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일상을 깊이 스미면서 볼 일이다.
6시에 눈이 떴고 악몽을 꾼 탓에 잠을 설쳤다.
출근하자마자 일이 몰려 무리를 했던 탓인지 머리가 과부하가 걸린 것처럼 뜨거웠다.
근무 하는 동안 배가 너무 고팠다. 쉬는 시간에 점심을 사먹으려고 했지만 입 안 가득 음식물 대신 고민으로 채웠다. 롯데리아 미라클버거는 비싸고, 서브웨이는 거리가 먼데다 둘 다 첨가물 덩어리라 먹고 싶지 않았다. CU 편의점에 비건 샌드위치가 있다고 하지만 진열장에 재고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로투스 크림 비건 쿠키를 사려니 너무 비싸서 2000원짜리 비건 초코 쿠키를 먹었다. 맛은 없었다. 그럼에도 우적거리며 배를 채웠다. 길거리를 걸으며 찬 바람을 맞은 뒤 다시 근무하러 돌아가서 남은 일을 처리했다. 시간은 어느 덧 퇴근시간.
집으로 가는 열차에 앉았다. 다리가 뻐근했다. 눈도 뻑뻑한데 여전히 배는 고파서 얼른 뭐라도 부랴부랴 배를 채우고 싶지만 그마저도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뭘 먹을까 고민하던 찰나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한살림 여의도 매장이 있다는 사실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본다.
매장에 들어서서 현미 떡국떡을 사려고보니 전부 팔려 아쉬움을 삼켰다. 대신 채식 무섞박지 김치와 수제비 그리고 말랑고구마와 백미밥을 사서 집에서 해먹기로 하고서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일날 선물 받은 비건라면 두 봉지에 한살림 김치만두를 넣고 라면을 끓였다. 보골거리는 냄비 위로 파와 마늘 몇 조각도 넣는다. 오늘 산 무섞박지 몇 조각을 그릇에 옮겨담았다. 가끔은 자극적인 게 당기지 않던가, 김치 만두 한 입을 베어먹다 만두피가 국물까지 진득하게 스며있었다. 채워지는 건 든든함이고 분주함에 허기짐마저 밀어버린 불과 몇 시간 전의 내 모습은 사르르 녹아내렸다. 무섞박지 한 입을 베어물자 겨울 감촉이 입 안으로 다가왔다. 시린 감촉을 지나 촉촉해지더니 이내 속은 되려 맑아지는 겨울의 맛이 성큼 다가선 기분에 겨울은 따스함과 차가움이 나란히 공존하기 딱 알맞겠구나. 따스함에 충만함을 차가움에 감각을 깨우며 정신을 또렷하게 하니까.
시계를 보니 오후 5시를 향하는 중. 원래대로라면 카페에 가서 읽은 책 리뷰를 두 편 정도 남길 예정이었는데 나가기엔 애매한 시간에 걸쳐 있다. 하기로 마음 먹은 일은 많은데 컨디션을 보았을 때 쉬어야할 것 같고 이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속에서 재촉을 한다. 선택 후 따르는 책임은 온전히 내 몫인데 선택마저 망설여지는 시간이 길어지자 해는 뉘엇뉘엇 지고 자연의 시간도 정직하게 흐른다.
창가 너머로 햇볕이 방에 스몄다. 카메라를 쥐고 셔터를 누른다. 빛은 만질 수 없고 촉감을 느낄 수 없지만 눈에 맺힌 따스한 감각을 짐작할 뿐이다. 하루가 저무는 이 순간 스산한 바람이 불고 날씨도 쌀쌀해지지만 찰나의 순간만이라도 온기를 기억하려 기록하고 담는 것이겠지.
스스로 얼마나 잘 살펴보고 있을까. 잘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마음 먹은대로 잘 따라주지 않는다. 쓴 문장 만큼이나 삶으로 잘 살아내고는있을까. 그러지 않은 것 같고.. 그러지 않으면 마치 바닷 속에 버려지는 헌옷가지같은 삶이 될 것 같은데. 삶으로 살아내지 못한 문장들이 현실세계에 녹아들지 못하고 줄줄이 딸려온 생각과 현실의 괴리에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하고 있지 않은지..
무언가를 읽고 쓸 때 문장에 오랫동안 머물다 가고싶다. 생각하고, 나를 돌본 다음 문장을 써내려가고 싶은데 성격이 워낙 급한지라 스스로 되려 문장을 더 뱉어내라 재촉한다. 이제는 재촉하는 걸 멈추고 이젠 내 마음이 가는대로 들여다보고 써야하지 않을까. 글은 돌다리를 두들기듯 성큼성큼 걸어가보기도 때론 도로 위를 쭉쭉 뻗어 달리기도 하는 길처럼 형태를 달리하며 내 곁을 다가오는 것이다. 그 길 위에 내가 서 있다. 길 위를 걷다 나만의 페이스를 잃고 싶지는 않다. 단순한 일상에도 스며드는 순간들이 많다. 그저 관심을 얼마나 기울이느냐에 따라 달리 읽힐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