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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22] 침묵 - 엔도 슈사쿠

기독교인들 다 모여봐~

by 소류

2023년 6월, 아들이랑 나가사키에 다녀왔다.

메인은 하우스텐보스와 군함섬이었는데 어쩌다가 [일본 26인 성인기념관]을 알게 돼서 떠나는 날 오전에 잠시 들렸다.


26인의 성인(聖人)이 순교한 기념비, 후미에, 그 안에 한국인선교사도 있었고, 화형등 순교한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애초에 여기 갈 예정은 없었지만, 이 책이 그 내용인 줄 알았다면 진작에 읽고 갔으면 더 좋았을 텐데 싶었다.

엔도 슈사쿠 - 침묵


이 책은 17세기 일본을 배경으로 한 역사·종교 소설로, 기독교 박해 시기의 일본에서 선교한 선교사들의 이야기다.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일본 나가사키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페레이라 신부는 고문등으로 배교하게 되고, 그 소식을 포르투갈에 있던 로드리게스 신부가 듣게 되어 진실을 확인하고자 나가사키로 몰래 들어온다.

도쿠가와 시대의 일본은 엄청나게 기독교를 박해, 탄압하고 있었다.

종교를 버리거나 개종하지 않으면 가족전체 화형시키거나 팔팔 끓는 온천에 담그거나 암튼 레벨로 보면 로마 기독교박해 저리 가라다.

가족이 불에 타고 있다. 애기도 있음! 망할 놈들


로드리게스 신부는 곧 발각되고 일본 관리에게 고문을 받고 배교를 강요당한다. 사실 이들 목적은 죽이는 것보다 배교하는 것이 더 크다.

그래서 고문하다가 예수 없다!라고 하면 두말 않고 바로 풀어주었다.


로드리게스 신부는 웬만한 고문에도 잘 클리어했지만 결국 고문의 보스레벨인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가하거나 험한 꼴을 당하게 하는 것까지 가고 나서야 깊은 고뇌에 빠진다.

결국 후미에를 밟고 페레이라신부와 똑같이 배교하고 만다.


후미에를 밟으려는 찰나! 로드리게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나를 밟아라. 나는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그 후, 로드리게스는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잃은 채 살아가지만, 그의 내면에는 신앙과 배신, 고통과 자비에 대한 깊은 성찰이 계속 남는다.




이 책은 2016년에 영화 사일런스(Silence)로도 개봉되었다. 인기는,,, 글쎄?

아래 사진이 영화에 나온 후미에(踏み絵)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과연 침묵이란 뭘까.


나는 오래전에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의 12제자가 순교당한 거, 로마가 기독교 박해하는 것을 보면서 왜 하나님은 이럴 때 침묵하고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 모든 게 그의 뜻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전쟁도 평화도 음모도 살인도...,

애초에 이 모든 것이 그의 뜻이다.

박해가 일어났어야 했고 전쟁도 일어났어야 했다.

침묵한 게 아니라 계획하에 놓인 것뿐이다.

인간은 그저 신의 인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필요도 없는 자유의지를 가진..., 에반게리온의 레이처럼...



두 번째는 진짜로 하나님이 "나를 밟아라. 나는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라고 했을까?

라는 점이다.


이 책의 핵심적인 모순이 아닐 수가 없다.

실제로 초대교회 성도들과 사도들은 죽음을 무릅쓰고도 배교하지 않았다.

그런데 로드리게스에게는 "나를 밟아. 괜찮아!"라고 했다고?


콜로세움에서 내 아기가 사자에게 끌려가던 그때는 "나를 모르는 척 해라. 도망가라."라고 안 했으면서, 로드리게스한테만 "밟아라."라고 했다고?


서양에서는 수세기 동안 희생, 고난, 순교를 믿음의 덕목으로 삼아왔다. 예수님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었고 그의 제자들도 험한 꼴을 당하며 순교했다.

그때 신은 침묵했다.

그래서 로드리게스는 묻는다.

“왜 당신은 침묵하고 있는가?”

오랜 침묵 끝에 들려온 목소리가 "나를 밟아라. 나는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라고라고라고?


푸하하...,

이건 로드리게스의 환청이며,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뻥치는 거 아닌가?

엄마 지갑에 손댄 꼬맹이를 추궁하니 엄마가 가져가도 된다고 했어.라고 징징대면서 거짓말하는 꼬맹이처럼 말이다.


엔도 슈사쿠는 독자에게 묻는다.

너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겠는가?


나?

당연히 모르쇠로 일관하겠지만, 로드리게스처럼 야비하게 자신을 합리화하며 뻥치지는 않을 거 같다.


로드리게스가 들은 음성이 백번 양보해서 진짜라고 친다면,

그건 어쩌면 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인간이 절망 속에서 듣고 싶은 자비로운 음성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답’을 주는 소설이 아니라, 읽는 사람을 시험하는 소설임에 틀림이 없다.

신보다 먼저, 독자의 신앙을 "침묵"속에서 뒤흔드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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