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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버린 몸

75세가 되면

by 그레이스 강

'말기'라는 말처럼 무시무시한 단어가 어디 있을까? 치과 가기보다 더 싫은 안과에서 받은 진단명. 중한 병의 말기와는 상대도 안 되는 하찮은 백내장 말기라지만.

아무래도 한국말이 서투른 한인 젊은 의사가 알기 쉽게 초기,말기라고 말한 듯 하다.

그냥 백내장이 심하시네요 하면 될텐데.

그 말기의 '말'이 섬찟하면서도 다행인 것은 캐나다 의료가 국가 보험으로 다 커버가 되기 때문에 웬만큼 아프지 않으면 수술은커녕 MRI도 감히 찍기를 바라지 않아야 되는데 수술을 할 수 있어서이다.

수술을 요하는 급한 병이나 상황까지 악화가 되어 응급실을 가면 바로 처치를 해준다.

그런 형편이니 눈이 약간 흐릿흐릿하고 비문증이 생겨서 가봤자 백내장 초기라면 수술은 안 해준다고 보면 된다. 나는 고도 근시에다

'말기'라서 의사끼리 연락해서 수술 날짜를 알려준다니 올해 안에 하면 다행이라고 느긋하게 마음을 먹어야지 한국인의 급한 특성을 살리다가는 화병 나서 수술도 못 받아보고 지레 쓰러진다. 올해는 '눈과 함께'라고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되고 말고.


아이들이 어릴 때 다니던 '고려병원'이 강북 삼성병원인 줄 안 지 얼마 안 된다.

새로 생겼을 당시 인재 의사들과 새로운 시설로 삼성에서 야심 차게 지었다고 해서

꽤 인기가 높았던 병원으로 기억하고 있다.

특히 소아과의 한 의사 선생님이 아기 환자 부모에게 '꿈에 ○○아기를 보았다'라고 하니까 부모들이 폭풍감격으로 숨 넘어갈 뻔했다는 일화가 떠 돌 정도로 친절하고 실력 좋은 의사들이 포진해 있다고 소문이 났었다. 의사가 환자의 신체뿐만 아니라 마음을 안심시켜 주는 친절함과 세심함이야말로 최고의 의료 서비스일 것이다.


요즘 한국의 대형병원에서는 '3분 컷'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빡빡한 의료 일정 때문에 환자들은 선생님과 말 좀 섞어 보려 하나

절대 안 된다고 한다.

캐나다에서는 패밀리 닥터를 포함해서 진료 상담 시간이 최소한 15분인 것 같다.

보통은 30분 정도.


창문 없는 방에서 하루 종일 아파서 찡그린 환자들과 수술실에서는 피를 보고 검시실에서는 시신 옆에서 짜장면도 먹어야 하는 극한직업이다 정말 생명을 살리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이 없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그래도 캐나다 의사들은 한국 의사들 처럼 한 진료실에 머물면서 환자들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노트 패드를 들고 클리닉 안의 여러 방을 찾아가면서 진료를 한다.

환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물론 환자와 농담도 하고 안색도 살피고 힐끔힐끔 화면도 보면서 환자 상태를 봐주는 것은 대만족인데....

의사 부족으로 패밀리 닥터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그러니 그 외의 신속한 프로세스는 기대할 수도 없는데 굼뜬 애가 어떤 때는 '나르는 돈가스'가 되어 깜짝 놀래키듯이 급한 병이나 응급상황에는 빛의 속도로 무지하게 빠르게 치료를 해 준다.

알다가도 모를 캐나다 의료계를 다 이야기하려면 입이 아픈데 인간이 적응의 존재라서 그려려니하고 살아간다.

그렇다고 내 자신이 절대 느긋해지지는 않고.


무슨 놈의 피검사는 3개월에 한 번씩 하라고 하는지 패밀리 닥터한테 3개월마다 하는 건 너무 스트레스받으니 6개월마다 하겠다니 안 된다고.

10시간 이상 금식하고 아침 7시에 오픈하는 검사실을 가려니 그 전날부터 긴장해서 잠을 못 잔다. 이메일로 접수해서 정해진 시간에 가면 되는데 내 마음대로 날짜를 못 정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새벽에 출동해야 회사 가는 사람들이 줄 서기 전에 검사를 받을 수 있다. 다행히 피 뽑는 기술은 나쁘지 않아 멍들지는 않는다. 친절하고 여유 있는 검사실이 병원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사무실처럼 상가 건물에 있어서 찾아가야 한다.

다리가 성하고 운전할 기동력이 있으면 환자가 병원을 찾아가고 움직이지 못할 때는

간호사가, 간병인이 집으로 찾아간다.

나의 몸상태가 항상 똑같을 것이라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환상이다. 오늘 걷다가 내일 못 걸을 수도 있으니까.


옛날(반세기 전)에는 동네마다 의원이 많았다. 참외를 다섯 개 먹고 배탈이 날 때나 갑자기 열이 날 때, 주로 밤에 개인 병원 의사 선생님이 왕진을 오시곤 했다. 까맣고 반질반질한 가죽 왕진 가방에서 청진기를 꺼내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전화해서 오시라는 것도 아니고 식구 중에 누가 가서 모셔오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2층집이나 자그만 건물이면 길가로 난 일층은 병원으로 쓰고 위층은 살림집으로 쓰고 있었다.

그래서 밤에 응급상황이 생기면 바로 살림집으로 가서 선생님께 왕진을 부탁하기가 쉬웠다. 세모로 접은 약 한 봉지와 선생님이 배 한번 진찰하시면 병이 다 낫던 시절이 있었다.

추억 속에 묻히고 잊혀져 가는 옛날 병원의 인정스럽고 정감이 갔던 의료 서비스가 그리워진다.


캐나다에서 2년마다 연락이 와서 국가가 지정한 몇 가지 암 검사는 74세까지만 해 주고 그 이후에는 증세가 있을 때 병원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그 이후의 삶을 국가가 버린 인생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래도 살아가고 저래도 살아지긴 하지만

그렇게 인색한 캐나다 의료 상황에서 백내장 수술 후에는 처진 눈매 교정 수술도 해 준다니 웬 떡이냐 싶은데(짝눈이 된 내 눈 걱정보다) 손재주 없는 서양사람들에게 성형을 맡겨도 될까?

미용 목적을 이해 못 하는 서양 의사들에게 의료 목적으로 쌍수를 한 지인들을 보면

거의 소시지 수준의 눈두덩이 됐던데.


내년에는 나를 못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너무 예뻐졌거나, 너무 흉측해서.

혈액 채취실 주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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