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도 막지 못한 라니카이의 매력
3일 차, 2018년 2월 19일
① 맥도널드
② 푸드랜드
③ 라니카이
④ 숙소 수영장
⑤ 호텔 세탁실
⑥ 도요타 캠리 초간단 시승기
⑦ 푸드랜드
⑧ 메모지를 삼킨 차원의 문
① 맥도날드
맥도날드가 코트야드 바이 매리어트 오아후 노스쇼어 안에 입점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호텔 안에는 스타벅스가 있고 맥도날드는 밖에 독립된 건물로 있다. 스타벅스는 불매에 걸려 눈길 한 번 안 줬다. 아내와 아들이 컵라면을 먹겠다고 했을 때 호텔 측이 뜨거운 물을 제공하지 않아 스타벅스에 청한 적은 있다. 그들은 아시아에서 온 관광객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땡큐!
숙소는 뒷문도 있어 그리로 나가면 바로 맥도날드인데 그 점을 놓쳐 빙 돌아갔다. 운전할 줄 안다고 외국이 우리 동네가 되는 건 아니다.
아들이 카운터 앞에 설치된 전광판으로 주문했다. 아내와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버벅댈 동안. 아이들의 직관성은 탁월하다. 터치 화면에 의한 주문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불편했다. 카테고리를 서너 번 이상 타고 들어가야 한다. 점원을 앞에 두고 말 몇 마디면 끝날 주문을, 스크린에서는 누르고 고르고 들여다본 뒤 재차 눌러야 했다. 이게 편하다고 하는 사람만 이걸로 주문하는 세상이면 좋겠다. 바둑 프로그램이 이세돌 이기고 자율주행 프로그램 자동차가 돌아다닌다고 AI가 인간의 판단을 대신하는 게 우월하거나 옳다고 믿는 이들이 있는데 나는 그와 같은 선동에 반대한다.
물론 사람도 교통사고를 낸다. 그건 대개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결론 난다. 자율 주행 차에 의한 교통사고는? ‘자율 주행의 어리석음?’ 형용모순 아닌가? 스크린으로 처리되는 인공 지능과 사람이 같이 주문을 받는다면 나는 사람이 주문을 받는 줄에 설 것이다.
마지막 결제 창에서 우리는 마침내 장벽에 부딪쳤다. 캐시로 계산하길 원한다고 하자 직원이 친절하게 마지막 항목을 처리해줬다. 그녀는 어린이처럼 키가 작고 빼빼 마른 유색인종이었다. 번호판을 두고 식탁에 앉자 잠시 뒤 직원이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줬다. 그녀는 굉장히 뚱뚱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다. 당황스럽게도 커피를 안 갖다 줘 어필을 하자 그제야 귀찮다는 듯 뽑아줬다.
내가 고른(그게 뭔지 알고 고른 건 아니다) 햄버거는 짰다. 아내와 아들이 고른 아침 메뉴는 느끼하고.
매장은 깔끔했다.
잔디밭 너머 건물이 코트야드 바이 매리어트 오아후 노스쇼어. 자동차들이 주차된 오른쪽에 뒷문 출입구가 있다.
다시 봐도 깔끔하다.
② 푸드랜드
숙소에서 3분 거리에 있어 틈만 나면 방문했다. 터틀 베이 리조트 주변엔 아무것도 없다. 해변에 깔 매트와 물놀이 때 신을 아쿠아슈즈를 샀다.
③ 라니카이
작년에 세웠던 곳에 똑같이 주차하는데 경찰이 와서 주차 금지니까 빼라고 단호한 어조로 명령했다.(권유가 아닌 명령이었다. 내용이 거친 미드에서 봤던 경찰관 모습 그대로였다. 선글라스를 낀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불과 1분 전만 해도 없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저택의 한 시민이 경찰관에게 땡큐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불쾌했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경찰관이 경고를 해준 덕에 우리는 딱지를 끊지 않아도 됐다. 의문이 없었던 건 아니다. 작년엔 됐는데 올해는 왜 안 된다는 걸까? 혹시 관광객을 위한 비공식적 주차 정책에 변화가 생긴 걸까? 무조건 금지시키기로? 주차할 곳을 찾아 빙글빙글 돌다 보니 동네 전체가 주차 금지 푯말로 도배돼 있었다. 땅에 박힌 푯말이 아닌, 임시로 갖다 놓은 플라스틱 푯말. 도로 보수 공사를 한다는 날짜가 명시돼 있었고 오늘까지인가 내일까지였다.
아내와 아들만 내려주고 나는 언덕 넘어 카일루아 비치 파크 주차장에 주차한 뒤 라니카이까지 걸어갔다. 불편하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가까웠고 다들 그렇게 걸어 다녔다. 다만 어제 내린 폭우로 ‘인도’라고 불릴 만한 데가 흙탕물에 잠긴 점은 불편했다. 카일루아 비치는 흙탕물이 범람해 아예 수영 금지 조치가 내려진 듯했다. 경찰관 둘이 입구에 딱 버티고 서서 물놀이를 시도하려는 백인들에게 주의를 줬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10년 넘게 운전하면서 경찰관과 대면한 적이 서너 번 밖에 없다. 그 서너 번조차 음주 단속이어서 그걸 빼면 제로로 수렴된다. 속도위반에 걸린 적은 있지만 그조차 단속 카메라에 찍힌 거지, 경찰관한테 걸려 딱지를 끊은 게 아니다.
하와이에서는 5일 운전하는 데 경찰관과 두 번 접촉했다. 라니카이에서 차 빼라고 한 번, 폭우가 내린 밤 도로가 끊겼다며 돌아가라고 한 번. 미국의 경찰은 꽤 열심히 일한다는 느낌이다. 우리나라 경찰은 어디서 뭐 하는지 모르겠지만.
라니카이 해변에 매트를 깐 아내와 조우했다. 물놀이를 즐겼다. 라니카이는 역시 완벽했다. 춥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도 즐기는 분위기여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었다. 어제 내린 비의 부유물이 유일하게 아쉬웠다. 도로가 끊길 정도의 폭우였으니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카일루아 비치 파크는 아예 들어가지도 못할 지경이었니까.
카메라를 안 가져가 아내의 핸드폰으로 찍었다. 채도와 선예도가 높다.
숨을 참고 자유형을 하기 때문에 걸어 나올 때는 저런 표정이 된다.
④ 숙소 수영장
아내와 아들은 바로 수영장에 가고 나는 숙소에 들어가 정리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갔다. 아들은 폭포 아래 들어가 숨을 참는 터프가이 놀이를 했다.
⑤ 호텔 세탁실
아내가 호텔 세탁실을 이용할 동안 나는 렌터카를 찍었다.
코트야드 바이 매리어트 오아후 노스쇼어 1층엔 투숙객을 위한 세탁실이 있다.
세제도 구입할 수 있다.
동전은 쿼터(4분의 1 달러)만 쓴다. 1달러, 즉 쿼터 네 개를 투입해야 한다.
아내는 세제를 챙겨가 1달러를 아꼈다.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⑥ 도요타 캠리 초간단 시승기
도요타 캠리는 조용하다. 편안하다. 다루기 편하다. 풍절음이 ‘오오오오오옹’ 하면서 곱게 갈린 소리를 냈다. 특유의 장인 정신이 거기 농축된 것 같았다. 그게 ‘우월’한 거라는 말은 못 하겠다. 왜냐하면 나는 너무 편안한 나머지 졸렸으니까. 캠리를 운전한 뒤 귀국해서 아반떼 HD를 모는데 출렁대는 깡통에 올라탄 느낌이었다. 맨 앞줄에서 신호 떨어져 밟으면 쌩 하고 달려 나가는 게 도요타 캠리보다 나은 느낌이었다.(현대차가 좋다거나 옹호하는 게 아니다) 아내도 ‘깡통’ 같다는 느낌에 동의했다. 뒷좌석에 탄 아들까지. 무언가 텅 ― 빈 수레에 올라탄 느낌적 느낌? 그제야 나는 내가 카트 타입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차체가 가벼워 밟을 때마다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차. 패밀리카의 반대말. SUV는 절대 그럴 수 없고. 포르쉐가 세단을 내놓았을 때 그들이 포기해야 했던 운동 성능 같은 것 말이다.
맞다. 대개의 남자들은 그런 차를 좋아할 것이다. 현실이라는 장벽 앞에서 깎고 깎여 흉기차 따위로 타협을 보는 거겠지.
2018년에 출시된 모델이 맞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범퍼 디자인이 사무라이 투구를 연상시킨다.
넝쿨 담장 너머에 수영장이 있다.
총 주행거리가 3455마일. 그중 100마일 정도를 내가 탄 시점에서 찍은 사진이다. 대시보드 위의 종이는 호텔에서 제공한 주차권이다. 3성급 호텔의 위엄. 미국인들은 지극히 실용적이다.
버튼 시동 키를 기술 발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열쇠 방식이 더 좋았다. 닛산 알티마를 교체한 것도 버튼 시동 키의 배터리가 떨어져서였다. 열쇠 방식은 그럴 염려가 없다. 2018년 신차가 열쇠 방식인 건 렌터카에 납품된 차량이기 때문일 것이다.
버튼 구성이 현대차와 유사하다. 왼쪽 도어 위쪽을 보라. 사이드미러가 A필러가 아닌 문에 달렸다. 덕분에 A필러에 의한 사각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현대차가 이걸 따라 한다고 들었다.(물론 도요타를 따라 한다는 설명은 없다)
도요타 캠리는 여러 면에서 이것을 따라가려는 현대차를 떠올리게 했다. 잘 따라갔느냐? 그렇지는 않다. 현대차가 도요타 카피를 인정하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현대차는 항상 독일 럭셔리 브랜드가 자기들의 지향점이라고 선전한다. 그러면서 유럽 판매량은 절대 안 밝힌다. 항상 미국에서 상 받았다고 자랑한다. 미국에서 일어난 좋은 일에 관련된 뉴스가 포털에 도배된다. 기레기들에 의하면 미국에서 열리는 각종 자동차 상을 휩싸는 건 항상 현대차다. 그렇게 열심히 빨아주다 미국에서 에어백 안 터진 사망 사고로 조사를 받는다고 하면 제일 먼저 국내에 돌아다니는 현대차와는 무관하다고 오리발 내민다. 앞뒤뿐 아니라 양옆도 안 맞는 자들이다.
심심하다는 평가가 싫었는지 면을 복잡하게 썼는데 그런데도 심심하다. 정말 놀라운 디자인이다.
도요타 캠리의 가장 놀라운 점은 효율이었다. 리터당 거의 12km의 연비를 찍었다. 이 연비는 아반떼 HD보다 높은 수준이다. 내가 탄 건 렌터카로 보급된 깡통 트림이다. 국내에서 팔리는 도요타 캠리는 하이브리드이고 고급 옵션이 장착된 트림일 것이다. 연비 또한 월등하겠지? 값어치는 충분히 할 것이다. 단 도요타 캠리에서 ‘운전의 재미’를 느끼려는 건 무모한 도전이라 할 수 있겠다. 어떤 의미에선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여성 운전자에게 잘 맞는 차가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편안하고, (운전하기) 편하니까. 하루 타본 닛산 알티마보다 나은 느낌이었다. 편안하단 측면에서는.
초반 가속은 아반떼 HD보다 굼뜨다. 에코 기능이 강제로 걸린 영향인지 모르겠다. 해제 방법을 몰라 그냥 타고 다녔다.(그런 기능이 있다면 말이다) 그 덕에 연비 12km를 찍을 수 있었을 것이다. 효율을 높이려면 초반 가속 굼뜸은 감수해야 한다.
후방 카메라 기능은 확실히 편했다. 이거 쓰다 안 되는 거 타니까 후방 주차가 불편했다. 이놈의 감각은 다운 그레이드가 안 돼
가장 불편한 점은 경고음이었다. 운전 벨트를 안 하면 경고음이 울리는데 점차 고조되는 방식이다. 운전 벨트를 할 때까지 삑삑거린다. 운전 벨트를 안 하셨다고 알려주는 수준이 아니라, 운전 벨트 안 하면 '인마, 넌 운전할 자격이 없어' 하고 호통 치는 수준이다. 뒷좌석에 탄 사람까지 모두. 한 번은 뒷좌석에 탄 아들이 운전 벨트를 했는데도 경고음이 계속 울려 차를 세운 적이 있다. 아들의 판단으로는 왼쪽에 앉다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왼쪽 운전 벨트를 채우지 않아 그렇게 된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강제성은 굉장히 불편하다. 인간의 자유 의지를 제거하는 측면이 있다. ‘운전’이라는 상황도 여러 가지다. 주차장에서 아주 잠깐 운전할 때는 자의에 따라 안전벨트를 안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뒷좌석의 경우, 상황에 따라서는 응급 환자를 옮겨야 할 때도 있을 텐데 그때도 미친 듯이 경고음을 울리겠다? 경고음을 줄 수는 있다. 경고하는 게 옳다. 하지만 경고음을 적당히 제공한 뒤 멈춰야 한다. 차가 인간을 삼킨 게 아니라, 인간이 차를 탄 게 맞다면.
이것은 쉐보레 에퀴녹스. 차를 바꿀 때가 돼서 진지하게 고려한 차종 중 하나다.
GM이 군산 시민을 인질 삼아 정부를 협박하는 개 짓만 안 했어도 질렀을지 모른다.(글로벌 마피아, 니놈들 차는 죽을 때까지 안 산다. 유언장에 명기할 거다. GM 차는 절대 사지 말라고. 내 주위에 글로벌 마피아 브랜드 차를 고민하는 사람 있으면 도시락 싸고 따라 다니면서 말릴 거다. 자본주의 메카에서 탄생한 기업이 정부를 협박해 돈을 타내려는 반자본주의 망동을 태연히 저지르는 걸 보면 공산주의만큼이나 자본주의도 허황된 이론에 불과하단 생각이 든다)
⑦ 푸드랜드
컵라면을 비롯한 군것질거리를 사 먹었다.
외국에서 장을 보는 게 은근히 재미있다.
신기한 게 많아서. 롱바디 버전 소다?
코카콜라보다 많은 게 스타벅스였다. 이 냉장고 하나를 통째로 쓰고 있었다. 콜라는 다이어트와 그냥 콜라 두 가지인데, 스타벅스는 종류도 엄청 많다.
해마다 노벨상 시즌이 되면 어느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여론이 형성된다. 그런 결과를 바라기에는 우리나라 사람들 독서량이 현저히 적다. 도서 판매량은 훨씬 더 적다. 우리나라엔 사실 대중문학이란 시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척박한 문화 토양에서 노벨문학상이란 거목이 자라길 바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시각이라 본다.
오늘은 기분 좋게 군것질.
⑧ 메모지를 삼킨 차원의 문
숙소로 돌아와 와이파이를 하면서 각자 시간을 가진 뒤 아내는 내일 일정을 짰다.
아내는 운전 중 구글 맵을 조작하는 일에 부담을 느꼈다. 우리가 가기로 한 곳의 포인트를 정확히 찍기를 원했다. 운전 중 조작하기 쉽도록. 나는 가고 싶은 장소를 마킹해 아내한테 지메일로 공유했다. 내일 갈 장소를 넘버링 한 뒤 의견을 주고받았다. 아내는 새로운 의견을 부담스러워했다. 기껏 짰는데 다시 짜야하니까. 투덜거리면서 넘버링 한 (호텔 이름이 인쇄된) 메모지를 찾는데 사라졌다. 아내는 가방에 넣어뒀다고 하는데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새벽 2시가 넘도록 우리는 진지하게 메모지의 행방을 쫓았지만 실패했다. 포기하고 넘버링을 다시 해야 했는데 그 자체로 아내는 마음이 상하고 말았다.
메모지는 다음 날 저녁 아들에 의해 발견된다. 아들에 의하면 침대 사이 스탠드가 설치된 탁자 위에 있었다고. 우리가 못 본 게 아니다. 아들이 장난친 것도 아니고. 일정을 적어놓은 메모지가 장난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우니까. 장난을 치려면 아빠의 차 키 정도는 숨겨야 했을 것이다. 목숨을 담보로 짜릿하게. 게다가 새벽 3시까지 메모지를 찾을 동안 아들은 자고 있었다. 아들은 하와이에서도 키가 크느라 틈만 나면 잤다. 그래서 ‘또자’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사건의 진상은 이렇다. 종이는 차원의 문으로 쓱 사라졌다 나타난 것이다. 아내가 베드 배스 앤드 비욘드에서 신중하게 고른 포크 하나가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작아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