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너와 거리를 좀 두고 싶다

by 정윤희

새벽에 모기가 한 마리 날아다녔다. 잡을까 하다 말았다. 설마 이 추운 날씨에 제까짓 게 물면 얼마나 문다고.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재인이가 열 방 넘게 물려 있었다.


오늘은 6일간 유효한 뮤지엄 패스의 마지막 날이었다. 어렵게 예약한 생트 샤펠로 향하는 길, 숙소를 나서자마자 아이는 짜증이 머리 꼭대기까지 나서 여기도 물리고 저기도 물렸다고 한다.


"그만해!"


몇 초 간의 적막.


"너 친구랑 있을 때도 그렇게 가렵다고 계속 말하니? 엄마, 담임 선생님, 학원 선생님까진 아니어도 친구들만큼의 대우는 받고 싶거든?"


생트 샤펠에 도착할 때까지 우린 아무 말이 없었다. 아이는 어렸을 때 모기 알레르기가 심해서 팔에 물리면 팔뚝이 두 배만큼 부풀어 올랐다. 물린 자리에 일어난 수포는 한 두 달이 지나서야 딱지가 져서 떨어졌고, 그러고 나서도 자국이 6개월은 족히 갔다. 그런데 얼굴에라도 물리는 날엔... 남편과 시어머니는 그런 재인이를 볼 때마다 마치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 일어난 양 안타까워하셨고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다. 남편은 모기 소리가 들리면 갑자기 불을 켜고 어떻게든 잡는다. 하지만 나는 워낙 한 번 잠이 들면 몸이 무거워 도저히 일어날 수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켜 불을 켜봐도 비몽사몽 하는 내 눈에 모기가 보일리 없다. 그러니 평소 남편이 모기를 잡으려고 불을 켤 때마다 눈부심을 참으며 조용히 누워있을 뿐이다. 다행히 재인이는 열세 살이고 이제 모기 알레르기 증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릴 때 습관이 남아 모기에 물리면 엄청 칭얼댄다.


이제 재인이와 거리를 좀 두고 싶다. 시어머니와도 친정어머니와도. 아이가 미술관 관람을 즐겨하지 않을 거라는 걸 뻔히 알고도 이 먼 곳까지 데려와 이렇게 부득부득 다니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 거리를 아이의 마음속에 각인시키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엄마에게는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과 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기에 네가 이제는 참아낼 몫이 있는 거라고, 어쩌면 아이와 씨름하는 심정으로 모질게 아이를 끌고 다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파리에 간다고 말씀드렸을 때 시어머니는 몹시 놀라셨고, 친정어머니에게는 아예 가기 직전까지 제대로 말씀드리지 않았다. 모두 이 여행을 반기지 않을 거라는 걸 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원치 않는다 해도 내가 한 번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은 어떻게든 해내고 싶었다.


모든 일에는 즐거운 순간이 있지만 또 고비가 찾아오는 법, 오늘이 바로 그 고비의 날이라는 걸 어젯밤부터 직감하고 있었다. 오늘로 뮤지엄 패스의 유효기간도 끝났고 일주일 짜리 교통카드 유효기간도 어제 끝났다. 내일은 집에서 실컷 게으름을 피울 것이다.



202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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