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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싹책방 Aug 26. 2024

서리가 얼음이 되지 않기를

이태준의 <패강랭>

 최근 들어서 역사 논쟁이 뜨겁게 일어나고 있다.

 특이한 것은, 나로서는 상식이라고 생각해 왔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처음 들어보는 주장과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1945년에 우리나라가 광복된 사실을 인정하느냐는 물음에 답변하지 않는 고위 관료.

 항일 무장투쟁을 이끌었던 홍범도, 김좌진 장군이 공산주의자라는 지적.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국민은 국적이 일본 제국이므로 일본인이었다는 주장 등.


 이러한 주장과 문제 제기들이 아무런 생산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뒤로 하더라도, 암울했던 역사를 비하하고 더 비참하게 만드는 특정 세력의 변태가학적인 역사인식에는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요즘의 논란들로 인해, 이태준의 <패강랭>이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이 소설은 1938년 발표된 작품이다. ‘패강(대동강의 별칭)이 차갑다’는 뜻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일제강점기의 평양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현’은 ‘박’으로부터 조선어와 한문 수업 시간이 반으로 줄었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는다. ‘박’을 만나서 안 된 사연을 위로해 줄 겸 ‘현’은 평양을 찾는다.


 이때 그는 평양의 모습이 예전 같지 않음에 의아해한다.

 커다란 무덤 같은 벽돌 건물이 경찰서로 들어서 있었고, 무엇보다도 평양 여인들이 즐겨 쓰던 머릿수건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저녁이 되어 ‘현’은 ‘김, 박’과 대동강변의 요릿집에서 술자리를 하던 중, 머릿수건이 없어진 까닭을 듣게 된다. 평양의 여인들이 머릿수건을 하는 데 돈이 든다는 이유로 금령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현’은 문화 가치를 모르는 경세가들을 비난하지만 부회의원이자 실업가인 ‘김’은 그에게 이제라도 실속을 차리라며 맞선다.

 ‘김’과 다툰 후 바람을 쐬러 대동강가로 나온 ‘현’이 다음과 같이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를 되뇌며 소설이 끝난다.


“이상견빙지(履霜堅冰至)…….”
 「주역(周易)」에 있는 말이 생각났다. 서리를 밟거든 그 뒤에 얼음이 올 것을 각오하란 말이다. 현은 술이 확 깬다. 저고리섶을 여미나 찬기운은 품속에 사무친다. 담배를 피우려 하나 성냥이 없다.
 “이상견빙지…… 이상견빙지…….”
밤 강물은 시체와 같이 차고 고요하다.


 ‘이상견빙지’는 어떤 일의 징후가 보이면 이내 큰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비유로 해석된다.

 소설에서 묘사한 징후들, 학교에서 조선어 수업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평양 여인들의 머릿수건이 사라지는 등의 현상. 우리 민족의 고유한 것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려는 일제의 만행으로 읽힌다.

 결국 1930년대에 이르러 일제는 내선일체, 황국신민화 등 민족말살정책을 내세우며 우리 국민의 정체성을 말살시키려 한다. 더하여 한반도를 세계대전의 전초 기지로, 한국인을 전쟁 수단으로써 이용한다. ‘현’의 속내를 짐작해보자면, 그의 우려는 이것이었을 것이다.


 과거 일제가 저지른 반인륜적 만행들이 오늘날 반복될 가능성은 그래도 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주체는 다르지만 ‘이상’한 징후들이 하루를 걸러 목격되고 있다.

 위인으로서 받아들여져 왔던 독립운동가들의 사상을 검증하고,

 대표적인 공영방송에서는 광복절에 기미가요의 선율이 흘러나오며,

 강제 징용의 역사적 사실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사도 광산은 일본의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반복되는 이슈들로 어지러운 와중에 이런 기사마저 있었다.

"광복절에 日 가는 후배 한 마디 했더니…제가 유난인가요?" (naver.com) (24.08.25. 한국경제)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역사 문제와 사생활은 별개’이므로 삼일절이나 광복절에 일본 여행 가기를 개의치 않는다는 내용의 기사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댓글들이 대부분이었다. 일견 타당해 보인다.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분명 옳지 않다.


 다만 개인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 권리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 저편에 가려진 것들이 나로서는 눈에 밟힌다.

 일제강점기라는 국난의 시기에 숭고하게 희생했던 사람들의 일생과 그들이 추구했을 가치들,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던 선조들 말이다.


 삼일절이나 광복절에 일본 여행을 가는 행위만으로 과연 역사의식이 미흡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완벽한 인과관계가 성립되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섣부른 우려일지 몰라도 이 상관관계가 시간이 지날수록 역사의식이 옅어지고 있는 세태를 반영하는 하나의 징후 같아서 걱정이 된다.

역사의식이 흐릿해진 때를 틈타 일본과 관련된 지금의 터무니없는 이슈들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것만 같아서 두려울 따름이다.


“빼앗기면 되찾을 수 있으나 내어주면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주인공 유진의 대사다.


 앞서 언급한 논란들을 지켜보자면, 역사를 왜곡하고 외면하면서까지 무언가를 내어주는, 혹은 그보다 더 큰 무언가를 내어줄 준비를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 우리의 역사의식마저 흐릿해진다면 얼음은 더 빠르게 굳어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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