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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연을 기대하며

에어캐나다타고 프랑스 여행하기 5

by 정윤희

23살 때 파리로 여행한 적이 있었다. 영국에서 배를 타고 파리로 갔었다. 내가 직접 배를 탄 것이 아니라 나를 태운 버스를 배가 싣고 가는 경로였다. 해저에 뚫린 긴 터널을 통과하는 신비한 경험을 하며, 나와 나이가 비슷했던 한국인 여행자와 수다를 떨며 도버 해협을 건넜다.


버스는 파리에 도착했고 몇 안 되던 승객들은 모두 버스를 내렸고, 나도 내리려고 일어섰을 때였다. 버스에는 기사 외에 승무원 한 분이 계셨는데, 프랑스인인 여성이었다. 쇼트커트를 하고 있었고, 단정한 유니폼을 입고 계셨고 진한 빨간색과 파란색이 멋스럽게 조화된 스카프를 몰에 두르고 있었다. 스카프는 승무원 복장이었던 듯하다.


안타깝게도 그분에 대해 기억나는 인상착의는 이게 전부이다. 그분은 영어로 내게 물었다.


"어디에서 오셨나요?"

"한국에서 왔어요. 영국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어요."

"아까 이야기를 나누던 분들과는 잘 아시는 사인 가요?"

"아니요, 오늘 이 버스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렇군요. 파리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여행 왔어요."

"아, 그렇군요. 좋은 여행 되세요.

God loves you.God bless you."


그러면서 프랑스인의 인사법인 볼 뽀뽀를 해주셨고, 나도 해드렸다. 다행히 영국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볼 뽀뽀를 자주 하고 있던 시기여서, 세련되게는 아니어도 어색하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사실 그분과의 대화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적은 대화도 어렵게 퍼즐을 맞추며 빈 곳을 내가 임의로 채운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분이 내게 주셨던 신비로운 눈빛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촉촉하고 반짝이는 눈동자로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아껴주셨던 그 표정....


그분이 왜 갑자기 생면부지인 나에게 그런 안부를 묻고 나를 걱정해 주었는지 이유는 전혀 모른다. 처음 보는, 그것도 머나먼 나라 출신인 나에게 대화를 걸어 볼 용기를 내셨는지 지금도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그런 선의가 나도 간절했었는지 그분의 따스한 마음을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나이를 먹고 친절과 선의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그래도 그분처럼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다가가 선의를 베풀 용기는 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 공짜로 내게 베푸는 선의를 받고 싶다. 특히 이번 여행에서. 무엇보다 이번엔 나도 누군가에게 조금은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요즘 거의 외출은 하지 않고 사람도 잘 안 만나고 있다. 주부이자 프리랜서인 나의 평범한 일상은 대부분 집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도 맘먹고 연락하고 약속 잡으면 가끔 누군가와 교류도 할 수 있을 텐데 요새는 몸도 마음도 무거워서 그게 잘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머나먼 타지에서의 인연에 엉뚱한 기대를 하는 나 자신이 참 모순적인 것 같다. 그래도 몸이 무거워지는 계절에는 그냥 그런대로 쉬기로 하고, 몸을 일으켜 여행을 나서면서는 새로운 꿈을 꾸어야지.


며칠 동안 에어비엔비 홈페이지 내부를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파리에 도착해서 첫 일주일은 주인 없는 텅 빈 집이 아닌 주인이 직접 반겨주고 한동안 살이도 같이 할 수 있는 집에서 묵기로 했다. 재인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기에 동네 분위기를 읽고 위급한 일이 있을 때 대처하는 법을 알려줄 누군가와 여행을 시작하는 게 조금 안심이 된다.


파리의 16 구역은 아이들이 많은 안전한 동네라고 한다. 그곳에서 한 할아버지가 은퇴 후 호스트로 활동을 하고 계신다기에 그 집을 선택했다. 예전엔 자녀들과 함께 살던 집이지만 지금은 독립해 나가서 방이 비어있다고 한다. 은퇴 후 호스트 활동이 만족스러우신지 게스트들에게도 매우 친절하시고 집도 엄청 깔끔하게 관리하고 계신다. 깔끔한 분이시라면 내가 주방에서 요리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시려나... 주방을 많이 어지럽히지 않아도 되는 간단한 요리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요리 후 뒷정리라면 자신 있다. 가끔 음식도 나눌 수 있으면 나눠야지.


에어비엔비 예약이 처음이라 프로필과 사진도 제대로 안 올렸다가 처음에는 거절을 당했다. 완전한 거절은 아니고 보류를 하셨다. 그러면서 프로필과 사진, 자기소개만 업데이트해 준다면 승낙을 해주시겠노라고 메시지를 보내셨다. 얼른 필요한 것들을 업데이트하고, 에어비앤비 예약이 처음이라 과정이 서툴렀다고 사과드리며 재요청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바로 승낙해 주셨다. 이렇게 우리 여행의 첫 인연을 맺었다.


아이와 함께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무조건 지하철역 근처로 잡았다. 그런데 에어비앤비 예약 지도에는 지하철역이 바로 나오지 않아 구글맵을 동시에 펴놓고 숙소를 찾았다. 때때로 자전거를 타고 센 강을 통해 이동할 수 있도록 되도록 센강 근처로 숙소를 잡았다.


아무리 위치도 중요하고 함께 할 인연도 중요하지만 몇 가지 포기할 수 없었던 조건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사실 숙소를 찾아내는 게 쉽지 않았다. 바로 침실에 딸린 전용 욕실과 간단한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 주방이다.


일과 후 간단한 기록과 사진 정리를 할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도 필요했다. 아이 역시 내가 컴퓨터를 하는 동안 옆에서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한다. 여행을 다니면서도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각자의 공부와 일에 시간을 들이기로 했다. 머나먼 여행지에서도 사는 것답게 살고 어느 정도 루틴 한 일정을 지키며 살고 싶다.


CotedesFlandres_1200x600.jpg 사진출처 https://www.dfds.com/ko-kr/passenger-ferries/ferry-crossings/ferries-to-uk/calais-d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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