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안좋아하고 고전이나 벽돌책만 읽는 사람도 이건 읽어야한다.
화장실에서 스마트폰하지말고 이 책을 옆에 놔두고 읽어야한다.
여행가는 비행기안에서, 이동하는 열차안에서 읽어야한다.
읽기를 추천한다.
다스슝이라는 대만인이 편의점일을 하고, 요양보호사도 하고 장례식장에서 일하면서 일어난 에피소드들을 모은글인데, 웃다가 뭉클했다가 줄도 그었다가 생각에 잠겼다가 감동도 했다가 또 다시 현웃 터트렸다가...다 읽고나니 아쉽기도 하고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작가가 잘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램이 들었다.
참고로 나도 에세이는 안 읽는데, 많이많이 응원하고 싶어졌다.
글을 참 맛깔스럽개 잘 쓴다. 중국작가인 위화와 비슷한거 같기도 하니 이게 중화권의 특징인가, 나랑 잘맞네 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 읽고나서 생각나는 에피소드는
큰 뚱보이야기
트.젠커플중에 한명이 죽어서 온 이야기.
저자가 인터넷으로 알게된 여자집에 방문한 이야기 (거의 배꼽잡음)
일부러? 감동끌려는 신파극이 없다는 것, 있다 하더라도 최소화했고 진솔하다는것도 아주 맘에 들었다.
마음에 와닿는 글들, 재미있는 글들이 너무 많긴 하지만 다 생략하고 자살에 관한 내용을 조금 발췌해보겠다.
누군가 내게 자살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느냐
물어오면 나는 그 아이 생각에
이렇게 대답한다.
“정신 차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거야.
힘들어지는 건 널 아끼는 사람들뿐이라고!”
“죽은 저 남자는 이제 다 벗어난 걸까요?”
결혼해서 자식도 있는 라오자이는 이렇게 말했다.
“저 이기적인 놈은 모든 문제를 가족들에게 떠넘긴 것뿐이야.”
그리고 이 내용을 마지막으로 작가에게 큰 응원을 보내고 싶어졌다.
아버지, 당신이 틀렸어요.
나는 아버지와 조금은 달라요.
적어도 나는 책을 한 권 써냈거든요.
서평 끄읏. 그냥 무조건 읽어보라는 내용임.
서평 내용이 짧은 관계로 에피소드 몇 개를 넣어보겠다.
냉동고가 만석이었던 어느 날, 첫 번째 칸에 안치된 시신의 유가족이 차린 제사상에서 닭다리 하나가 사라진 일이 발생했다. 장례식장 관리인으로서 우리는 당장이라도 CCTV를 확인해 누가 가져갔는지 잡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사라진 것이 닭다리라는 걸 알고 이렇게 말했다.
“어젯밤 꿈에 나타나 닭다리를 먹고 싶다 하시더라니.”
“오랫동안 병석에서 우유밖에 못 드셨잖아. 오늘 드디어 닭다리를 드시러 온 거야!”
“생전에 닭다리를 제일 좋아하셨으니까. 봐봐, 이 많은 음식 중 닭다리만 사라졌어. 아빠가 우릴 보러 오신 거야!”
나중에 우린 CCTV를 돌려봤고, 길고양이 한 마리가 닭다리를 챙겨 잽싸게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그렇게 범인은 밝혀졌으나 유가족들을 위해 진실은 묻어두기로 했다.
장례식장에서 생기는 많은 사연이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과 안타까움과 아쉬움에서 비롯된다. 물론 나 역시 영적인 존재가 있다고 믿지만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도 적지 않다. 그러니 만약 우리 입장에서 이 일화를 말한다면 아마도 이렇게 바뀔 것이다.
“그 아버지가 길고양의 몸을 빌려 그렇게나 먹고 싶었던 닭다리를 먹으러 온 거야.”
“봐봐, 닭다리를 가져간 후 그 고양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 분명 다시 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갔겠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사람들은 이야기를 만든다. 그렇지 않은가?
.... 중략
남편이 자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도 따라가려고 밧줄을 묶었는데, 밧줄 너머로 남편이 손짓하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 동그라미는 할머니를 한 발 한 발 동그라미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 순간, 어떤 큰 힘이 할머니를 다시 바깥으로 끌어당겼다. 돌아보니 어린 딸이었다. 그와 동시에 동그라미 밖의 세상은 사라져 버렸다. 남은 건 자신 앞에 놓인 잔인한 현실뿐이었다.
할머니는 집안에 자살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며 아들을 보며 말씀하셨다. (아들이 자살했음)
“그 세상에는 아무 고통도 없을 거야. 봐, 웃고 있잖아.”
나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말없이 누워 있는 중년 남성을 바라봤다.
아들의 발인 날, 할머니는 우리에게 목련화를 선물로 주셨다. 그런 다음 홀로 묵묵히 화장터로 향했다. 우리는 그런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만약 그 세상에서 할머니에게 또다시 손짓을 하면, 이번엔 누가 할머니를 끌어당겨주지?
같은 날, 어김없이 시신을 운반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차를 몰고 가는 내내 목련화 향기를 맡으며 할머니를 생각했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이번에도 역시 목을 매 자살한 시신이었다. 나는 할머니 말씀이 떠올라 시신을 돌려 사망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젠장! 진짜 웃고 있잖아…….”
.... 중략
얼마 후 라오후 아저씨의 염습을 위해 찾아온 장의사에게 내가 말했다.
“목욕은 제가 시키겠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이 양반이 장의사님 꿈에 나타나 이 새끼 저 새끼 욕할지도 모르거든요.”
산 사람을 목욕시키는 것과 죽은 사람을 목욕시키는 것은 당연히 너무도 다르다. 라오후 아저씨는 찬물을 싫어한다. 젊은 시절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돈 쓰면서까지 춥고 싶진 않은가 보다. 라오후 아저씨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왼발을 씻겨주는 것도 싫어한다. 폭탄이 터지면서 당한 부상이라는데 여전히 씻을 때 아프다고 한다. 라오후 아저씨는 머리를 먼저 감은 다음 몸을 씻는 걸 좋아한다. 라오후 아저씨는 또 뭘 좋아하냐면…….
나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눈물이 흐른다. 가족이 없어 홀로 집에서 죽은 라오후 아저씨가 내가 있는 이곳으로 오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살아있을 땐 내가 아저씨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하셨겠죠?
이 서평을 읽으신 분들은 제발 읽어보세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