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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여행기 - 1

by 소류

근 한 달 반 여행 중 보름이상을 인도에서 보낸 나는,

여행오기 전 괜한 짓을 한 바람에 인도에 대한 두려움이 반은 차지하고 있었다.


그 괜한 짓이란.... 블로그 뒤지며 사전 정보 얻기!라고 해둘까.


블로그나 카페에는 온통 [더러움] [사기] [도둑] [먼지] [매연]등등... 이런 안 좋은 것들 뿐이었고

조심하라는 말이 빼곡했으며

여자 혼자 위험하지 않을까.

작년에 인도 다녀온 동생의 말과

재작년에 인도 다녀온 후 현재는 미국에 사는 후배 녀석까지 여행 전날 전화해서는

누나 조심해야 해. 진짜 조심해야 해. 를 몇 번이고 숙지시켜 줬다.

그러나 나 역시 누군가가 인도 어땠어?라고 물으면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똑같이 저렇게 말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올해 2-3월에 걸쳐서 다녀왔으니... 6개월쯤 지난듯하다.


숙소.....


화장실변기는 물 내리는 게 없어서 물을 퍼서 부어야 했고,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서 리셉션에 미리 샤워한다고 말하면 양동이에 물을 데워다 줬던...

산제이가 소개해준 바라나시의 싱글룸...


처음에 그것도 모르고 밤 11시쯤에 귀가해서는 "지금 샤워해도 되죠?"라고 했더니 15분쯤 기다리란다.

[온수기를 켜고 나면 15분쯤 기다려야 하는 시스템이구나.]라고 맘대로 생각하고

대충 그즈음 지나서 샤워하는데 여전히 찬물....

찬물...

차가운 물...

후덜덜.....

오돌오돌 떨면서 샤워를 마칠 무렵, 누군가 밖에서 똑똑... 노크소리가 난다.

산제이인가...? 문을 열어준다.

리셥센 직원이 양동이에 물을 받아서 서 있다.

-웬일?

-핫 워터..

-피니쉬 샤워

-그럼 이거 내일 쓰던지...

-이 물은 내일까지 따뜻할 수 있는 마법의 온수??????

얼덜결에 받아둔다.

아.... 벌벌 떨며 샤워했는데... 그런 의미의 15분이었던 거였어.......


그러한 숙소에서의..

그러한 나날을 보내면서...

다시금 눈감고 회상해 보면...


아... 모기... 그놈의 모기.....모스키또...

창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방안....

그 방안을 휘젓고 다니는 모기들..

윙윙거리는 공포스러운 모기소리..

더럽고 지저분하고 낡아빠진 담요... 베개...

침낭이 없었더라면 하루도 편하게 잠을 이루지 못했을 테지...

몇 번이고 침낭을 가져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완소... 보물.... 침낭!!!!





침낭이 정말 완소였던 건 이런 호텔 때문만이 아니다.

정말 눈물 나게 감사했던 툰드라에서 침낭의 대활약.

아그라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표가 매진되어

아그라 -> 툰드라로 로컬버스를 타고 가서

툰드라 ->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를 탔다.

로컬버스에서 내려 툰드라 기차역을 향해 걷는다.

길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른다.

인도에 도착하고도 툰드라라는 곳이 지도상에, 인도의 어딘가에 있었는지 조차도 몰랐다.

그냥 지나가는, 혹은 서 있는 사람에게 기차역이 어디냐고 묻고, 듣고 싶은 말만 들은 후 길을 따라 걸어갈 뿐..


20리터 배낭 하나와 이들에게 나눠주려고 가져온 많은 짐들.

한국에서 떠날 때, 시민단체에서 받은 로고가 박힌 티셔츠와 모자들과 2002년 월드컵 열쇠고리들, 엄마가 버린다고 한 낡은 옷가지들을 가방 하나 가득.

지퍼가 안 잠길 정도로 꽉꽉 채워 넣고 들고 왔더랬다.

내 개인 짐은 고작 20리터 배낭 하나.

바라나시 가기 전에 이것들을 정리하자 싶어서 길을 걷다가...

터벅터벅 걷다가...

저녁밥을 짓고 있는 모녀와 눈이 마주친다.


- 나마스떼

- 나마스떼. 밥 좀 줘요. 배고파요.


바디랭귀지를 섞어서 말한다.

엄마가 손짓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짐을 내릴만한 곳이 없다. 그냥 바닥일 뿐이다. 집도 아닌 그냥 움막이다. 창문은커녕 문도 없다.

나무기둥이 천막을 지탱해 줄 뿐이다. 아마도 이들은 집시쯤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 동네가 모두 이런 집들?

아무렴 어떠랴. 그런 건 이미 신경 안 쓴 지 오래다.


간의 침대도 아닌, 그물침대 같은 걸 가져다준다.

손님대접이 극진이다. 감사하다.

대충 짐을 내려놓자, 나를 신기하게 보는 동네꼬마들이 하나 둘 몰려든다.

캡모자 하나씩 꺼내서 나눠줘 본다. 나름 GAP이고 POLO다.

신났다. 입이 찢어진다.

서로 바꿔 써보기도 하며 자기들끼리 신나게 떠들더니 나한테 웃어 보이고는 어디론가 가버린다.

그러고는 마치 구름 때처럼 몰려드는 사람들.허거거걱....

말을 걸어보라고 하는 신호,

미소를 보이는 사람들,

나를, 아니 이 움막을 에워싸고는 이 많은 사람들은 나를 유심히 바라본다.

그러나 섣불리 나서서 말을 거는 사람은 없다.

집주인아줌마는 가라고 소리를 지른다.

-저 여자는 누구지???? 뭐 하는 여자지???

웅성거림 속에 저렇게 말하는 것이 들리는 듯하다.

그들 눈동자는 호기심에 더욱 빛난다....


단순한 여행객입니다.…


집주인아줌마는 가라고, 정신 사납다고, 소리를 지른다.

몇 번이고 큰소리를 지른다.

나는 민폐 같아서 안 되겠다 싶어 가방 하나를 들고 움막과 좀 떨어진 곳으로 와서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낸다.

그리고 장사를 시작한다!!! 하하하

그러나!!

나의 무딘 돈개념으로 한 장당 1루피에 판다...ㅠㅠ

원래 계획은 나눠주는것 이였으나 이들은 결코 거지가 아님을 알기에 저렇게 남루한 차림을 해도 결코 거지는 아니기에 1루피 2루피 5루피 이정도에 팔기로 한다.


폴라로이드를 꺼내며 5루피라고 외친다.그들은 대답없이 멀뚱멀뚱 쳐다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가 뭔지 모르는 눈치다.

아~~!!!! 그런거였다.

나는 옆에 있는 놈을 찍어서 뷔우웅~ 하고 바로 나오는 필름을 건네준다.

그는 이게 뭐지??? 라는 눈빛으로 받아들더니 희고 아무것도 인쇄되어있지 않는 필름을 보고, 또 나를 번갈아 보더니 응? 0,0 이런표정을 한다.

"기다려,"라고 하자 모두들 한 눈이 되어 필름만 뚫어져라 본다.

처음 폴라로이드를 보는 사람들이였다.

잠시 기다리자 인쇄된 사진이 선명하게 보이고 내가 다시 "5루피!" 라고 외치자 너도 나도할거 없이 찍어달란다.

눈이 휘둥그레 해진다. 나는 무슨 마법사라도 된 듯 의기양양하다.


그리고 로고가 적힌 조끼를 팔고, 티셔츠를 팔고, 태극문양이 새겨진 파우치를 판다.

꽤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정신 차려보니 사람들이 구름 때다.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구름 때가 이런 것이구나! 생각이 들 만한 무리다.

무슨 오일장이라도 열린듯하다.

그때 아줌마가 밥 먹으라고 소리친다.


-끝났어. 이젠 더 없어...


라고 말하고 움막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가지 않는다.

문도 없는 움막 밖에서 나를 지켜본다.

그 커다란 눈으로 나를 지켜본다.

날이 어둑해지고 있어서 눈동자 외에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

수많은 눈동자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가끔 이빨도 보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 맛없는..

아.. 이름도 모르겠다....

그 납작한 빵 같은 것에 고추 같은 매운 걸 넣고 돌돌 말아서 먹는,

그걸 먹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또 신기해하며, 웅성웅성하며 나를 지켜본다.

됐으니까 가라고.... 이젠 됐잖아..

그런데 보아하니 이 모녀는 안 먹는다.

약을 탄 건 아닐까?라는 의심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같이 먹자고 손짓하니 손님과 겸상 안 한단다.


이런이런..... 손님 먼저인 문화인 거야????


내가 다 먹고 나자, 더 먹으라고 계속 리필해 준다.

아니 아니 괜찮아요. 배탈이 날 것 같아서 말이야... 나 이래 봬도 위가 무척이나 예민하다고... 유제품 알레르기도 있단 말이야...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영어도 힌디어도 무엇도 통하는 게 없어서 꾸역꾸역 받아먹는다.

욱!!!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되새김질할 뻔했다.

너무 배불러서 더 이상 못 먹겠다고 하고 간의 그물침대에 앉는다.

침낭을 펴고 침낭에 들어가서, 지퍼를 끝까지 올린다.

숨을 못 쉴 것 같다. 지퍼를 조금만이라도 내리고 싶다.

그러고 보니 손발도 얼굴도 씻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바깥에서 나를 보고 있는 눈동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이 모녀는 밥도 안 먹고 있겠지.라는 생각에 숨 막히는 고통을 참으며 지퍼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더워.. 답답해... 제발 모두 돌아가 달란 말이야...

정신이 혼미해질라고 한다. 땀이 흐르는 듯하다.

이놈의 침낭은 성능이 너무 좋아서 탈이다.

잠이 드는 건가...

잠결인지... 꿈인지..... 웅성대는 소리가 줄어들고..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모녀의 식사시간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スクリーンショット 2024-03-04 0.25.19.png 손님과 겸상도 안한다는 특식


앵.. 앵... 애애앵..

이 눔의 모기가 없는 세상,

이 눔의 먼지가 없는 세상,

깨끗한 일본에서 살았다는 게 감사하다.

모기 없는 스위스에서 살았다는 게 감사하다.

먼지바람 일던 한국의 60년대를 살지 않았던 것에 감사하다.


인도에 오니 사사로운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려고 한다.


범사에 감사하라.


라는 성경구절이 떠오른다.


아침 일찍 눈을 떴지만 모녀는 이미 일어나 있다.

아마도 안 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제의 모습과 그대로다.

어제라는 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어제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루가 언제 24시간에서 48시간으로 바뀌었지? 싶을 정도로 너무 그대로의 모습을 한 모녀.

해져서 낡아빠진 옷은 보풀덩어리. 며칠 아니 몇 달은 감지 않았을 듯한 까치집을 지은 머리. 검은 때로 뒤덮여 있는 손발.

모든 것이 어제와 한치도 다를 바 없다.

-나마스떼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웃어 보이는 딸

-나마스떼

노숙인지 집안에서 잔 건지 구분도 안 되는 움막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이날 밤 20시 출발 기차시간까지 하릴없이 시간을 때워야 했다.





툰드라에서의 하릴없는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본다.

나 역시 보풀 가득 핀 회색 배기바지를 입고, 델리의 어느 귀퉁이에서 산 슬리퍼를 끌고, 어젯밤 그대로의 모습을 한 채, 눈곱도 때지 않고 동네 한 바퀴 돌아본다.

이 움막과 비슷한 집도 있고, 제대로 벽돌로 된 집도 있다. 문이 없는 집도 많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도로에는 그늘 아래에서 쉬는 릭샤꾼들이 더 많다.

일상자체가 lazy하다.

어제 그 무리 속에 있었을 법한 한 남자가 나를 발견하고는 짜이를 권한다.

당연히 받아마신다.

뭘 줘도 거절하지 않는다.

인도에서 짜이를 돈 주고 사 먹어 본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엄청 마신듯하다.

나중에는 지겹다 됐다 이젠 그만 마실 거다라고 사양할 정도까지 되었으니 말이다.

오늘 뭐 하냐는 물음에 20시에 바라나시 가는 기차를 탈거라고 했다.

-오~~ 마이 갓!!!

경악한다.

바라나시는 더럽고 어쩌고 하면서 경악한다. 거길 뭐 하러 가냐고 한다.

훗. 너네들한테 더럽다는 말을 들으니 왠지 신선한 걸.

차라리 자이푸르에 가라고 한다.

바라나시 가려고 여기 온 거라고 했더니 죽으러 가냐고 한다.

가본 적 있느냐고 물으니 델리는 가봤다고 자랑질이다.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어 자기는 아그라를 가봤다고 한다. 나도 어제 아그라에서 왔다고 하자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렇게 수다 떨고 있으니 또 한 무리, 동네양아치정도 되어 보이는 몇 명이 몰려든다.

-밥 좀 가져오지.

라고 말하려는 찰나에 이미 한 접시 가득 뭔가를 담아서 가져오는 젊은이가 보인다.

도사라고 밀가루 반죽을 튀긴 것에 양파랑 뭔지 모를 소스를 곁들여 먹는 걸 가져온다.

그리고는 더 먹고 싶으면 말하라고 한다.


그는 비벡이라는 이름을 한 16-17살 정도의 고등학생이다.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영국스타일로 옷을 단정하게 입은 청년이었다.

아니면 나 때문에 이날만 특별히 옷을 빼입고 온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상당히 깨끗한 청년이었다.

어제부터 나를 봤다고 한다.

짐을 팔면서 여행 중인 거냐, 어느 나라에서 왔냐, 나이는 몇 살이냐,

동네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로 한창이라며 이것저것 묻는다. 영어도 꽤 잘한다.

궁금한 것이 참 많은 인도인들이다.


하긴 델리의 빠하르간지도 아니고, 이런 시골 같은 곳에 1박할 외국인이 있을까마는.

그렇게 도사를 맛나게 먹고, 미네랄워터를 벌컥벌컥 마시고, 릭샤꾼들과 수다 떨고, 동네 꼬마들과 이름 모를 놀이를 하며 놀고, 웃고 떠들면서 마치 우리 동네인 양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루해가 저물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인도에 또 올 거야?

-응 꼭! 다시 꼭! 올 거야.

-그럼 툰드라에도 꼭 와.

-응 그럴게, 약속해.

비벡은 기차역까지 자전거로 데려다주면서 미네랄워터를 또 한 병 사주고, 저녁밥으로 또 도사를 사주고

똔꼬 나인 블렝게 (잊지 않을게)라는 말을 수천 번 하고, 메일 보낸다고 하고, 자기를, 툰드라를 잊지 마라고 하고, 그렇게 나는 배웅해 주었다.




역 플랫폼 바닥에 혼자 멍하게 앉아 있자니,

뭔가 아주 정신 사납고 시끌시끌하고 벅적대던, 마치 우리 집과 같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으로 텔레포트한 느낌이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이라는 느낌이 또다시 가슴으로 느껴진다.

아, 여긴 내가 처음 와 본 곳이지.

새삼 되뇐다.

아, 모르는 곳이지. 그러고 보니 난 혼자였지.

다시금 되뇐다.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역이다.

그런 와중에 내 시야에 들어온 건, 신상 노스페이스 여행용품으로 온몸을 칭칭 감은 한국인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유럽인스러운 어떤 남자와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유창하지는 않지만 막힘없는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데 왠지 어색하다.

왜인지 내 눈에는 아주 상당히 어색하게 보인다.

노스페이스 무장 남자의 리액션이 쓸데없이 크기 때문일까.

마치 외국인과 처음 대화해 보는 사람 같은 포스를 풍기고 있다.

쓸데없이 큰 리액션이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녀석이다.

고개만 끄덕여도 될 부분에서 팔짱을 끼고는 한쪽손을 턱에 대고는 오호~! 라면서 어울리지도 않은 액션을 보인다.

그냥 조용히 웃어도 될 부분에서 허리를 뒤로 젖히고 크게 박장대소한다.

왠지 보기 흉하다.

둘은 친구도 아닌 듯 보인다.

그냥 오다가다 만난 포스다.

한참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오~ 마이 갓'이라며 또 한껏 큰 리엑션과 함께 계단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가서, 다른 편 플랫폼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플랫폼을 착각한 모양이다.


혼자 다니면서 느는 것 중 하나

사람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 관찰하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말이 떠오른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뭐든 천천히 꼼꼼하게 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바라나시행 열차를 탔다.

2등석 침대칸의 가장 윗자리 표를 구입해서 다행이다.

짐을 발 밑에 두고 침낭을 꺼내서 주섬주섬 깔아본다.

아직 잠잘 시간이 아니라 책을 펴본다. 글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셀카를 몇 차례 찍고 그것도 지겨워지자 아래칸 사람들과 의미 없는 인사를 나누고, 바라나시 간다는 말도 잊지 않고 말해둔다.

몇 명에게 나의 행선지를 밝혀두면, 나서기 좋아하는 인도인들은 내가 내릴 즈음에 알람처럼 알려준다고

어느 블로그에서 읽은 게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까 싶어서 침낭에 들어가는 찰나에 아까 본, 그 노스페이스 무장한 남자가 허둥지둥하며 아래에 서 있는 것이 보인다.

내 침대 칸 맞은편이 자기 자리인데 비켜달라고 하는 것 같다.

익스큐즈미, 디스이즈 마이 시트.. 아블라 아블라...

약아빠진 인도인들 흥! 콧방귀도 안 뀐다.

곤란해하면서도 억지 미소를 잃지 않는 그 녀석.

익스큐즈미, 디스 이즈 마이 아블라 아블라.....

그냥 어이 비켜줘 내 자리야.라고 하면 될 것을 무슨 놈의 예의를 그렇게도 차리고 있다.

인도인들, 한통속이 되어 표 보자고 한다.

그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으며 표를 보여주고 자리를 확인시켜 준다.

어기적 어기적 비켜주는 인도인.

엉덩이를 발로 뻥 차주고 싶다.

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자리확보를 한 그는 또 땡큐 소머치 라며 예의를 잃지 않는 모습이다.

땡큐는... 무슨 놈의 얼어 죽을 땡큐 ㅎ

자리를 펴는 그에게 나는 말을 건다.

-한국인?

-아 네!!

눈 동그랗게 뜨고는 반가워한다.

-아까 플랫폼에서도 봤었는데...

그리고는 끊임없으려고 하는 대화가 이어지려고 한다.

대충 그는 29살에 서울대학원졸업을 앞두고 5급 고시 합격한 기념으로 친구와 둘이 왔는데, 그의 친구는 향수병에 걸려 이틀 만에 귀국. 혼자 남은 일정 소화 중. 해외여행은 처음이라 여행 간다고 노스페이스에서 여행용품 죄다 질렀음. 어디 어디 거쳐서 현재 바라나시 가는 중.

등 등이었다.

그의 스펙은, 그리고 스펙으로 랭킹을 매긴다면 1등급은 되지 않을까 하는 클래스다.

그러나 나에게, 그는 전혀 남자로 혹은 대단한 스펙을 가진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고, 뭔가 보호가 필요한 여행초심자라는 생각뿐이었다.

나 역시 바라나시 간다고 하자 너무 반가워했다.

더블침대 방 하나를 구해서 이틀 동안 셰어했지만, 그는 나의 언행에 조금이라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어쩌면 나에게서 풍기는 여행포스가 [원래 남녀 셰어 하는구나.]라고 생각 들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어쩌면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다가, 모르는 걸 싫어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원래 이런 거예요?] 라거나 [남녀가 트윈도 아니고 더블베드에서 잔다고요?]라며 놀란다면

왠지 여행을 모르는 애송이 같은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의 셰어 제안을 쿨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뭐 나야 단지 돈 아낄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바라나시에 도착하면 그렇게 하자고 합의하고 기차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


그리고 내가 바라나시에서 일주일간이나 머무르게 된 이유를 만들어준 와의 만남도 있었다.

니띤 와스왈드

짙은 먼지 속에서 살랑거리는 한차례의 바람처럼 기억되는 니띤.

그와의 만남으로 나의 바라나시 스테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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