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에서 한참이나 연착된 버스를 타고 또 한참을 달려, 깜깜한 밤늦게 국경에 도착한 거 같다. 남들 따라 줄을 서서 여권제시 후 너무도 지저분한 숙소에서 한숨 잔 후 동틀 무렵 다시 출발해 포카라에 도착한 듯하다. 그 사이에 뭔가를 갈아탔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여행하면서 "이동"이란 무엇일까.
나에게 이동이란 "예정 없던 또 다른 만남"이 아닐까 생각한다.
야간열차에서 니틴을 만났고, 연착 때문에 포카라에는 다음날 도착해야 했는데 이 타이밍으로 G군을 만나게 되었으며, 아그라에서는 릭샤꾼에게 동네 투어도 받게 되었다.
아그라에서 릭샤꾼이 너무 힘들어하는 거 같아서 물을 권했는데 절반이상 마셔버리는 게 아닌가.
황당하긴 했지만 뭔가 가엾기도 하고 힘들어 보여서 여기서 내려달라고 한 후, 한국에서 챙겨 온 2002년 월드컵 열쇠고리 하나를 건네주었다.
기념이라고 받으라고 했더니 한참을 망설이다 본인 아이들에게도 주고 싶다며, 아그라 가이드와 타지마할 입장권을 현지인 가격으로 사 줄 테니 열쇠고리가 있으면 더 달라고 하더라.
나는 타지마할에 들어갈 마음이 없어서 그냥 아그라 한 바퀴만 돌아달라고 하고 남은 열쇠고리 5개를 다 주었던 일이 있었다.
그렇게 그 릭샤꾼과 동네 구경을 하고, 그의 동료들과 짜이도 마시고, 타지마할 입장료가 750루피인데 현지인이 사면 20루피라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안들어가겠다는 나에게 타지마할이 아주 잘 보이는 어느 집 옥상도 알려주었다.
그 옥상에 앉아있는데 문득 해가 지는걸 마흔세 번이나 본 어린 왕자가 생각이 났다.
해가 지려는 노을 속에서 그 동네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타지마 할을 마흔 번이나 각도를 바꿔가면서 계속 응시했다.
멀리 타지마할이 보인다
거의 하루 24시간 넘게 이동한 후 포카라 레이크사이드에 도착했다.
내가 그 즐거웠던 인도를 뒤로하고 포카라에 온 이유는 단 하나, 어떤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다.
다르크
그렇다. 이름이 기억이 안 나서 예전메일을 뒤져서야 겨우 그의 이름의 다르크라는 걸 기억해 냈다.
다르크
그 이름 석자와 사진 두 장, 이것이 내가 그를 찾을 유일한 단서였다.
그리고 또 하나.
히말라야봉우리를 배경으로 모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미소를 짓던 이름 모를 소녀의 사진.
그 세장을 가지고 나는 다르크와 게스트하우스 딸로 추정되는 한 소녀를 찾으러 가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포카라의 레이크사이드는 인도의 바라나시에서 온 나에게는 상당한 유토피아였다.
거리가 너무도 깨끗하고, 냄새도 전혀 안 나고, 길바닥에는 소똥이 아예 없었다.
커다란 마당이 딸린 이층짜리의 전원주택 같은 한 숙소들이 즐비하다. 한 숙소를 지나려는데 한국어로 웃으며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주저하지 않고 이 숙소로 결정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포카라 입성했습니다!
너스레 인사를 나누고 자리하나를 꿰차고 앉았다.
그리고 그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사진 세장을 보여주고는 이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하니 다들 웃음이 터졌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아요?
-어떻게 찾으려고요? 사진도 흐릿하니 잘 보이지도 않네?
-뒷배경이 피시방 같은데, 레이크사이드에는 아마 피시방은 없을 테고 시내로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다 뒤져봐야겠네?
겁이 없는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나는 참말로 무계획적이긴 했다.
그러나,
그러나 나는
결국 찾고야 말았다.
다르크와 그 여자아이를 말이다.
여자아이 이름은 수나타
게스트하우스 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사실은 부모님은 안 계시고, 데려다 키운애라더라.
현제 9학년이고 내년 10학년인데 졸업하면 미래가 걱정이라며, 나보고 한국에 데려갈 수 없겠냐고 묻더라.
나는 한국에 살고 있지도 않고, 비자라던지 어떤 도움도 줄 수는 없어 난처했지.
뭐 어쩔 수 없이 거절해야만 했다. 방법이 없으니까.
게스트하우스아줌마는 좀 실망했는지 네팔어로 하루종일 푸념을 하더라.
뭐라도 돕고 싶어서 옆에서 마늘 까는 걸 도와줬다.
아, 그리고 지금 생각나는 건 그 아이가 만들어준 샌드위치!
그건 정말 맛있더라.
참! 다르크도 본명이 아니었다.
완전 다른 이름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기억이 안나지만 여하튼 찾아낸 나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사진을 가지고 일단 포카라 시내의 피시방을 뒤졌다.
다르크가 피시방쯤으로 추정되는 입구 앞에서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고 뒷 배경이 아스라이 컴퓨터가 여러 대 있었기 때문에 피시방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메일로 첨부된 사진은 얼굴도 흐릿했고, 내 눈에는 네팔인들이 다들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더더욱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사진에 나온 장소를 먼저 찾기로 했다.
몇 군대인지 모르겠지만 그 흙먼지 날리는 포카라 시내를 샅샅이 뒤졌고, 길 가던 사람, 길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 담배 피우는 사람, 노닥거리는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혹시 이 사람 아세요?"하고 물어보고 다녔다.
첫날은 대실패였다. 어떤 단서가 될만한 실오라기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같이 동행에 나서준 G군도 이내 지쳐버렸다.
-. 내일도 찾을 거예요?
-. 해볼 때까지 해보려고.
-. 근대 도대체 뭐 때문에 찾아요? 뭐 지명수배라도 돼? 아님 헤어진 연인? 뭐야 뭐야!
-으응... 그게...
여행 보름 전쯤, 인도/네팔을 간다고 하니 미국에 사는 후배 놈에게서 연락이 왔다.
"누나 조심해야 해." 이건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었을 뿐이고,
싸가지없게 이메일로 사진 두 장, 그다음 날에는 한 장을 추가해서 던져주고는 제발 찾아달라. 내가 이 친구를 한국에 삼촌공장에 취직시켜 주기로 약속했다. 나는 그 약속을 지키고 싶다. 이 친구는 분명히 나를 기억하고 있을 거다.
라는 충분히 자기 멋대로의 메일만 남겨놓고는 부탁한다고 했다.
누나 찾으면 꼭 연락 줘!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생각해 보니 재미있을 거 같기도 하고, 오기도 생겼고, 누군가에게 좋은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르크를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 그런데 이 여자애 사진 보면 뒤가 히말라야봉우리 같은데, 일단 ABC까지 가는 건 어때요? 나도 어차피 슬슬 등반하려던 참인데 혹시 괜찮으면 같이 갈래요? 가는 길에 나오지 않을까? 그 후배라는 사람도 트래킹 하다가 만난 걸 수도 있고요. 뭔가 더 단서 될만한 거 없어요? 후배랑 연락 안돼?
그렇다! 이 포카라시내만 이틀 동안 뒤져도 안 나오는 걸 보면 저 산속에 있는 걸 수도 있다.
G군의 어드바이스로 다음날 히말라야 입산허가증(팀스)을 받고, 안나푸르나 등반을 하게 되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겁이 없는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참말로 무계획적이긴 하다.
히말라야를 우습게 본건 절대로 아니다. 그저 무지할 뿐이다.
후드티 두 개와 인도에서 산 배기바지, 한국에서 가져온 침낭, 그리고 신발은 그 꼴이 뭐냐. 그냥 퓨마 일반스니커다.
등산화도 기모바지도 아닌, 이 꼴로 하고는 안나푸르나등반을 한다고 입산허가증을 받았으니 말이다.
재작년에 후지산도 갔다 왔고 이 정도면 충분할 거라는 착각과 후드티를 두 개나 챙겼다는 준비성에 스스로 감탄하며 겁도 없이 히말라야를 가겠다고 한 것인데, G군도 나를 막지 않았던 것은 왜였을까.
지금생각해 보니 의문점이긴 하다.
출발 전날 누군가 호텔방을 두드린다. 문을 열어보니 쭈뼛쭈뼛하며 검은색 옷 같은 걸 든 손을 내민다.
-. 얼어 죽지 마요.
같은 숙소에 묵던 한국인 대학생이 본인은 내일 귀국한다며 얼어죽지마라고 내복바지를 건네주었다.
해발 2천3천
하아.
하아..
하아........
헉헉.... 좀만 천천히 가자.
푼 힐 (Poon Hill)
이게 힐이란다. 이름이 왜 이따위인가. 해발 3200미터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런건 힐이란다. 언덕이란다. 산도 아니란다.
나는 거의 숨이 오락가락,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여기 사는 애들은 슬리퍼 신고 뛰어다니고 앉았다.
제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 마라. 내가 오버하는 사람 같잖아.
헉헉대며 산을 오르다가 정자 같은 데서 몇 명의 네팔인들이 모여있으면 어김없이 끼어들어 게스트하우스 앞의 소녀사진을 보여준다.
등반하는 내내 이것이 나의 루틴이 되어버렸다. 이날도 어김없이 "혹시 이 여자아이 알아요?"라고 물으니, 한참을 들여다보고 주변도 두리번 거리더니 갑자기 "저기 오네요!" 라며 어딘가를 손으로 가리킨다.
그 시꺼먼 손을 따라가 보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교복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등교차림의 옷에 가방을 들고 슬리퍼를 신고 뛰어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사진 속의 이 여자아이다.
분명하다. 나는 사진과 실물을 번갈아보다가 재빨리 그쪽으로 뛰어갔다.
-. 혹시 이 사진 너 맞지?
흥분과 감격에 침 꼴깍 삼킨다.
사진을 유심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우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기가 지내는 게스트하우스를 알려주었고 그 곳에서 이틀 동안 숙박했다.
이렇게도 만나는구나.
다르크는 등반길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들에게 물건을 납품하거나 짐운반 포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지금 여기 없고 포카라 아니면 다른 지역에 있으니 나중에 등반 끝나고 내려가면 연락하라고 연락처를 남겨주었다.
그런 거구나..
그랬던 거구나...
이렇게 그 둘을 찾게 되었고, 십여 일의 트래킹을 마치고 포카라로 내려와 다르크에게 연락을 하고 후배와 연결시켜 주었다.
이걸로 나의 임무는 끝인 듯했다.
푼힐에서 1000미터만 더 가면 ABC베이스캠프라는 말에 하루만 더 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다.
여태까지는 맛보기, 워밍업이고 이 나머지 1000미터가 본격적이다.
본격적으로 힘들고, 본격적으로 고되고, 본격적으로 죽을 지경인데 진퇴양난이다. 앞으로 전진할 수 밖에 없다.
이 차림새로 앞으로 전진할 수 밖에 없는데 이제부터 나오는 숙소 역시 뜨거운 물 샤워가 되는 곳을 만나기 힘들었다.
그렇게 ABC를 간신히 찍고 나는 아주 큰 것을 얻었다.
등산은 나랑 맞지 않다는 또 한 번의 자가성찰과
발가락 동상을 얻었다.
발가락 동상으로 인해 포카라에서 떠나는 그날까지 반 요양모드었고,발톱이 다 빠졌고 며칠 후 델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카트만두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카트만두에서는 또 정말 귀한 두 명의 인연을 만나게 된다.
이 일은 두고두고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좋은 생각"에 투고하였고 그 달 특집에 실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