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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그사세

지나가면 아쉬운

by 그레이스 강

20여 년 전에 '하유미 마스크 팩'을 쓰던 30대들은 어언 50대가 되었다.

나는 캐나다에 사는 관계로 엘에이에 살던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며칠 머물렀는데 그때 가방에서 뭔가 주섬주섬 꺼내서 준 것이 그 마스크 팩 시트였다.

그 당시 유행을 타기 시작하던 팩이라나 뭐라나.

한국에 살 때는 아모레, 쥬단학, 피어리스 화장품 방판 아줌마들이 서비스로 한집에 엄마들 몇 명을 포로수용소처럼 일열로 뉘어진채로 마사지를 받아본 것이 고작이었는데.

그리고 캐나다에 와 보니 튜브에서 짜서 얼굴에 바르고 굳으면 근처의 머리카락까지 뜯겨 나가는 peel off 타입밖에 없었다.


3년 5년 7년 10년 지나면 세월이 '어어' 하는 사이에 몇십 년이 금방 지지나네.


지금의 30대는 참 현명하고 똑똑한 것 같다.


지금의 60, 70세대는 때가 되면 결혼하고 아이들도 당연히 낳아야 되는 줄 알고 그렇게 살았다.

그러려니 하고 살면 멍청해 보여도 별 마찰 없이 잘 살아진다. 악착같이 살아보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싫어도 참고 마음이 상해도 아닌척하고 보기 싫어도 웃으며 봐 주었다.

가식이라고 하겠지만 그러면서 시간이 흐르다 보니 무뎌지고 칼칼하던 성격도 둥그러지니 어떻게 보면 바보같아도 무난하게 살았을 수도 있다.


딱 집어도 30대들이 사는 그들만의 세상(그사세)라고 한 것은 그때가 가장 빛나고 싱싱한 나이라서 그렇다.

그런데 내 세대의 30대는 가정을 이루고 양가 부모님에 대한 격식과 의무, 자녀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막중한 일을 해 내면서도 요즘의 30대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또한 자신을 아끼며 돌보고 살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저 체면치레와 남과 같이 살아 보겠다는 일념하에 그야말로 지지고 볶고만 살았다.


그때의 남자들은 직업이 천차만별이었어도

외벌이 가장으로서 큰소리도 치고 살 수가 있었다. 그러나 웬 술들을 그렇게 마셔댔는지 술 때문에 파탄 날 가정도 한국 엄마들의 자식에 대한 책임감과 이혼 후의 생계가 막연해서인지(이혼녀라는 무시무시한 주홍글씨도) 어찌 됐든 깨어진 바가지를 실로 꿰매서 쓰듯이 물 한 바가지가 다 새서 반 바가지가 되어도 그렇게 억척스럽게 가정을 소처럼 묵묵히 끌고 나왔다.

달구지에는 술에 취해 헤롱헤롱하는 남편과 토끼 같은 자식들을 태운 채로.


한국은 30여 년 동안 급성장을 하였지만 캐나다는 30년 전의 거리가 정말 간판 하나 안 바뀌고 그대로 있다.

하도 변화가 없어서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다.

기껏 해서 고층 아파트가 곳곳에 세워진 것 외에는.

그 외에는 단독 주택들이 4,50년 된 집이 수두룩하다. 심지어는 100년 된 집도.

그래서 그런지 처음 이민 왔을 때 캐네디언들이 돈 많이 버는 직업은 플러머(배관공)이고 한국 사람들이 자본 없이 이민 오면 짜장면 만드는 기술만 있으면 벌어먹고 산다고 했다.

캐나다에 사는 요즘 30대 젊은이들이 가령 셰프 자격증을 20대에 땄다고 하자.

군대를 안 가니까 35세까지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영국으로 워홀도 가고 경력을 쌓았다 해도 극단적으로 말하면 남의 식당에서 일하게 되면 35세가 정년이다.

왜냐하면 35세 이하 20대의 건강하고 힘센 한 체격 하는 서양 젊은이들이 뒤에 수두룩 빽빽이 줄을 서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양 여자들도 어찌 힘이 좋은지 동양 남자보다 훨씬 체력이 좋다 하니 서양 젊은이들이야...


캐나다 동부의 토론토는 내가 살고 있는 밴쿠버에 비해서 일자리도 많고 기회가 많다.

밴쿠버의 젊은이들은 리조트 개념의 작은 도시에서 그야말로 오래된 할머니들 집이나 고쳐주고 음식이나 파는 것 외에 전문직 약간 빼고는 퀄리티 있는 직업이 많지 않다.

그래도 밴쿠버에 살면서 서비스업 직장이

다운타운에 있으면 여러 명이 비싼 아파트 하나를 렌트해서 룸 셰어를 하기도 한다.

아파트에 옷방으로 쓰는 워크인 클라짓이 침실과 화장실 중간에 작은 공간으로 있는데 그 공간이 한 달에 600불. 사람 살 데가 아닌데도 다운타운이라서.

삶의 질을 논하기도 전에 일자리가 그렇게 마땅치가 않다는 뜻이다. 아니면 외곽 도시의 자기 집(부모집)에서 다운타운까지 출퇴근이 왕복 총 6시간 걸린다니 할 수 없지 않은가.


주로 미국 회사의 브랜치 오피스가 많은 캐나다에 취직하거나 오타와의 연방 공무원이라 해도 영원히 다닐 수는 없다. 상사가 바뀌면서 기존의 돈 많이 가져가는 월급 루팡이라고 생각되면 가차없이 잘라내고 자기 사람을 채운다던지 해서 도저히 바늘방석이라 못 견디고 있는데 하루아침에 이메일로 해고통지를 보내는 몰인정한 사회라니.

특히 요즘 친구들의 30대 자녀가 그런 경험을 하고 있다. 50대 중년의 취업은 더욱 어렵고. 해고하고 새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르고 더이상 뽑지를 않기때문에 일할 자리가 줄어드는 셈이다.

결국 남아있는 사람들이 더 빡세게 3,4인분 일을 해야한다.


인생살이 살얼음판, 어떠한 보험도 통하지 않는 살벌함 속에서 하루살이처럼 살아간다.

그래도 30대는 혈맥이 강하게 뛰어서 열정이 있는 나이이다.

예전의 30대가 더 어른스럽고 경험도 많고 아래위로 많은 일을 감당했다 해도 어떤 때는 더 유치하고 중학생 같은 정신연령의 생각들을 할 때가 있다.

전적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의 성찰보다는 대가족 내지는 사돈의 팔촌까지 얽혀서 대소사를 해내며 가족을 아우르는 일만 하다 보니 진정한 자아 성숙보다는 남들이 추켜주고 알아주는 소리에만 익숙해서 그냥 소처럼 일만 해서 살림솜씨만 늘었을 뿐이다. 어쩜 이렇게 음식을 잘하세요라든가 너무 솜씨 좋으시다 등등.

그러다보니 속 빈 강정처럼 허해서 자녀들이 싫은(바른) 소리 한마디 하면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치루어서 눈치는 빨라서 대꾸를 하려니 논리적으로 밀려서 삐지고는 며칠 말을 안 해서 아이들을 불~편하게 한다.

자신이 꽉 차 있지가 않으니까 농담도 제대로 못 받아 고깝게 들리고 조금만 잘해주면 언제 그랬냐 웃음도 오버로 만발을 한다.

이쯤 되면 자녀들도 참지 않고 박아보든가 포기한다.

그러다가도 100세 장수의 덫을 생각하면 아뜩해질 것이다.

그에 반해서 30대 젊은이들은 에너지와 감정 소모를 잘 배분해서 쓰는 법을 배운 듯하다.

심리 치료도 받고 여행도 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아닌 것 같으면 질질 끌려다니지도 않고 잘 정리하는 것 같다.

결혼에 대한 정의도 확고하고.

옛 세대에는 남자 친구가 미쳐서 날뛰면서 너 아니면 죽는다고 하면 내가 뭐 대단하다고 사람이 죽는다는데? 연민에 끌려서 결혼을 했는데 하고 보니 영 딴판이라도 그냥 살았다.

그러다가 그 유명한 Hwabyng(홧병)도 걸리고.

지금은 어림도 없다.

딱 갈라서야지

그리고 깔끔하게 혼자 살 수도 있다.

어차피 각자도생이니까.

그런데 혼자고 둘이고 간에 너무 오래들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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