다. 모양은 흰 칼과 같은데, 그 밑에 알주머니가 있다. 두 날개에는 가는 가시가 있어서 암수가 교미할 때에는 그 가시를 박고 교합한다. 낚시를 문 암컷을 수컷이 덮쳐 교합하다가 함께 잡히기도 한다. 결국 암컷은 먹이 때문에 죽고, 수컷은 간음 때문에 죽어 음(淫)을 탐내는 자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 그래서 어부가 수컷을 잡으면 우선 홍어 ‘거시기’부터 잘라버려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가 됐다는 속설이 됐다.       


또 ‘암놈은 알 낳는 문외에 구멍이 하나 더 있는데 안으로 구멍 세 개와 통하고 그중 가운데 구멍은 장의 양쪽으로 통하면서 반을 형성하고 있다. 대 위에 알 같은 것이 있는데 이 알이 없어지면 태가 만들어지면서 새끼가 형성된다. 태 안에는 각각 4, 5마리 새끼가 만들어진다’라며 홍어 내부 행태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는 홍어를 직접 해부한 것을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지식이다. ‘만성 복결병(腹結病)이 있는 사람은 홍어 삭힌 것으로 국을 끓여 먹으면 더러운 것을 배출시키고 숙취를 해소하는 데 매우 좋다’는 표현은 자산어보가 단순 해양생물자원에 대한 묘사가 아닌 민간요법의 연장선상에서 다뤄졌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정약전은 이외에도 해양생물의 맛에 대해 다양한 평가도 덧붙였다. 예를 들어 대면(大鮸)은 맛이 민어(鮸魚)와 비슷하면서도 더욱 농후한 맛이 난다고 했고, 관목청(貫目鯖)은 맛이 청어(靑魚) 보다 뛰어나고 말려서 먹으면 더욱 좋다 등 맛에 대한 평가도 적어 놨다. 그는 식용이 가능한 해양생물 중 104종에 대해 좋다(佳, 美), 달다(甘), 맑다(淸), 농후하다(醲厚). 시다(酸), 담백하다(淡), 누린내(羶), 쓰다(苦), 비리다(腥) 등 다양한 맛을 표현하려고 했다.      


한편 후대에 전남 신안군 흑산면은 참홍어로 유명세를 탄다. 흑산면을 이루는 흑산도는 행정구역상 최서남단 해역에 위치한 섬으로 목포에서 서남방 해상 92.7㎞ 떨어진 곳에 있다. 바닷물이 푸르다 못해 검다 해서 흑산도라 불린다. 섬 면적은 19.7㎢, 해안선 길이는 41.8㎞에 달하는 제법 큰 섬인데 특산물로 홍어를 비롯해 참전복, 우럭, 돌미역, 멸치액젓 등이 난다.       


김대중 대통령 단골 백년가게 ‘신안촌’   

       

고 김대중 대통령은 종로구 내자동 서울서는 ‘신안촌’ 홍어를 즐겨했다. 신안촌 시그니처 메뉴인 홍어삼합.

신안이 고향인 고 김대중 대통령이 홍어를 즐겨 먹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재임 당시 그는 삭힌 홍어보다는 싱싱한 활홍어를 좋아했다. 청와대 입성 전에는 삭힌 홍어도 즐겨 먹었다고 한다.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를 10일 정도 숙성해서 식당으로 공수해서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뒷골목에 있는 ‘신안촌’이 김 전 대통령 단골이었다. 요즘도 홍어삼합을 대표메뉴로 내놓고 있다.      


홍어는 전라도 잔칫상에 빠지지 않고 신선한 회로 먹어도 쫄깃하고 담백하지만 삭혀 먹으면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어종이다. 특히 묵은 김치, 삶은 돼지고기를 함께 먹는 삼합이 유명하다. 신안에서는 해마다 5월에 홍어 축제가 열리는데,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됐다. 신안군은 매년 홍어, 병어, 낙지, 왕새우 등 지역 수산물 11종에 대해 축제를 개최하는 해양생물 축제 보고다.      


홍어에 대한 신안군의 애정은 남다르다. 남획을 막기 위해 철저하게 조업을 관리하고 있고 흑산홍어썰기학교를 열어 매년 수강생을 배출하고 있을 정도다. 수산물 판로 개척사업 일환으로 시작한 흑산홍어썰기학교는 명절이나 주문량이 많은 시기에 홍어 써는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제때 공급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해 이를 개선하고자 만들어졌다.      


이와 관련해 박우량 신안군수는 “흑산홍어만 전문적으로 썰어서 수입이 보장되도록 홍어회코너를 마련하고 1만 원대의 저렴한 상품도 개발해 흑산을 찾는 관광객이 현지에서 홍어를 맛볼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홍어썰기학교 수료자에 대한 지원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했다.      


흑산도 홍어는 전통 조업방식인 걸주낙으로 어획돼 바코드로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2009년부터 10월부터 홍어 꼬리에 바코드를 붙여 홍어를 잡은 배와 날짜. 위판기록 등을 알 수 있도록 생산이력관리시스템을 시작했다. 이는 흑산 홍어를 가짜와 구별해 신뢰성을 높이고 명품으로 정착시켜 어민소득과 관광소득을 늘린다는 전략에서 나왔다. 흑산 홍어는 연간 최대 283톤이 잡히고 약 40억원의 위판고를 올리고 있다.     


목포 ‘오거리식당’ 쫄깃한 식감 활홍어 

전남 목포 상락동 오거리식당은 쫄깃한 활홍어와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어 필자가 가끔 찾는 곳이다.


필자는 2018년 7월 목포에서 박우량 신안군수와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땐 홍어가 아니라 민어가 주인공이었다. 흑산면을 뺀 신안은 역시 민어가 강세기 때문이다. 다음에 기회가 닿는다면 흑산 홍어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고 보니 목포엘 가면 가끔 들리는 곳이 ‘오거리식당’이다. 이곳 메뉴 중 ‘총리밥상’에는 활홍어가 올라오기 때문에 이것저것 맛보고 싶을 때면 찾는다. 예나 지금이나 목포 지역에서는 삭힌 홍어를 잘 먹지 않는다. 대신 홍어를 배에 싣고 목포에서 영산강을 거슬러 영산포로 이르면 적당히 삭아 절묘한 맛을 낸다.      


옛 영산포구 들어서면 삭힌 홍어냄새 가득  

    

전남 나주 영산포에는 홍어거리가 있을 정도로 삭힌 홍어가 발달돼 있다. 홍어거리 ‘영산포홍어’의 상차림.

옛 영산포구가 있던 자리에 40여 곳의 홍어 음식점과 도매상이 들어서 있다. 홍어거리에 들어서면 홍어 특유의 암모니아 냄새가 진동한다. 영산포는 목포와 달리 삭힌 홍어가 강세인 곳이다. 자산어보에는 ‘나주인들은 삭힌 홍어를 즐겨 먹는데 탁주 안주로 곁들여 먹는다’라고 기록돼 있다.     


영산포에 홍어가 발달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왜구 때문이다. 고려 말 흑산도를 비롯한 전라도 섬에는 왜구의 침입이 잦았다. 섬 주민들이 강을 따라 뭍으로 거슬러 피란을 해서 정착한 곳이 나주 영산포였다. 특히 흑산도 주변 영산도에서 피신 온 사람들이 많아 마을 이름이 영산포가 됐다는 설도 있다. 이들은 본능적으로 어로 활동을 계속했다. 


흑산도 인근에서 고기를 잡아 배에 싣고 돌아오는데 더운 날이면 다른 생선은 썩어서 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홍어만은 삭은 걸 먹어도 무탈했다. 그렇게 삭힌 홍어는 영산포 특산물이 됐다. 나주에는 홍어거리를 비롯해  곰탕거리, 장어맛거리 등 음식거리가 세 개나 조성된 맛 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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