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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Aug 31. 2024

30년 만의 kimbop

아직도 밥이 치즈인 줄

노스 코리아, 사우스 코리아 하던  해외 반응이 작렬하던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최근에는 kimbop 열풍이 불고 있단다.

88 올림픽 이후에 여행 자유화가 되면서 해외로 떠돌기 시작했던 내가 하필이면 감밥 성애자였으니 딱이네.

김밥의 속재료를 준비하는 것이 번거롭다지만 나는 김밥을 생각만 해도 설레는 사람이니 그까짓 것 아무것도 아니다.

주로 불고기 김밥을 하는 편인데 당근, 계란, 단무지, 게맛살을 말고 썰고는 문제가 아니다.

시금치를 다듬어 데쳐서 양념하는 일이 정말 번거로워서 패스할 때가 많다.


캐나다인들과 모임( 이민 초창기)에서 나의 애정템인 김밥을 터질세라 정성껏 꼭꼭

싸서 팟럭 파티에 가져갔다. 나름의 한국식 핑거 후드라고 자부하면서.

다른 케네디언들은 야채 약간, 치즈와 크래커, 과일 트레이와 칩스 종류만 잔뜩 가져왔다. 도대체 뭘 먹으라는 건지?

찍어 먹을 건 많더라. 온갖 드레싱과 사우어 크림이나 치즈 딥 등등은.

나의 야심작 김밥은 외로운 섬처럼 테이블 구석에 오도카니 놓여있는데 명랑한 한 서양할머니만 친절하게 하나를 가져가고 나니 큰 접시에 세 겹으로 쌓은 김밥은 말라가고만 있었으니....

그런데 서양 사람들, 물어보는 건 좋아해서 내용물이 뭐냐 등등 질문은 잔뜩 하곤 'interesting' 하고 지나가버리더라.

이상하게 그날따라 서양 음식 사이에서 김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내 코를 어찌나 찌르던지.


20여 년 전의 김밥은 냉대와 무시를 당했었다. 특히 참기름 냄새가 그들에겐 스컹크 냄새라니 어이가 없어서.

그래도 잡채는 누들 종류라서 호 불호가 그리 갈리지 않았고 불고기는 다 좋아하곤 했다.

사실 김밥과 잡채는 같은 재료이다.


그 당시의 밴쿠버엔 한국식품 규모도  작고 영세해서  식재료도 많지 않은데도 비싸기만 했다. 그래서 한국 갔다 오는 남편에게 부탁하는 것이 주로 김과 당면이었다. 한창 먹는 아이들이나 한인 모임에서의 음식으로는 김밥이 제일 수월했다.

내게는  설레는 음식이었으므로 더욱더.


거의 30년 동안 스컹크 냄새를 풍기던 김밥을 지난 주말에 다시 선보일 기회가 왔다. 매년 8월 마지막 주말에 아파트 전체 바비큐 파티가 있다. 크리스마스 파티에는 한번 참석했는데 여름 바비큐는 처음이라 가 보기로 했다.

참가 음식은 그동안 홀대받았지만  하도 kimbop, kimbop 하면서 미국마켓에서도 동이 난다니까 한 번 뽐내 볼까나 하고 김밥이 당첨.

단, 내용물은 신경을 써야 한다.

서양이 섞인 손자들의 입맛에 따라 채 썬 당근, 불고기, 계란말이 딱 세 가지만 넣었다.

바비큐는 햄버거와 소시지 두 가지였고

각 집에서 한 접시씩 들고 왔는데 샐러드류와 디저트가 다였다. 한국 DNA로서는 용납이 안 되는 허름하고 양에 안 차는 테이블 세팅이었는데 다들 토끼들처럼 당근을 갉아먹으면서 즐거워하더구먼.


서양사람들이 체구에 비해서 엄청 엄청

 안 먹는  사람도 많다. 나의 사돈을 보더라도 딸네 집에 비행기 타고 가서 저녁에 도착하면 든든히 먹어야 되는데 기껏 크래커에 치즈, 와인 한 잔 마시고 끝이라고 한다. 우리 한국 부모가 비행기 타고 가면 불고기에 야채에 김치에 밥을 한 그릇 먹어야 잠이 온다.

아들이 ' 엄마, 아빠 많이 드시네요'라는 말에 쪽팔림을 당하면서도 기운은 없는 반면에 서양 사돈은 어찌 체력이 좋은 지 76세인데 아기 주먹만 한 유방암 종양을 떼어내고도 플로리다로, 스페인으로 내 집 드나들듯이 쌩쌩 날아다닌다. 동양 종자의 밥심은 어디다 명함도 못 내민다.


나의 김밥이 테이블에 놓이자 한국에 갔다 왔다던 이웃 남자가 한국말로 '김밥'하면서 다가와서 나 대신 주위사람에게 설명한다.

많이 모이진 않았지만

젊은 커플 1쌍 외엔 중년과 노년층 20여 명이 모여서 절대적으로 번에다  버거와 핫도그를 넣어서 먹는 것이 대세였다. 젊은 커플 중의 부인이 김밥의 하얀 것이 치즈냐고? 밥이 하얗고 찐득하니 멀리서 보니 백치즈로 보였나 보다 하고 이해는 하지만 아직도 쌀밥을 모른다고?


잘 모르는 주민들끼리 인사도 하고 서로 근황도 물어보는 자리여서 음식보다는 더 의미 있는 자리였다.

그런데 활달한 40대 여자 주민이 동양인이 우리 부부밖에 없어서인지 우리 옆에 와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햄버거를 우걱우걱 씹으면서.

나중에 내가 서양 여자들의 복장에 대해 써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정말 궁금해서.

왜 티셔츠나 일반 셔츠의 가슴을 깊이 파서

가슴골을 드러내는지. 피부가  뽀얗지도 않을뿐더러 주근깨 같은 점이 가득한 피부를.

이 주민도 가슴의 반은 드러낸 딱 붙은 티셔츠를 입었는데 서양인의 체형이라 빵빵하고  영화에서 하도 봐서 생소하진 않지만 그러지 않아도 체하기 쉬운 김밥이 체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치즈김밥이 아니라 밥이 치즈처럼 보인다는 나의 김밥과 서양 음식들

푸짐한  그릴팬  한식 손님상과 비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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