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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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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류
Mar 9. 2024
4월 15일..
나는 이 15일을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할 거다.
15일이 끝나지 않는 것 같았다.
몇 시간 동안 비행 후 미국 LA에 도착해서 한숨 자고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아직도 4월 15일 3시??
아니 15일은 도대체 언제 끝나냐고요!!!!
한국출발 일본나리타 경유하는 대한항공을 탑승해 내 자리를 찾는데 내 옆자리에는 이미 일본인 남자가 앉아있었다.
대한항공의 메인메뉴인 비빔밥을 신나게
먹으려는 찰나 엄청난 기류를 만났는지 기체가 들썩거려
수프를 쏟고, 옆사람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다가 말을 트게 된 게, 나의 서부미국여행의 기억 중
하나
이다.
내 옆 좌석 남자이름은 타케지마 이와시
.
LA에 10년 정도 거주하며 무역업을 하고 있었고, 조만간 일본으로 완전 귀국할지도 몰라 사전조사
겸 일본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무 대책도 없는, 숙박예약은 커녕 다운타운까지 들어가는 방법조차 모르는
내가 재미있는지
손으로
입 가리고
연신 하하
웃어 보일 뿐이다.
뻘쭘해진 나는 공항에서 급히 준비해 간 가이드책을 보여주며 나름 준비했어요. 자 여기 여기 어때요? 하며 여행동선을 짜는 동안 10시간가량의 비행시간이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드디어 미국의 넓디넓은 드넓은.... 그랜드.. 와이드.. 이런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넓은 미국땅이 눈이 들어오자 아주 염치없이 물어본다.
"타케지마씨는 다운타운까지 어떻게 들어가요?"
"택시로요. 제페니스타운에 저희 회사가 있거든요. 거기 차를 세워둬서 거기까지는 택시로 가죠."
헉! 택시를 탄다고? 역시 현지인은 다른가...?
"저.... 그럼 저도 제페니스타운까지 태워주시면 안돼요?"
또 웃는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빵빵 터진다.
이젠 뭐 부끄러울 것도 없다. 철판 깔았다.
"그래요. 그럼
.
"
그는 공항출입국검문소에서 그린카드인가
, 영주권 같은 게 있어서 내국인 줄에 서서 잽싸게 빠져나갔다.
반면 관광객 줄에 선 나에게는 여권을
내밀자마자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도 많고, 게다가 질문에 대답을 잘못해서 100만 원 있다고 해야 하는데 1000만 원 있다고 해서 제복 입은 덩치 큰 흑인이 이쪽으로 컴온!
검문까지 받게 되었다.
다행히도 나는 일본에서 꽤 알아주는 글로벌회사에 근무하고 있고, 여권에 일본비자까지 떡 하고 찍혀있으니
직원들이 급변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시간을 지체하다가 나와보니
그 착한 타케시마씨가 나를 계속 기다리고 있어 줬고, 택시도
동승해 줬으며
제패니스타운에 있는 허름한 호텔도 잡아줬다.
"제가 처음 일본 왔을 때 신세 진
곳입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괜찮을 거에요."
상당히 허름하고 샤워는 공용에 에어컨 실외기소리 때문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게 하면서도 40$(달러)라는 나에게는 절대적으로 비싼 요금 때문에 리셉션에서 머뭇거리다가 성의를 생각해서 하룻밤만 묵고 한인민박을 굳이 찾아서 옮겼다.
그리고 타케지마씨는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라며 젠틀하게 연락처를 남기고 떠났다.
그 호텔은 일본인 아저씨가 사장이고, 한국인 아줌마가 직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부부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일본어와 한국어를 할 수 있으니까 전혀 불편할 게 없었을뿐더러 한국인 아줌마의 생생하고 지랄 맞은 미국의 삶도 듣고, 일본인 아저씨의 친절한 대접으로 나름 괜찮았던 것 같았다.
그렇지만 결국
비싸다는 이유로 1박만 하고
한국민박을 찾아서 옮겼다.
옮긴 그 한국민박은 정말로
최악이었다.
어느 나라를 가도
한국사람들은 참 자국민에게 불친절하단 말이야.
가격이
20$
(달러)정도라는
거
외에는 전부 다 모조리 단점이었다.
한국식 밥을 준다고 하는데
시어빠져 흐물거리는 김치에 자스민쌀밥은 누런 냄새가 났고 계란이라도 달라는 다른 숙박객의 항의에 반쯤 탄
계란후라이가 나왔었지. 깔짝거리다 몇 젓가락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리고 식사도 방값에 포함이라고 했는데, 옆에 조그마한 상자가 있어서 [알아서] 돈을 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말이 [알아서]
지, 밥 먹을 때 주인아저씨가 테이블에 같이 앉아서
기부가 어쩌니
신앙이 어쩌니 교회에 다 같이 가서 헌금을 하자는 둥 끊임없이 쫑알거리며 돈을 넣도록 유도했다.
아~, 더럽고 치사해서 내고 만다.
아무튼 나는 이곳에서 만난 커플과 친해져서 그날 새벽 4시에 그 커플과 함께 샌디에이고(San diego)로 야반도주했다.
샌디에이고에서의 3박 4일은
"
호스텔
사람들과 포커치고
놀았다!"가
여행의 전부다.
호스텔 스태프들과 숙박객들 대부분이랑 친해졌고, 그중에는
나한테 작업건 녀석도 있었으며 근처의 무슨 공원에서 아프리카 페스티벌에도 가서 신나게 놀기도 했다.
나의 서부미국여행의 기억 중
둘
이다.
미국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전역을 가보지
않았지만, 미국 어딘가에서 어학연수를 하라고 한다면, 지금의 나로서는 주저 없이 샌디에이고를 말할 거 같다.
그만큼 좋았던 곳이니까.
그리고 4일 후에는 라스베이거스로 이동한다.
라스베이거스는 죽기 전에 꼭 가보라는 그랜드캐년도 가보고 싶은 마음에
라스베이거스를 가려고 하니 호스텔의 어떤 한국녀석이 껄덕댄다.
같이 가거나 가서 거기서 만나자고 한다.
싫어!!!!
한마디로 딱 거절하고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다.
유럽의 저가항공보다 더 후진 초저가항공 수준의
델타로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한다.
공항에 도착해서 잔돈을 바꾸려고
자판기 음료를 뽑으려고 했다.
5$(달러)가 하나 있었는데 차비가 2$(달러)이다.
그런데 5$(달러)를 내나 10$(달러)를 내나 거스름돈을 안 준다고 하길래 자판기 음료수하나 뽑고 잔돈을 챙길 생각이었는데
이놈의 자판기가 내 귀중한 5$(달러)를 잡아 삼켰다!!!!
아~~ 버스비 아끼려다 돈 더 쓰게 생겼다.
그러다
지나가는 어느 미국인남자에게 "헬프
미 이 자판기 내 돈 꿀꺽.. 엉엉.."이라고 하니까 다가와서 자판기를 손바닥으로 치기도 하고 발로 차기도 하고 흔들기도 하며 여러 테스트를 하더니 안 되겠다는 걸 알고 "얼마
넣었어?"라고
묻는다.
"난 버스를 타야 해서
잔돈 바꾸려고 5$를 넣었단 말이야~."라고 했더니.."아.. 그래?" 라며 버스비
하라고 2$(달러)를 주는데, 왠지 2$(달러)때문에 쌩쑈한 느낌이었다.
아무튼 무사히 버스를 타고 대충 게스트하우스가 몰려있을 만한 곳에 내렸다.
그중에 어떤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니 가격이 1박에 19$
(달러)
였나? 엄청 싸고 옮겨 다니는 것도 귀찮아서 5일분을 한꺼번에 선불로 결제했다.
나는 뭐 때문에 5일이나 라스베이거스에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라스베이거스 호텔은 카지노 때문에 숙박비가 싸니 웬만큼
괜찮은 호텔에서 묵어도 되는데 (당시 mgm 호텔 가격이 하루에 5만 원 정도였다.) 그런 정보 하나 없었던 나는 또 허름한 게스트하우스나 찾고 있었던 거다.
5일을 혼자서 라스베이거스에 있는다는 건 엄청난 동적 안에서의 나 홀로 아주 큰 정적이 되어 쓸쓸함이 무기력증으로 바뀌다가 결국 우울증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카지노를 하는 것도 쇼를 보는 것도 아니고
밤에는 게스트하우스 침대에 누워 창밖으로 보이는 빌딩과 불빛을 그냥 뜬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낮에는 게스트하우스 정원에서 별 감동도 없는 건물들을 주야장천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아~ 지루하기 그지없는 3일을 게스트하우스 안에서만 보냈던가.
내가 마냥
밖에도 안 나가고 죽치고 있어서 그런가,
주인아저씨가 와서는 오늘밤 호텔파티가 있는데 가지 않으련? 한다
.
당근 갑니다~!!! 너무 할 게 없어요!
그리고 호스텔 사람들과 함께,
생전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앞으로도 타 볼일 없을 2m 이상되는 리무진을 타고 촌빨 날리게 깍깍거리며 사진 찍다가 호텔파티에 도착했다.
그리고 IDCard를 챙겨 오지 않아 생긴 일
스트립쇼를 보던 중 화장실에 갔더니 그녀들이 판치고 있어서 어쩌다 보니 함께 논 일
숙소에 걸어두었던 완소재킷을 도둑맞아서 경찰서 가서 조서 꾸민 일
등 라스베이거스의 기억은 내가 미국여행담을 누군가에게 말할 때 꼭 말하는 것 중에 하나이며
나의 서부미국여행의 기억 중
셋
이다.
그리고 out을 하기 위해서 다시 LA로 돌아와야 했으나 장소를 바꿔
바로 옆인 산타 모니카
해변에서 진 치고 놀았다.
자전거도 타고, 유럽애들이랑 실컷 미국 욕하며 시간 보내다가
혼자 있게 되자 타케지마씨에게 메일을 보냈더니 바로 답장이 온다.
"난 여기 여기 호스텔에 있고 네가 차가 있으니 여기로 데리러 와라. 대신 밥은 내가 사겠다. "
라고 보냈더니
기다리라는 답장과 함께
내비게이션도 없고 창문도 수동으로 여는 고물 차를
구글지도까지 출력해서 2-3 시간 걸려서 온 거다.
게다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식사비도 내주고, 친구
선물
사러 가는 것도 따라와 주고, 하루를 데이트하는 느낌으로 보냈다. 그 후로도 간간히 연락하다가 타케시마씨가 일본에 완전 귀국하고도 연락을 꾸준히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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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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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책 읽는것과 글 쓰는걸 좋아하고 그림도 재법 그린다. 냉담/냉소, 카타르시스적인 팩폭, 색다른 관점과 남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 단편소설과 에세이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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