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고싶을때. 가득 찬 나를 비우기 위해 떠나는 여행
한동안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고, 생각으로 꽉 찬 머리는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쉬고는 싶지만 집구석에 누워 있기는 싫었다. 가볍게 떠날 수 있는 여행. 갈 때도 가볍게, 돌아올 때는 더욱 가벼운 여행! 템플스테이를 했다.
부모님이 계신 전주에서 내가 머물고 있는 광주 사이에 있는 선운사를 선택했다. 바로 가는 것 보다 돌아가기는 하지만, 가장 짧은 이동경로이기 때문이었다.
템플스테이는 보통 체험형, 휴식형, 수행형으로 나뉜다. 체험형은 발우공양, 연등만들기, 야생녹차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계절 또는 사찰마다 조금씩 다르게 구성되어 있는데, 주로 주말에 진행되는 듯 하다. 수행형은 전체 일정 중 명상, 참선 등 수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나는 휴식형을 선택했다. 말 그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전체 일정 중에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 예불과 공양, 사찰 안내 및 사찰 예절 교육 외 시간은 자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템플스테이 참가를 위해서는 사전예약이 필수다.
www.templestay.com 을 통해 머물고 싶은 사찰을 고르고, 원하는 일정을 택하여 참가신청을 하면 된다. 예약 후에는 사찰로부터 예약 진행 상태 문자를 받게 된다. 기본 1박2일 일정에 5만원으로 진행된다.
예약을 하면 문자로 예약 진행 상태를 알려준다. 출발하기 전에 사찰에 정확한 일정 및 정보를 문의할 수 있다. 템플스테이 중 입는 수련복은 사찰에서 지급해준다. 개인수건, 세면도구, 속옷, 양말, 편한 신발을 준비하고 사찰이 산중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평소보다 따뜻한 옷을 준비해야 한다.
선운사는 3시부터 일정이 시작된다. 나는 여유롭게 출발해 2시 반쯤 도착해서 미리 수련복을 지급받고, 숙소 배정을 받았다. 기본 예절과 사찰안내는 4시반부터 시작이라 두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3시부터는 준비시간이고 진짜 일정의 시작은 4시반인 듯 하다. 모든 것에 여유가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마음을 비우고 쉴 수 있다.
지은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숙소. 배정받은 방에는 '[正語]'이라고 쓰여있다.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끄는 올바른 여덟가지 길이라는 팔정도의 하나로, 사제의 진리를 깨달아 정견에 맞는 바른말만을 하는 일이라고 한다. 조금 어렵긴 하지만 결국 '바른 말을 하자' 인 듯 하다.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정리하고 가만히 앉아 문 밖에 펼쳐진 익숙하지 않은 풍경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유가 있어 옆방에서 차를 만드는 일을 잠깐 도왔다. 커피는 좋아하지만 차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 녹차와 홍차 뿐인줄 알았는데, 황차?를 만들고 계셨다. 발효시키지 않고 바로 열을 가해 만들면 녹차가 되고 발효를 시키면 다른 여러가지 차가 된다고 한다. 황차는 반발효차라고 하는데 차를 내리면 노란 빛깔이 난다고 한다.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서 사찰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토요일이 부처님 오신날 이라고 사찰 내에 엄청나게 많은 연등이 있었다. 불교는 아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기원이 담겨있는 연등을 마주보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사찰에서의 기본 예절을 배우고, 사물의식을 관람했다. 사물은 범종과 법고, 목어, 운판을 말한다. 법고는 큰 북이다. 북소리가 멀리 퍼지는 것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이 널리 퍼져서 모든 이들에게 참다운 진리를 전하여 준다는 뜻이 있다. 목어는 잉어모양으로 생긴 나무 물고기다. 물 속의 중생에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히는 의미를 갖고 있다. 운판은 구름 모양의 판이다. 허공에 날아다니는 모든 날짐승에게 전하고 그들의 괴로움과 아픔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범종은 흔히 절에서 볼 수 있는 큰 종이다. 천상과 지옥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울린다고 한다.
사물의식 후에 저녁예불을 했다. 저녁예불 후에는 스님과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낮에 만들었던 것과 같은 황차를 마셔볼 수 있었다. 스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불교는 여러 부처님과 여러 보살님들을 신으로 모시는 종교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자신을 수행하기 위한 길 임을 알게 되었다. 절을 하는 것도 무릎과 팔꿈치, 이마의 신체 5곳을 바닥에 닿게 해서 자신을 낮추기 위함이라는 것도 알려주셨다.
새벽 4시 반에 예불에 참가해야 해서 아홉시쯤 이른 잠을 청했다. 신기한 것이, 보통 4시면 제일 깊게 잠들어 있을 시간이지만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소리마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새벽예불에 참가하고 조금 쉬었다가 아침공양을 드렸다. 다음은 걷기 명상 순서였지만, 비가 많이 와서 가지 못했다.
도솔암까지 걷는 길이 좋다고 들었는대.. 가지 못해 안타깝기도 했지만 왠지 다음에 또 올 수 있는 이유를 만든 것 같기도 했다. 덕분에 푹쉬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다가 점심공양 후에 머물렀던 숙소를 정리하고 청소를 했다. 다 정리하고 떠나려다가 전날 차담을 나눴던 스님과 커피 한 잔 하게 되었다. 스님께서 커피 원두를 선물 받았는데 전날 차 마시면서 커피를 더 좋아한다고 했던게 생각나셨다고 한다. 스님이 직접 갈아서 내려주신 커피를 마시고 예쁜 팔찌도 선물로 받아서 일상으로 돌아왔다. 환경은 바뀌었지만 아직도 마음은 그 곳에서 얻은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다음 번에 또 쉬고 싶을 때.
가득 차 있는 나를 비우고 싶을 때.
못 걸어본 길을 걸어보고 싶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