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같은 남편의 속뜻, '나한테 더이상 요구하지마'
아기도 남편도 나한테만 뭔가를 요구하는 것 같을때
아기를 낳고나면 종종 사람들이 "저희집엔 애가 2명이에요. 첫째 아이와 남편이요."라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왜그럴까 궁금했는데 아이를 낳아보니 실제로 그렇게 느껴져 짜증이나는 때가 종종 생겨버렸다. 그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가 깨닫게 된 부분이 있어 글로 적어보고자 한다.
바로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는걸 너무 힘들어하는 저녁형 인간이다. 그래서 이른 오전시간 아기 케어는 무조건 나의 일이다. 요즘 아기는 5시 30분 ~ 6시 사이에 일어나는데 남편은 8시에서 8시 15분 사이에 일어난다. 이 오전 시간에 아기와 시간을 보내는게 쉽지 않은데 그 이유는 남편이 밖에 나가있는게 아니라 바로 옆방에서 자고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예 집에 없으면 모를까 일어나서 아무것도 못먹고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나도 배가고파서 아침도 먹고싶고, 좀 여유있게 씻고 싶기도 하고, 아기가 잘 못자서 아기와 함께 새벽에 고군분투 한 날에는 나도 너무 피곤해서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기 때문이다. 아마 나도 남편이 더 해주기를 바라는 욕심을 내는 것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내가 힘겹게 아기와 시간을 보내는데 (우리아기는 잠을 너무 못자서 아침에 늘 피곤해서 많이 징징거린다) 드디어 일어난 남편! 하지만 나는 본격적으로 마음이 급해진다. 남편 출근 전에 밥도 차려서 아기, 남편, 나 셋다 밥도 먹어야하고, 나도 좀 씻고 싶은데, 그렇다고 남편이 늦으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이 출발해야하는 시간 전까지는 모든일을 차질없이 끝마쳐야한다. 근데 이렇게 급한 상황에서 가끔 남편은 혼자만 여유가 넘친다. 일어나서 느릿느릿 피곤해하며 화장실을 가고, 식탁에서 이것저것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천천히 밥을 먹는다. 근데 심지어 아기는 옆에서 엄청 보채는데 남편은 들리지도 않는지 자기 얘기만 주구장창한다. 나는 아기 밥도 먹이고 달래가면서 남편 얘기도 들어주고 리액션도 해야한다.
그런데 이렇게 나 혼자만 마음도 몸도 바쁜 와중에 갑자기 남편이 나에게 뭔가를 또 요구한다면? "나 오늘부터 회사에 커피 한잔 내려서 싸가려고 하는데 커피좀 챙겨줘."라고 말한다. 아까부터 참아온 짜증이 화가되어 불쑥 올라온다. '아니 나는 이렇게 아침부터 애기 보고 우리 밥까지 다 챙기는데 얼마나 바쁜지도 모르고! 자기 늦을까봐 내 씻는 시간도 아까워하면서 커피까지 싸달라고?'하는 생각에 그만 나도 버럭해버렸다. "나도 엄청 바쁜데? 커피는 너가 챙길 수 있으면 챙겨." 하며 쏘아붙였다. 남편은 마음이 상해서 결국 냉랭하게 자기가 커피를 내려서 가져갔다.
남편이 출근한 후 다시 한번 이 상황을 돌이켜보니 내 기분이 좋지 않았던 이유는 아기의 모든 요구도 내가 혼자 다 들어주느라 너무 힘든데 남편은 돕지도 않고 오히려 나에게 요구만 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자기는 잠도 나보다 더 많이 편하게자고 자기 누릴거 다 누리면서 또 나한테 뭘 해달라는거야? 난 자기한테 요구도 안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화가났다. '또 한바탕 해야하나?'싶은 생각이 들다가 좀 진정하고 객관적으로 생각해보기로했다. 나는 진짜 내 요구를 안하나, 남편이 내 요구를 들어주고 있는게 없나 생각해보니 스멀스멀 하나 둘씩 생각이 났다. 예를들어 남편이 집에있을때 아기가 낮잠을 자면 나 산책나가니 아기좀 봐달라고 하기도 하고, 나 운동하고 싶으니 휴일 아침에도 출근때랑 비슷하게 기상해달라고 하기도 한다. 이것뿐이겠나. 더 살펴보면 더 나오겠지. 그래서 내 마음을 다시 살펴봤다. 그럼 진짜 화난 이유가 뭐지? 아 사실은 이른 아침 시간도 남편이 육아를 도와줬으면 하는데 도와주지 않기로 정해서 짜증이 났구나, 그리고 내가 아기 욕구를 다 들어주며 아기에게 맞추어 사는 삶에 많이 지쳤구나 싶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기분이 서로 나쁘지 않게 이 상황을 잘 넘어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남편에게 이른 시간에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내키지가 않았다. 만약 그렇게 억지로 도움을 얻어낸다고 해도 남편은 하루종일 피곤해하면서 더 큰 힘듦을 표현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내 관점이라 그렇게 보이는 거겠지. 남편 입장에선 그 시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체력적으로 정말 힘든시간이고 종종 새벽까지 재택 야근을 할때도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을테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나한테 아무것도 요구하지마!'라고 하기엔 나도 그에게 요구하는게 있고, 부부 사이란 애초에 요구 없이 사는게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내가 마음이 편할까? 먼저 (1) 아침시간에 내가 어떤 이유로 얼마나 마음이 바쁜지에 대해 설명을하고 (2) 그 부분을 배려해서 나에게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아침 출근전 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에 이야기해 달라고 요청해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3) 커피는 내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날에는 싸줄 수 있지만 아기 이유식을 만들어야 하거나 준비시간이 늦어져서 나도 너무 급하게 씻어야하는 날에는 안될것 같다고 미리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이렇게 했더니 남편은 조금 서운해하긴 했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고 내 말을 이해해주었다. (물론 엄청 공감해주진 않았지만..하하) 그리고 나도 명확하게 내 감정과 욕구를 파악하고 내가 할수있는 선을 정해서 남편에게 알리니 남편에게 화를 내지 않았는데도 너무 속이 시원하고 개운했다.
사실 아이가 둘 이라는 말은 '엄마인 나에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사람이 둘이에요.'라는 뜻인것 같다. 아기를 낳기 전엔 남편과 자연스럽게 서로 요구를 주고받으며 살았었는데, 아기가 태어나면서 아기의 요구가 내 앞으로 너무 많이 배정되다보니까 남편 요구를 이전처럼 여유있게 빋아주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사실 남편 탓은 아닌거다. 남편은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나에게 요구가 있을테니까. 그저 아기라는 존재가 생겨서 내 마음에 여유가 사라졌을뿐이다. 아마 내 요구를 들어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느낌 때문이거나 혹은 오히려 내 요구를 들어달라는 부탁을 남편과 주변에 더 적극적으로 해야한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앞으로도 남편과 갈등이 생길때는 이렇게 풀어나가야겠다. 그리고 지친 내 욕구도 좀 더 바라봐주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이제 육아 시작인데 (아기 11개월차) 남편과는 한팀인걸 잊지말자. 괜히 서로 관계가 틀어지거나 마음 상할 일을 만들지않도록 노력하자. 오늘도 마음을 다잡고 현명한 아내 그리고 엄마가 되기를 바라며...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