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ysbook Feb 20. 2023

단조로운 일상 균열 내기

출근길 김혜리 기자가 쓴 <묘사하는 마음>에서 영화 <패터슨> 파트를 읽다 생각했다. 반복되는 노동에서 예술적 영감을 캐는 패터슨의 모습에서 ‘단조로운 일상’은 단조로운 채로 존재하지 않아 보였다. 살면서 모든 노동자가 예술에 우호적일 수 없지만, 삶에 대한 관심을 가질 때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내면의 세계를 축적하기도 때론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나의 일과는 아침 7시 30분부터 시작한다. 기상 후 씻고 청소하고 밥을 간단히 챙겨 먹은 뒤, 8시 20분 급행열차를 타고 20분 정도 책을 읽다가 회사로 들어간다.

청소 혹은 오픈 준비를 마치면 9시 30분이다. 메인 서가에 꽂힌 책을 분류하고 분류 서가에 진열하거나 아침 택배 건이 접수되면 리스트를 뽑아서 택배를 싸기도 한다. 물류에서 온 물품 재고를 체크하고 입고 등록을 하고 입고를 하고 매장을 방문한 손님의 물건을 결제하거나 매입을 돕는다. 이런 일을 5시간 동안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퇴근이다.

이런 일을 주 6일 동안 내내 지속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다.


이런 일상도 매일 이어질 수는 없을 때가 많다. 돌발변수가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진상이 오거나,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단조로워 보이는 일상에 균열이 찾아오고 마음이 다칠 때도 있다. 주어진 에너지가 전부 소진되어 퇴근 후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을 정도의 상태가 되기도 한다.


외부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중심을 잡아주는 뿌리가 단단해져야 했다. 고로 일상을 유지하는 힘이 있는 사람이고 싶다. 덧없이 시간이 흐른다 할지라도, 지긋지긋한 현실이 언제 끝날지도 모를, 덧없다고 여겨지는 삶에 균열을 내어야만 했다. 균열로 인해 생겨난 틈에 방이 생기고 그곳에서 내 생각을 꺼내어 평수를 넓힐 때 나의 생각은 비로소 흐르고 일상에서 흐르는 시간과 만날 때 나는 일상 위를 자유롭게 유영하게 된다.


방을 만드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단조로워 보이는 일상도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나만의 의미를 쌓다 보니 나를 흔들어놓는 순간에도 의연함이 사뭇 깃들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의연함에 삶에 가능성을 보고 문장은 사람과 사람사이를 나아가 세상을 연결하는 것임을 믿게 되었다. 설혹 글이 투박하더라도 문장 위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이들이 있다면 동반자가 되어주고 싶어졌다.


단조로운 일상이어도 오늘 만나는 사람, 똑같은 직장 동료들의 표정도 매일매일 다르고 미묘하듯, 일상은 단조로운 듯 매번 다르게 내 곁을 다가오고 있다. 미묘한 순간도 덧없음으로 뭉뚱그리고서 정직하게 흐르는 시간을 덧없이 흘려버리지 않는 사람이고도 싶다. (~싶다는 표현이 많은데 그만큼 간절히 바라는 게 많다는 의미일까.)


단조로운 일상이라 일컬어지는 순간에도 나는 오늘도 균열을 낸다. 틈입한 곳에 마음의 방이 넓어질수록 일상은 의미로써 충만해진다. 일상은 매일 새로운 도화지를 던져 주는 것 같다. 어떻게든 그려내다 보면 나는 남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낯섦에 다다른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