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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진 Feb 19. 2024

정작 구원받아야 할 나의 영역

결국은 그냥 남편이 꼴보기 싫었던 거네. 


20240207 /  15:17-35


묵상

엘리바스는 욥에게 ‘내게서 들으라’며 자기 이야기를 들어야 할 근거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결국 그가 하는 얘기는 지혜로운 자들을 통해 알게 된 귀한 말이라는게 악인의 멸망과 심판이고, 악인들은 하나님을 대적했기에 멸망과 심판을 받는다 한다.


결국 그는 자기가 진짜 너무 귀한 정보를 알고 있으니까 욥이 엘리바스 얘길 꼭 들어야 하는데, 엘리바스 이야기에 나오는 하나님을 대적한 이가 욥과 같다는 말인 거다.

당시의 통념같은 것이 한 존재의 케이스를 대변할 수 없음을 욥기는 말하는 거 같다. 

그런데 엘리바스는 통념에 자꾸만 욥을 어떻게든 끼워 맞춘다. 


그들은 분명 욥이 어떤 사람인지 보고 알고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욥의 의로움, 하나님을 사랑함 같은 것들

그런데 욥의 상황이 달라지자 이제 욥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

일반적 통념안에 비추어 그를 죄인을 만드는 걸 보면 인간 사이의 신뢰가 얼마나 빈약한가를 알게된다.


잘 나갈땐 친구고 아닐 때는 원수고 말이다.


전남편하고 살때 경제적으로 잘나가는게 아닌데 사회적으로 잘나가는 부부가 되어있었다.

예술+귀촌이라는 개념이 당시 가정에 성립되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하기 전 남편은 섬세한 남자였다. 

무식한 권위적인 남자가 아니였기에 많은 이들이 그를 좋아했었다.

우리는 사람들의 어떤  욕구 같은 것을 충족시키는 부부였던 거 같다.

그런데 전 남편은 외도를 했고, 나는 조용히 인내하며 가정중수를 하는 캐릭터가 못되었다.

이제 예술+귀촌이라는 개념이 외도+집착이라는 개념으로 바뀌어 나의 구질구질함까지 더해졌다.

그러자 정말 많은 사람들이 후두둑 떨어져 나가는 걸 봤다. 


어떤 이는 그 안에서 나의 새로운 연애가 관심사여서 관계가 유지되었다가 

흥미로운 정보가 자신에게 잘 들어가지 않으니(내가 잘 얘기하지 않으니) 대놓고 정말 그 부분을 자기에게 안알려 준다며 화를내고 관계가 끊어졌다.

전 남편 외도 + 그를 향한 내 집착 + 고난을 구질구질하게 견디는 나 + 갑자기 튀어나온 하나님까지

아주 가까웠떤 이들이 멀어졌고, 그 중 몇 은 나와 관계를 맺다가 전 남편 쪽으로 붙었다가 그랬다.


그때 인간 사이의 신뢰가 얼마나 빈약한가

사람들이 결국 나를 좋아하던 것은 그들의 무언가가 채워지기 때문이란 

결국 나란 존재를 놓고 나의 긍정도 부정도 수용하며 사랑할 수 있는 이는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달았던 거 같다.


욥은 지금 이 가운데서 그런 것들을 느끼고 있을거 같다.


본문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게 바로 ‘내가 네게 보이리니 내게서 들으라(17)’이다.


하나님을 얘기하지만 엘리바스는 결국 자길 하나님 자리에 놓고 자신한테서 들으라 한다.


당시에 정말 ‘내게서 들으라’하던 이들이 있었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기 전까지는 그 언니가 시키는대로 전 남편의 외도에 대처했었다.

그런데 그 역할에 언니도 지쳤고 나도 따라가는게 버거웠다.

나로서는 외도로 인한 감정을 전 남편에게도 주변에도 전혀 티내지 않고 1000배를 하며 인내하고 

집에서는 예쁜 옷을 입고 남편을 아무일 없이 맞이할 힘이 내게 없었기 때문이다.(언니가 알려준 방법)

결국 가장 친했던 그 언니하고 끝이났다. 


오갈곳이 없고 있던 사람들은 떨어져 나갔고 전 남편은 점점 이상해져서 너무 무서워서 하나님 살려주세요 하던게 여기까지 오게 하셨다.


내가 그때 결국에는 ‘외인은 들을 수 없는 세상 귀한 지혜를 가진 누군가의 말’이 아닌

말씀’을 들은 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런데 끔찍한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살아난 인생이면서

내 남편에게는 쉽게 ‘너는 내게서 들으라’(17)한다는 거다.

심지어 나는 ‘내가 하나님과 한 경험이 있고 나는 매일 말씀을 보니 내게서 들으라’하는 거다.


나는 과연 말씀을 들려준 것인가? 아니다.

말씀으로 포장한 나를 듣고 따르길 바라는 악함이 내 안에 있다.

남편이 철저히 통제되길 바라는 악,

오늘도 남편에게 ‘내가 하나님이라면 면접을 앞두고 말씀도 안보고 기도도 안하는 오빠한테 뭘 합격을 시켜주고 싶겠어?’라고 했다. 

남편이 하나님을 찾지 않음이 애통한게 아니라 

남편이 중독에서 벗어나지 않는게 그저 꼴보기 싫을 뿐이다.


그런 내가 엘리바스랑 다를게 없음이 큐티를 하니 보인다.

그런데 돌아서면 나는 또 엘리바스가 되어 있겠지. (젠장 ㅠ _ ㅠ)


하나님이 나에게 ‘혜진아, 남편이 네 뜻대로 되길 바라며 날 이용하는 너는 괜찮고?’라고 하시는 거 같다.

이런 내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한다.

간절히 기도해야 할 건 남편 구원을 위한 것도 있지만 나의 이루어 가야하는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1.회개기도 하는 것

2.남편 면접준비를 잘 돕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엘리바스와 같은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가장 사랑해야 할 남편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그에게 하나님을 가장한 내 말만 강요하고 있습니다. 주님, 남편이 내 뜻대로 되길 바라는 제 마음과 생각이 구원되길 기도합니다. 남편이 보일 때마다 입을 닫고 나를 위해 기도할 수 있게 절 이끌어 주세요. 이 모든 말씀 우리 모두가 결국은 보아야 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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