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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같은 상황에 대한 나의 태도

by 소류


Part 1. 요즘세상 이혼 흠 맞더라.


요즘 세상에 이혼이 뭐 흠인가요?

세상 쿨한 요즘 이혼, 30대 이혼율 높아요.

미혼보다 애 없는 이혼녀가 인기 더 많아요.

일본에서도 "バツイチがモテる"라는 말이 있어요.


세상은 이혼하는 게 아무것도 아니고, 흠도 아니라고 쉽게 말하고 있지만, 그건 내 일이 아닐 경우 "위로 차원","정신승리 차원"에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내 주변 지인들이 갈등을 겪거나 이혼하고 싶을 때 곧잘 나에게 터놓고는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이혼은 최후의 보루니까 어떻게든 대화로 풀어가게끔 방향을 제시하거나 설득하는 편이다.


나는 이혼을 찬성하는 편이 아니다.

폭력이나 도박 사기 같이 범죄성 이혼은 여기서 논외라는 걸 꼭 알아두길 바란다.

그런 경우라면 적극적으로 이혼을 권하겠지만, 내가 말하는 이혼반대는 이런 부류가 아닌 서로의 입장차이에 관한 부분이다.


내 주변에는 나를 포함해서, 시어머니, 내 절친, 내 친구, 내 친구의 친구, 그 건너의 건너 할것 없이 이혼한 사람들이 꽤 있는 편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내가 그들을 보는 시선이, 혹은 그들이 나를 보는 시선에서 "그러니까 이혼했지.", "어쩐지 이혼한 사람은 다르더라."라는 것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날 때가 있다.


연예프로에서도 "돌싱편"의 대부분 댓글은 "돌싱들은 다 이유가 있네." "어쩐지 돌싱이더라."라는 부정적인 댓글이 난무하며, 이혼한 연예인은 비운의 주인공으로 상담프로에 출연해서 눈물을 보이고 그간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이혼가정의 아이는 학교에서도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는 게 현상이다.

이혼가정의 아이가 어떤 사건을 일으켰을 때 "어쩐지", "그럼 그렇지", "한부모 가정이라서 그렇지."라는 반응이 여전한 건 아직도 변하지 않는 기정사실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도 이혼이 흠이 아니라고?

나는 아직은 흠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럼 참고 살아야 하냐고?


우리는 제각각의 사유로 긴 고민과 긴 공방 끝에 이혼을 결정하고 실행한다.

나 역시 결혼생활 7년 내내 놀고먹으면서 사치와 허영이 심한 백수남편 때문에 이혼에 대해 심히 고민하고 어렵게 결정했으며, 이혼 후에도 극심한 스트레스로 조기폐경 진단까지 받았다.

게다가 상실감과 우울증으로 1년넘게 정신과 치료도 받았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되돌아보면 그때, 그렇게까지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었더라면, 아니 그 피치 못할 사정을 원활하게 풀어갈 힘이 나에게 있었다면, 과연 이혼을 했을까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어느 날은 시어머니에게 물었다.

"이혼하신 거 후회하세요?"

"지금 이 나이가 되어서 손자도 있으니 그때 안 할 수 있었다면 안 하는 게 나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네..."

라고 조용히 대답하신다.


이혼을 겪은 내 주위사람들을 둘러보면 처음에는 잘한 선택을 했다며 자축을 하고, 그 후에는 조금씩 상실감을 가지더니, 점점 타인에 대해 알 수 없는 적대심을 가지면서 자기 보호수단으로 돈을 모은다던지 일에 몰두한다던지 취미를 엄청나게 많이 가지기도 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예전처럼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다.


내 얘기를 하자면

나는 8년 연애와 7년간의 결혼생활을 2010년에서야 종지부를 찍었다. 남자 친구의 가정사 때문에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사랑이 영원히 변치 않을 거라 장담하여 부모님과 대립 끝에 어렵게 결혼승낙을 받아냈고, 힘든 쟁취인 만큼 처음에는 잘 사는 듯 보였다.

그런데 남편의 "백수생활"과 "허영 허세"는 날로 심해지면서 그걸 견디지 못한 나는 이혼을 결정했고, 남편은 이혼을 거부하다 결국 그가 내민 최종조건은 내가 구입한 아파트를 본인 명의로 돌려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혼과정에서 서로의 밑바닥을 보고 싶지 않아 그 조건을 곧 받아들였다. 내 전재산을 주고서라도 이혼하고 싶었으니 집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Part 2. 이혼 후가 더 힘들다.


아이도 없고 합의이혼이라 그나마 쉬운 편이었다.

먼저 시청에 가서 서류작성 후 법원에 제출한다.

거의 한 달 후에 양쪽 모두 출석하라는 통지가 날라온다.

이때 한 명이라도 불참 시에는 이혼취소가 된다.

나는 그때 남편이 안 올까 봐 쓸데없이 걱정을 했었다.

이혼 안 해주겠다고 다시 잘해보자고 울고 불고하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에 안 올까 봐 걱정했는데 명의를 변경해줘서일까 제 시간이 딱 나타나는 게 아닌가.

순서가 되었고, "합의 이혼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이 두 마디에 이혼이 성립되었다.

법원에서 받은 서류를 가지고 시청에 기한 내에 같이 가서 제출해야 한다.

한 명만 가거나,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도 이혼취소가 된다.

그리고 제출 후에도 일정 기한 내에 이혼취소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이때도 남편이 다음에 제출하자고 하면 어쩌지, 혼자 가서 취소하면 어쩌지. 별 걱정을 다 했었는데,

법원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시청으로 가서 제출하고 깨끗하게 헤어졌다.


이혼은 쉽다. 특히 합의는 너무도 쉽다. 그런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나는 위자료는 못 받을 망정 집을 주고 이혼을 했기 때문에 친정식구들에게 엄청나게 질책받을 게 뻔했고, 마땅히 있을 곳도 없어서 양산 어느 시골에 들어가 휴대폰도 꺼놓고 근 한달간을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고 보냈다. 먹지 않아도 살은 쪽쪽빠졌고 헛구역질도 심했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그런데 이대로는 살기 힘들고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에 짐을 꾸렸다.

원래 오랜 기간 동안 해외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해외로 나갈 준비를 했다.


그렇게 해외로 온 지 1년 반 후에 같은 아파트 아래층으로 이사 온 외국인 남자와 눈이 맞았다.

그런데 이 남자는 신기하게도 전남편과 미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백수"와 "허영, 허세"때문에 이혼했는데 이 남자도 실제로 "백수"였고, 어쩐지 허영심 같은 모습도 간간이 보이는 듯했다.

그런데도 이상한 끌림으로 결혼까지 하게 되었고, 이것 때문에 결혼 후에도 한동안은 고생이 심하긴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과 달리 아이가 있고 남편이 이혼만은 절대 안 할 거라고 해서 상황이 더 힘들어졌었다.





Part 3. 다른 남자도 전남편과 다를 바 없더라.


똥차 가고 벤츠온다고?

나에게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 듯했다.

나는 정말 학습능력이 부족한 것일까.

"백수"와 "허영 허세"를 경멸해서 헤어졌는데 어찌 새로운 이 사람도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는 걸까.


사실, 이혼 후 두어 명 소개를 받았다. 그들은 아주 성실한 사람들이었는데, 외적으로나, 지적으로나 나에게는 전혀 끌림이 없었고, 대화는 따분했고,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아 만남이 지속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아래층남자에게 끌리는 건 왜인가.


2012년 4월, 그렇게 아랫윗집으로 만나서 같은 해 7월부터 동거를 시작하고 9월에 한국 가서 결혼한다고 하고 11월에 임신을 하면서 남편의 나라로 오게 되었다.

1년도 채 안되어 만남, 임신, 결혼까지 간 거다. 전 남편과는 결혼까지 무려 8년이란 시간을 보냈고, 7년 결혼생활 동안에는 아기도 없었는데, 지금 남편과는 조기폐경진단을 받고도 임신된 것 보면 참 세상은 알 수 없고,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그리고 지금 남편의 "백수생활과 허영"으로 우리는 엄청난 대화를 해야했다. 대화법이 서툴어서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그를 많이 이해하게 되었고, 나의 잘못된 행동도 컸음을 알게 되면서 하나씩 하나씩 실타래가 풀려 나갔다.

백수와 허영이 대화로 해결된다고?

그렇더라. 해결되더라. 나는 이문제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고, 책도 수십, 수백권을 읽었으며 내가 옳다고 생각한 아집들이나 대화법을 바꿔보는 등 일단 나 자신부터 바꿔갔다.

이 과정을 썰로 풀자면 책 한 권은 나올 분량이라 여기서는 일단 접어두겠다.



Part 4. 문제를 대하는 나의 태도


우리는 지금 경치 좋고 공기 좋은 남편나라에서 살고 있다.

남편은 나보다 12살 어리고, 우리에게는 10살 된 아들도 한명 있다.

남편은 성실하게 일을 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며 이제는 자기에게 맡기고 하고 싶었던 것을 하며 쉬라고 한다.


전남편이나 지금 남편이나 "백수생활과 허세, 허영"은 같았다.

그런데 그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달랐다.

전남편에게는 기회도 안 줬고, 이해하기도 싫었으며, 모든 것이 못마땅했고, 부단히 마찰을 일으켜서 이혼을 선택했다면, 지금 남편에게는 많은 기회를 주고 대화와 이해로 천천히 매듭을 풀어나가면서 나 또한 성장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지금 알고 있던 이것을 그전에도 알았더라면.. 이혼하지 않았을까...


예전에 나는 생각했다. 전남편과 이혼을 선뜻 못했던 건 헤어지는 아픔이 무서워서 도망만 다니던 거라고. 그래서 당당히 부딪혀야겠다고 다짐하고 이혼을 강행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아니다.

이혼은 도망가기 가장 쉬운 탈출구이다.

내가 수고하기 싫고, 그에게 베풀 노력이 아깝고, 나만 희생하고 나만 이해하는 것이 억울하고, 이러한 수고를 하기 싫으니 쉬운 길을 선택했던 것이 바로 이혼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이혼하기 전에 충분한 대화로 서로를 잘 이해하려고 해 봤는지,

그 대화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서 어떻게 최선을 다 했는지,

그 최선이라는 게 과연 객관화된 것인지,

그걸 재조명해 보고 이 모든 것에 후회가 없다면

이혼하는 걸로 해.

네가 무엇을 선택하던 그 선택이 맞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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