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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ysbook Feb 10. 2023

뾰족한 마음으로


카리님께


야근은 무사히 잘 마치셨을지 궁금하네요.

듣고 싶었던 강연을 듣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크셨을테지요.


글을 쓰고 삶에 관심이 누구보다 깊은 카리님이 들었다면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만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석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글로나마 달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강의는 비평에 대한 위근우 기자님의 이론을 바탕으로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그의 저서 <뾰족한 마음> 의 '뾰족함' 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셨는데 그 부분이 무척 기억에 남아 글로 남깁니다. 위근우 기자님이 생각한 뾰족하다는 건, 공격적인 태도가 아니라  두루뭉술한 태도를 갖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해요. 아울러 무엇이 두루뭉술한 태도인지도 소개해주셨습니다.



1. 내 생각은 다르나 남들과 다투기 싫음


2. 내 생각이 옳은 판단이지 스스로 따져보지 않음


3. 무엇이 옳은지 알지만 그것이 힘든 길인 걸 알아서 타협함


4. 적당히 옳은 말을 하는 선에서 사유를 더 진행시키지 않고 마무리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4번 항목이었습니다. 옳은 말만 하고 대화나 글이 공론으로 이어지기도 전에 페이지를 덮어버리지 않았었나. 설혹 논의를 이어나갈지라도 언어화되지 않은 생각과 글은 타인을 이해시킬 수 없을 것만 같단 생각이 두려웠던 것 같았습니다. 아울러 이 문항을 듣고 들은 생각은, 좋은게 좋고 나쁘면 피하는 뭉툭함으로는 어떤 대화도 이끌어낼 수 없겠단 생각에 펜촉을 다듬을 필요가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비평가란 '작품에 대해서 가르치기 보다 생산적 대화를 이끌어내는 작업자' 이자 '작가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성실한 독자이자 대화 참여자' 라던 그의 말을 떠올립니다. 보지 못한 것을 본다는 것은, 그만큼 대상을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바라 본 관찰자이기도 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생산적인 대화와 글을 쓰기 위해선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저는 상대방의 말과 글에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자주 해보려고 합니다. 내가 듣고 싶은 답만 취하려는 소위 '꼽주려는' 질문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 얻은 생각을 모아 삶으로 더욱 뻗어내고 싶습니다.


문득 20년 전 제가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나팔꽃을 심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1000원에 살 수 있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씨앗을 사다가 탄산음료 패트병 하단부에 흙과 나팔꽃 씨를 심어두고선 창가 블라인드 자리에 두었지요.


하루 이틀동안 물을 주고 햇볕을 두더니 2~3주만에 덩쿨이 블라인드 손잡이를 한 바퀴 휘감더니 이윽고 꽃이 피었다 지던 기억이 납니다. 반 친구들이 심은 식물들이 말라서 죽어갈 때 저는 제법 오랫동안 살아남아서 잠깐이나마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관심을 기울이자 씨앗은 움트고 뿌리를 내리어 비로소 세상 밖으로 손을 뻗어 존재를 발현했던 경험을 손 끝으로 새긴 채, 시간이 흘러 어느 덧 2023년이 찾아왔습니다. 키보드 위에 손을 뻗어 누군가에게 닿을 글을 씁니다. 단,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고려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는지 톺아보아야 겠습니다. 손을 쭉 뻗고서...







어떤 대상에 대해 사유를 그쳐버릴 때, 딱 그 정도의 생각에서만 머무를 수도 있겠다 싶어 문득 김혜리 기자님이 예전에 썼던 글이 생각나 가져와보았어요. 글도, 식사도 생활을 이루는 뿌리일진대 이들이 거칠어지지 않으려면 혼자서 모든 걸 아등바등거리기보다 누군와 함께하고 있음을 혹은 기다리고 있음을 믿어야 겠습니다.


넓게 나아갈 수 있음에도 개인의 생각에만 머무르고 방점을 맺었던 거 같은데, 더 깊은 논의나 생각을 확장하고 싶으면 남들이 보지 못한 맥락을 캐치할 필요가 있겠다. 그러려면 더 섬세하게 대상을 바라보고 질문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멈춰서는 안되겠습니다. 고로 글은 곧 삶이겠습니다.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발굴해야할 것들로 가득한 미지의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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