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처음 발 딛는 순간 직감했다. ‘여기 단골손님이 되고 싶다!’
망원동 어느 작은 서점을 처음 알게된 건 2021년 10월 어느 늦은 밤 거리에서 우연한 인연에서 시작된다.
짧은 기간 출판사에 다녔다. 일을 하면서 풀리지 않는 고민들이 많을 때면 감정을 해소하려 하염없이 합정과 망원 인근을 걷곤 했다.
퇴근 시간이 8시 조금 넘었을 무렵이었다. 이대로 집에 가긴 너무 아쉬워 합정에서 망원시장까지 걸었다. 망원시장과 식당, 술집 그리고 인파 틈을 헤집고 걷다 인파 소리가 조금은 줄어들었을 무렵 이미 영업시간이 지나 불이 꺼진 조그마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창에 ‘로우북스’라는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당시 나는 동네서점을 돌며 어떻게든 회사에서 낸 책 한 권이라도 더 팔아보려고 애를 태우던 신입 마케터였다.
서점 사장님과 만나 회사 신간을 홍보할 때, “검토하고 연락드릴게요.”라는 말을 듣고선 가게문을 닫고 돌아서는 길이면 마음이 불편했다. 서점 사장님께 일방적인 부담만 짊어드린 건 아닐까 (나만 그렇게 느꼈을 수 있지만) 할 말만 하고 돌아선 것 같은데도 영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로우북스를 지나친 순간 '새 거래처' 라는 인식이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순간, 머리가 쭈뼛 솟았다. 동네책방 운영의 기쁨과 슬픔을 알고 있던 내가 '거래처' 라는 어느샌가 생각으로나 말로 뱉는 모습을 보며 불편한 직감을 느꼈다. '이 일을 오랫동안 하기 힘들겠구나…'
늦은 밤 지하철을 타고 유리창 너머로 비춘 내 모습을 보았다. 장거리 통근과 외근으로 켜켜이 쌓인 피로가 얼굴에 그득 묻어 나왔다. 표정은 점점 굳고 일그러진 채로 있었다. 책 읽고 서점이 좋아서 서점에서 일을 했고, 그토록 바라던 출판사로 이직까지 했는데 좋아서, 즐거워서라는 마음이 사라진 내 모습에서 자아조차 씻겨져 소멸된 것 같았다.
'서점이 좋아. 회사나 서점에서 내는 수익도 중요한 거 나도 알아. 근데 돈으로 관계를 계산하는 내 모습이 어색하고 불편해.'
4개월이 지난 후, 나는 일의 고충과 맞물려 퇴사를 했다.
도무지 마케터는 나와 맞는 옷이 아님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2년이 지났다. 퇴근 후 글을 쓰러 합정에 내렸다. 봄 날씨 걷기도 좋았다. <진부책방>에 들러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발길 닿는 대로 걸었는데 망원동으로 길을 잘못 들었다. 그러나 걷다 보니 어디선가 익숙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새벽이 생추어리’ 벽보와 무지개 깃발이 달린, 로우북스가 문을 활짝 연 채 손님을 반기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으로 알음알음 서점의 소식을 접했고, 밀리의 서재 인터뷰를 읽었던 터라 2년이 지난 지금도 망원동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직접 방문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딘가 홀린 듯(?) 스르륵 들어갔다. 책장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내 모습을 보더니 로우북스 대표님께서 직접 다가가 말을 건넸다.
“책 추천 해 드릴까요? 에세이, 소설, 인문 중 어떤 걸 좋아하세요?”
강남 러시에 갔을 때를 떠올렸다. 향수를 사러 갔을 적에 직원이 손님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고 혹은 무엇을 추천할지 관심을 기울이며 추천해 주셨다. 이런 관심도 거부감 없이 마주할 수 있는 손님이면 좋으나 낯가림이 심하거나 어색함에 불편함을 겪는 손님들이라면 이런 응대조차도 부담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대표님의 질문과 태도에서는 어떤 의도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손님에게 책을 소개하고 싶다는 순수함이 느껴졌다. 손님들의 성향에 따라 말을 들으면 당황하거나 어색함을 느끼는 손님들도 있을 텐데 대화에서는 계도하려는 의도도, 지나치게 사적인 표현도 하지 않은 채 -손님에 방해받지 않는 선에서- 손님에게 책을 추천하고 질문을 건넨 모습에서 오히려 마음이 열렸다.
“요즘 즐겨 읽고 계신 책 추천받을 수 있을까요?”
그는 ‘팬덤 정치라는 낙인’ 책을 추천해 주시더니 친구가 쓴 책인데 재밌게 읽었다고 말씀하셨다. 금요일에 이 책(팬덤 정치라는 낙인) 북토크도 한다는 말과 함께.
책을 주제로 나도 모르게 “요즘에 저는 장일호 기자님의 <슬픔의 방문>이라는 책 재밌게 읽었어요. 친구가 추천해 줘서 읽었는데 우울하면서 따뜻한 분위기의 책이 제게 잘 맞더라고요.”
책으로 물으면 책으로 화답한다고 그런 의미에서 대표님은 <우울증과 홈파티> 도 추천을 해 주셨다. 그는 손님이 읽고 기억에 남은 후기를 내게 건네주었다.(이야기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 옮기지 못했지만) 읽고 나면 우울함을 딛고 다음의 스텝을 밟아갈 수 있는 동반자가 되어줄 것 같단 예감이 들었다.
추천한 책 두 권을 골라 구입한 뒤 문을 열고 나서는데 모처럼 책을 사이에 두고 대화할 사람이 곁에 있음에 반가움을 느꼈다. 아울러 이곳에서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책을 통해 접하여 생각할 수 있다는 것에서 세상을 향한 호기심을 불어넣어 준 것 같았다. 사람과 책이 모여있기만 하고 접근으로까지 닿는 건 느낌이 사뭇 다르다는 걸 느낀다. 모임 뒤 접근으로 찾는 이들의 마음을 건드려 기억에 남기기까지 로우북스를 다녀온 뒤 복기해 보았다.
1. 마음의 접근. 타자를 향한 관심의 접근 관심 없는 사람에게 질문이 좀처럼 나올 수 없다. 그러나 대표님은 손님에게 질문을 함으로써 대화를 이어나간다. ‘팬덤정치의 낙인 중 몇 번째 챕터가 인상에 남으셨는지’ , ‘어떤 책을 주로 읽으셨는지’라는 사소한 질문일지라도
그 질문에 담긴 감정과 의도엔 어떤 악의도 불편함도 없었다. 그 안엔 따뜻한 말 한마디와 다정한 안부 그리고 시선이 깃들어 손님들의 마음을 열게 한다.
2. 서가와 공간의 접근. 모두에게 평등한 접근
사장님이 걷고 싶은 도시에 쓴 칼럼 중 ‘동네 서점은 중립지대이자 평등한 곳’ 이란 말이 기억에 남는다. 모두가 접근 가능한 평등한 공간이자 목적 없는 기쁨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로우북스는 기대를 충족하는 곳이었다.
모두가 접근 가능한 공간에 필요한 건 접근성이 우선이다. 로우북스는 베리어프리다. 휠체어를 타고 가도 공간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부장 없이 어린이들도 손을 쭉 뻗으면 책이 닿을 만큼 상품 접근성이 좋았다.
3. 휩쓸리지 않고 머무름에 충실한, 본질의 접근
관심경제(Attention Economy)라는 SNS 활동과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것 중 하나가 책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SNS에 연결되어 있지 않고, 온라인 매체가 아닌 책이라는 물성을 통해 현재에 머물러 사색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독서다. 책방지기는 그 시간과 경험이 좋아 서점을 운영하기도 한다. 책을 사는 손님이 그 시간을 경험하였으면 하는 것이다.(…)
책방은 관심경제를 이용하는 동시에 관심경제에 저항할 무기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예가 위에서 언급한 독서의 경험을 주는 것이다. 제니 오델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은 관심경제에 노출된 우리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것에 대해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란 이런 것이다. 끊임없이 우리의 주의를 빼앗는 소셜네트워크에 맞서 고독과 사유의 시간을 갖는 것이며 가상공간에 연결된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에 집중하는 것이다.
수시로 자신의 성과를 확인하고 모든 콘텐츠가 홍보가 되는 이 시대에 시간은 경제적 자원 이 된다. ‘시간은 돈'인 이 시대에 로우북스는 그 시간에 저항할 책을 팔고, 같이 책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과 장소를 마련한다. 손님이 아주 많은 시간이지만 서점을 일찍 닫고, 독서모임을 갖는다. 바로 앞의 신체를 가진 타인을 마주하고,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진다. 알고리즘에 의한 비슷한 정보들을 접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생경한 타인을 만나고 그 이질성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걷고 싶은 도시]2023 봄호 로우북스 대표님 글 중
관심경제에서 하루종일 노출된 사람들에게 서점이란 답답하고 느리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아니면 SNS에서 인증샷을 담기 위해 혹은 자신의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배경처럼 쓰이는 수단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씁쓸한 포인트이긴 하지만) 직접 구매하지 않고 표지만 찍은 후 온라인서점 앱을 열어 10% 할인가로 사려는 사람도 더러 있는 현실과 더불어 무엇이든 빠르게 소비되고 대체되어 버리는 세상의 속도는 무척 빠르다 못해 느림과 머무름의 의미를 왜곡시켜 나태하거나 뒤쳐졌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러나 머무를 틈조차 주지 않고 변화의 속도에 따라가다 보면 나의 생각은 타자의 생각에 쉽게 휩쓸려 버릴 수 있다. 즉, 삶의 주도권이 상실된 자아는 이리저리 휩쓸려 자신을 놓아버리기 쉽다.
하지만 책은 느리다. 문장에 담긴 활자 위에 머무름으로써 작가와 나 혹은 나와 또 다른 독자와 서로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책 자체가 머무름의 성질을 지녔다. 책이 모인 서점은 곧 머무름의 공간이 된다.
무엇이든 빠르게 휩쓸리는 시대에 머무름은 나를 지키는 토대가 된다. 가상공간에 연결된 사람들과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잃어버린 자아의 코어가 단단해지는 경험을 한다. 나의 생각을 정돈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사유할수록 나의 취향과 생각은 또렷해지는 경험을 한다. 머무름의 경험을 손님과 나누고 싶은 대표님의 보람을 서점에서 느꼈던 것 같다. 다정함과 보람이 깃든 시선은 봄볕처럼 따스했다.
로우북스 위치 및 영업시간
서울 마포구 포은로 56 1층
월,화 휴무
수~토 13:00-19:30
일 13:00-18:00
공휴일 13:00-19:30
instagram: @low_books
로우북스 노션 계정에 들어가시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https://lowbooks.notion.site
인용글 출처:⬇️
https://lowbooks.notion.site/8393e7873c504dc785dbf2f302cb18f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