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진 Feb 19. 2024

가난이 무서웠던 거였어.

솔직하게 기도하자.

20240207수 / 욥 13:1-28

> 묵상

욥은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자기도 듣고 보았다 한다. 그리고 여전히 그는 자신에 대해 항변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숨지 않을테니 자신에게 손을 대지 마시고 자신을 두렵게 하지 말라고 한다. 

죄악이 있다면 알려달라 하신다. 결국 친구들이 예상하는 욥의 죄를 욥은 인정할 수 없고 자신이 진짜로 죄가 있다면 그걸 하나님이 알려달라 하는 거 같다.

욥기를 묵상하면서 욥은 친구들의 얘길 끝까지 듣고 일일이 다 대답해 주고 있으며

하나님에게도 포기치 않고 말하고 있다는 거다.

난 욥이 살고자 하는 의지가 결국엔 있었던게 아닐까 싶다.

어젠 부부목장을 마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숲에의 이기적인 태도, 그걸 반응하는 남편의 이기적인 태도 그 사이에서 결국엔 이기적으로 구는 나 엉망진창이 되었다.

아이들은 자러 들어가고 난 남편 붙잡고 하소연을 하려다가 어차피 타자에 관심이 없는 남편이라서 말았다.

그리고 울고싶지 않은데 눈물이 엄청 났다. 지금도 눈물이 난다.

주방바닥에 앉아 울고 있는데 울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 ‘자기연민이네.’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짜증이 났다.

이렇게까지 반응할 일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가족들의 이기적인 태도들로 내 생일이 엉망진창이 되어서가 아니라

나는 남편을 변화시킬 힘이 하나도 없고,

그런데 남편은 무기력하고 게다가 수입이 더 좋으니 용접쪽 일 한다고 용접 배워놓고 봉급이 훅 떨어지는 직장인 사회복지만을 주장하고 있고

그렇다고 내가 일하는게 맞는건지도 모르겠는 상황에서 

겨우겨우 모아둔 돈을 까먹으면서 살거나 아니면 이제 적금도 못넣고 부모님 드리던 용돈도 끊고 모든 변동비를 다 줄여야 겨우 살까 말까 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게 너무 두려웠던 거였다.

난 가난이 무섭다.

예전엔 가난이 실체가 없는 거였는데 지금의 나는 가난의 실체를 안다. 

그리고 가난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막연함은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몇 년전 바우처로 별에가 잠깐 댄스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모든 아이들 새옷같아 보이는 옷에 예쁘게 하고 다닐 때였다.

난 별에에게는 새옷을 사줘본 적이 한 번인가 밖에 없다. 

별에가 그런데 춤을 추면서 계속 발이 아프다고 했었다. 

나는 얘가 또 운동화가 마음에 안드니 변덕을 부리나 했다. 그래서 그냥 “별에야, 진짜 발 아픈거 맞아? 이 운동화 싫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거지?”라고 물었더니 아이가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수업 받는 별에를 보니 운동화를 꺾어 신은채 까치발을 하고 춤을 추고 있었다.

진짜 운동화가 작아 발이 아픈 거였다. 

가난은 진안에 있을 때가 더 가난했고, 가난이 불편하긴 해도 내게 정서적 데미지를 준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 날 나한테 뭐랄까 터닝포인트 같은게 된 날이었다.

그 날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느꼈는데 뭐라고 해얄지 모르겠다. 학원이 끝나고 달려가 운동화를 사줬다. 

그런데 그것조차 세일하는 것에서 고르길 바라는 나의 마음, 그리고 그걸 눈치채고 저렴한 운동화를 사는 내 딸

필요한 것을 사야할 때 “엄마 이건 너무 비싼거 같아. 그치?”라고 꼭 말하는 별에

난 가난이 싫다. 가난이 주는 위축감, 가난해서 나라에서 받는 원조, 그리고 그것에 의지하고 집착하게 되는 것

전 남편이 양육비를 주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 그 돈이 없으면 생활이 아예 안되는 것

뭔가 능동적이 되려고 하면 자동적으로 ‘이러다 차상위 계층이 끊어지면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들

결국 난 돈이 무섭고 돈이 두렵다. 

돈이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내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해보기보다 못해보는 때가 많아 포기하게 하는 지를 안다.

예전에는 내가 욕심없는 엄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에게도 욕심이 있었다.

그 해 거의 매 달 울었던 거 같다. 오빠한테 그랬다. 

오빠, 난 그냥 꼭 필요한 걸 필요할 때 사고 싶다고

애기 팬티 구멍이 났는데 그것도 예산 안에서 언제 사야하는 걸 기다리는 것 좀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돈이 많으면 애들 신발 좀 발이 작아 아프기 전에 사줘보고 싶다고 말하고 울었다.

나의 가난은 나의 죄 때문인가? 

나는 모르겠다.

내가 오늘 알겠는건 내가 이 항변을 하나님에게 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리스도인이니까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만 했지 가난이 힘들어 죽겠으니 하나님 나 좀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달라 항변해 본 적이 없다. 

하나님께 다 말해야 겠다. 하나님께 실컷 하소연을 해도 되는구나를 알게 해주는 욥기에 감사하다.

> 삶

1.서러우면 남편말도 하나님에게 말하기 

2.이력서 쓰는 것들 한템포 쉬고 실컷 기도하고 묵상하기

> 기도

하나님, 저 좀 불쌍히 여겨주세요. 지긋지긋한 가난속에서 그래서 남에게 베풀며 십일조내고 성실하게 살아온 인생입니다. 그런데 닥치지 않은 돈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큽니다. 주님, 제발 남편이 안정적이고 나은 수입을 벌게 도와주세요. 그런데 전 남편의 삶이라 제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가 없고 어디에 주님 뜻이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더더욱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습니다. 그러니 어느 쪽으로 가던지 제가 주님을 의지하길 바랍니다. 돈이 지금보다 더 없어지는 때가 온다 하더라도 주님 제가 두려움 가운데 있지 않게 이끌어 주세요. 비참하지 않게 가난하며 고결할 수 있는 법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네요. 전 가난이 비참한 자입니다. 저는 비참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난 따위에 저라는 존재가 비참해지지 않게 절 지켜주세요.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이 모든 말씀 나를 넘어서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작가의 이전글 패러다임의 절대성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