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ysbook Apr 30. 2023

추모를 기억하는 법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며.

비가 내렸다. 봉사활동을 하러 대방역 7번 출구 앞 연희동사거리까지 직행하는 버스를 탔다. 30분 남짓 시간이 지나 연희동 사거리에서 내린 뒤 횡단보도를 건넜을 때, 목적지인 문화연대 건물이 보였다. 들어가니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활동가로부터 활동 소개를 듣고 있었다.


자기소개와 참여 동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기성세대로써 이 참사에 책임을 지고 싶은 사람, 희생자들의 고통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은 사람, 이태원에 자주 가는 비건 식당이 있었는데 참사 이후 가지 못한 사람들까지. 봉사활동으로 다시 추모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어 하는 그들의 면면을 살폈을 때 나는 이들의 진심을 느꼈던 것 같다. 아픔을 기억하자는 공통분모를 지닌 이들을 통해 세상은 분명 나아질 거라고.


소개를 마치자 잠시 후 이태원추모 참사 활동가 분들이 플라스틱 박스 2개를 문화 연대 건물까지 들고 오셨다. 1층까지 내려가 들고 올라오자 활동가 분께서 활동 안내를 시작하였다.


플라스틱 박스는 중형 수납함 크기에 투명했고 그 안에는 이태원 기억의 거리에 붙은 포스트잇과 종이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활동가는 포스트잇에 적힌 기록들을 외국어/유가족 언급/한글 메시지로 분류한 다음 A4용지에 포스트잇을 붙이면 된다고 하셨다. 생각보다 간단한 작업이었다. 이윽고 그는 그렇게 모은 기록들을 디지털로 전환할 거라고 하셨다.


아울러 이태원 기억의 거리에 붙은 포스트잇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자 한 사람이 날아간 포스트잇을 전부 주었다는 사람과 혹여나 낡아서 떨어지거나 오랜 시간 색이 바랠 수 있어 비닐 테이프로 덧대어 붙인 사람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셨는데, 부디 오랫동안 기억해 주길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살필 수 있었다.


다만, 포스트잇에 달라붙은 투명 테이프를 제거를 하되 테이프가 메시지 위에 붙어 떼기 어려울 경우 그대로 두라고 하셨다. 투명 테이프를 제거하다가 메시지가 훼손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잇 하나가 곧 시민 한 사람의 목소리인 만큼, 그들의 글을 전부 세상에 들려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섬세하고도 다정한 마음을 느꼈다.

박스에 가득 찬 포스트잇들을 하나 둘 꺼냈다. 생각보다 많은 양에 적잖이 놀랐지만 눈에 비친 추모 글귀들을 읽노라면 그 당시의 마음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전할지 몰라 망설이는 마음과 꾹꾹 진심을 눌러서 장문의 편지를 쓴 사람들 각국의 언어로 명복을 비는 글을 쓴 외국인들 등등..

‘잘못 없어요 죄송해요’라는 짤막한 글귀를 읽다가 마음이 무거웠다. 참사의 맥락을 아우르는 문장 같았다. ‘잘못 없다’는 말에선 사회적 참사를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지 말라는 말처럼 다가왔고, ‘미안하다’는 말에 많은 감정과 생각이 교차했다. 각자의 생각들이 스치고 포개어지는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참사를 목도하면서 도움을 주지 못해서, 슬퍼하지 못해서,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어 추측에 지나지 않지만 이 문장을 읽고 있으니 각자가 느낀 슬픔과 미안함이 문장에 스며있었다. 더욱 슬픈 건 시스템의 잘못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 같단 슬픔이 나란히 겹쳐있었다. 개인과 시스템 긴밀하게 엮여있으면서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까지 스민 이 문장을 하염없이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꿈이 있기에 너무 미안하다’는 메시지에서는 생과 사의 거리가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살아서 현생에서 꿈을 일구어 갈 테지만 희생자들은 꿈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먹먹함을 느꼈다. 기억하고라는 글자가 빗물에 젖었는데 마치 사람의 형상처럼 보였다. 이름 모를 희생자를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종이에 붙여두었다.


분류하고 수집을 하다 보니 예상 시간보다 작업 시간이 길어졌다. 봉사활동 참여자들은 작업에 몰두해 있던 터라 하나라도 더 기록을 모으려는 마치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 싶어 하는 듯한 절박한 심정처럼 다가왔다.


포스트잇에 덧데어 붙여진 테이프를 떼다가 혹여나 글자 하나하나가 훼손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치 낡은 고문서를 복원하는 고고학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복원을 통해 오래전 기억을 꺼내어 세상 밖으로 다시 보내기까지 공을 들이는 것이 마치 역사를 만드는 것 같았다. 역사는 잊혀선 안될 기억의 총체. 이태원 참사는 슬픔의 역사임을 생각했다.

박스에 가득 쌓인 포스트잇을 A4용지로 옮기니 제법 두툼한 두께와 분량의 원고지가 모인 것 같았다. 사람들이 쓴 역사이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었구나 새삼 실감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전하고 싶어서, 더 이상 이런 참사가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억은 테이프처럼 끈적하고 힘이 셌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죽음엔 크고 작음의 상대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슬픔의 스펙트럼은 너무 넓고 방대하여 콕 집을 수 없는 단어이자 쉽게 단정 지을 수도 없는 감정의 영역이라 여겨진다.


문득 세월호 참사 이후 생존자들의 직업이 누군가를 돕는 직업군을 택했다는 뉴스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누군가의 꿈 안에서만 머물러 있는 희생자는 세상에서 더는 만날 수 없다는 슬픔이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슬픔은 슬픔으로 머무르지 말자고, 꿈에서 만나 꿈을 이루어 가자고 이야기 건네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트라우마를 딛고 연대를 택한 자들의 힘을 보았다. 슬픔을 슬픔으로써 묵묵히 바라보고 기억하되 자책과 무기력으로 자신을 가두지 말자고 다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살기 좋은 세상에 여성은 없는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