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적인 기술 뒤엔 고통받는 노동자가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도 모르는 게 참 많다는 걸 실감한다. 챗GPT(인공지능(AI) 챗봇 이하 GPT) 라는 낯선 단어를 받자마자 ‘이게 뭐지?’ 싶었다.
GPT는 사용자의 질문에 그럴듯한 답을 내려주고 -심지어 농담 주고받기도 가능하다.- 인스타그램 피드 소개글부터 에세이, 심지어 논문이나 사과문까지 응용할 정도라고 한다. 이토록 정교화된 인공지능이라니! 시리나 헤이 구글보다 한층 더 높은 수준의 인공지능 챗봇이 도래했다는 소식앞에 삶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구나 체감하면서도 생소한 단어 앞에 현생을 적응하는 힘은 아마득해져만 갔다.
인공지능이란 정교한 기술 뒤에는 언제나 그랬듯 인간이 있다. 뉴스에서는 일상 텍스트를 수집하는 용도로 GPT가 고안되었기 때문에 부정적인 텍스트를 필터링 해야한다고 한다. (그래서 구글에서는 리캡쳐로 신호등 사진을 고르고 특정 앱으로 같은 사진이나 글귀를 반복해서 찾아라고 요구한 것도 데이터를 학습하기 위함이었나 싶다.)
하지만 오늘 뉴스를 읽으면서 또 한 번 망연자실했다.
GPT 아웃소싱 파트너 기업 사마(SAMA)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기업에 필요한 데이터 레이블을 만들기 위해 케냐에 작업을 맡겼고 이들에게 시급 1600~2400원의 급여를 주며 정신적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정보를(아동 학대, 고문, 살인 등 부정적인 콘텐츠) 흡습시켰다. 이를 접한 직원들은 정신적 충격을 호소할 만큼 근무 조건은 열악했음을 실감했다.
인간 노동자들의 건강보다 인공지능 GPT의 성능이 중요한 것일까, 누군가 GPT가 만든 콘텐츠를 사용하면서 편리한 일상을 영위할 동안 케냐에 있는 노동자들은 일상을 온전히 누리지 못할 만큼 정신적 충격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비건을 지향하면서 화려함 뒤에 가려진 그늘을 더욱 들여다보게 되었다. 닭고기나 소고기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공장식 축산과 비위생, 비윤리적인 환경에서 소모된다는 것을 알게된 후로 소비를 하지 않듯, 비건은 단지 음식에만 국한된 개념이 아닌 자본주의와 실용에 감춰진 고통의 이면을 헤아려보는 개념으로 확장된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오로지 수익을 위해 달려가는 기업들의 모습에 가려진 고통의 암면을 헤아리지 않으면 안되겠다.
때론 어떻게 할 지 모르는 것 투성이라 무력감이 솟기도 한다. 화려함 뒤에는 노동자의 쓰라린 고통이 저며있음을 알면서도 4년 째 쓰고 있는 아이폰도 부끄럽지만 부당한 노동환경을 갖춘 폭스콘 노동자들의 초과노동으로 만들어졌다. 잡스가 살아생전 했던 화려한 PPT에 의해 혹해서 아이폰을 샀건만 마치 스스로가 모순덩이 위선자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세상 모든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최소한 윤리적인 측면이 보장되지 않으면 안되겠단 생각도 들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말은 실은 무섭고도 무거운 말임을 체감한다.
*(오늘 글은 아래 한겨레 신문 기사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https://m.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80152.html#ace04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