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살 때 봤었던 파리의 여러 장소 중 가장 예뻤던 곳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가르니에 극장을 꼽았다. 에펠탑도 예쁘고 미술관도 좋았지만, 가르니에 극장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잊을 수 없다. 양쪽에 대칭으로 동그랗게 휘어진, 난간에는 석조 장식이 가득했던 계단을 오르내릴 때 나는 마치 디즈니 공주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 간지러움은 살면서 처음 느꼈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관광 날, 가르니에 극장에 갔다. 소설 <오페라 유령>을 책가방에 일 년 가까이 넣고 다니며 읽었었던 재인이는 이곳이 이 소설의 배경이 된 곳이라 하니 내심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가보니 티켓은 매진되었고, 티켓을 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샤갈의 천장화가 그려진 오라토리움은 작업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재인이는 눈물을 글썽였다. 이십 년 전에는 공연 없는 날 극장이 방문객에게 무료 공개되어 그냥 들어가서 볼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파리는 여행 성수기였던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이 붐비고 훨씬 더 깐깐하다.
그런데 가르니에 극장 아트샵에 유난히 예쁜 소품이 많았던 게 불현듯 생각났다. 샵 만이라도 갈 수 없는지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다행히 가능하다고 한다. 아트샵은 기억 속 그대로 예쁜 발레용품과 열쇠고리, <오페라 유령>과 관련된 굿즈가 가득했다. 네덜란드에서 봤었던 예쁜 튜튜를 입은 미피가 그곳에도 있길래 재인이에게 사주었다. 오페라 유령 열쇠고리와 함께. 그것으로 재인이는 서운한 마음을 달래는 듯하다.
가르니에 극장을 나와 점심을 먹은 후 몽마르트 언덕으로 갔다. 몽마르트 언덕 역시 20년 전 갔었던 장소이다. 아기자기 볼거리들이 많고 사람들이 적당히 붐벼서 재인이도 이곳에서의 산책을 즐거워했다. 붉은 물랑루즈 건물은 그 사이 빼곡히 늘어난 가게들의 위세에 눌러 이제 보니 조금은 볼품이 없다.
이렇게 해서 20여 년 전 들렀던 장소들을 모두 들렀다. 그때 안 가봤던 지베르니나 몽셸미셸을 가볼까 며칠동안 고민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일정이 너무 빼곡했다. 기약없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2025.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